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file-01 투표 민주주의의 기본
자유 합중국의 쓰레기장이라 불리는 훼이첸 주 끝에 있는 콜레이 타운. 이곳 역시 훼이첸 주의 다른 지역과 비슷하게, 찌꺼기를 용접해 이어붙인 폐허더미나 녹슨 컨테이너 건물. 혹은 금속 판자 몇 개 기워 만든 걸 집이라고 내세우는 쓰레기밖에 없었다.
중국에서 발생한 전염병 사태로 인해 국가 유지가 힘든 상황. 결국 기업이 간단한 해답을 낸 것이 바로 다국적 기업 연합국 자유 합중국.
자본으로 하나된 자유 합중국이 탄생할 때, 끝까지 공산주의를 주장하다가 본보기로 박살난 중국. 그 중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역적에 대한 미국의 화풀이로, 옛날 중국이 있던 땅은 자유 합중국의 쓰레기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단 그런 황무지나다름없는 땅에도 멀쩡하고 깔끔한 빌딩숲이 하나 있었다. 콜레이 타운의 중심. 세리울 시. 그곳에서도 가장 높은 건물인 사우스 스네이크 사 본사. 통칭 SS 빌딩의 최상층에서는 한 사람이 널찍한 원탁 의자에 앉아서 불붙은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고 있었다.
검은 비단 같은 머리카락이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고. 그 아래로 반듯한 이마와 여러 번 벼린 칼날처럼 예리한 눈매와 콧날.
참치 살 같은 붉은 입술과 약간 뾰족한 턱. 등이 한데 어우러진 미술품 같은 얼굴은, 지금 자유 합중국의 폭스 TV에 나오는 모든 인기 여배우들을 전부 다 스테이크용 가니쉬로 만들 정도였다.
거기에 어지간한 남자들을 웃도는 훤칠한 키에, 검은 코트 덕에 더욱 대비되어 돋보이는 하얀 피부. 잘 익은 제철 배처럼 크고 탄력 있는 가슴. 손으로 다듬어내고 대패와 사포로 다시 한번 정리한 것 같은 매끄러운 라인의 허리와 복근.
단단하게 죄여진 것 같은 허벅지와 쭉 뻗은 정강이 선. 확실히 이대로 길거리를 나선다면, 정신이 팔려 누구라도 그쪽으로 고개를 돌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검은 코트 안에 연분홍빛 유두와 털을 싹 정리한 음부가 다 보이는 그물 같은 망사 타이즈. 발에는 정강이를 꽉 죄는 가죽 부츠만 신고 있어, 보는 사람마다 이상한 시선을 보내거나 눈살을 찌푸릴 것 같은 옷차림이었다.
그녀는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우고 손가락으로 불씨를 튕겨 날렸다. 그러자 바닥에서 손바닥 크기의 재떨이가 튀어나와 불붙은 재를 받아냈다. 키 큰 여성은 담배꽁초도 재떨이에 던진 뒤 다시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불을 붙였다.
“회장님! 또 조인트인가요?”
그때 빈 의자에 의사 가운을 입은 연한 갈색 피부의 어린 여자아이가튀어나오면서, 담배의 불붙은 곳을 손으로 꽉 잡았다. 하지만 담뱃불은 여전히 타들어가고 있었으며, 그녀의 손 역시 담뱃불을 쥐고 있음에도 화상을 입지 않았다.
실물을 완벽히 재현하고 그 실물의 움직임까지 정확히 감지해서 전송하는 최신식 홀로그램 시트는, 지금 이 소녀가 다른 장소에서 자신의 모습만 영상으로 보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회장은 그 소녀의 얼굴에 냅다 연기를 내 뿜으면서 킥킥 웃어댔다.
“아 참 이봐 사라. 그런 비속어는 쓰지 말라니까? 마리화나야 마리화나! 아니면 칸나비스라던가 칸나양이라고 불러주면 어디 덧나?”
어린 여자아이는 마리화나 연기가 얼굴에 닿자 발작적으로 물러나면서 기침을 해댔다.
그 옆에서 머리카락을 모세의 기적처럼 단정하게 정리하고, 얼굴 절반을 가리는 큼직한 선글라스를 낀 젊은 흑인 남자가 마치 서류 다발이라도 흔들어대는 것처럼 손을 휘둘러 마리화나 연기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마리화나 연기는 천천히 넓게 퍼질 뿐, 흩어지거나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지 않았다.
당연히 그녀가 내뿜는 연기는 소녀의 눈에 보이지 않겠지만, 연갈색 피부의 소녀는 입 모양만으로도 회장이 어디로 연기를 뿜는지 알 수 있었다.
이에 회장이 큰 소리로 웃어대자, 선글라스 낀 흑인 남자가 솟아오르듯 갑작스럽게 사라의 옆으로 움직였다. 그는 두어 번 헛기침을 한 다음. 책 한 권은 되어 보일법한 두꺼운 서류 다발을 쥔 것 같은 손을 테이블에 놓으며 한숨을 내 쉬었다.
“마약을 귀여운 여자아이처럼 부르는 건 그만두시죠. 회장? 뇌 검사 결과 약간의 중독증상이 생기고 있습니다. 만일을 대비한 치료제 만드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고 가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차라리 저희가 대용품을 만들어서 드리겠다는데도 그걸 고집하시는지 원.”
“에에 잭슨?! 그것만큼은 그만둬 달라고. 사라가 만드는 건 맛대가리도 없고, 약효도 형편없다니까! 꼭 어린애들이 먹는 감기약 시럽 같단 말이야!”
회장이 어린애처럼 칭얼대며 잭슨에게 매달리자, 잭슨은 구역질을 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사라는 잔뜩 화가 나 있지만 아무 말 않고 입을 곽 다물었다.
그러자 회장의 좌석 맞은편에, 지저분한 구세대 전투용 위장복을 입은 금발 벽안의 근육질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크게 웃으며 병을 쥔 것 같은 빈손을 기울이고 있었다. 입에서 술 몇 방울이 흘러내리고, 몸 여기저기에서 땀을 흘리고 있지만. 술 냄새나 땀 냄새는 물론 바닥이나 테이블이 술과 땀에 젖는 일 따윈 없었다.
“아 로날드! 너도 오래간만이네. 이번에도 힘든 곳에 보내서 미안.”
그러자 근육질 남자가 지금은 없어져버린 지 오래인 지폐 세는 시늉을 하면서, 회의실 유리창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웃어댔다. 의사 가운 입은 소녀와 정확히 머리카락 절반을 갈라 탄 남자는 귀를 막으며 인상을 확 구겼다.
“힘든 곳에만 보내는 거 잘 알면 뭔가 마음을 보여야지? 말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왜 그 성의 표시라는 게 필요하지 않나?”
그러자 회장은 먹음직한 고깃덩이를 발견한 육식동물처럼 입술을 혀로 핥은 뒤. 농익은 몸매를 덮은 검은 코트를 훌렁 걷어 보이며, 고양이처럼 사뿐히 테이블 위로 기어 올라왔다.
“이번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일주일 동안 내 침실에 들어와도 좋아. 물론 늦은 밤에 오는 것도 허락해줄게.”
회장은 마치 스트립 걸처럼 테이블 위로 올라타, 로날드의 뺨을 핥고 귀를 깨물면서 바람을 불어넣듯 나지막하게 한마디 흘렸다.
그러자 로날드는 공기 술병을 다 비운 뒤, 바닥에 내던졌다. 분명 빈손에서 뭔가를 던진 것인데, 회의실 바닥에는 물건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로날드는 큰 소리로 트림을 한 뒤, 회장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어 보였다.
“시끄럽수 회장! 누구 좋으라고 그런 보상을 줍니까? 그 짓거리는 회장이 더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다른 여자로 좀 갈아타게 해 주십쇼.”
로날드의 항의에 회장 역시 가운데 손가락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로날드는 한숨을 팍 내쉬면서 아쉬워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적당히 손을 내저었다.
“냅둬! 냅두라고. 회장님이 누가 말한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고. 그래서 오늘 회의 주제가 뭐야? 이쪽은 아직 업무 중에 불려 나온 거라서 빨리 끝내야 한다고?”
“이 아이입니다.”
잭슨은 뭔가 눈치챈 듯 피곤한 표정으로 손목 한가운데를 검지로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한 소녀가 들어왔다.
그녀는 발목과 손목에 금속 고리를 찬 상태로 느릿느릿 걷고 있었다. 그녀는 건물 내부처럼 하얗고 깔끔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좋은 샴푸로 머리를 감긴 모양인지 은은한 라벤더 향이 풍기는 머리카락은 검은 비단처럼 물결치고 있었다.
하지만 볼품없이 마른 몸과 햇볕에 그을리고 거칠어진 피부가, 윤기 있는 머리카락과 깨끗한 옷이랑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 소녀의 몸 곳곳에 이중 날로 된 칼에 베인 상처나, 인두로 지진 화상 자국. 몽둥이에 맞아서 멍든 끝에 피부가 침착된 흔적 등이 잔뜩 남아 있어 회장을 제외한 모두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뭡니까 회장님?”
가장 먼저 잭슨이 질문을 건넸다. 그의 눈은 마치 싱싱한 생선을 본 것 같은 고양이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소녀 쪽으로 손을 뻗으려 했지만, 사라가 잭슨의 손을 때리는 시늉을 하며 뼈째 갈아 먹을 것처럼 사납게 노려봤다.
잭슨이 아쉬움이잔뜩 남은 표정으로 그녀의 시선을 피하려는 걸 보자, 사라는 약간 기분 나쁜 표정을 지은 뒤. 마치 소녀를 물건처럼 가리키며 질문을 던졌다.
“아 별 거 없어. 그 때 훼이첸 거리에서 주워 왔다는 전리품 있잖아. 그거라고. 왜 의료팀에 영양제랑 먹을거리를 잔뜩 보내달라고 했지? 그거 때문에 요구한 거라고.”
회장이라는 여성 역시 강아지에게 하듯, 상처투성이 소녀의 턱을 손가락으로 간지럽히면서 개 부르듯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