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file-02 토라 토라 토라 2
“기습이다! 쏴서 떨어트려!”
“시내 한복판에서 대놓고 테러라고! 이런 거지 같은 실직자 놈들!”
“콜사인 A02와 A03은 방패를 위로 올려서 도로에 쏟아지는 파편을 막는다!”
아직 쇠구슬은 꽤 높은 거리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곧바로 요격하면 건물 등에는 다소 피해가 남을 만했다.
하지만 3중 반응장갑이 장착되어 있는 AP-16의 방패와, 추가 장갑이 기본인 본체가 있다면. 최소한 바닥으로 쏟아지는 건물 잔해와 유탄 파편은 문제가 없었다.
AP-16무리 중 한 대는 떨어지는 쇠구슬을 정확히 조준하면서 요격을 준비했다.
나머지 AP-16은 무릎을 꿇은 자세로 왼팔을 높이 올려, 하완부에 장착된 무거운 금속판을 위쪽으로 향하게 했다.
큐브 조각 같은 반응 장갑이 잔뜩 들러붙은 방패가 도로의 외벽 쪽까지 넓게 펼쳐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람들과 차가 다니는 도로 전체를 뒤덮었다.
요격만 성공하면, 도로 안쪽의 사람들과 차는 아무 손상도 가지 않고 통째로 지하로 내려가면서 조용히 대피할 수 있다. 자주 테러가 벌어지는 도시 특유의 승강식 도로의 특징이었다.
“저것만 잘 쏴서 맞추면 더 이상 피해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신중하게 쏴!”
요격을 준비하던 AP-16은 떨어지는 유탄의 위치와 파편 분산 방향 등을 계산했다.
계산이 완료된 직후. AP-16부대는 아무 거리낌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구에서 주황색 불꽃이 터지면서, 다 타버린 탄피가 약실에서 떨어져 방패를 드럼 치듯 두들겨댔다.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는 55mm 돌격소총의 탄환은, 쇠구슬이 전부 다 떨어지기 전에 전부 맞춰 깨부쉈다.
그리고 쇠구슬이 깨지는 것과 동시에, 마치 수리검 같은 날카로운 금속 조각들이 폭우처럼 아래를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좋아 요격 성…. 이런 빌어먹을! 평범한 유탄이 아냐! 다들 몸을 더 숙이고 반대편 팔로 본체가 뚫리는 걸 막아!”
요격을 맡은 사수는 메인 카메라와 본체에 손상을 피해, 두 팔을 위로 교차시키듯 감싸 쏟아지는 파편을 막아냈다.
동시에 시리즈 H 주행로는 물론, 평범한 자동차와 사람들이 가득 몰린 도로에까지 날카로운 금속조각들이 마구잡이로 뿌려졌다.
검은 우박처럼 쏟아진 쇳조각들은,특수소재 철갑탄도 막아내는 AP-16의 방패에 닿는 순간. 반응 장갑이 터지면서 날아가, 검은 금속조각을 멀리 밀어냈다.
하지만 반응 장갑이 날린 검은 금속조각에서 한 번 더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바늘 같은 쇳조각이 빗줄기처럼 촘촘하게 떨어졌다. 뾰족한 파편들은 반응 장갑판을 그대로 뚫고 들어가, AP-16의 방패를 믿고 도망가던 사람들과 자동차들을 그대로 덮쳤다.
도로 위의 사람들은 쏟아지는 금속조각을 피해, 마치 개미 떼에 물을 끼얹은 것처럼 이리저리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대부분은 큼직한 파편에 깔리거나 찢겨 나가 레어 햄버그 같은 꼴이 되었다.
차도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도로에 빼곡히 들어선 차들 역시 금속 파편에 맞아, 마치 찌그러진 토마토 캔처럼 붉은 과즙을 흘리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팔이나 다리가 짓이겨지고, 뇌수가 새어 나오는 머리 등이 차체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시리즈 H 주행로에 있던 AP-16 부대는 대비가 단단히 되어 있었다.
그 덕에 유탄 파편에 장갑이 관통되고, 파편이 구동부를 망가트렸지만 고간부의 콕핏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미친놈들! 이건 분명 최신형 철갑유탄. 마키비시! 워커 따위나 몰고 다니는 약탈자들이 쓸 물건이 아냐! 재벌 그룹에서 제작하고 그 쪽 소속의 사설경찰들이나 사용하는 고급품이다!”
유탄 한 발 가격만 해도, 테러리스트들이 자주 사용하는 워커 B 타입 기체 다섯 대 값이다. 어지간한 사설 경찰들도 손을 못 댈 고급품이다. 한 주를 통치할 정도의 재력을 갖춘 대기업이나, 여러 개 사들여 제식 화기로 지급할 정도였다.
“약탈자 놈들도 아닌데 민간인들이 죽거나 말거나 작정하고 들이붓는 거냐! 아무리 기업 소속의 사설 경찰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상도가 있지 이 미친놈들!”
요격을 마친 AP-16은 망가진 팔로 하늘을 겨누면서, 돌격소총의 120발짜리 탄창 하나를 죄다 쏟아 부었다. 그러나 예광탄이 섞인 탄환들은 하나같이 밤하늘에 붉은 줄을 그으며 날아갈 뿐. 뭔가를 맞추지 못하고, 오히려 AP-16의 두 팔이 완전 망가져 너덜거리게 만들어버렸다.
그다음 요격 담당의 AP-16은 파편이 박혀서 삐걱대는 팔 관절을 뜯어냈다. 뒤이어 등에 짊어지고 있는 예비용 팔 파츠로 갈아 끼웠다.
OCMUP(One Core Multi Unit Part)라는 시스템. 모든 시리즈 H는 파츠 규격이 동일하고, 본체 부분만 멀쩡하면 나머지는그 자리에서 정비 없이 예비 파츠로 갈아 끼우는 구조다.
덕분에 시리즈 H의 전투 지속력은 일반 차량보다 훨씬 높다. 그렇게 팔 파츠를 두 개 다 갈아 끼운 뒤, 망가진 카메라와 센서로 발사 위치를 확인하려는 순간.
금속 특유의 은빛이 번득이며 조종석 내부의 모니터로 전달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조종사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 되었다.
정찰중인 AP-16은 정 가운데 방향으로 두 쪽이 난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위치와 갈라진 형태를 봐서는 조종사 역시 똑같은 꼴이 났을 것이 분명했다.
AP-16 한 대를 썰어버린 물건은 거대한 일본도 형상의 시리즈 H용 특수 도검류였다. 뒤이어 AP-16의 방패 윗부분 풍경이 다시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잠시 후 새와 원숭이 인간의 골격을 합친 것 같은 기괴한 형태의 시리즈 H들이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식들! 불가시 광학 미체 도장까지 갖췄어?! 저 자식들은 테러리스트 따위가 아냐! 어째서 사설 경찰이!”
AP-16의 파일럿들은 자기 머리 위에 앉은 신형 시리즈 H의 위용에 질려, 한참이나 대응이 늦어졌다. 기껏해야 0.5 초 정도. 하지만 그 시간이면 전장에서 1개 소대가 전멸당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기괴한 형상의 시리즈 H 시노비는, AP-16의 터렛 카메라 모양의 헤드에 마름모꼴 단검을 하나씩 꽂아 넣었다. 그리고 시노비 소대는 마치 메뚜기나 개구리처럼 다리를 웅크렸다가 그대로 높이 뛰어 올랐다.
시노비의 오른팔에서 굵은 와이어가 뻗어 나와, 건물 옥상이나 윗부분 외벽에 박혔고. 그들은 다시 밤하늘 속으로 모습을 감춰버렸다.
단검은 시노비 소대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폭발해. 새까만 밤하늘이 무색해질 정도로 화려한 불꽃놀이 쇼가 벌어졌다. 단검 끝에 붙은 상자들이 일제히 불을 뿜으면서, 송곳니 같은 화염이 AP-16의 실드와 장갑판의 구멍을 통해 들어갔다.
그리고 AP-16의 구멍을 통해 들어온 불꽃은, 이미 다져지고 으깨져 민스 미트가 된 사람들의 육체를 막 구워낸 햄버거 패티처럼 구워버렸다. 또한 간신히 살아서 기어가는 사람들 역시 불길에 휩싸여 라이터 불에 닿은 벌레처럼 발버둥 치며 팔다리가 굽어지고 움츠려졌다.
마지막으로 AP-16의 본체 내부에 있는 가연성 전류 전달 용액에까지 불이 붙어, 요격을 담당했던 기체가 가장 먼저 큰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나머지 AP-16 소대와 내부의 조종자. 그리고 그 주변의 도로와 건물들이 폭발에 휩쓸려 어지럽게 뒤섞인 잔해더미로 변해버렸다.
이것으로 테이진 시내의 거리 역시 훼이첸의 다른 구역과 비슷하게 변해버렸다. 아마 잠시 후면 뚫린 벽을 통해, 훼이첸의 약탈자들이 테이진 시의시체를 열심히 뜯어먹게 될 것이다.
그 사이에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시노비의 파일럿들은, 와이어를 이용해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며 이동하고 있었다.
그중 어깨 장갑판을 파랗게 도장한 기체의 조종사가, 통신장치를 켜고 누군가와 대화를 시도했다.
잠시 후. 기체의 카메라 모니터 옆에, 통신용 화상이 떠올랐다. 통신용 화상에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퀭한 눈의 중년 남성이 앉아 있었다.
그가 앉아 있는 책상 앞에 놓인 명판은 자유 합중국 공통언어로, ‘도조 야스히코’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도조 회장은 도시 밖으로 이동 중인 시노비의 조종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정도면 그쪽에도 경고가 되었겠지? 이걸로 ‘토라. 토라. 토라.’ 작전은 성공이지? 실패했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지는 잘 알 거다.”
그러자 다른 조종사들이 신중하게 그의 표정을 살펴 가던 중. 이제 막 혼닛츠 사설 경찰이 된 신병 한 명이 낼름 대답했다.
“그럴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그 정보팔이 녀석의 말대로 그 미치광이도 모습을 드러낼 것 같습니다. 다만 기업 연합 법에 의하면 이런 식으로 선전포고 없이 기습을 벌이면….”
조종사는 아무리 봐도 도조의 표정에서 아무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대답한 뒤 도조 회장의 지시를 기다렸지만, 도조는 낯빛 하나 바뀌지 않은 채 혀를 차며 고개를 내 저었다.
“말하지 않았나? 지금 나는 기업 연합 법 같은 종이쪼가리 잊어버린 지 오래라고. 대 일본제국의 천황인 내가! 겨우 귀축 영미놈들이 세운 기업 따위에 벌벌 기어야 하나? 게다가 같습니다. 라는 식의 애매한 표현 따위는 쓰지 마라. 나는 분명한 결과만을 원한다.”
도조 회장이 엄지손가락을 튕겨, 허공에 버튼 모양의 홀로그램 모니터 하나를 띄웠다. 그리고 엄지를 아래로 엎어 모니터를 뒤집자, 화면 밖에서는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화면 안에서는 아까 통신을 보낸 시노비 한 대가 밤하늘을 수놓는 폭죽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도조가 다시 한번 다른 기체의 조종사에게 물어봤다.
“다시 한번 물어보지. 이 정도면 그 미친년한테 충분한 경고가되었나?”
통신을 받은 조종사는 아주 잠깐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지만,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흔들림 없는 투로 대답했다.
“확실히 경고가 되었습니다. 이제 조만간 그 쪽도 확실하게 반응할 겁니다.”
도조 회장은 여전히 인형처럼 변화 없는 얼굴로 다음 지시를 내렸다.
“좋아. 물러나서 재정비하고 곧 나올 미치광이 녀석을 맞이할 준비를 하도록. 단! 어디까지나 너희들의 목표는 이 녀석이다.”
도조가 다시 손가락을 튕기자, 모니터가 하나 더 떠올랐다. 그 모니터에는 한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회장이라는 여성이 데리고 있던 여자아이와 완벽히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남자는 다시 한 번 부하들에게 주의사항을 박아 넣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죽이고 겁탈하고 잘게 썰어도 상관없지만 이 녀석만큼은 아무 상처 없이 가져와라. 알았냐?!”
통신을 종료하자, 시노비를 모는 사설 경찰들이 죄다 한숨을 내쉬며, 도조 회장에게 미쳤다는 말을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래도 도조 회장 밑이 아니면 이렇게 즐거운 짓거리를 언제 또 해보겠어?”
하지만 결국 그들도 실직자들과 다를 게 없는 소리를 지껄였다. 다른 주의 사설 경찰들이 들으면 아무 말 없이 한 발 쏴도 이상할 게 없는 개소리였다.
기업 연합 법에 의하면, 그 어떤 기업 항쟁에서도 일반 노동자 사살이나 상해. 강간이나 약탈 등은 엄격히 금지한다.
도시 안의 노동자들은 기업에 있어서 일종의 재산이기 때문에, 기업끼리의 싸움에서는 가급적 서로 손대지 않는 게 기본이다. 불가피하게 노동자를 사살할 경우에도, 충분한 배상을 해주는 게 예의다.
하지만 그런 명령을 내린 도조는 물론, 사설 경찰들 역시 이런 일을 꽤 많이 즐긴탓인지.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리며 가랑이 사이를 주물럭댔다.
“알겠습니다.”
조종사들이 일제히 회장의 명령에 대답하자, 도조 회장은 오른손 검지를 앞으로 뻗어서 통신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