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file-04 닌자 사라지다 2
“이봐 로날드! 이봐 로날드!”
회장이 마치 강아지라도 부르는 투로 로날드에게 긴급 통신을 보냈지만, 노이즈가 잔뜩 낀 화면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바로 로날드와의 통신을 끊고, 곧바로 잭슨에게 막무가내로 지시를 내렸다.
“이미 다 싸그리 밀리고 생존자도 안 남았겠지만, 일단은 정찰 팀에 퇴각 신호를 보내두라고. 숨을 장소는 각자 알아서 제각각 숨으라고 해.”
잭슨이 알 수 없다는 식으로 얼굴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회장에게 뭔가 질문을 건네려 했지만 회장은 마치 랩 배틀이라도 하자는 식으로 마구 쏘아붙여가며 다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본사 쪽에는 뒈지기 싫으면 알아서 방어태세를 갖추고 쓸데없는 공격하지 말고 살아남는 데 전력을 다 해!”
“그래도 밀린다 싶거나 도저히 못 막아낼 것 같으면 쓸데없이 목숨 던지지 말고 무조건 건물 다 비우고 도망가라고 전해! 물론 네 녀석도 좀 불리하다 싶으면 바로 도망가라고 전처럼다른 사람들 길 열어준다고 목숨 걸지 말고! 알았어?”
“아, 알겠습니다.”
잭슨이 담배를 입에 물고 얼굴을 확 구기자, 회장은 마지막 폭탄 하나를 더 집어 던졌다.
“동시에 우리 회사 안을 염탐하는 녀석이 있는 것 같으니까 그동안의 회의 기록이나 본사 주변의 감시 카메라 기록 전부 다 확인해둬. 그리고 그 녀석 꼭 잡아내 알았지?!”
잭슨은 뒤이어 튀어나온 당황스러운 지시에 서두르면서도 냉정을 잃지 않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사라에게도 전해두겠습니다. 그리고 회장님이 어디로 갈지 목적지를 짚어주시면 바로 추가 장비 보급을 보내겠습니다.”
회장은 피가 뚝 뚝 떨어지는 큼직한 스테이크를 입 안에 넣을 때처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잭슨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 그래? 목적지는 내가 찍어줄 테니까, 이번에는 C세트로 보내둬. 그리고 내가 전에 주워왔던 그 여자아이 아직 본사 건물 안에 있지?”
“예 분명히 사라가 여러 가지로 검사를 하고 있을 겁니다.”
“위치 추적해봐. 분명 A동 보급물자 격납고 옆에서 검사를 하겠지만 말이야.”
잭슨은 잠시 통신 모니터를 닫아놓고 본사 건물 투시도를 띄웠다. 그리고 건물 거의 꼭대기 층에 붉은 빛이 번득이는 걸 표시한 뒤에 통신 모니터를 켜고 회장과 대화했다.
“예 확실합니다. 위치는 회장님 말씀대로 의체 연구시설 A동. 보급물자 격납고 바로 옆입니다. 여긴 일반화기만 있는 게 아니라 핵미사일이라거나, 바이러스. 유독성 화학물질 탄두 같은인체에 치명적인 무기도 많은데 대체 왜?”
잭슨의 대답에 회장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본 것처럼 웃어댔다. 잭슨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면서 식초를 한 잔 천천히 들이킨 것처럼 얼굴을 확 일그러트렸다. 그에 비해 회장은 한참 동안 정신없이 웃다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잭슨에게 한마디 던졌다.
“사라 그 녀석이라면 거기서 그런 짓 할 줄 알았어. 하하하하! 그렇다면 사라에게 전해. 그 여자아이를 A세트 컨테이너에 실어서 나한테 보내라고.”
“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지금 같은 위급한 상황에 그 여자아이를 보내라니?”
회장은 입맛을 다시며, 다시 한 번 고양이 입 같은 미소를 지었다.
“내 감이 맞다면. 그 녀석이 있는 이상 내가 죽을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마지막 지시다.”
“예 회장님.”
“모두 죽지 말고 살아남아라. 본사 건물이나 시리즈 H 기타 설비들은 다시 갖출 수 있지만 너희들 정도의 인재를 확보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
잭슨은 회장의 명령에 피식 웃으면서도 진지함을 잃지 않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 지시는 반드시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 난 일단 로날드랑 다른 정찰반 인원의 흔적을 찾아볼 테니까 정비반의 프란시스코 영감한테도 전해둬.”
회장이 다시 한 번 정비반 담당자 프란시스코의 이름을 꺼내자, 잭슨의 표정이 전보다 더 어두워졌다. 이번만큼은 잭슨도 표정을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한마디를 끝으로, 잭슨과의 통신이 끝났다. 회장은 X-38의 속도를 더욱 높이면서 이에 금이 갈 정도로 바득바득 갈면서 중얼거렸다.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거지 그 좆대가리 눈깔 놈들? 좋아 두고 보자고. 그 좆대가리 구멍 같은 눈알을 확 찢어 줄 테니까! 그리고 우리 쪽 정보를 흘린 빨간 동지 그 친구도 나중에 두고 보자고 하하핫!”
흑전갈 같은새까만 전투 헬기는 혼닛츠 본사 건물의 진행 방향을 따라, 사이드와인더 뱀이 먹이를 쫓는 것 같은 움직임으로 이동했다.
마치 야행성 짐승의 눈빛 같은 헬기 후미등과 전면의 카메라 불빛이 길게 꼬리를 끌면서, X-38이 이동한 흔적을 남겼다.
잠시 후 X-38이 스쳐 지나간 고층건물 옥상에서 붉은 머플러를 목에 두른 한 남자가 나오면서, X-38이 지나간 곳을 쳐다보며 통신용 모니터를 허공에 띄웠다.
“오우. 혼닛츠 사의 도조 야스히코 회장님 듣고 계십니까? 그 미치광이가 이제서 당신들 꽁무니를 쫓아다니고 있군요. 어떻습니까. 저희가 마련해준 위장은 쓸 만했죠?”
붉은 머플러를 두른 남자는, 눈앞에 진짜 혼닛츠의 회장이 있는 것처럼 다소 과장된 몸짓을 보여줬다. 도조 야스히코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큰 소리로 웃으며 감사 인사를 하는 시늉을 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 빠르게 쫓아간다고 해도 당신들이 할 건 다 할 수 있을 겁니다. 멋지게 사우스 스네이크 사를 박살내주셨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도조 회장이 뭔가 말하려는 것처럼 입을 우물거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기분이 굉장히 안 좋아 보이는 건 물론, 불신이 가득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도조 야스히코의 기분 따윈 상관없다는 듯, 여전히 이죽거리면서 말을 던졌다.
“예? 공산주의 떨거지 녀석들이왜 당신들을 돕냐고 한 겁니까?”
그는 폭소를 터트리며 모니터 화면에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모두 평등하게 박살내주는 게 오히려 공산주의답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지금 당신네들이 힘이 강해서 슬쩍 뒤를 봐주는 것뿐입니다? 자 그러면 다음 준비를 할 테니 그동안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머플러 두른 남자는 도조 야스히코와의 영상 통신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바닥에 걸쭉한 침을 한 번 뱉으며 한마디 던졌다.
“당연히 너희들도 엿 먹일 준비가 다 되어 있다 이거지. 저 녀석들도 당연히 모르면서 손을 뻗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겠어.”
그리고 뒤이어, 다른 통신 회선을 열었다. 다음에 뜬 모니터에는 상처투성이 소녀를 죄다 벗겨놓고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면서 조사하고 있는 사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라는 열심히 소녀의 몸을 기계 부품 뒤적이듯 만지다가, 통신 회선이 열린 것을 보자마자 크게 놀라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아 사의 직원 사라 클린턴 되십니까? 소식은 들었겠죠?당신네 회사 정찰팀 다 박살 났고 회장은 헛걸음치고 되돌아오는 길이랍니다.”
그 남자가 한마디 건넨 것과 동시에 굉장히 크고 기분 나쁜 쇳소리가 선글라스를 통해 흘러들어왔고, 남자는 다급한 표정으로 귀를 막으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머플러 두른 남자는 소리가 약간 잠잠해지자, 다시 선글라스를 끼면서 사라와 통신을 계속 이어갔다.
“회장님께서 이제 제 정보를 눈치채신 모양인데, 지금 그 여자아이를 수송기 통해서 보낸다고 해도 꽤나 느려질 것입니다.”
그러자 다시 한번 선글라스 밖으로 날카로운 소리가 튀어나왔고, 그는 선글라스의 다리 부분을 살짝 위로 올리면서 약 올리듯 말을던졌다.
“자. 흥분은 다 끝났습니까? 잠시만 진정하시고 제 얘기를 좀 들어주시죠?”
그 이후에나 선글라스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게 되었고, 머플러 남자는 사라가 매섭게 노려보는 것에 더욱 입꼬리를 높게 올리며 비아냥거리는 투로 제안을 건넸다.
“아 그리고 그 회사의 시리즈 X타입 병기도 여분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정비반 인원도 새로 없어서 상태도 좋지 않다는 것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약간의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예? 지금 저한테 이중첩자냐고 물어보신 겁니까? 하하하하 전 그저 모든 동지들이 평등해지기를 바라는 혁명가일 뿐입니다.”
반대편에서 사라가 모니터를 향해 주사기와 메스. 독한 약품이 들어있는 병 등을 마구 던지자, 머플러 남자는 하나도 날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일부러 피하고 막는 척하며 더욱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다 때려 부숴라. 자본가들의 모가지를 따고 겁탈하고 그 피와 살을 먹어라!”
사라는 한참 동안 괴성을 지르며, 의료실 전체를 때려 부수다가 지쳤는지. 큰일을 치른 것처럼 숨을 가쁘게 헐떡이면서, 눈물 맺힌 눈으로 머플러 남자를 노려봤다.
머플러 두른 남자는 한 번 즐긴 사람처럼, 진 빠진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뒤이어 큰 소리로 웃으며 손뼉을 치다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는 당신네들 같은 자본가들이 죄다 죽어 없어지고 온 세상이 노동자들만 남는 게 목적이니까요. 한 놈만 크게 해 먹는 건 딱 질색입니다. 하하하하하!”
그 한마디만 하고 남자는 재빨리 통신을 끊어버렸다. 그는 통신을 끊은 뒤, 건물 옥상에 세워둔 붉은색 전투 헬기에 올라탔다. 피를 잔뜩 머금은 독사 같은 헬기는 공기를 가르는 특유의 소음을 내며 공중에 떠오르다가, 이내 회장의 검은색 X-38을 쫓아 날아갔다.
“좋아 둘 중 어느 쪽이 살아남는지 느긋하게 지켜봐야지. 그 다음 우리 목표는 살아남는 쪽을 먹어 치우는 거다.”
붉은 머플러를 두른 남자는 머플러를 아래로 걷어 내린 뒤, 목덜미에 새끼손가락 굵기의 주사기를 찔러 넣었다.
그리고 피스톤을 힘껏 눌러, 주사기 안에 들어있는 약물을 몸 안에 흘려 넣었다. 그러자 머플러 남자의 눈 흰자위가 붉게 충혈되면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약물이 온몸에 퍼지는 부작용인지 목덜미와 팔과 손등에 나무뿌리 같은 혈관이 굵게 부풀어 올랐다. 머플러 두른 남자는 피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광대처럼 억지로 그린 것 같은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X-38의 뒤를 밟았다.
뒤이어 붉은 머플러 두른 남자가 서 있던 건물의 주변 풍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건물 벽과 옆 건물의 옥상 등에 숨어 있던 여러 대의 시노비가, 여러 가지 색의 불빛이 번득이는 검은하늘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시노비의 머리에 장착된 카메라는, 일제히 X-38과 그 뒤를 따라간 붉은 헬기의 뒤꽁무니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다음 앞에 서 있던 세 대가 날다람쥐처럼 활공하며 두 헬기의 뒤를 따라 이동하고, 나머지 시노비는 다시 주변 야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