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file-02 토라 토라 토라 3
그리고 책상 서랍에서 주사기를 꺼내 목에 꽂아 넣은 채, 왼손 검지로 다른 화면 두 개를 띄웠다. 하나는 전라나 다름없는 차림의 여성이 약탈자 패거리들 앞에 선 모습.
다른 하나는 정육점의 고기처럼 해체된 약탈자들의 시체를 뒤로하고 소녀를 데리고 가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도조 회장은 코웃음을 치며 입꼬리를 높게 찢어 올렸다.
“하하하! 두고 보자고 귀축 영미의 미친 앞잡이 년. 이미 내 쪽에는 네년 밑구멍 주름까지 일일이 셀 정도로 빠삭하게 아는 녀석이 붙어있다.”
도조 회장은 소녀의 얼굴이 떠 있는 모니터를 한참 노려보다가, 검은 코트의 여성이 있는 모니터에 걸쭉한 침을 뱉었다. 그는 주사기의 피스톤을 꾹 누른 뒤, 술에 취한 것처럼 잔뜩 잠긴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내게 ‘그걸’ 가로챈 대가는 아주 크다고. 머리카락 한 올 뺏기면 상대방의 골수까지 다 빼앗는다. 그게 이 자유 합중국에서 말하는 자유라는 녀석이니까. 톡톡히 가르쳐주지.”
그는 모니터 회면을 검지로 죽 그어버려, 마치 그녀의 몸뚱이를 자르는 것처럼 모니터를 갈라버렸다. 모니터 화면은 두 동강이 난 채 서서히 흐려지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는 의자에 앉아, 총격전과 폭발이 끊이지 않는 훼이첸의 거리를 두꺼운 방탄 창을 통해 내다봤다. 건물 아래쪽에서는, 자유 합중국 언어로 혼닛츠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인쇄된 트럭 한 대가 막 지나가고 있었다.
트럭에서는 마치 마네킹 공장의 폐기물이라도 실은 것처럼, 어린 여자의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 등이 짐칸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짐칸에 실린 인형 닮은 물건들은, 거칠고 난폭하게 달리는 싸구려 트럭 탓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뒤섞였다.
다만 전부 다 체형부터 얼굴까지 주물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아, 뭐가 어떻게 뒤섞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때 트럭이 미처 보지 못한 건물 잔해를 피하려고, 옆으로 거칠게 핸들을 꺾었다.
그 탓에 가뜩이나 과적재가 된 트럭에서 화물 일부가 밖으로 튀어나와 바닥에 널브러졌다. 하지만 트럭은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은 배가 갈라진 채 막도축된 짐승처럼 피와 내장이 다 빠져나간 여자아이의 시체였다. 이런 물건은 일부러 죽은 고깃덩이에 박아대는 특이한 성적 취향을 갖고 있거나, 가죽을 벗겨 박제를 만드는 취미를 가진 인간들이라면 환장하고 주워갈 물건이다.
뒤이어 트럭 한 대가 더 지나갔다. 그때 순간적으로 라이트에 비춰진 이 고깃덩이의 모습은 마치 혼닛츠 사의 회장이 생포해오라던 소녀와 차이점 하나 없을 정도로 똑같은 모습이었다.
트럭은 멈추는 일 없이 마네킹 같은 여자아이의 시체를 밟고 지나갔고, 순식간에 잘 다져진 고기조각이 되어 도로에 넓게 깔렸다.
회의실 안에서는 회장과 소녀를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이, 각자 머리를 쥐어뜯거나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주변을 노려보거나. 혹은 남 일이라도 된다는 듯 크게 웃어대고 있었다. 테이블 중앙의 화면에는, 녹색 불 두 개. 빨간 불 두 개가 들어와 있었다.
정확하게 찬성 둘. 반대 둘. 이래서는 아무 결론도 나지 않는다.
회장은 아까 보여준 미소가 거짓말로 느껴질 만큼, 눈썹과 미간을 구겨진 휴지처럼 일그러트렸다. 그다음 투표를 마치고 조용히 앉아 있는 네 사람을 죽 둘러봤다. 그들은 로날드를 제외하고는 다들 조용했다.
로날드는 이번엔 여자라도 만지는 모양인지, 오른손으로는 허공에 손가락을 이리저리 휘적거렸다. 남은 왼손으로는 빵 반죽이라도 하듯 공기를 열심히 주물러대고 있었다.
잭슨은 그 모습을 보며 속이 메스꺼운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사라는 로날드를 아예 벌레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누가 반대표를 던진 거지?’
회장은 담배 아니 마리화나연기를 세차게 내뿜으면서, 연기 사이로 드러나는 세 사람을 천천히 뜯어봤다. 세 사람은 회장의 시선을 느꼈으면서도,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표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흠 반대 중 하나는 저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꼬맹이 녀석이겠지. 그때 정보를 흘린 빨갱이 녀석이랑 몰래 통화하던 거라도 본 건가 쩝.’
회장이 다시 한번 사라 쪽을 쳐다보자, 그녀는 회장에게 혀를 죽 내밀면서 아래쪽 눈꺼풀을 검지로 죽 잡아당겼다.
‘솔직해서 보기 좋군.’
회장은 피식 웃으며 나머지 둘을 죽 둘러봤다. 잭슨은 회장과 사라. 상처투성이 소녀를 번갈아 쳐다보며 식은땀을 흘려댔다. 반면 로날드는 즐길 걸 다 즐겼는지, 이번에는 느긋하게 투명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고 있었다.
“아? 그래? 그러면 로날드. 혹시 네가 찬성해준 거야?”
회장은 잭슨을 보면서 슬며시 웃어 보인 뒤, 로날드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실실 웃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로날드는 샌드위치를 목구멍으로 넘긴 뒤 한숨을 내 쉬듯 대답했다.
“아니요 저도 반대입니다. 대체 그때 무슨 정보를 받고 어떤 변덕이 생긴 건지 모르겠지만, 원래 살던 곳에 조용히 돌려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자 회장의 얼굴에 순간적으로나마, 먹구름처럼 실망스러운 표정이 가득 꼈다. 이마 아래로 마치 그늘이 진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사라와 잭슨의 낯빛이 새파랗게 질리다가 하얘진 끝에 까맣게 죽어버렸다. 하지만 로날드는 여전히 남 일이라는 듯 휘파람을 불면서 평상시와 같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회장은 그 둘의 표정 변화에 눈길도 주지 않고, 로날드의 어깨를 두 주먹으로 가볍게 두들겨대며 떼를 써댔다.
“에? 뭐야! 방금 전까지는 찬성할 것처럼 말해놓고는. 그렇게 갑작스럽게 뒤통수 때리기야?지금이라도 찬성으로 바꿔! 찬성으로 바꾸란 말이야!”
그러자 로날드는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술병과 샌드위치를전부 다 치워버렸다. 뒤이어 투명한 담배를 입에 물고 착 가라앉은 투로 한마디 던졌다.
“최근 회장님이 들쑤신 구역 근처에 있는 테이진 시내에 정찰팀을 보냈습니다.”
뒤이어 로날드가 기기를 몇 가지 조작하는가 싶더니, 테이블 중앙에 큼직한 화면이 하나 떠올랐다.
그곳은 지진이나 해일 같은 대재앙이 먹다 남긴 찌꺼기가 가득한 쓰레기장으로 보였다. 크게 휘어져서 기괴한 모양으로 뒤틀린 홀로그램 표지판에, 자유 합중국 공용 언어로 테이진 시라는 글자가 흐릿하게 드러나 있었다.
그곳에는 박살난 건물 잔해, 잘게 토막 쳐진 채 불에 타버린 사람의 몸 부품들. 그리고 AP-16의 잘게 찢겨나간 파츠들이 마치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수많은 약탈자 패거리들이, 공사용 중장비가 추가로 붙은 워커 B를 타고 몰려왔다.
그들은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고, 대머리 독수리처럼 AP-16의 잔해를 뜯어내고 있었다. 그때 한 약탈자가 콕핏 안에서 볼링공 하나 정도 들어갈 정도의 검은 박스를 꺼내자, 회장의 눈매가 면도날처럼 날카로워졌다.
“화장을 실시한다. 저 변기에 붙은 똥 찌꺼기 같은 놈들이 우리 ‘전 사원들의 시신’에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해야 한다.”
회장이 양 미간과 이마에 잔뜩 주름을 잡은 채 명령을 내리자, 로날드는 입술 끝을 축 늘어트리면서 질문을 던졌다.
“저 친구. 조종석 상태랑 박스 파손 정도를 봤을 땐, 큰 부상이 없는 ‘생존자’ 같습니다. 그 외에도 생존자 반응이 세 개 정도 더 있는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로날드는 검은 박스를 가리키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회장을 쳐다봤다.
“저게 생존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더 큰 굴욕이다. 깔끔하게 끝을 내주는 게 여러모로 훨씬 게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회장은 담담한 투로 표정 변화도 없이 잭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로날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버튼을 하나 눌렀다. 그와 동시에 AP-16의 잔해들이 폭발하면서, 기체에서 멀쩡한 파츠를 뜯어내던 약탈자들이 폭발에 휩쓸려 완전히 박살 났다.
“지금 세상과 싸울 각오도 없는 주제에, 온순한 양이 되는 것도 거부하고. 또 맹수도 거부하면서 남의 것이나 뺏어 먹는 데 눈먼 비렁뱅이들. 그런 녀석들에게 우리 사원들을 더럽히게 할 수 없으니까.”
회장은 마리화나를 끊어질 정도로 질끈 씹으면서 중얼거렸다. 로날드는 회장의 눈치를 슬그머니 살피면서, 조심조심 질문을 던졌다.
“자 보시죠 회장님. 이렇게 되었습니다. 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도 미디어에서는 단 한마디 언급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분명 무인헬기나 위성촬영으로 전 세계에 퍼져야 정상인데 말이죠.”
그때쯤 회장은, 로날드가 출격 직전. 항상 뭘 잔뜩 먹고 창녀를 사들였던 걸 기억해냈다.
“즉 그렇다는 건?”
로날드는 한숨을 내뿜으며, 다른 홀로그램 영상을 보내왔다.
그 영상은 혼닛츠 사의 시노비가 AP-16 부대를 기습해서 전멸시키는 장면과, 아직 거리에 남아있던 민간인들을 짓이겨 죽이는 모습까지 담겨 있었다. 로날드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남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결론을 내놓았다.
“예 저희랑 동급. 혹은 그 이상의 기업체인 혼닛츠 사 전속 시리즈 H 시노비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장에도 시노비가 사용하는 장비들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회장은 거의 일주일 전 쯤. 기업 연합 회의에서 이 소녀를 찾아낸 뒤, 며칠 정도 보호해두라는 내용의 의뢰를 물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때 몇몇 기업에서 혼닛츠 사가 갑작스럽게 군비증강을 하고, 기업 연합 법을 죄다 무시하는 행동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가 같이 나돌았던 사실이 떠올랐다.
더 자세한 얘기로는 혼닛츠 사의 회장이 자신을 스스로 ‘천황’이라고 칭했다는 것까지가 당장 떠오르는 내용의 전부였다.
“과연 그랬군. 저 아이를 보호해두라는 임무를 맡을 때, 혼닛츠 사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나돌았는데. 이 아이가 혼닛츠 사의 소유물이라도 되는 거겠지.”
로날드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두어 번 정도 두들기다가, 한마디 던졌다.
“한마디로 우리는 독박 제대로 썼다 이 얘기죠. 기업 연합 놈들도 그냥 저 놈이나 우리들 중 하나가 싸그리 말라죽기를 바라고 있으니 입을 다물고 있을 겁니다.”
“게다가 만약 저 녀석들이 범죄 프리패스 카드라도 들고 있으면 일만 더 귀찮아집니다.”
로날드의 예리한 분석에 모두들 고개를 푹 숙이며, 모니터 너머로 보이는 황무지로 변해버린 도시를 한 번 힐끗 쳐다봤다. 회장은 아무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소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이래도 그 아이를 갖고 가실 생각입니까? 그 빨갱이 자식과의 통화 내용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갑작스럽게 회장님에게 온 그걸 믿고?”
빨갱이라는 말에 회장은 세 사람의 눈치를 살피듯, 눈을 가늘게 뜨고 한 번씩 죽 돌아봤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빨갱이라는 단어에 똥을 핥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