소설리스트

〈 27화 〉file-16 숫자 앞에서는 장사 없다. (27/66)



〈 27화 〉file-16 숫자 앞에서는 장사 없다.

“다만 이빨이라고말한 적은 없으니까 어딜 날릴지는 나도 잘 몰라.”

다치바나는 누구에게도 보여준  없던 비굴하고 처참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이라도 핥을 것 같은 기세로 대답했다.

“예 예. 뭐든지.”

“두 번째 질문이다.  아이가 도조 회장의 유일한 외동딸인 것은 대충 알고 있긴 한데, 대체 무슨 이유로 두 번이나 잃어버린 거지?”

“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고작 작업용 시리즈 H나 사용할 줄 아는 노동자들이 가장 경계가 삼엄할 도조 회장의 옆까지 무슨 수로 갈  있냐는 얘기지. 분명 빨갱이들한테 무기랑 전투용 시리즈H도 몰래 조달받긴 했지만, 그땐 우리가 전부 다 막아내 줬거든.”

다치바나 요시오는 납작하게 엎드려, 이마를 바닥에 세게 찧은  대답했다.

“그것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회장님은 그 일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이건 사실입니다! 아무리 고문해도 대답이 바뀔 일이 없으니까 제발 그만둬주세요!”

회장은 일부로 슬그머니 소리를 내서 웃으며, 그의 머리채를 잡아 인중 쪽에 나이프를 들이밀었다.

“저어어어어엉말? 진짜야? 정말정말정말 고문해도 아무 것도 안 나온다고?”

“없습니다!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회장은 한참 동안 다치바나의 눈을 쳐다보다가,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는 모양인지. 흥미 없다는 식으로 그의 머리채를 풀어줬다.  번째 질문의 대답까지 들은 회장은, 질렸다는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켜며 다시 한번 확인차 물어봤다.

“에이 시시하네. 그러면 더 이상은 없다는 거지?”

“예! 예! 더 이사, 사사사상! 상!! 우부뤡!”

회장이  이상 가치가 없어진 다치바나 요시오를 죽이기위해, 민스 미트를 뽑아 들려는 순간. 그의 머리가 부풀어 오르면서 물풍선처럼 터져버렸다. 회장은 재빨리 손바닥을 들어 눈을 가렸지만,   방울이 눈에 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런 눈에 피가 튀었…. 이 녀석. 이미 죽어 있었다는 건가?!”

회장이 막 눈을 씻어내고 주변을 확인하려는 순간. 다른 네 명의 생존자도 순식간에몸이 부풀어 올랐다. 그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기괴한 비명을 토해냈다.

“흐끼룩!”

“꺼륵!”

뒤이어 피가 가득 찬 고깃덩어리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몸뚱이가 바닥에 패대기쳐진 토마토처럼 터져버렸다. 그리고 그때 그들 몸에 있던 뼛조각이 사방으로 튀어 회장의 몸 여기저기에 박혔다.

“젠장. 이게 바로 혼닛츠의 전통 깊은 가미가제 공격이냐! 이 새끼들. 이래서는 나갈 때부터 이미 죽어 있던 놈들이잖아.”

회장은 머리통이 날아간 시체들을 발로 걷어차며 이것저것 뒤적이던 중. 사우스 스네이크 본사 방향에서 화약 냄새 가득 풍기는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발견했다.

게다가 폭발이 일어난  근처에 이전까지 없었던 건물이 하나 우뚝 솟아 있었다. 그 건물에서 끊임없이 로켓 추친제의 불꽃과 주황색 유성 같은 예광탄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저건?!”

회장은 곧바로 블랙 맨티스를 보며, 이를 악물었고 블랙 맨티스의 큼직한 외눈이 새빨갛게 빛났다. 잠시 후. 수많은 포탄과 로켓탄이회장의 머리 위를 뒤덮으며 주황빛 불꽃으로 그녀를 완전히 집어 삼켜버렸다.


같은 시각. 사우스 스네이크 사의 본사 최종 방어선.

이곳에서는 블랙 맨티스와 비슷한 시리즈 H의잔해와 검은색 전투기 잔해. 아직 간신히 살아남은 십 수 대의 블랙 맨티스.

블랙맨티스의 윤곽이 남아 있는 전투기  다섯 대. 그리고 다소 기괴하게 생긴 시리즈 H  대가 각자 다른 진영에 배치되어 시리즈 H 같은 실루엣의 이동요새. 다이다라봇치의 뒷문에서 무한히 쏟아지는 시노비 대군을 상대하고 있었다.

앉은뱅이 같은 인간의 실루엣 같은 건물 뒤편에서, 한 대 박살 내면 열 대씩 추가로 쏟아져 나오는 게 마치 설사가 줄줄 새는 것 같았다.

다이다라봇치에서 본격적으로 교전을 벌이게 된 것과 동시에, 사우스 스네이크 사는 전력의 절반 이상을 순식간에 날려 먹고 끊임없이 증원되는 대군을 맞이하는 악조건과 맞부딪치게 된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우스 스네이크 사에서는, 생산시설이 정지된 탓에 본사 안에 남아 있는 블랙 맨티스와 로날드가 가져올 약탈품에만 보급을 의존해야만 했다.

“여기는 사라. 별로 상황이 좋지 않아 잭슨. 블랙 맨티스도 회장님이 써야 그럭저럭 쓸만하지, 인공지능으로 돌려놓으니까 총알받이로도 쓸 수 없는 쓰레기라고.”

지상 쪽에서는 전투기에서 변형한 블랙 맨티스 무리에 둘러싸인 노란색 시리즈 H가, 사우스 스네이크 본사로 밀고 들어오려는 시노비 부대를 막아내고 있었다.

그 기체는 세 쌍의 길고 가는 팔이 등과 옆구리에 붙어 있고, 허리 아랫부분이 곤충의 배처럼 부푼 채. 다리 대신 큼직한 호버 유닛을 이용해 공중에 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본체 부위의 장갑이 유선형과 곡선으로 이뤄져 있어, 마치 무당거미 같은 불길한 외형을 띠고 있었다.

사우스 스네이크 사에서 제작한 시가전용 시리즈 H. 레클루즈. 장애물이 많거나 길이 고르지 못하고 협소한 장소. 즉 도시 바깥의 약탈자 거주 지역에 투입되는 격투전용 시리즈 H였다.

 거미 같은 시리즈 H  조종석 안에서는 사라가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하듯, 손가락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여러 개의 팔을 한꺼번에 조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클루즈를 호위해야  블랙 맨티스 부대가, 자기들끼리 등에 총을  갈기거나 레클루즈와 부딪치면서 오히려 그녀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다. 레클루즈는 보조 팔로 엉키고 꼬인 블랙 맨티스 부대를 헤집으며 앞으로 나섰다.

“에라이 씨발! 하나도 도움이 안 되잖아! 넓게 흩어지라고! 넓게!”

사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홀로그램 화면을 조작하자, 블랙 맨티스 부대는 각자 빠르게 흩어지긴 했지만  와중에도  대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사라는 한숨을 내 쉬며, 블랙 맨티스 부대의 조작을 중단하고. 곧바로 시노비 부대를 향해 질주하며 레클루즈의 레버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와 동시에 인간의 팔과 똑같은 형태의 두 팔로 크고 무거운 작약 사출식 해머를 휘둘러댔다.

망치가 시노비의 장갑판에 닿을 때마다, 안에 들어있는 작약이 폭발하며 안에 숨겨진 말뚝이 여러  튀어나왔다.

그리고  쌍의 팔이 각자 착암기 비슷한 말뚝과, 회전 톱날을 앞으로 뻗어, 쏟아지는 시노비들을 고철 덩어리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나머지  쌍의 팔은 몸체를 전부 가릴 정도의 거대한 세라믹 방패를 들고 사방에서 쏟아지는 탄환과 칼날을 막아내는 중이었다.

“그러면 있는 대로 전부 다 꺼내서 퍼부어. 어차피 그 녀석들. ‘지금’은 회장님이 쓸 수도 없잖아. 니콜라우스를 찾아내는 것하고 본사 사람들을  멀리 떨어트려 놓는  목적이니까, 지금은 뭐든  쓰라고!”

잭슨이 말을 마치자마자, 높은 곳에서 포탄과 로켓탄의 비가 쏟아지며, 레클루즈 주변에 몰린 시노비 부대를 뒤덮어버렸다. 폭우에 얻어맞은 시노비들은 죄다 중요한 부분이 관통되거나 파손되어 기능이 정지된 고철덩이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원 샷 원 킬이라도 저렇게 수가 많으면 곤란해. 차라리 저격 따윈 때려치고 직접 쳐들어가서 다 박살 내고 싶다고.”

사라는 잭슨의 과격한 말에 차가운 기운이 내려앉는 걸 느꼈다. 그녀는 걱정이 잔뜩 묻어나오는 투로 잭슨의 성질머리를 눌렀다.

“저격팀이라고 안전한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둬 잭슨. 그건 그렇고저 본사 건물….”

두 사람은 모니터에 드러난 다이다라봇치 요새를 올려다봤다. 사우스 스네이크 본사의 몇 배는  것 같은 넓이에 두 배나 되는 높이의 초 고층건물. 바벨탑에 빗댈 정도로 거대한 혼닛츠 본사건물에서는, 몇 분마다 열 대가 넘는 시노비 소대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이래서는 끝이 없잖아!”

그뿐만이 아니었다. 까마득할 정도로 높은 곳에서 덮쳐지는 거대한 손짓에, 옥상 쪽에서 시노비를 하나하나 쏴 잡고 있던 양산형 블랙 맨티스 1개 소대가 건물 채로 짓눌려버렸다.

적은 끊임없이 늘어나는데, 반대로 사우스 스네이크 쪽은 팔 한 번만 휘둘러도 눈에 띌 정도로 전력이 줄어들고 있었다.

그것을 본 다른 저격팀이 레이저 라이플과 클라스터 미사일. 휴대용 기화폭탄 같은 중화기를 퍼부어댔다.

시리즈 H 한 대 크기의 클라스터 미사일의 본체가 열리면서, 내부에 수납된 수십 발의 마이크로 미사일이 크래모아의 산탄처럼 넓게 흩뿌려졌다.

뒤이어 휴대용 기화폭탄이 팔의 관절부에 박히면서 기화성 액체와 분말이 한꺼번에 퍼지는 것과 동시에, 넓은 지역을 집어삼키는 폭발로 변해버렸다.

“젠장. 보통 단단한 아니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다라봇치의 외벽만 떨어져 나가고, 안에 있는 장갑은 약간 녹아서 눌어붙은 흔적 외에는 손상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잭슨의 저격팀은 포기하지 않고, 외벽이 떨어진 부분만 노려 레이저 라이플을 한 점에 집중해서 사격했다.

도시 절반 정도를 집어삼킬 것 같은 크기의 다이다라봇치는, 마구 쏟아지는 막대한 화력을 팔 하나로 막아내긴 했다. 하지만 결국 한꺼번에 날아 들어온 집중포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하완부가 끊어져 버렸다.

부러진 프레임과 케이블 다발 몇 가닥이 저 무거운 걸 지탱한 모습은, 꼭 목이 매달린 시체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같았다.

“이제 겨우  하나다! 본체 쪽으로 화력을 옮겨!”

잭슨이 다른 저격 팀에 지시를 내리는 것과 동시에, 혼닛츠 본사 건물의 옆구리가 열리면서 새로운 팔 파츠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도마뱀 꼬리처럼 망가진 팔을 떼어낸  건물 안에 들어있었던 새 팔을 끼워 맞췄다. 그것도 모자라 떼어냈던 팔을 다시 옆구리 안으로 집어넣고 해치를 닫아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파손된 시노비의 잔해들마저, 바닥의 하복부 해치를 통해 끝없이 들어오고 다시 쏟아져 나오고 있어. 사우스 스네이크 사 측에서는, 거의 일방적인 소모전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젠장! 본사 건물 안에 수리 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는 건가? 자원만 충분하다면 밑도 끝도 없이 밀어붙일 수 있다는 얘기잖아!”

특히 잭슨과 사라에게 더욱 괴로운 사실은, 혼닛츠 본사 건물이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 보내고 있는 양산형 블랙 맨티스의 잔해들마저 쓸어 담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압도적인 물량을 이기지 못해, 결국 똑같이 숫자로 밀어붙이지만 그게 오히려 혼닛츠 사를 도와주는 결과가 나오는 탓에. 두 사람은 다급하게 모니터로 주변 상황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파손된 시노비가 블랙 맨티스의 파츠를 달고 다시 전선에 뛰어들거나. 망가졌던 블랙 맨티스가 시노비 사이에 섞여 이번에는  사람을 위협하는 측에 서버렸다.

방금 전부터 잭슨은 평상시의 차분함과 냉정함을 잃은 것처럼 재촉하듯 화를 내다가, 사라에게 거의 따지다시피 물어보기까지 했다.

“니콜라우스 씨는 어떻게 되었지? 아무도 대피시키지 않은 거야?! 네가 보낸 의료용 안드로이드 쪽은 아무 반응도 없는 거냐고?!”

그렇게 잭슨이 전에 없이 다급한 투로 물어보자, 사라는 기가 확 죽은 것처럼 대답했다.

“내가 보냈던 의료용 안드로이드에는 아무 반응도 없었어. 아마 본사 건물이 파손되면서 같이 망가진 것 같아.”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손대지 않은 건가?”

잭슨이 한숨 쉬듯 물어보자, 사라는 치밀어 오르는 뭔가를 참아내며 대답했다.

“다들 급하게 도망가느라고 아직 아무도 손을 안 댔어. 빌어먹을. 그동안 영감님한테 도움받은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왜 그따위로 행동하는 거야?”

이에 잭슨은 반쯤 포기한 투로말했다.

“별수 없잖아. 회장님이 무작정 전부 다 빠져 나가라고 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그 녀석들이 올바른 행동을 하는 거고, 우리 둘은 그냥 명령위반을 한 것뿐이니까.”

잭슨이 사라의 의문에 곧바로 대답하자, 사라는 갑자기 입을 꽉 다물었다.

그 사이에 사라의 레클루즈 주변을 둘러싼 시노비 무리 중 한 대가, 회전 톱날이 붙은 하나를 붙잡고 꺾어버렸다. 뒤이어  틈을 노린다른 한 대의 시노비가, 반대편의 가느다란 팔을 아라사키로 쏴서 부숴버렸다.

그때  발의 총성이 터지면서, 레클루즈와 아주 바짝 붙어서 공격하던 시노비 두 대가 각자 상반신과 하반신이 박살 난 채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곧장 잭슨의 통신이 레클루즈의 조종석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명령 위반을 한 이상. 죽어도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을  분명한데 누가 그렇게 쉽게마지막까지 남을 생각을 할 것 같아?”

그러자 레클루즈를 둘러싸고 있던 시노비 무리가, 잭슨의 불스아이를 향해 집중 포화를 퍼부어댔다.
잭슨은 양산형 블랙 맨티스를 앞세워 쏟아지는 총알들을 막은 뒤, 빠른 움직임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다리 부분이 피격당해,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는 고정 포대로 변해버렸다.

사라의 레클루즈 역시, 쏟아지는 공격에 방패 두 개가 다 박살 났다. 하지만 레클루즈의 움직임 전체를 담당하는 호버 엔진 부분만큼은, 미꾸라지가 손바닥 위에서 빠져나가는 것처럼 교묘하게 피격당하지 않았다.

그때. 잭슨의 음성 통신을 받은 사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들릴 듯 말 듯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있잖아. 지금 같이 명령 위반해주는 바보 한 명 말이야.”

그리고 사라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자신의 뺨을 손바닥으로 세게 치면서 끊임없이 몰려드는 시노비 무리를 노려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