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file-00 크리스탈 호수의 살인귀-5 (5/66)



〈 5화 〉file-00 크리스탈 호수의 살인귀-5

그녀는 피와 육편이 가득 들러붙은 얼굴을 대충 문지른 뒤, 역시나 피가 잔뜩 묻은 입 근처를 혀로 핥아 닦으며 씩 웃었다.

“아 개운해. 안 그래도 이번 일이 썩 잘 안 풀려서 기분 나쁘던 참인데. 마침 잘게 다질 사냥감들이 돌아다녀서 기분이 확 풀렸어!”

그녀는 온 몸에 피를 묻힌  큰 소리로 웃어대며 시체더미를 향해 소이수류탄 하나를 던졌다. 삽시간에 고깃덩이들에 불이 붙으면서, 살이 타는 누린내가 확 퍼졌다. 그 때 구석진 곳에서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렸고,  큰 여성은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라? 이 녀석 아직 살아 있었나?”

키 큰 여성은 소녀와 거의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달라붙었다.  모습은 마치 배부른 짐승이 처음 보는 동물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 코트의 여성은 소녀의 등을 가볍게 쓸어내려 주면서, 웃음기 섞인 얼굴로 그녀를 달래주며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약간 놀랐는지, 눈썹을 위로 살짝 올리며 입 끝을 실룩거렸다.

“가, 가만 이 녀석 이번 일감 아니었나? 잠깐만 얼굴 돌리지 말아봐. 쓸데없이 저항하다간 너도 저 꼴이 될지도 모르니까 얌전히 있으라고.”

키  여성은 허공에 한 여자아이의 사진이 담긴 홀로그램 모니터 하나를 띄웠다. 그다음 눈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소녀의 얼굴과 비교해봤다.

“어라? 이 녀석이 맞잖아. 제대로 찾은 거라고 하하하하!”

소녀의 눈에는 검은 코트를 입은 채 피투성이가  여성이 걸어오는 모습과, 자신을 빤히 쳐다보다가 폭소를 터트리는 모습에 잔뜩 겁을 집어먹었는지.

뱀과 마주친 개구리처럼 얼어붙었다. 키 큰 여성은 그녀가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어깨를  손으로붙잡은 뒤, 그대로 쪼그려 앉아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어라? 이 녀석 떠는  보게.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 거야? 응? 응?”

키 큰 여성은 허리를 확 숙여, 그녀의 코앞에 얼굴을 바짝 들이대면서 입 끝이  찢어진 것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유 합중국 주민이라면 이런 피비린내하고 화약 냄새 정도는 즐길 줄 알아야지?  그래? 응? 설마 이런 도축장 작업은 처음 보는 거야? 신기하네.”

눈을 부릅뜨며 소녀를 노려보자, 그녀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신음 소리와 함께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핏물과 토사물이 한데 섞인 오물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 키 큰 여성은, 곧바로 가면을 벗듯 평상시의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되돌아와 한숨을 내 쉬었다.

“에이 겨우  정도 갖고 기절하는 건가? 겨우 이런 것 같고 기절할 정도라면 자유 합중국에서 살아남기 힘든데. 역시귀한 집안에서 자라나면 다 저렇게 되는 건가.”

그녀는 소녀를 쳐다보며 의문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골치 아프다는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으며 이마를 두들겼다.

그리고 왼쪽 손목을걷어, 시계 크기의 휴대용 컴퓨터 단말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뒤이어 마치 술이라도 한잔 마신 것처럼 잔뜩 기운이 치솟는 투로 명령을 내렸다.

“아 사라냐? 자다가 깼어? 나다. 화장이라고. 오늘 전리품 하나 가져갈 거니까 당장 내가 있는 곳으로 헬기 보내. 위치는 자동으로 표시되니까 1초라도 늦으면 모가지를 날려버릴 거야? 알았지?”

그녀는 곧바로 자기 용건만 말한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코트 주머니에서 붉은 액체가 든 주사기를 꺼내, 목덜미에 꽂으며 피스톤을 꾹 눌렀다.

“뭐 어쨌건 그 녀석 말대로! 귀중품은  근처에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 오늘은 이제 상쾌한 기분으로 푹 쉬러 가볼까!!”

그녀는 오물 위에 쓰러진 소녀를 안아 든 다음.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면서, 날카로운 미소를 지었다. 뒤이어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와 함께 그녀의 발밑에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서치라이트가 드리워졌다.


‘검은 코트의 미치광이’ 라고 불린 괴인이  번 다녀간 훼이첸 주의 외곽. 그곳은 지금 4층짜리 연립주택 크기의 기계 거인들이 이미 폐허가 된 거리를 다시 한번 갈아엎는 중이다.

자유 합중국에서 가장 저렴한 이족보행 전투 병기. 시리즈 H 특유의 모터 구동 소리와 공기부양식 엔진 소리가 한데 섞인 일렉트릭 기타 연주와 같은 소음이,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운 훼이첸 주의 밤거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뒤이어 전차 전면처럼 경사진 어깨 장갑과 손목. 흉부 아래쪽. 인간의 명치에 해당되는 각지고 두꺼운 장갑이 가지런히 접합된 흉부.

그리고 컨테이너 박스 같은 큼직한 고간부 역시 무거운 장갑이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었다.

그 거인들은 가스 마스크를   목을 반 넘게 파묻은 것 같은 큼직한 돔형 머리를 회전시키며, 머리 앞부분에 달린 서치라이트로 훼이첸 시내의 황무지 같은 폐허 무더기를 샅샅이 비추고 있었다.

특히 흉부가 아니라 고간 부분에, 관측창과 추가 장갑판. 콕핏 개패용 손잡이가 붙어 있는  특이한 점이었다.

전체적으로는 구시대의 주력탱크 메르카바와 에이브람스 M-1전차에서 따온 것 같은 팔다리를 덧붙이고, 기관총과 주포. 다련장 로켓과 대공포를 한데 붙인 다포탑 차량 같은 형상이다.

시리즈 H 중에서도 과다 생산으로 인해 자동소총 한 자루보다 값이 싸다는, FU-M-1 워커-B였다. 인간형 전차 워커-B 안에 탑승한 이들은 얼굴을 전부 다 가리고 뒤통수에 케이블 다발이 붙은 헬멧을  채 서로 화상통신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아무리 말단이라고 해도. 그딴 식으로 지저분하게 죽이는 또라이가 어디 있어?! 아무리 우리가 양아치라고 하지만 기본 도리도 죄다 없어지고 있는 거 아냐?”

어깨에 파란색으로 01이라는 스텐실 마킹이 되어 있는 검은 워커B의 조종사가 껌 씹는  같은 투로 비아냥거렸다.

그 오른편에서 55mm 대구경 기관총과 흉부 왼쪽에 붙인 12mm 개틀링으로 건물 잔해들을 자갈밭처럼 갈아엎고 있는, 갈색 02 스텐실의 워커 B 조종사가 01과 녹색 03 스텐실 마킹이 된 워커 B에 영상을 하나 전송했다.

“카메라 드론이 마지막으로 보냈던 영상에는 알몸뚱이에 검은 코트 걸친 여자가 권총 두 자루를 들고 사람들을 잘게 다지는 게 전부였어. 그리고 시체에 소이탄까지 던지더라고. 아주 미친년이야.”

뒤이어 검은 코트 여성이 약탈자 패거리들을 전부  청소하고 소이수류탄을 던지는 순간. 프로펠러 소음과 함께  발의 총성이 터져 나오고, 화면이 일제히 먹칠을 하듯 새까매졌다.

그리고 02를 제외한 나머지  조종사는 발을 떨거나, 규칙적으로 레버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는 등. 전에 없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 검은 코트의 미치광이 년이 맞아! 게다가  헬기 프로펠러 소리?”

"검은 헬기를 모는 맨 인 블랙 말이야?"


'검은 헬기' 냉전 시기에 UFO 출몰 지역마다 나타나거나, 미국이나 소련 정부와 계약한 외계인들의 UFO를 호위했다는 검은색의 전투헬기에 대한 도시전설이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자 마자  소문이가라앉았다가, 기업들만의 세계 정부가 완성되면서 다시 살아난 괴담이었다. 게다가 시대가 바뀌면서 소문의 내용이 변해, 기업 연합의 뜻에 반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원맨 아미라는 소문으로 변해 있었다.

아무튼 실직자들이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실직자 셋이 조종하는 워커 B는 어깨와 흉부 장갑에 파묻힌 머리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본채에 장착된 로켓 런처나 중화기의 각도를 조금 더 높이 올렸다.

대부분의 시리즈 H가 건물 옥상에 올라서 싸울 일이 없고, 전투기와 전투 헬기는 이제 거의 도태당한 상태라 굳이 대공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블랙박스에서 헬기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듣자마자, 언제 어디서 나올지 모르는 위쪽의 공격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모든 화기를 위쪽으로 향하는 것과 동시에 지면을 휩쓸던 호버 주행 소리가 멎는 대신. 고정식 무장에 붙은 모터가움직이는 소리와, 두터운 다리에서 튀어나오는 지지대가 콘크리트를 뚫고 부수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그래 맨몸으로 온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아래쪽만 신경 쓰지 말고, 대공  살펴보라고.”

모두 서치라이트를 별빛도 보이지 않는 검은 하늘에 비추고 있을 그 때.  뒤편에서 주변 풍경이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뒤이어 길고 굵직한 막대 형태의 아지랑이가 일렁이더니, 아지랑이 끝에서 주황색의 화염이 치솟았다.

“포격!”

 대의 워커 B에공격 경보 알람이 뜨면서, 조종석 모니터에 회피 메시지가 올라왔지만. 이미 늦었다. 03 마킹이  워커의 고간 부위가 대구경 철갑탄에 관통되면서, 탄두 끝에 으깨진 살점 몇 조각이 들러붙은 상태로 튀어나왔다.

 모습은 마치 여성의 알몸을 보고 남성의 성기가 발기한 것처럼 보였다. 사람 하나가 순식간에 죽었다는 현실과 너무 분리되어 있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이었다.

“저격이다! 어디야!”

나머지 두 대의 워커 B는 저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상반신을 회전시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두 워커 B의 등 뒤로 다시 아지랑이가 일렁이며, 주변 풍경이 거인 형상으로 일그러졌다.

“뒤! 바로  뒤….”

워커 B 01의 조종사가 경고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상반신을 뒤로 돌렸으나, 굵은 송곳 같은 창끝이 조종사의 두개골을 깨부수면서 그의 몸뚱이를 때까치 먹이처럼 꿰어버렸다.

그리고 02 워커 B의 조종사는 큼직한 주먹이 모니터에 정면으로비추는  마지막으로, 조종석 채로 주먹에 짓이겨져 스파게티에 얹는 토마토 페이스트로 변해버렸다.

잠시 후. 새와 원숭이. 그리고 인간의 골격을 적당히 섞은 형상의 기계 거인  대가, 초라하고 황폐한 주변 풍경을 지워버리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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