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file-04 닌자 사라지다
같은 시각. 회장은 전갈과 독사를 합쳐놓은 외형의 검은 전투 헬기에 몸을 실은 채 헬기의 기관총 터렛에 장착된 카메라에 비치는 도시의 풍경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래쪽의 도시는 자기들 머리 위에 초당 수백 발의 총알을 폭우처럼 뿌릴 수 있는 헬기가 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평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야 이거 참 한가로운 녀석들이네. 우리 구역이랑 정찰팀에 저지른 짓 생각하면, 당장 머리통 위에 네이팜이라도 한 발 떨어트려주고 싶은데 말이야.”
“정찰중입니다. 회장님더러 그런 짓 하라고 개발부에서 저소음 헬기 시리즈-X38을 만들어준 줄 아십니까? GPS의 정보가 정확하다면 하쿠바츠 시내 중심에 혼닛츠 본사 건물이 있을 겁니다. 다른 건 신경 끄고 우선은 그쪽에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흐응. 알았다고 알았어.”
이곳은 혼닛츠 사의 본사 건물이 위치해 있는 상류층 거주지 하쿠바츠다. 자유 합중국 이전 시기. 태양이 뜨는 제국운운하며 자유 합중국의 핵심이 되는 나라에 두 번 크게 덤벼들었다가, 총 네 번의 핵을 맞은 나라의 수도 위에 세운 도시다.
그 탓인지 도시에는 여기저기 버섯구름 모양의 간판과,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다른 상류층 거주구역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황무지랑 전혀 다른 따듯한 공기가 흐르고 있는데, 회장은 그게 기분 나쁜 모양인지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난 채 헛구역질을 참으며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는 중이었다.
특히 가족들끼리 서로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이나, 다정한 연인들의 속삭임 등을 볼 때마다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입가에 끈적끈적한 침 한 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젠장. 역시 평범한 삶이랑 하하 호호 웃고 떠드는 모습은 언제 봐도 기분 더럽단 말이야. 누가 저기에 총알이나 네이팜 좀 퍼부어 달라고!”
모니터 상단의 잭슨은 안경을 고쳐 쓰면서 다시 한 번 한숨을 팍 내 쉬었다.
“몇 분이나 되었다고 또 그 얘기입니까? 나중에 혼닛츠 본사를 찾아낸다면 그 때 민간인들을 탈출시키고 폭격을 해도 되지 않습니까?”
“무슨 개 소리를 하는 거야? 너도 잘 알잖아. 난 민간인이고 뭐고 간에 피가 튀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의 처절한 비명 소리를 듣고 싶단 말이야. 안 그러면 내가 죽는다고 내가!”
“벌써 헤비 메탈 한 대 놓으셨군요. 너무 빠른 거 아닙니까?”
잭슨이 잔소리를 늘어놓으려 하자, 회장은 기분 나쁘다는 듯 화상 통신을 꺼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GPS 지도가 목적지 근처라는 신호를 보내자. 회장은 매장의 쇼윈도에 전시된 비싼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애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쿠바츠의 상징인 혼닛츠 사도 설마 버섯구름 모양으로 되어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저 안에 노동자들처럼 클론이나 안드로이드만 있지 않겠지? 사람. 사람이 있어야지 후후후후.”
회장은 중앙의 카메라 모니터 옆에 작게 켜둔 GPS 지도를 껐다. 그 다음 카메라 모니터에 비춰진 거대한 고층빌딩을 보며, 뜨듯한 김을 피워 올리며 접시에 담긴 스테이크를 볼 때처럼 입맛을 다셨다.
“어라? 본사 건물이 여기에 있었다 이거군. 버섯 모양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범해? 게다가 아무런 환영 인사도 없다니 그게 더 신기한데.”
프로펠러 소음까지 감출 수 있는 거의 완벽한 스텔스 헬기라고는 해도, 대기업 본사 건물이 있는 도시에 포화를 쏟아부을 순 없었다.
삼엄한 감시 시스템과 주변에 무수히 깔려있는 병력 때문에, 금방 들키거나 대공포대의 위협사격을 받기 일쑤였다.그 탓에 원래대로라면 회장 역시, 물고기가 헤엄치듯 매끄러운 비행을 펼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유 합중국 안에서 10대 기업에 속하는 혼닛츠가 소속된 하쿠바츠 시내는, 의외로 별 감시 병력이나 보안 시스템 같은 게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 회장은 불이 입술 끝까지 타들어가는 대마초 한 대를 뱉어버린 뒤, 새로 한 개비 입에 물고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뭐 상관없어. 비명이랑 피가 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면 만족이라고.”
회장은 조종석의 계기판 하단에 있는 버튼을 하나 눌렀다. 그러자 헬기의 꼬리 근처에 붙어있던 계란 모양의 금속 덩어리 네다섯 개가 한꺼번에 떨어져 나갔다.
동시에 알껍질이 이리저리 갈라지면서, 작은 맹금류 같은 모습의 비행물체로 변형했다. 그 비행체들은 본사 건물을 향해 독수리가 먹이를 가로채듯 하강하며 날아갔다.
방금 회장의 검은 헬기에서 나온 보조 장비는, 사우스 스네이크의 특산물이었다.
전투 헬기의 시야를 넓혀주는 동시에, 감시용 CCTV나 카메라와 스피커. 레이더 등에 거짓 정보를 입력하고. 주변 환경에서 나오는 소음을 증폭시켜 헬기 프로펠러 소리를 감추는 다용도 무인 원격조작 드론 베스파다.
물론 높은 건물에서의 대공화기 요격이나 미사일과 무인 공격기 재밍. 시리즈 H에 붙어 대공화기를 사용하는 병사의 사살 등도 가능해, 회장은 항상 헬기로 도시 정찰을 할 때 이걸 몇 대씩 붙이고 다닌다.
베스파가 지상으로 내려가는 것과 동시에 조종석 안쪽에서는 우선 모니터가 하나 더 나뉘면서, 지상 쪽의 상황이 왼쪽 화면에 비춰졌다. 왼쪽 화면의 본사 지상 근처는 사설 경찰 한 명 세워놓지도 않고, 시리즈 H는 물론. 무인 화기나 방어 시스템조차 하나 갖춰지지 않았다.
“하하 그것 참 무방비하잖아. 아무리 스텔스 헬기라고 해도 혼닛츠 사 정도면 금방 찾아내거나 반격이라도 해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싱겁게 끝나면 더 기분 나쁜데.”
회장은 김이 빠졌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본사 안에 있는 사람들을 기관총으로 찢어발길 생각에 벌써부터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에 취한 것처럼 입꼬리를 최대한 높이 올렸다. 잭슨은 회장의 그런 표정을 보며 한숨을 내 쉰 다음 회면에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좋아! 일단은 우박부터 퍼부어주지.”
조종간 레버의 그립을 쥐는 것과 동시에, 전투 헬기의 주둥이에 달린 개틀링이 피 묻은 송곳니 같은 화염을 뿜어댔다.
그와 동시에 무수한 검은색 탄환이 혼닛츠 본사 건물을 향해 쏟아졌다. 그리고 본사 건물 앞의 조명시설과 간판.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
거기에 지나다니던 사람들과 앞에 서 있는 사람들 전부 믹서에 한데 넣고 돌린 것처럼 갈려 나가, 마치 잡탕처럼 지저분하게 뒤섞여버렸다. 회장은 지상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다시 한번 입술을 핥으며 군침을 흘렸다.
“그래! 신나게 갈아 부숴! 사람은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건물이랑 기계는 산산조각 내 버리는 거…. 뭐야 이거 꼭 솜사탕을 찌르는 것 같잖아.”
모니터 안에서는 건물 외벽이 개틀링 탄두에 비스킷처럼 바스러지는 모습과, 사람들의 팔다리가 찢겨나가며 허공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하지만 회장의 눈에는 그게 전부 다 장난감 건물이나 인형이 박살 나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들의 비명소리 역시 미리 녹음한 걸 틀어놓은 것 같은 어색함마저 느껴졌다.
“게다가 신선한 피비린내도 아니고, 뭔가 고기 굽는 냄새가 나는 게 더 이상한데.”
회장은 코를 벌름거리다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그립을 쥔 손에 힘을 뺐다. 전투헬기의 앞부분을 뜨겁게 달구던 무차별 사격이 멎었다. 그녀는 바로 모니터를 하나 더 작동시켜 잭슨과 다시 한 번 통신을 시도했다.
“잭슨? 이봐 잭슨?!”
“무슨 일이십니까. 회장님의 취미활동 중에는 연락을 끊어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잭슨은 금방이라도 구역질을 할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귀찮다는 식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에 회장은 차가운 표정으로 지시를 내렸다.
“건물을 박살내고 사람을 죽이는데 그 감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확인해봐. 혼닛츠 놈들이 무슨 속임수를 쓴 것 같다고.”
잭슨은 회장의 입에서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라는 말이 튀어나오자마자, 크게 당황하며 홀로그램 모니터를 이리저리 바쁘게 조작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지상을 비추고 있는 베스파를 통해서 상황을 파악해보도록 하죠.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회장님.”
잭슨은 X-38 헬기에서 나온 드론 베스파와 통신 회선을 연결했다. 그 다음 드론이 보내오는 영상을 분석한 끝에 뭔가를 발견했다.
“이, 이건?! 회장님! 이건 속임수입니다.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셔야 합니다.”
잭슨이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본사 건물이 마치 노이즈가 낀 TV 화면처럼 흔들리면서 기분 나쁜 잡음을 흘리더니. 얼마 가지 않아 담배 연기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본사 건물이 있던 자리가 텅 빈 것은 물론, 그 근처의 건물과 도로 그리고 그 위에 있을법한 것들이 사람을 포함해서 죄다 짓뭉개진 채 바닥에 눌어붙어 있었다.
“뭐야? 이 건물. 설마 홀로그램으로 만든 페이크라는 건가. 하하 이 녀석들 제법 잔대가리 좀 굴렸는데. 새끼들 때려죽일 맛이 좀 나겠어.”
회장은 베스파를 회수한 뒤, 곧바로 헬기의 방향을 돌리며 잭슨에게 혼닛츠 사의 행적을 물어봤다. 잭슨은 침통한 표정으로 회장의 질문에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본사 건물은 이미 다른 곳으로 가고 없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고 없다니 건물에 발이라도 달린 거야?”
“그렇다고 대답해주기 바랍니까?”
잭슨이 한숨을 내 쉬며, 회장 대신 베스파가 새로 찍은 카메라의 줌을 최대한 크게 당겨오자. 바닥에 붙은 껌처럼 변한 자동차와 사람 시체에서 특이한 흔적이 남은 게 훤히 드러났다.
“응? 이건 구식 무한궤도잖아. 그리고 살점이 그을린 흔적을 보니 제트 엔진도 같이 사용하는 것 같은데. 이것 때문에 이동했다고 하는 건가?”
회장은 잘게 다져진 채 익어버린 사람 시체를 보며 햄버그라도 떠올렸는지, 다시 한 번 입맛을 다시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입으로 레어 햄버그라는 단어를 수십 번씩 중얼거렸다. 그 때 잭슨이 정신 차리라는 듯 적당히 던지듯 대답했다.
“예 제 추측이긴 하지만, 본사 건물 자체가 아예 하나의 거대한 차량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큰 무한궤도와 제트 엔진의 흔적이 남을 리 없습니다.”
“사실인지 내가 확인해보겠어.”
회장이 모니터 오른쪽에 작은 화면 하나를 추가로 띄워 뭔가를 계산했다. 다른 사람에게 보고를 들어도 최종적으로 직접 계산하고 판단하는 것은, 그녀의 가장 큰 단점이자 장점이었다.
잠시 후 회장은 계산을 마친 뒤, 다급하게 헬기의 방향을 전환시켜 수직 이착륙용 엔진을 부스트 모드로 전환했다.
헬기의 양옆에 붙은 제트 엔진 배기구의 방향이 지면 쪽에서 후면으로 이동하며, X-38은 헬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빠르게 한밤중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면서 날아갔다.
“과연. 잭슨의 보고대로군. 그런 식으로 잠깐이나마 날 속였다 이거지? 이 눈깔을 오줌구멍처럼 뚫어놓은 놈들이? 게다가 이것들 이동 방향 보게. 선전포고 없이 공격을 먼저 던진 건 이걸 준비하기 위해서였나?”
직접 헬기의 개틀링에 내장된 카메라를 통해 지면을 확인한 회장은, 무한궤도와 제트 엔진의 배기 열이 뻗어 나간 방향을 보자마자 이들의 목적지까지 전부 다 알아차렸다.
“아주 ‘저를 짓밟고 죽여주세요.’라고 사정하는군. 옛날의 그 훼이첸 밑에 붙어있었던 삼대 세습 돼지들이 불법 점거했던 그 동네랑 똑같네? 물론 결말도 똑같겠지만 말이야.”
회장은 입 끝이 귀에 닿을 정도로 죽 찢어져 올라갔다. 눈 역시 바늘처럼 가늘어지고 그 끝에 주름이 잔뜩 잡힐 만큼 웃고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 잭슨은 회장의 그 흉측한 미소를 보며, 이마에 손을 짚고 고개를 내 저었다.
“대체 이번에는헤비 메탈을 몇 번이나 빨고 사람은 몇 명을 죽일 거고, 강간은 얼마나 저지르고 다닐 겁니까? 그 전에 핵이라도 준비해드릴까요?”
“아니지 아니야 ‘지금은’ 핵까지 쓸 필요 없어. 그건 너무 빠르다고.”
회장이 핵무기를 거절하자, 잭슨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귓불을 꼬집어봤다. 그리고 눈을 두어 번 깜박이며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우선 로날드 녀석부터 찾고 봐야지. 진행 방향으로 보면 눈깔 좆대가리 새끼들이 가는 방향과 걸쳐있으니까. 잠깐만 기다려봐.”
회장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표정의 잭슨에게서 고개를 돌려, 곧장 로날드 쪽으로 통신 회선을 전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