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file-00 크리스탈 호수의 살인귀-6 (6/66)



〈 6화 〉file-00 크리스탈 호수의 살인귀-6

텐구의 코 같은 카메라가 길게 뻗어 있고, 닌자 복면 같은 투구와 면갑을 덮어 쓴 인간형의 머리. 새의 날개뼈 같은 길고 가느다란 팔. 원숭이를 떠올리게 하는 약간 굽은 허리.

단단해 보이는 다리 밑에 새발처럼  갈래로 나뉜 발가락 부위. 전체적으로 각지고 무거워 보이는 워커 B와 다르게, 늘씬한 원통형에 가볍고 날렵해 보이는 외장과 추가 옵션 무장과 무장 장착용 하드 포인트가 없는 심플한 구성이 특히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워커 B보다  세대는 앞선 디지털 미체 도장처리가 된 스텔스 타입의 시리즈 H. HN-J1 시노비였다. 관절을 특이하게 비틀고 꺾어좁은 건물 틈에도 능숙하게 숨을 수 있고, 디지털 위장에 열 차단 스텔스 기능까지 갖춘 기종이다.

 덕분에 상당수의 부유층 거주구의 민간경찰들이 애용하는 시리즈 H였다. 애초에 생산 시기도 오래되고 지나치게 많은 수가 출고되어 동네 양아치도 주워 타는 워커 B의 상대가  물건이 아니었다.

“뭐야 이거? 시리즈 H 중에서도 제일 흔해빠진 초기형 아냐?”

시노비의 조종자들은 각자 바위를 뭉쳐 만든 덩치. 그 절반도 안 되는 난쟁이. 또 바람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멀대 이렇게 세 사람이었다.

그들은 기체 색과 똑같이 온몸을 검은색 슈트로 감싸고 있었고, 헬멧 역시 렌즈까지 새카맣게 칠해져 있어. 사람이 아니라 그저 그림자로 보일 정도였다.

동시에 시노비를 주저앉힌 뒤, 콕핏 밖으로 나온 조종자들은 자신들이 삽시간에 박살낸 워커 B의 잔해들을 하나하나 상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들은 낡아빠지다 못해, 구세대의 무기와 전자전 장비까지 대충 끼워 맞춰진 넝마 같은 기체들을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이거 보라고. 장비까지 완전 구식이잖아.”

난쟁이가 피투성이 조종석에서, 조종사의 안구와 턱뼈. 뇌수와 두개골 파편이 들러붙은 블랙박스를 꺼냈다. 나머지 둘이 큰 소리로 웃으며, 헬멧에서 케이블 하나를 뽑아 블랙박스와 연결시켰다.

그리고 박스의 내부 기록 데이터를 뒤져, 손바닥 절반 크기의 카드 안에 담긴 안의 영상과 음성을 아주 생생하게 헬멧 안으로 전송시켰다. 그리고 나머지 둘도 케이블을 뽑아, 동료의 헬멧과 서로 연결해서 같이 영상을 전송받았다.

“저런 삼류 찌끄래기들한테 ‘물건’이 오래 붙어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단 말이야.”

“게다가 방금 전 녀석들 영상을 해킹해보니 확실히 붙잡자마자 왠 이상한 녀석에게 뺏긴 것 같은데?”

“과연 회장님이 찾던 그 ‘물건’은 블랙 헬기를 모는 기업 연합의 개한테 간 건가?”

그들은 서로 헬멧을 통해 워커 B의 조종사들이 대화내용과 드론이 보내줬던 영상을 보며,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탈자 무리들을 비웃고 웃음거리로 삼던 중, 검은 코트의 미치광이 라는 단어에 모두들 마른 침을 한 번씩 삼켰다.

“그 년이라면 좀 골치 아프지 않을까? 별의 별 소문이 다 돌고 있던데. 우리들 귀에도 이야기가 잘 들어오지도 않고 정보도 거의 없는 녀석인데.”

“무슨 소문 말이야?”

“취미용으로 먹기 위해서 사람을 사냥한다는 말도 있고, 그 배후에  기업 하나가 버티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어. 기업 연합 핵심 간부의 정부라는 소문도 있고 말이야. 괜히 벌집 하나를 들쑤시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

방금 전부터 덩치가 불안함이 담긴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에 모두들 한 번씩 혀를 차며 한심하다는 투로 한마디 던졌다.

“우리 뒤에 버티고 있는 혼닛츠 사는 무슨 중소기업인  아냐? 중소기업이면 이 최신형 시노비를 선심 쓰듯 척척 보급해주겠냐 이거야.”

“아무리  미치광이가 강하고 특이한 병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결국 자본이랑 물량 앞에는 장사 없어. 무수한 숫자로 몰아붙이면 사람 생살 씹는 미친년이라도 우리 앞에서 다리 벌리고 허덕이는 꼴을 보여주게 될걸? 듣자 하니 굉장한 미인이라는 소문도 있던데.”

멀대가 피식 웃으며 한마디 흘렸다. 그러자 난쟁이 역시 아랫도리를 손으로 콱 잡으며 폭소를 터트렸고, 덩치도 바윗돌이 굴러가는 것처럼 웃어댔다.

“하긴 그것도 그렇군. 그러면 바로 혼닛츠 사에 이 사실을 알려야지. 그리고 빨리 추격 팀을 꾸리라고 우리 야스쿠니 경찰이 잡아내지 못할 먹잇감은 없으니까.”

난쟁이가 비릿한 투로 덩치에게 명령을 내리자, 덩치는 헬멧 안쪽에서 큰 소리로 웃으며 눈동자로 헬멧을 조작해 전 대원 소집 명령을 내렸다.

잠시 후. 시노비 세 대의 어깨 장갑판이 열리면서 형형색색의 조명탄이 쏘아 올려졌다. 뒤이어 훼이첸의 지저분한 거리에, 시커먼 그림자들이 개미 떼처럼 하나둘씩 롤러 마찰음과 모터 작동 소리를 내면서 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수백 대의 시노비가 훼이첸의 거리를 전부 뒤덮었다. 그들은 한 치의 틈이나 비뚤어짐 없이 질서정연하게 조명탄이 발사된 곳 앞으로 모였다. 조종사들은 하나같이 다가올 전투와 살육에 흥분하며, 기대감 때문인지 눈이 먹이를 보는 맹수처럼 번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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