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화 〉file-05 잘 가 퇴직금 대신 이걸 줄게. (16/66)



〈 16화 〉file-05 잘 가 퇴직금 대신 이걸 줄게.

X-38은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베스퍼를 통해, 충분히 경계를 갖추며. 로날드를 정찰 보낸 츠키치 클론 보디 생산구역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 연기. 그리고 불꽃. 평상시랑은 다르게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데.”

그녀는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꼈는지, 주사기를 목덜미에 하나 꽂으려 했지만 이를 악 물고 눌러 참으며 모니터 화면에 집중했다.

베스퍼는 갑작스럽게 급강하해, AP-16의 잔해가 가득한 지역 근처까지 접근했다. 그리고 X-38의 모니터 화면에 고철조각으로 변해버린 AP-16의 모습이 떠올랐다.

“젠장. 이미 늦어버렸다는 건가. 최소한 로날드. 그 녀석만이라도 남아있어야 하는데.”

회장이 남은 베스파를 전부 아래쪽으로 보내, 로날드의 흔적이라도 찾으려고 하던 중. 노이즈가 잔뜩 섞인 통신이 들어왔다.

“회장? 여기까지 왔습니까?”

“로날드?! 무사한 거냐?”

“뭔 기적을 바랍니까. 지금 다 죽어가니까 위치나 확인해서와 주시죠.”

뒤이어 모니터의  화면 한 곳에 붉은 점이 표시되었다. 회장은 로날드가 신호를 보낸 곳까지 X-38을 몰고 빠르게 날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날드가 신호용 피아식별 홀로그램을 띄운 게 모니터를 통해 회장의 눈에 들어왔다.

회장은 홀로그램 근처에 X-38을 세운 뒤, 피아식별용 선글라스를 끼고 홀로그램을 쫓아갔다. 잠시 후 로날드가 박살  건물 잔해에 기대 쉬고 있는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뭐야? 다 죽어간다면서 말끔하잖아. 장난해?!”

로날드는 제법 많이 다치긴 했지만, 출혈량도 그리 크지 않았고 상처 부위도 치명상은 아주 기막히게 빗겨나 있었다. 회장은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으며, 큼직한 바람구멍이  로날드의 어깨를 발로  밟았다. 로날드는 엄청난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바닥을 마구 굴러댔다.

“뭐하는 겁니까! 이러다가 덧나서  움직이면 어쩌려고 그러는 겁니까 회장!”

로날드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찍어 누른 뒤, 큰 목소리로 회장에게 따져 물었다. 그러나 회장은 별 것 아니라는  쓰레기라도 내다 버리는 투로 대답했다.

“어쩌긴. 새로 하나 갈아 끼우면 되잖아. 너 지금 그것도 낡을 대로 낡아서 교체할 때가 다 되지 않았나?”

“아직은 쓸 만한 수준입니다. 갈아 끼운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까?”

“그러니까 한  더 밟아줄까?”

마지막에 회장이 차가운 미소를 띠며, 코웃음을 치자, 로날드는 눈썹을 늘어트리며 대답했다.

“아니 이걸로 충분합니다. 회장님. 당신이 하면 농담 같지 않아서 무섭습니다.”

회장은 담배. 아니 대마초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뒤, 로날드에게 먹을 것이라도 던져 주는 말투로 보고를 요구했다.

“그래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 보고해.”

로날드는 귀에 끼고 있던 기계장치를 빼서 버튼 몇 개를 조작했다. 그리고 그 동안의 상황이 전부 다 홀로그램 화면으로 재생되었다. 그 영상을 다 본 회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마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것 불운 한 번 기막히게도 찾아오는군. 통신 한 번에 그렇게 반응해버리다니. 게다가 상대가 본사 그 자체라는 것도 일생에  번 겪을까 말까 할  이벤트니까.”

회장은 딱히 로날드에게 사과 같은 건 하지 않았지만, 로날드는 그런 요구하지도 않는다는 듯 크게 웃으며 시가를 물고 불을 붙였다.

“제 운이 뭐  그렇잖습니까.그래도 저는 크게 다친 데는 없으니 망정이지.  녀석은 이제 글렀습니다.”

로날드는 턱으로 붉게 물든 천 한 장이 덮인 물체를 가리켰다. 자세히 보니 사람의 머리끝과 손가락이 천 밖으로 나온 걸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모습은 사람이라고 부르기 어색할 정도로 짧고, 뒤틀린 상태다.

“그 목숨이 위태위태하다는 거. 네가 아니라 이쪽?”

회장이 눈썹을 살짝 올리면서 물어보자, 로날드는 자조적인 투로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머리 위로 미사일이 직격할 때에는 진짜 죽는가 싶었는데, 참 기가 막히게도 여태까지 폐수 처리장 해치를 엉덩이로 깔고 앉았지 뭡니까. 바로 문을 열고 그 밑으로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로날드는 팔꿈치와 허리 근처를 회장에게 보여줬다. 불량 클론이나 클론 소재용 단백질 등을 녹이는 데 쓰이던 폐수인지라, 용액이 닿았던 부분은 피부가 거의  녹아 근육이 드러나다시피 했다. 하지만 로날드는  상처에 대해서는 아픈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잘 했어. 일단 살아남았다는 게 중요하니까.”

회장의 칭찬에 로날드는 한숨을 내 쉬며 고개를 푹 숙였다.

“다만 그 덕분에 저도 모르게 도망가고 있던  녀석의 하반신은 미사일에 얻어맞고  모양이 되었습니다.”

로날드는 거기까지 말한  담배 연기가 섞인 한숨을 내 뿜었다. 회장 역시 연기를 뱉어낸 다음. 대마초를 비벼 끄고 천이 덮인 곳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천을 약간 걷어내 그의 얼굴만 드러나게 했다. 그는 거의 다 죽어가는 모양인지, 뭍에 나온 생선처럼 비참하게 숨을 헐떡이는 중이었다.

“이봐?   들려?”

그는 눈알만 위아래로 굴려 대답을 대신했다.

“지금 상황을 보니까 아무리 봐도 멀쩡히 살아날 것 같지 않은데, 어떻게 할래? 이제 편히 쉴래? 아니면 다시 한번 일어나서 싸울래?”

분명 허리가 끊어져 상반신밖에 남지 않았고, 그 상반신마저 파편이 여기저기 박혀있고 심한 화상까지 입은 상태였다. 그러나 회장은 그에게 다시 한 번 싸울 것을 물어봤다.

그는 고개를 내 저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하긴. 네가 이번이 다섯 번째였던가. 이젠 슬슬 쉴 때도 되었네.”

회장은 그의 목덜미에 주사기를 하나 찔러 넣었다.

“퇴직금에 덧붙여주는 특별 서비스다. 자 이걸로 푹 쉬라고.”

뒤이어 FU-13K의 탄창을 빼고 약실에 한 발이 장전된 것을 확인했다. 그녀는 그를 조용히 끌어안더니, 머리에 총구를 바짝 붙인  방아쇠를 당겼다.

난폭한 총성과 함께, 그의 머리통 윗부분이 날아가 버렸고. 숨소리 역시 끊어졌다. 회장은 머리가 박살난 남자의 시체를 조용히 내려놓으며 인사하듯 손을 흔들었다.

“잘 가라고. 그동안 우리 회사를 위해서 수고 많았어. 장례식은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챙겨줄게.”

“로날드? 일어나서 걸어갈 수 있지? 직원 시체 수습해서 장례 보내고. 거기 다 죽은 다른 직원 녀석들도 마지막까지 챙겨 가.”

회장은 로날드의 바로 옆에 널브러진 블랙박스 잔해를 가리켰다. 깨지고 찌그러진 블랙박스 표면에는, 회색의 단백질 덩어리 같은  말라비틀어진  여기저기 들러붙어 있었다.

“알겠습니다.”

회장은 다시 한번 마리화나를 피우며 다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안전한 곳으로 물러나게 되면, 곧바로 내가 말한 지역에 A세트도 같이 보내. 그곳에 아마 잭슨이 C 세트를 보내놨을 테니 알아보기 쉬울 거야.”

로날드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회장에게다시 물어봤다.

“A 세트 말입니까?”

“그래 그거 말이야.”

회장은 다 알고 있지 않냐는 투로 대답하며 로날드를 노려봤고, 로날드는 고개를 내 저으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알겠습니다. 회장님을 누가 말립니까. 좋습니다. 잭슨이랑 사라에게는 비밀로 하면 됩니까?”

“아니. 이미  녀석들도 다 알고 있으니까. 그냥 신경쓰지 말고 보내.”

“알겠습니다. 그러면 부디 무사히 일을마치고 돌아오시죠. 회장. 당신한테 받을 게 아직 톡톡히 남아있으니까.”

“잘 알았다고 로날드. 그러면 마지막까지 몸조심해서 들어가라고.”

회장은 모니터 하나를 띄운 뒤, 화면 하단의 붉은 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화면을 종이비행기 날리듯 던졌고, 홀로그램 화면은 마치 질량이 있는 물건처럼 날아 로날드의 얼굴 앞에서 멈췄다. 로날드는 화면을 받으면서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이동수단은 격납고에 두 대 남은 것 중에 몰래 하나 빼뒀으니까 곧 올 거야. 그때까지 몸은 잘 숨겨두라고. 아참.”

회장은 로날드에게 주사기하나를 던졌다. 로날드는 그녀가 던진 주사기를 받아서 확인하자마자 크게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받아둬. 고통을 덜어주진 못해도잠깐 잊어버리게 해줄 거야.”

로날드는 숫자를 몇  혼잣말로 읊으며 계산하다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질문을 던졌다.

“시리즈 X 한 대당 비치된 헤비메탈은 3개. 하나는 방금 보낸 직원에게 썼고, 다른 하나는 제가 갖고 있는데, 회장님이 쓸 충분한 양이 남아 있습니까?”

순간 회장은 로날드를 돌아보며 바늘을 눈앞에 들이미는 것 같은 시선을 보냈다. 로날드가 식은땀을 흘리며 마른 침을 삼키는 것을 본 회장은, 헤 벌어진 미소를 지으며 주사기 팩을 보여줬다.

“뭐 미리 추가 보급 팩에 넣어달라고 요구했으니까 걱정 하지마. 그러니까 지금은 네 녀석 살아남는 데에만 집중해. 알았어?”

회장은 마치 싱크로나이즈를 하듯, 밤하늘 위를 높이 뛰어올라 X-38의 조종석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X-38의 새카만 조종석 장갑판이 내려갔다.

조종석을 덮는 장갑판이 헬기 본체와 완전결합하면서, 서스펜션과 결합부 눌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조종석 안에 있던 회장의 모습이 불투명한 장갑판에 완벽하게 가려졌다.

육안을 통한 시야 확보를 어느 정도 요구하는 다른 전투기나 전투 헬기라면, 약간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X-38은 애초에 드론이나 기관총 탑의 카메라를 통해 모든 상황이 파악되기 때문에, 굳이 조종석에 다소 내구성이 불안하고 총알 한 발 못 막을 유리를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조종사가 노출되는 부분을 가장 무겁고 단단한 장갑판으로 감싸, 조종사의 생명을 철저히 지킬 수 있는 믿을만한 구조였다.

하지만 로날드는 회장의 모습이 조종석의 장갑판에 가려지자, 눈동자를 이리저리 헤엄치듯 움직이다가 회장의 헬기가 날아가는 꽁무니를 넋 나간 것처럼 쳐다봤다.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군. 저게 사실일  없잖아. 하여튼 자기는  완벽하게 다 속이고 있는줄 알고 있다니까.”

로날드는 회장이 넘겨준 헤비메탈 주사기를 조끼의 담배 꽂는 곳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모니터에서 이동수단 접근 메시지가 뜨자, 모니터를 담배 연기 걷어내듯 손을 흔들어 지웠다. 귀신의 비명소리 같은 타이어 마찰음을 내며 달려오는 바이크의 핸들을 붙잡아, 그대로 끌어당기듯 올라타서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눕혔다.

바이크는 마치 1인승 승용차라고 부를 정도로 크고 널찍했으며, 양옆과 뒤에 무거워 보이는 컨테이너까지 붙어있어. 로날드 같은 떡대가 반쯤 누워서 타도 공간이 꽤 넉넉히 남았다.

“뭐 그래도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니까 나머지는 행운을 빈다고 회장 나으리.”

로날드는 마지막으로 한번 꼬리에서 붉은빛을 남기며 사라지는 X-38을 쳐다보며, 핸들의 오른쪽 그립을 꽉 눌러 모니터 하나를 띄웠다.

모니터의 위성 지도에 별 모양으로 목적지가 표시되어 있었다.하지만 로날드는 그걸 검지로 잡아서 끌어당기는 걸로 목적지를 바꿨다. 로날드가 향한 목적지는 본사 건물이었다.

“그럼  빠르게 부탁한다고 친구.”

로날드는 바이크의 머리 부분을 가볍게 두들기다가, 출혈과 고통에 의식이 흐려지는 걸 느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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