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화 〉file-03 kill jap kill jap kill more jap (11/66)



〈 11화 〉file-03 kill jap kill jap kill more jap

자칭 공산주의 지상낙원 혁명가 통칭 ‘빨갱이’라고 불리는 테러리스트 블라디미르. 기업 사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이간질을 벌이거나, 기업 항쟁에 끼어들어 한쪽을 완전히 박살 내는 테러를 숱하게 저지른 자유 합중국 최악의 범죄자였다.

 사실을 너무  알고 있는 로날드는 더욱 무거운 표정으로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우리 회사의 사설 경찰들을 기습한 건, 분명한 선전포고입니다. 다음은 자기들의 사설경찰을 가지고 본사를 직접 치고 들어가려 하겠죠. 회장님? 저희 목숨도 걸려있는 문제입니다. 정말 끝까지 더 할 말이 없습니까?”

로날드가 다시 내 쏘듯 질문을 던지자, 회장은 마치 거짓말을숨기는 어린애 같은 표정을 지으며 소녀 쪽을 빤히 쳐다봤다.

뒤이어 그녀는 마리화나  개비를 한꺼번에 입에 물고, 안이 연기로 가득 찰 정도로 깊게 빨아들였다. 그녀가 두 번 정도 연기를 내뿜은 뒤, 소녀를 오늘 저녁 메뉴라도 고르는 것처럼 콧노래가 섞인 가벼운 투로 로날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네 그건 그렇고 완전히 고철상이 되었어. 우리 쪽 그렇게 약한 녀석들은 없었잖아? 기체도 전부 다 신형으로 지급했고. 그런데도 완전히 기습당해서 이렇게 털려버리다니.”

“딱히 할 말이 더 있겠습니까? 민간인 구역이니 전면전보다는 시민 대피 위주로 움직이다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뿐이죠. 제대로 싸웠다면 쉽게 당하진 않았을 겁니다.”

로날드는 반쯤 포기했다는  남의  얘기하는 것처럼 가볍게 대답했다. 이에 사라와 잭슨은 눈살을 찌푸렸고, 사라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뭔가 한마디 하려 했다.

“로날드 씨? 지금 얼마 남지도 않은 병력을 다 잃고서 하는 말이 그거밖에 없어요?! 게다가 회장님도 지금 상황에서 갑자기 그런 얘기라니…. 지금은 회장님의 통화 내용부터 파고 봐야 하는 게 아닙니까?”

 때 잭슨이 사라의 입을 막는 시늉을 한 다음. 눈썹을 꼬면서 바늘을 찔러 넣는 것 같은 투로 의문을 던졌다.

“그래도 자유 합중국은 뭐든지 결과만 남아야 하니까, 과정 같은 건 신경꺼야죠.”

로날드는 상대의 신중한 질문을 너무도 시원하고 간단한 대답으로 틀어막아 버렸다. 그리고 회장에게 몰래 손가락으로 사인을 보내며  웃었다.

잭슨은 더 이상 대꾸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한 결론에, 그저 입을  다물고 신음을 흘릴 뿐이었다. 반면 회장은 금방이라도 입이 찢어질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마리화나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역시 그게 자유 합중국에서 가장 좋은선택이지. 그러니까 사라는 헤비메탈 세 팩 준비해둬! 그리고 잭슨? 시리즈 X도 한 대 준비하라고 정비반의 니콜라우스 영감한테 전해둬.”

회장의 입에서 ‘니콜라우스’라는 이름이 나오자, 그녀를 제외한 모두가 묵념하듯 고개를  숙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회장은 다시 무거운 분위기를 깨려는 듯, 로날드의 눈앞에 가슴이 훤히 드러나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가서 질문을 던졌다.

“뭐 좋아. 난 일단 니콜라우스에게도 명령은 내렸으니 다들 내가 나가 있는 동안 알아서 준비해두라고. 그리고 로날드?”

“예 회장님.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하시려는 겁니까?”

로날드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회장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질문했다. 회장은 마치 재미있는 장난을 준비하고 있는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에 비해 사라와 잭슨은 회장이 무슨 말을 꺼낼지 불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회장은 일부러 기다리라는 듯 뜸을 들이다가 어쩔 수 없다는 투로 질문을 던졌다.

“만약 내가 그 녀석들을 죄다 잡아 조지고 추격자를 보낼 여력도 없을 만큼 박살내버리면  전리품 도로 갖다놓을 필요 없는 게 맞지?”

로날드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눈을 감고 신음을 흘리다가, 실눈을 뜨고 회장의 얼굴을 쳐다봤다. 회장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로날드에게 오른쪽 눈을 살짝 감았다가 떴다.

로날드는 두어 번 헛기침을 하며 눈을 뜬 다음,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뭐 그거야 예전 임자가 없으면 주운 사람이 새 임자 아닙니까. 그게  자유 합중국의 유일한 법이자 진리 아닙니까? 힘센 놈이 다 갖는다.”

그리고 잭슨도 회장과 로날드 사이에 말 한마디 없이 진행되는 두 번째 대화를 눈치챘다.

로날드가 크게 웃으며 대답하자, 잭슨 역시 두 사람이 진짜로 하는 대화를 눈치챘는지. 고개를 두어  끄덕인 뒤, 로날드에게 눈을 찡긋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생각해보니 예전 임자가 없어지면, 되찾으러  걸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두 사람의 대답에 사라만 크게 화를 내며 테이블을 힘껏 내리쳤다. 하지만  세게 쳤는데도 회의실 안에서는 회장의 웃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로날드야 원래 저런 사람이니 그렇다 쳐도, 잭슨까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이 딸랑이들! 말로 하면 뭐든 못하겠어요?!”

“그러면  잠시 산책 좀 다녀올게. 올  선물도 가져올 테니까 집 잘 보고 있어.”

회장은 그 모습을 보며 크게 웃다가,  미련 없이 뒤를 돌아서서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회의실 문 앞에서 아이들에게 주의할 점을 당부하고 외출하는 엄마 같은 투로 다음 상황에 대한 지시를 내렸다.

“아참. 사라는 헤비메탈 잘 챙겨두고. 니콜라스 영감에게 정비가 끝난 시리즈 X가 있는지 물어보고 그 중에서 가장 말끔한 녀석으로 하나 보내줘.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회장님.”

“잘 다녀오십쇼. 회장님!”

회장은 마지막으로 손만 내밀면서 가볍게 흔들었고, 곧바로 회의실 문이 닫혀버렸다. 어린 소녀를 포함한 네 명은 한참 동안 회의실의 문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잠깐이지만 회의실 안에 기나긴 침묵이 이어졌고, 잭슨이 한참 동안 회의실 내부를 모니터로 구석구석 확인한 뒤에서야 입을 열었다.

“이봐 사라? 이번에는 회장님 얼마나 버틸  있지?”

“정확히 헤비 메탈 세 패키지 분량이네. 그거 넘어가면 확 돌아버릴 거야. 하여튼 자기  상태는 그렇게 칼같이알면서도 일부러 아슬아슬하게 사는  즐기니까 안심할 수 없다고.”

사라는 목에 주사기 같은 것을 찔러 넣는 시늉을  뒤, 엄지로 목을 그어버렸다. 그러자 잭슨과 로날드 역시 한 겨울 사정없이 몰아치는 눈보라를 맞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이거. 이거 참. 회장님의 저 성격어떻게 하지 않으면 곤란하군요. 뭐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우선 따져야 할 게 있군요.”

잭슨이 날카로운 표정을 지으며 로날드를 노려보자, 사라는 여전히 눈치를 못 챘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잭슨을 쳐다봤다. 로날드는 다시 술병을 기울이는 것처럼 손을 움직이며 딴청을 부렸다.

“로날드? 당신이  회사에 아무 득도 없이 회장님을 부채질할 사람이 아닙니다. 대체 무엇 때문이죠? 그리고 그 통화 내용에 대한 것도  자리에서 캐물었어야 합니다.”

“뭐 말이야?”

“대체 왜 뜬금없는 이야기로 중간을 잘라먹은 겁니까? 그리고 당신이 가끔 우리도 모르게 회장이랑 비밀 대화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로날드는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 빈손을 테이블에 올려두며 한숨소리가 섞인 것 같은 트림을 내뱉었다.

“아아, 그건 돌아오게 되면 회장이 다 이야기해주지 않겠어? 그리고 회장 나으리가 언제라도 한 번 건진 거 없이 손해만 작살나게 먹고 온  있으면 반박해도 좋아.”

로날드의 대답에 두 사람은 멍한 눈으로 테이블 의자에 앉은 소녀를 쳐다봤다. 두 사람의 시선은 마치 실험실의 생쥐를 관찰하는 연구원 같았다. 그리고 소녀가 세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모두 하나같이 소녀의 시선을 피하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저 녀석이 뭐 대단할 게 있다고 그러는 거야 로날드?”

사라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카롭게 따져 묻자. 로날드는 잘 기억나지 않는 걸 억지로 끄집어내는 투로 대답했다.

“왜 최근. 혼닛츠 사에서 대체 장기 생산 라인에서 사고가 났다는 소식 들었지? 그 때 우리 쪽 사설 경찰들도 나섰잖아.”

혼닛츠 사. 훼이첸  안에서 가장 큰 사설경찰 업체 겸, 한 때는 동식물 복제 및 배양. 생체 의수 전문 기업이었다.

다만 어디까지나 간판으로 내거는 것이 동식물 복제와 배양이지, 장기밀매와 식용 인체 제작. 시리즈 H 밀매와 온갖 희귀 동식물 불법 클론 등을 뒤에서 저지르는 자유 합중국의 흔한 대기업  하나였다.

“아 그런 일이 있긴 했었죠. 겉으로는 노동자 반란 진압이긴 했지만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두 번째 반란 때에는 도조 회장의 상태도 이상했던  기억나는군요.”

잭슨이 덧붙여서 한 가지 사실을 더 늘어놓자, 사라와 로날드마저 고개를 끄덕이며 잠깐 동안 눈을 감고 과거의 기억을 되짚었다.

우선 사라는 첫 번째 반란이 벌어졌을 때에도, 도조 회장이 오래전 혼닛츠의 근본이 되는 나라에서 자주 외쳤던 ‘황국 신민’이라는 말을 자주 꺼냈던 것부터 떠올렸다.

그리고 로날드는 도조 회장의 사무실에 나뭇가지처럼 일곱 갈래의 곁가지가 난 칼과 구리거울. 그리고 옥구슬을 방에 장식해놓고, 나는 천황의 후손이다. 라고 했던 것 등을 떠올렸다.

“처음부터 이상한 것 같았지만 말이야. 민주주의 정부조차도 불필요해서 사라진 세상에 왕이 어쩌구 하는  보면 일찌감치 미쳤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지.”

사라와 로날드는 잭슨의 한마디에, 혀를 차면서 대답했다. 자신을 천황의 후손이라고 말하던 도조 회장의 혼닛츠 사에서, 최근 두 번 정도 노동자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한 번은 사우스 스네이크 사의 사설 경찰의 지원을 받아 순식간에 정리했다. 그때 혼닛츠 본사 측은 노동자 반란을 선동한 주모자들과, 그 추종자의 절반을 인간 복제용 소재와 의체 재료로 만들고 끝났다.

그 이후 첫 번째 반란이 터진 지  달도 되지 않아 벌어진  번째 노동자 반란 때에는, 미리 소집해둔 야스쿠니라는 사설 경찰이 반란을 진압. 이때 노동자들은 반란 참가 여부에 상관없이 전부 사살처분을 당한 후, 복제 동물용 사료로 사용해버렸다.

그다음부터는 생산라인 전체를 인공지능에 맡기고, 그 관리를 뇌에 업무 매뉴얼과 회사 수칙만 입력시킨 클론으로 대체했다.

“뭐 그것까진 혼닛츠 사 내부 사정으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자유 합중국에서 대기업을 운영하려면, 최소 일정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해야만 하는 규정이 있다. 그걸 어기고 살아있는 인간 노동자 외의 것에게 모든 일을 맡기면, 자유 합중국의 기업 연합 법에 의해 기업 처분형이 집행된다.

그 이야기는 기업 연합 측 사람이라면 알 사람은 다 알 정도의  사건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