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file-14 라스트 사무라이 (25/66)



〈 25화 〉file-14 라스트 사무라이

히로시는 처음으로 사우스 스네이크의 회장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녀를 만난 곳은 사우스 스네이크 측에서 준비해준 위로연으로, 성공적으로 1차 작전을 버텨낸 것에 감사를 표한다는 뜻으로 혼닛츠 측을 초청한 것이다.

 자리에서 히로시를 비롯한 모든 사설 경찰들은, 인사를 하기 위해 올라온 회장을 보자. 그녀가 붉은 코트를 입고 돌아다니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녀가 입고 있던 게 붉은 옷이 아니라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자세히 보니 코트 곳곳에 붙어있는 액세서리인 줄 알았던 물건들이, 조금  자세히 보면 깨진 사람 이빨이나 뼛조각.

그리고 눈알과 말라비틀어진 내장 조각과 구더기였다. 그것만 봐도 히로시와 혼닛츠 측의 사설 경찰들은, 저 여자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있었다.

“피비린내 때문에 코가 문드러질 지경이군. 보통 사설 경찰 업체의 회장이 저렇게 직접 날뛰는 건 못 봤는데?”

15년 이상 사설 경찰 일에 뛰어들다 보면 온갖 참상과 생지옥을 보고 오는지라, 어지간한일에는 눈썹 한  움직이지 않던 병력이다.

하지만 온몸에 피와 시체 파편을 뒤집어쓰고 돌아다니는 사우스 스네이크 사의 회장은, 심지가 굳을 대로 굳은 혼닛츠 사의 사설 경찰들마저 버틸  없는 참상이었다.

혼닛츠 측의 사설 경찰  절반은 피비린내와 썩은 냄새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먹던  죄다 토해버렸다.

나머지 반은 고개를 돌리거나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히로시마저도 요리 접시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단 하나. 말단 사설 경찰 다치바나 요시오만은 아랫도리를 빳빳하게 세운 채,뭐가 그리 즐거운지 히히덕거리면서 생고기를 신나게 뜯어먹고 있었다.

히로시는 혼자 앞으로 나서, 회장에게 조용히 한마디 던졌다.

“사우스 스네이크의 회장이 맞습니까?”

“아 내가 회장이지. 가끔 사설 경찰 연합 모임 때 자주 얼굴 마주쳤잖아. 혼닛츠 측에서 네가 대표로 나온 것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고.”

그러자 히로시는 항상 말을 두세  정도 빙빙 돌려서 상대방의 눈치를 살피는 혼닛츠 식의 요청이 아니라, 곧바로 자신이 원하는 목적부터 확실히 밝혔다.

“예. 저도 당신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고 있죠. 1년 전의 사설 경찰 연합 모임에서도 이렇게 나왔으니까요. 다만 지금은 저희를위한 위로연 자리니까, 저희 직원들이 불쾌하게 여길 행동은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모습에 혼닛츠 사설 경찰들은 잔뜩 얼어붙은 채 각자 테이블 밑이나  안에 숨겨둔 권총과 기관단총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회장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침묵을 깨고, 히로시에게 한마디 던졌다.

“아 그렇군. 미안 잠깐 약에 취한 상태라서 말이야. 그러면 옷을 갈아입고 올게. 그동안 좀 지저분해진 것도 치울 사람을 보내지.”

회장은 시원스럽게 말하면서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이것이 히로시가 사우스 스네이크 사의 회장과 처음으로 만난 날의 풍경이었다.

“만약 그때 혼닛츠 식으로 빙빙 돌려 말했다면 대판 싸움이 벌어졌겠지.”

히로시는 슬며시 웃으면서 다음 추억으로 기억을 넘겨버렸다.


1차 폭동의 최종 진압 작전을 앞둔 전날. 사우스 스네이크의 회장은 히로시만 따로 불러 가볍게 술자리를 가졌다.

그때에는 폭동을 일으키는 노동자들을 전부 사살하지 말라는, 도조 회장의 지시가 있었다. 덕분에 혼닛츠 내부의 사설 경찰들은, 놀랍게도 비 치사성 진압 장비를 사용해 맨몸으로 덤비는 폭도들을 제압했다.

죽일수밖에 없는 인원과 시리즈 H를 사용하는 사설 경찰 내부의 폭도들은 사우스 스네이크의 인원들이 사살하는 쪽으로 나뉘어서 작전을 실행하던 중이었다.

“대체 어쩌자고 이런 난장판이 벌어지는지 모르겠군. 가끔씩 노동자 폭동이 벌어지는 기업들에 파견을 나간 적은 있었지만, 우리 본사가 이런 일에 휘말리다니….”

사우스 스네이크의 회장과 히로시가 창밖을 내려다보니, 바깥은 여전히 말단 사설 경찰들과 노동자들이 서로 머리통 터지도록 싸우는 중이었다.

“뭐 앞으로 이런 폭동은 점점  사방으로 번져나갈지도 모르지. 노동자나 직원들을 아무리 약으로 세뇌해가면서 부려먹는다 해도, 결국은 ‘인간’인 이상은 통제에 따르지 않게 되어 있으니까. 애초에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조차 통제하기 힘들어서 개발을 중지해버렸잖아.”

히로시는 예전에 사설 경찰 정신교육 시간에 들었던 ‘안드로이드의 공산주의 반란.’ 사건을 떠올렸었다.

안드로이드에 인간과 98% 동일한 사고 패턴을 가진 인공지능을 장착한 이후. ‘자본주의는 인간을 버렸다! 자유 합중국은 이미 인간이 사는 사회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기계다!’라는 주장을 하기시작했다.

그 직후 놀랍게도 안드로이드가 공산주의자 선언과 함께, 동료 안드로이드 수십만 대를 탈취해서 반 자유 합중국 공산주의 연합을 창설했다.

물론 지금은 그 공산주의자라는 안드로이드는 소수만 남아서 산발적인 테러행위만 저지르는  전부였다.

하지만 안드로이드에 인공지능을 심어주니 ‘공산주의자’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자유 합중국의 모든 기업에게 믿을 수 없는 공포로 다가왔고. 결국 그 이후로 인공지능 사업 자체를 거의 패대기치게 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런 건가? 그게 사실이라면 자유 합중국이라는 것도 오래 가진 않겠군.”

히로시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한마디 흘렸다. 사실  말조차도 회장과 단둘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래.  망할 거야. 이런 사회는. 그렇다면 넌 이 망해가는 세상에서 대체 뭣 때문에 살아가는 거지? 히로시. 차라리 너도 나도 모두 깨끗하게 죽는 게 편할 수도 있잖아.”

회장이 기습적으로 질문을 던지자, 히로시는 허리 옆에 찬 할복용 와키자시를 뒤로 치우면서 실실 웃고 있는 회장에게 대답했다.

“그거야 난 도조 회장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이 혼닛츠 사를 무사히 지켜내 보이는  삶의 목표일세. 어릴 때부터 도조 회장님 집안의 은덕을 받았으니까. 그러는 자네는  때문에 이런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건가?”

그러나 히로시는 대답을 하면서도 무예에 능한 사람답게, 방어와 공격을 동시에 취했다. 히로시가 여유 가득한 눈으로 회장을 쳐다보다가, 회장의 눈빛에 아주 잠깐이지만 깜짝 놀라 미간에 주름을 잡고 말았다.

“나? 빚쟁이니까. 내가 쓰는 건 전부 다  것이 아냐. 기업 연합의 돈으로 먹고 자고 싸고, 기업 연합이 주는 총과 칼. 그리고 시리즈 H로 기업 연합의 적을 죽이는 삶이니까. 게다가 이 몸뚱이도 사실 기업 연합에서 빌렸거든.”

회장은 풍만한 가슴과 탄력 있는 엉덩이를 주무르면서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는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녀는 마치 헤비 메탈을 잔뜩 복용한 것처럼 눈동자를 새빨갛게 물들였다. 그리고 잇몸까지 훤히 드러내면서 웃는데, 그 모습이 마치 상어나 악마가 뾰족하고 날카롭게 갈린 이를 드러내면서 먹잇감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보였다.

“과연 그렇군. 지금  사치도 빌린 돈으로 즐기는 건가?”

히로시는 그럼에도 이미 한 번 놓은 공격을 쉽게 풀지 않았다. 이에 회장은 입 꼬리를 더욱 높게 찢어 올리며, 일부러 과장된 몸짓으로 가슴과 엉덩이를 쓸어내렸다.

“부잣집 개는 밥그릇도 순금으로 된 걸 쓰고 목걸이도 다이아가 박혀 있는 거 아냐? 부잣집 개가 가난한 노동자 집안의 어린 애들보다 잘 처먹고 잘 입고 사는법이야. 이게 전부 다 개새끼 품위 유지비라고.”

그녀가 내뱉는 말에는 웃음기와 동시에 증오와 분노가 짙게 뒤섞여 있어, 거의 노래처럼 들렸다. 히로시는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감추며 다시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지금  자유 합중국에서 뭘 바라는 것이지?”

그러자 회장은 한참 동안 폭소를 터트렸다. 건물 유리창에 손을 짚은 채, 이러다가 숨이 막혀서 죽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웃었다. 잠시 후 회장이 웃음을 멈춘 다음, 육즙이 가득한 레어 스테이크를 한입 가득 베어  것 같은 얼굴로 대답했다.

“혼돈! 모든 것이 파괴되고지금의 자유 합중국이 산산조각 나서원래대로 갈래갈래 찢어지는 걸 원하지. 거기에 자유 합중국의 자본만능주의가 박살 나서, 지금까지 가만히 앉아서 꿀만 빨아 먹던 녀석들이 길거리에 나앉아서 자기들이 뭘 잘못했는지 고민하면 더 좋겠지!”

히로시는 공산주의자도 쉽게 내뱉을 수 없는 과격한 말에 현기증을 느끼면서, 마치 인간이 아니라 옛날에 읽었던 동화의 도깨비를 보는  같은 시선을 보내며 다시 물어봤다.

“다 박살나 버리면 좋겠다는 건가? 그렇다면 너는?”

“물론 내가 빌린 물건들을 전부 다 터트리고, 내 몸뚱이까지 폭탄으로 삼아서  부숴버릴 거야. 참 신나는 일 아냐? 내가  세계에 퍼질 불꽃놀이에  폭죽이 된다는 게?”

“그러면 박살 낸 뒤에는 뭘 어떻게 할 생각이지?!”

히로시는 전에 없이 격한 감정을 드러내며 회장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회장은 광기가 싹 빠져 나가고 순수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게 끝이야. 내가  일은 이 자유 합중국을 혼돈 속으로 밀어 넣으면 그만이라고. 왜? 내가 그 뒤에 새로운 왕이 될 거라는 생각이라도한 거야? 난 그런 데에는 관심 없다고.”

그녀는 환하게 웃으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자유 합중국을 이따위 꼴로 만든 게 바로 나니까 말이야. 내 나름대로이 세계에 책임을 지는 방식이라고.”

 말을 끝으로 회장은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히로시는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피비린내가 확 풍기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하며, 걸어나간 곳마다 핏자국이 떨어져 있지 않나 한참 동안 쳐다봤다.

‘당장은 같은 기업 연합 안의 사람이니 싸울 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녀와 싸우게 된다면 살아남을 생각 따위는 버릴 수밖에 없겠군.’

히로시 역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최소한 다음에 만날 때에도 적이 아니라 다시 동료로 만나기를, 더 나아가서는 두 번 다시 그녀를 만나지 않기를 속으로 기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