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file-07 작고 귀여운 토끼발
컨테이너에 고정된 기계 팔이 블랙 맨티스의 팔과 다리 파츠를 떼어내는 동안, 회장은 왼쪽의 무기 격납고를 유심히 살펴봤다. 격납고에는 여러 사설 경찰 지원업체에서 생산된 중화기가 가득 쌓여 있었다.
“음 이런 시시한 무기들 밖에 없나? 그 회사들. 이것보다 좀 더 화끈하게 때리고 부수고 죽일 기똥찬 물건은 없는 건가.”
대부분은기관단총과 돌격소총. 저격용 소총과 개틀링 등의 실탄 화기였다. 이것만으로도 어지간한 도시나 쓰레기장 등을 청소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인지 혀를 차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 와중에 회장의 눈에 들어오는 무기가 딱 하나 있었다.
그것은 시리즈 H로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거대한 물건이었다. 본체 길이만 해도 시리즈H 한 대와 맞먹는 데다가, 두께는 시리즈 H의 양쪽 어깨너비쯤 되었다.
정상적으로 사용하려면 건물에 거치하거나, 바닥에 내려놓고 쏴야 할 정도로 거추장스러운 모습이었다.
특히 블랙 맨티스처럼 변형구조로 인해 프레임이 가볍고 변형으로 기동성을 최대한 살려야 하는 기체에는, 아무리 화력이 높고 전투를 길게 끌 수 있는 무기라도 지나치게 크고 무거우면 ‘짐 덩어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생긴 모습만 봐서는, 그냥 멀리서 거점을 잡고 쏘는 중화기였다. 뒤에 큼직한 탄창 같은 박스와 앞부분에는, 대구경 화기 같은 기다란 포신이 달려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상하게 포구는 본체와 탄창. 포신 크기에 비해서 너무 작았다. 눈을 크게 뜨고 봐야만 보일 정도였고, 포구 앞부분이 렌즈로 막혀 있었다.
게다가 방아쇠 역할을 할 그립은 포신 아래쪽이 아니라, 개머리판에 해당할 탄창 뒤 기다란 손잡이에 붙어있었다. 어디를 보더라도 정상적인 무기로 볼 수 없는 형태였다.
“어라 이건? 설마 이 녀석까지 쌔벼온 건가 잭슨? 하하 이 녀석 갑자기 무슨 약을 빨고 온 거야? 하하하하!”
다른 사람들이라면 대체 뭘 가져왔냐면서 화를 낼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회장은 눈앞에 놓인 거대한 괴물체에 크게 환호하며 기뻐했다.
“아하하하! 이거 아랫도리가 확 젖어버릴 정도로 짜릿한데. 나중에 상으로 어린 여자애 몇 명만 던져 주면 되려나. 물론 혼닛츠가 관리하는 도시에서 가져온 애들로 말이야 하하하하!”
그때 방사능 경고 표시가 크게 찍혀 있는 컨테이너 한 대가, 블랙 맨티스의 발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컨테이너 위에는 기둥에 묶은 소녀가 벌벌 떨면서, 회장과 블랙 맨티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나. 내가 말한 대로 그 아이도 보내줬네. 감사히 받아야지.”
회장은 기둥에 묶인 소녀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뒤이어 그녀는 조종석의 모니터를 움직여, 블랙 맨티스의 손을 조작했다. 블랙 맨티스는 오른손 검지를 뽑아,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연결 단자를 꺼냈다.
“그리고 A 세트의 알람도 미리 맞춰주지. 혼닛츠의 좆대라기 눈깔 놈들 히로시마하고 나가사키. 도쿄랑 치바처럼 다시 바삭바삭하게 구워주지 히히히힛! 하하하핫!”
블랙 맨티스가 컨테이너의 작은 구멍에 검지를 꽂아 넣었다. 그러자 컨테이너 윗부분에 큼직한 접시 모양의 레이더가 펼쳐지면서, 시한폭탄 같은 카운트다운 표시가 같이 떠올랐다.
회장은 마지막으로 블랙 맨티스의 조종석에서 내려, 전기 톱날이 붙은 큼직한 칼을 꺼내면서 다가왔다. 소녀는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칼을 보자마자 불안에 질려, 밧줄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수송 중 비상사태를 막기 위한 금속제 와이어가 쉽게 풀릴 리가 없었다.
회장은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소녀에게, 일부러 들으라는 듯 음산한 웃음소리를 흘리다가 검의 그립을 힘껏 쥐었다.
그러자 톱날이 울부짖는 굉음이 그녀의 귀에 흘러들어왔다. 소녀는 마치 물 밖에 꺼낸 생선처럼 마구 날뛰었지만, 그 와중에도 비명소리는 터져 나오지 않았다.
회장은 그 모습을 보고 더욱 크게 웃으며, 칼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소녀를 향해 바짝 달라붙은 뒤, 바닥을 향해 칼을 힘껏 내리찍었다.
그 와중에도 소녀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광소를 짓고 있는 회장과, 아직도 세차게 톱날이 돌아가는 검을 쳐다보고 있었다. 소녀의 그 모습에 회장은 입꼬리를 더 높게 찢어 올린 뒤….
검을 컨테이너 바닥에 꽂은 뒤, 그립을 놓고 조용히 절단기를 꺼냈다. 그다음 피식 웃으며, 소녀를 묶고 있던 와이어를 끊어냈다.
“뭘 생각하는 거냐? 죽이지는 않는다고. 날 아주 단단히 미친년으로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안심하라고 넌 절대 죽게 놔두지 않을 거니까.”
그렇게 말한 뒤, 소녀의 귀에 들리지 않게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주 귀중한 보물에다가 협상 재료니까 말이야.’
회장은 소녀를 어깨에 들쳐 맨 다음, 검의 그립을 다시 쥔 다음 한 바퀴 빙 돌았다.
컨테이너 천장에 큼직한 구멍이 뚫리며, 두 사람은 엄청난 속도로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그녀는 컨테이너 안에 한가득 쌓여 있는 무기들을 둘러보며 큰 소리로 웃어댔다. 소녀는 회장의 웃는 모습을 보며, 잔뜩 겁에 질려 한두 걸음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하하하하 내가 말했던 그대로 다 가져왔군 그래. 훌륭해! 아주 훌륭하다고!”
그녀는 무기들을 마치 남자의 심볼이라도 된 것처럼 부드럽게 매만지며, 눈을 위로 치켜뜨거나 닳아 없어질 정도로 핥아댔다.
소녀는 거기에서 뭔가 기분 나쁜 기억을 떠올린 모양인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조금 더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회장이 재빨리 눈치채고, 민스 미트를 뽑아 들어 그녀의 가슴을 향해 겨눴다.
“거기 꼬마. 너무 멀리 가면 곤란하다고. 넌 중요한 전리품이니까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
그러자 소녀는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움찔하다가 천천히 회장을 향해 앞으로 걸어갔다. 회장은 소녀를 죽 훑어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게 슬슬 걸어 들어오라고.”
소녀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회장은 소녀를 팔로 확 낚아챈 뒤, 컨테이너 벽을 총으로 쏴서 구멍을 냈다.
“자 이제 구경은 실컷 했으니까 쇼핑 시작이다!”
그녀는 소녀를 블랙 맨티스의 조종석에 던져 넣은 뒤, 자신도 조종석에 올라 탄 채로 장갑판을 닫아버렸다. 잠시 후 블랙 맨티스의 카메라가 붉게 번득이며, 컨테이너 윗부분을 마치 통조림 뚜껑처럼 뜯어내기 시작했다.
회장이 보급품 컨테이너와 소녀를 받고 재정비를 하고 있을 무렵. 붉은 전투기를 사우스 스네이크 본사 앞에 세워둔 빨간 머플러의 남자는, 왼손 엄지손가락에 스위치 하나를 띄워 전투기를 주변 풍경에 가려지도록 위장했다.
그리고 머플러에서 케이블 하나를 꺼내, 귀 뒷면의 구멍에 끼워 넣었다.
“성 니콜라우스 동지가 분명 여기에 있는 게확실한가?”
그러자 머플러에서 전파에 노이즈가 들러붙은 것 같은 소리가 났고, 붉은 머플러 남자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연기와 불빛이 나지 않는 세라믹 재질의 인공 담배를 꺼냈다. 대부분 연기가 나지 않고 빨아들이는 맛이 없다고 불평하는 싸구려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의외로 도움이 되는 물건이었다.
“그렇군. 이곳 지하 격납고에 있다는 말이로군. 하긴 니콜라우스 동지라면 시리즈 H 쪽에서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일류 기술자였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고?”
그는 담배를 깊게 한 모금 죽 빨아들이면서 교신 중인 상대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시 한번 머플러에서 잡음이 흘러나오고, 남자는 세라믹 담배를 씹어 부수면서 대답했다.
“당연한 걸 물어보고 있나? 감히 우리 동지를 맘대로 가져간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그리고 경우에 따라 반동 놈들 편에 섰다면 동지도 같이 보내줘야 하는 거 아냐?”
남자는 대답을 마친 뒤, 잘게 씹어 으깬 세라믹 조각과 니코틴 용액을 그대로 삼켰다.
“그 다음은 사우스 스네이크랑 싸우다가 힘이 다 빠진 혼닛츠 사를 털어먹어야지. 그 기동요새는 우리한테도 꽤나 유용하니까.”
남자는 씩 웃으며 사람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사우스 스네이크 본사 건물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이미 건물 내부는, 사람들을 전부 다 대피시킨 모양인지 감시 시스템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몇 개의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런 위장도 걸치지 않은 그를 잡아내지 않았다.
“역시 생명 반응을 감지하는 종류의 시스템만 켜놓은 건가? 그러니 나를 못 잡을 수밖에. 나는 애초에 살아있는 놈이 아니니까.”
그 남자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 뒤, 세라믹 막대로 된 담배를 하나 더 꺼내면서 마치 자기 집이라도 된 것처럼 긴급 상황에 쓰이는 자기부상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