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file-13 야마토의 혼
“별 탈 없이 올라갔지? 커버 잘 해주라고 잭슨.”
“걱정하지 말고 잘 엉겨 붙으라고 사라. 살아서 회장한테 한 소리 들어야지. 회장이랑 다른 직원들도 없는 이곳에서 홀라당 죽는 건 사양이라고.”
“나도 지금 여기에서 죽는다면, 남이 씹던 껌을 받아먹는 기분이 들걸. 그러니까 둘 다 니콜라우스 영감을 찾아올 때까지는 끝까지 살아남자고.”
그렇게 두 사람이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는 동안, 사우스 스네이크의 본사 건물 뒤편에서는 블라디미르가 사람 머리 크기의 물건을 코트에 감싼 채 조용히 밖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어이쿠. 단 두 사람의 옥쇄인가? 혼닛츠나 할 짓을 사우스 스네이크에서 벌이다니 이거 참 웃음이 나는군. 뭐열심히 둘이서 버티면서 니콜라우스 영감을 열심히 찾아보라고.”
블라디미르는 씩 웃으며 가변형 전투기 조종석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전투가 벌어지는 틈을 타서 자리를 뜰 생각으로, 아직 엔진조차 켜놓지 않은 채 나초 칩과 탄산음료를 꺼내 두 세력의 대치상태를 지켜봤다.
한편 다이다라봇치의 중앙 제어실. 제어실의 홀로그램 모니터에는 세리울 시의 외곽 지역이 단순한 그래픽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 건물 옥상에 파란 점 하나와 빨간 점 다섯 개만 점멸되어 있고, 나머지 풍경은 완전 허허벌판으로 그려져 있는 상태였다.
“저게 생존자들인가?”
도조 회장은 뭐가 그렇게 진정되지 않는지, 눈에 핏발을 잔뜩 세운 채 일어나. 중앙관제실 전체를 분주하게 걸어 다니며, 상황 테이블에 앉아 있는 직원들에게 마구잡이로 질문을 던졌다.
규칙 없이 돌아다니던 도조 회장은 여섯 개의 점이 번득이는 건물을 가리키며, 제어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직원에게 상황을 물어봤다.
그러나 도조 회장의 시선은 벽에 걸려 있는 기다란 칼과, 상황 확인 중인 직원의 목덜미에 고정되어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다만 생존자 중 한 명은 타깃입니다.”
상황실 직원은 재사회화 교육까지 마친 안드로이드처럼, 생기나 감정이 실리지 않은 기계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 일반 노동자를 제외한 고급 기술을 담당하는 본사 직원들까지, 일일이 명령을 내려야만 움직이는 복제 인간을 사용할 수없었다. 결국 이들은 2회에 걸친 노동자 반란으로 제거된 ‘비국민’.
그리고 그 자리를 대체하는 복제품이 아니라, 진짜 혼닛츠 주 소속의 얼마안 남은 기업 중역들이었다.
“결국 야스쿠니 놈들은 죄다 한 놈한테 청소 당했다고 봐야 하나.”
이에 질문을 받은 직원은, 최대한 긴장하거나 겁먹은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상태로 칼을 빼든 도조 야스히코 회장에게 기계처럼 무감정하고 건조한 투로 즉시 대답했다.
“예. 미끼로 투입한 야스쿠니 사설경찰 500여명 전원 전멸했습니다. 생존자는 겨우 다섯 명. 그중에서는 총사령관인 다치바나 요시오도 있습니다.”
도조 회장은 피식 웃으면서 담배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그리고 벽 구석에 가득 쌓아둔 박스에서 캔 음료 하나를 꺼내 마셨다. 음료수 캔에는 일렉트릭 기타에서 스파크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아주 순식간이군. 아무리 한 기업의 회장이라고 해도 사설 경찰 부대를 단번에 청소해버리다니. 역시 괜히 미친년이 아니잖아.”
제어 테이블의 직원 한 명이 회장에게 생존자들에 대해 물어봤다.
“그래서 저들의 처분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도조 야스히코 회장은, 다 마신 캔을 가볍게 찌그러트린 뒤. 마치 오늘 날씨를 물어보는 질문에 대답하듯 간단히 한마디 했다.
“어쩌긴 마지막까지 잘 써야지.”
도조 회장은 제어실 테이블 위에 붉은 버튼 모양 모니터를 띄웠다.
“지금은 사우스 스네이크 본사를 박살내는 데 집중해! 시노비 즉석 생산 라인 전부 돌리고, 인공지능 박아 넣은 클론들 계속 보내! 그래도 안 밀리면 그걸 쓴다! 대구경 하전입자포 야마토를 준비해라!”
직원들은 도조 야스히코 회장이, 붉은 버튼 모양 모니터를 띄운 것과 대구경 하전입자포 야마토를 쓰겠다는 명령을 보고 들으면서 크게 놀랐다.
하지만 그의 행동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의문을 건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도조 야스히코 회장의 눈치를 살핀 뒤에, 영혼 없는 대답을 내뱉으며 회장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혼닛츠 사가 그동안 쌓아 올린 자원들을 마구 내다 버리며, 선전포고 없는 기업 항쟁을 벌인 것도 모자라. 기업도시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할 무기까지 사용하는 것을 돕고 있었다.
“야스쿠니 사설 경찰들의 내부에 심어둔 기폭장치 준비 완료.”
직원들은 억양과 감정 없는 목소리와 말투로 상황 보고를 하며, 여러 개의 복잡한 시스템을 순서대로 작동시켰다. 그 모습에도조 회장은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는지, 자리에 앉아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야마토 포 입자 충전중! 5분 뒤 충전 완료됩니다.”
도조 회장은 부하 직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 목을 베어버리거나 머리통을 총으로 쏴 갈기면 그만이었다.
그는 음료수 캔을 바닥에 대충 집어 던지고 나서, 생존자 다섯이 표시된 지도를 확인했다. 그리고 씩 웃으며 그들에 대한 마지막 지시를 다 마신 음료수 캔처럼 던졌다.
“놈들이 쓸데없는 걸 떠벌리기 시작하면 보안 유지 시스템 가미가제 작동시키고, 놈이 있는 곳에 큰 거 한 방 날려. 그리고 후나사카 히로시. 이놈 깜빵에서 도로 꺼내 갖고 저 검은 코트의 미치광이한테 보내라고.”
“예? 사실입니까?정말 그를 사우스 스네이크 사의 회장에게 보낼 겁니까?”
직원들은 질문을 해선 안 될 분위기인데도, 도조 회장에게 질문을 건넸다.
후나사카 히로시. 원래는 혼닛츠의 사설경찰 야스쿠니의 직원이고, 중앙이나 다름없는 아메리카 주의 사설경찰 업체들마저 탐내던 특급 직원이었다.
하지만 틈만 날 때마다 야스쿠니 직원들이 기업 연합 법을 어기는 것에 반발하고, 혼닛츠 사의 노동자 처우와 인간 복제. 전자동 작업설비 등을 반대해온 탓에, 도조 회장이 아예 ‘야마토 혼 주입’이라는 명칭의 재사회화를 시키기 위해 감옥에 가둬둔 상태였다.
직원들이의아한 눈으로 도조 회장을 쳐다보자, 도조 회장은 손에 잡히는 걸 아무렇게나 집어 던지면서 화를 냈다.
“그 녀석도 더 이상 쓸 일이 없으니까 저 미치광이한테 갖다 바쳐서 시간이라도 끌게 하란 말이야! 야마토 한 발 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도 몰라?! 그 전에 저 미친년이 여기까지 오게 놔둘 거야?”
도조 회장이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진 물건 중에는, 가득 찬 음료수 캔부터 시작해. 담배꽁초가 잔뜩 쌓여 있는 재떨이.
그리고 심지어는 날카로운 펜과 종이 자르는 나이프. 스테이크를 찍었던 포크까지 있었다.
그의 명령에, 직원들은 화들짝 놀라면서 히로시가 갇혀 있는 지하 감방을 모니터로 비췄다.
감방 내부에는 재사회화에 사용되는 환각 및 편집증. 분노 조절 장애 등의 정신질환을 유발하는 약물과, 반항적인 노동자들을 순하게 만드는 데 자주 사용하는 약물 발라드.
마지막으로 정신교육을 위해 같은 내용을 10분 간격으로 반복하면서 24시간 내내 틀어놓는, 혼닛츠 사의 과거 업적과 야마토 혼을 강조하는 제 세계 2차 대전의 홀로그램 영상만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한 중년 남성이 앉아 있었다.
반쯤 하얗게 샌 머리카락은 어깨를 넘을 정도로 길게 자라 있었고, 정리하지도 않은 수염은 목 끝까지 나서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온갖 세뇌성 약물을 잔뜩 투여받았음에도, 두 눈은 아직 빛을 잃지 않았고 오히려 강한 의지가 넘쳐흘렀다.
그것도 사우스 스네이크의 회장처럼 광기와 살기로 희번득하게 떠진 눈이 아니라, 대련을 앞둔 무술가와 같은 눈빛이었다.
그렇게 뭔가를 준비하는 것 같은 모습의 히로시에게, 직원 한 명이 도조 회장의 명령을 무감각한 말투로 전달했다.
“히로시. 드디어 도조 회장님께서 명령을 내렸다. 곧 사람을 보낼 테니 간단하게 정리하고 바로 출격하도록. 사용하던 시리즈 H는 늘 두던 곳에 있다. 그 기체에 목적지까지 표시했으니 긴 말 말고 나와라.”
음성 메시지가 끝난 순간, 히로시는 아무 말도 없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직원 중 한 명이 벌벌 떨면서 중앙통제실 밖으로 나갔고, 감방에서 일어난 히로시는 몸 곳곳에 전선 다발처럼 꽂힌 약물 주사를 뽑으며 혼잣말을 읊었다.
“날 그 정신 나간 야마토 혼인지 뭔지에 미친놈으로 만들기 전까지는 안 내보내려던 것 같았는데, 드디어 혼닛츠 사도 갈 데까지 간 건가? 자유 합중국에서 자신이 천황의 후손이니 뭐니 할 때부터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올 것이 왔군.”
잠시후. 직원 한 명이 옷과 헬멧. 그가 애용하던 혼닛츠식 도검과 권총을 들고 감방 앞으로 걸어왔다. 그 모습을 본 히로시는 옷을 갖다 준 직원에게 질문 한마디를 던졌다.
“상대가 누구지?”
“사설 경찰 업체 사우스 스네이크의 회장입니다.”
그의 대답에 히로시는 코웃음을 치면서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예 전부 다 나가서 죽으라는 소리군. 1억 총 옥쇄를 이런 식으로 벌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직원은 히로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눈살을 찌푸리며 먼 곳에 옷과 개인 장비만 놔두고 몇 걸음 물러서 있었다.
“아 신경 쓸 필요 없다. 이미 옛날 말이 되어버린 단어니까. 다만 그 죽어버린 말을 도조 회장이 다시 끄집어냈다는 게 문제지만.”
히로시는 총 옥쇄라는 단어를 되새기다가, 문득 사우스 스네이크의 회장과 혼닛츠 사의 제 1차 폭동 진압을 벌였을 때를 떠올렸다.
‘그렇군. 그때부터 일이 꼬이게 된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