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file-00 크리스탈 호수의 살인귀-3
반쯤 무너진 건물 사이로 드러난 산산 조각난 시체와 반파된 워커-B 타입의 잔해. 기업에서 쓰다 버린 구식 설비와 작년에 발매되어 두 달 만에 유행이 끝난 가전제품 같은 쓰레기.
곳곳에서 도시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버리는 유독성 폐기물. 기업이 관리하는 도시에 비해 전깃불 하나 없다시피 한 어두운 뒷골목.
이걸 한 단어로 줄이면 ‘쓰레기통’이라고 불러도 좋은 역겨운 곳이었다.
물론 이런 지옥 같은 동네는 기업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장벽 바깥에 있는 실직자 구역의 흔한 풍경이기도 했다.
아무 때나 기업의 전차와 전투헬기. 호위용 시리즈 H 부대가 온갖 쓰레기를 버리러 오는 걸 보면 이런 곳에 사람 따위가 살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바이크 엔진소리와,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 먼 곳에서는 비명소리와 총성이 들리는 걸 보면, 이런 황무지 같은 곳에서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옆으로 누운 건물 창문 밖으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자 그러면 일을 시작해 보실까.”
그들은 쓰레기를 긁어모아 만든 옷을 입고, 딱딱한 바닥에 그대로 몸을 눕혀 자느라 납작해진 두상에. 오염물질을 잔뜩 뒤집어써서 다 헤진 수세미 같은머리카락.
중금속에 오염된 새카만 피부와 뒤틀린 골격 때문에, 인간이 아니라 인간과 비슷한 생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인간들은 사람과 똑같은 몸짓과 언어로, 사람들이 쓰는 창과 칼. 그리고 총과 수류탄을 잔뜩 짊어진 채, 원시인들 마냥 먹잇감을 찾기 위해 분주히 돌아다녔다.
세계가 하나로 모이고, 정부라는 개념이 사라진 대신 모든 국가가 기업이 되어버린 새로운 개념의 단일국가. 자유 합중국.
신서기로 대략 50년이 넘는 신세계 자유 합중국. 그곳의 108번째 주 훼이첸의 새벽은, 반쯤 무너진 빌딩숲 사이에서 고철과 넝마로 중요한 부분만 가린 실직자들이 하나둘씩 기어 나오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오늘은 관광이랍시고 잘못 들어온 부자 녀석들이라거나, 조난당한 비행기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대기업 용병들의 시리즈 H는 우리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이기니까 말이야.”
걸어 다니는 고철 더미 같은 인간들 중. 아랫도리만 철판으로 가린 사내가 불길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한마디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암시장과 가내수공업 특유의 조잡하고 위험해 보이는 총기류와 폭발물을 허리춤에 몇 개씩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다만 그 중에도 일부 덩치가 큰 녀석들은 약탈로 얻은 멀쩡한 무기를 들고, 역시 다른 먹이를 해치우고 얻은 차와 바이크에 몸을 실은 이들이 조금씩 섞여 있었다.
언제나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가 가시지 않는 훼이첸 주의 거리와, 그 거리를 아무런 제제 없이 돌아다니는 약탈자들.
그들은 전 인류가 풍요로운 자본주의 아래 하나 된 자유 합중국이 어떻게든 감추려 하는 재래식 변소 같은 뒷면이었다.
어느 주라도 정부를 대신하는 대기업과, 계열사들이 운영하는 도시가 있지만. 대기업의 손을 벗어난 곳은 어디라도 쓰레기들만 가득한 지옥이었다.
그리고 훼이첸은 실직자 관리를 위해 거주하고 있는 사설 경찰 업체가 세운 몇몇 도시를 제외하면, 그 지옥이 대부분인 ‘버려진’주에 속했다.
그 버려진 땅에서 하이에나처럼 군침을 흘리는 약탈자 무리는, 그나마 멀쩡하다 싶은 구역이 남은 곳을 향해 천천히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도 쉽게 먹어치울 수 있는 먹잇감을 찾는 야생동물들의 탐색이 시작되었다. 피와 그 날 먹을 식량.
그리고 강렬한 폭력에 굶주린 짐승 같은 인간들은, 이미 황무지에 가까운 훼이첸 시내를 마구 헤집으며 조잡한 부스러기나마 찾기 위해 눈을 번득였다.
그 때 너저분한 인간들 앞에 그럭저럭 먹음직한 먹잇감 하나가 눈에 띄었다.
손에 몇 권의 책을 든 채 마치 포식자를 피해 몸을 숨긴 초식동물처럼, 허리를 낮춘 상태로 기어가다시피 걷고 있는 어린소녀였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가느다란 팔과 다리는, 필사적으로 도망간다고 해서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약탈자들은 입맛을 다시며 정말 손쉬운 상대를 만난 것에 굉장히 기뻐했다.
“오늘은 운이 좋네. 먹을 게 별로 없어 보이지만, 일단 쉽게 먹는 게 중요하지.”
건물 위에서 쌍안경을 낀 약탈자가 손짓하자, 나머지 무리는 아예 총과 칼을 허리춤에 도로 채운 뒤, 천천히 걸어가며 소녀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소녀가 크게 놀라 뒤로 달아나려 했지만, 이미 그들은 둥글게 빙 둘러싼 채 그녀가 달아나지 못하게 서로 단단히 뭉치며 포위망을 좁히고 있었다.
“깜짝 파티다 꼬마야!”
그들은 소녀를 완전히 둘러싸자, 큰 소리로 웃으며 소녀의 배를 발로 걷어 차 날렸다. 그리고 쓰러진 소녀를 다시 일으켜 세운 뒤,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러자 소녀의 너저분한 가방 안에서 깨끗한 하녀복과 얇은 카드 칩 모양의 신분증이 튀어나왔다. 쌍안경 낀 약탈자가 그 신분증을 주워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히죽 웃어댔다.
“이야 이 년. 이거 좀 있는 집 보모노릇 하는 애잖아.”
그러자 다른 약탈자들이 그녀의 가방을 뺏어, 조금이라도 값이 나갈 것 같은 물건이나 먹을 것들을 서로 나눠 갖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마치 하이에나들이 죽은 짐승의 시체를 뜯어먹는 것 같았다.
“그러면 처녀는 아니겠네?”
약탈자 중 한 명이 그렇게 한마디 던지자,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얼굴을 가릴 뿐이었다.
그 와중에 들개 같은 약탈자 패거리들은 지저분한 얼굴에 음험한 미소를 띠며,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려댔다.
그들이 가방을 거꾸로 들어 털어대자, 피임약과 쾌락 주사. 성도구 등이마지막으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약탈자들은, 자신의 예상이 들어 맞은 게 기뻤는지 더욱 큰 소리로 웃어댔다. 그리고 소녀는 더 이상 얼굴조차 들지 못하고 뒷걸음질만 칠뿐이었다.
“뭐 어때. 한 번 하거나 백 번 하거나 이미 뚫린 년인데 즐기는 데 문제없잖아.”
약탈자 패거리들은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리며 그녀를 산 채로 뜯어먹기 위해 자기 몸의 절반밖에 안 되는 소녀 주변을 천천히 둘러쌌다.
그들에게 한 번 걸린 이상, 이 소녀는 자기가 가진 걸 전부 다 내놓을 수밖에 없다. 약탈자들 중 몇몇은 바지를 벗으며 다리 사이의 고깃덩이를 주물러대고 있으며, 한 명은 차안에서 아이스박스와 의료용 톱. 그리고 마취제와 메스를 준비했다.
그렇게 약탈자들이 한 소녀를 뼈 한 조각 남기지 않고 먹어치우려 할 때. 발소리와 함께 하얀 그림자가 비틀거리듯 움직이는 게 그들의 눈에 띄었다.
“저건 또 뭐야?”
“글세. 어디 어라? 저거 여자잖아? 그것도 먹기 힘들고 별 볼일 없는 어린애가 아니라 먹음직하게 다 큰 여자 말이야.”
그들 앞에모습을 드러낸 것은, 알몸에 검은 색 낡은 외투 한 장만 걸친 장신의 여성이다.
특이하게도 이마에 가로로 길게 그은 것 같은 상처가 나 있고, 몸 한 가운데에 절단면 같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게다가 머리카락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하얗게 새어 있었다. 다만 외투 색이 종이처럼 하얀 피부색과 심하게 대조된 탓에, 그녀의 투명할 정도로 뽀얀 피부가 더 돋보였고.
무르익은 가슴과 반질반질한 도자기 같은 허리와 엉덩이 선은, 비쩍 말라 먹을 것도 없어 보이는 소녀를 미뤄두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뭐야? 이런 똥통 밑바닥 같은 곳에 저 정도의 미인이 돌아다닐 수 있나?”
훼이첸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먹을 것도 없고, 입을 옷도 없어. 시커먼 피부색에 비쩍 마른 체형.
아니면 들어가는 재료가 쓰레기에 가까운 정크 푸드만 먹고 살아, 반대로 익사체처럼 퉁퉁 부은 여성밖에 없었다.
간단히 말해 젊은 여성이 저렇게 아름다운 몸을 가꿀 조건이 되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눈이 강한 약이라도 한 것처럼 확 풀려 있는 걸 보자마자, 그들은 이 여성도 다른 곳에서 왔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뭐 눈까리를 보니까 약에 취한 것 같은데. 아마 조지 워커 시의 돈 많은 녀석이 갖고 놀던 장난감이겠지. 키우던 개 내다 버리듯 버렸나?”
“겉모습은 아직 상등품으로 보이는데? 약에 너무 취해서 대충 내다 버린 물건 아냐?”
다만 그들은 키 큰 여성 쪽으로 시선이 쏠린 와중에도,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기 싫은 모양인지. 소녀를 둘러싸고 있는 간격을 점점 더 좁혀가고 있었다.
“상관없어. 저 꼬마는 적당히 붙잡아두고 있으라고. 난 저 년의 상태를 확인해보고 좀 즐겨볼 테니까.”
쌍안경을 낀 채 다리 사이에만 철판을 두른 남자가, 실실 웃으며 어깨에 맨 총을 빼 들었다.
쌍안경은 60년 전쯤 생산이 중지되어버린 잎담배를 입에 물고, 그 여성을 향해 총을 겨누며 천천히 걸어갔다.
다른 패거리들과 다르게, 그는 지금 조지 워커 시의 사설 경찰이 사용하는 최신식 복합소총 UM-19를 들고 있었다.
유탄의 종류만 해도 네이팜과 화학탄 등을 추가 사용할 수 있고, 초당 30발을 퍼부을 수 있는 물건으로. 방아쇠에 약간 힘만 줘도 약에 잔뜩 취한 저 키 큰 여성을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난 몸뚱이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흉포한 무기다.
그는 일부러 그녀에게 겁을 주기 위해, 발밑과 머리 위 그리고 어깨 근처를 향해 몇 번 위협 사격을 했다. 마지막 한 발은 더 크게 겁을 줄 생각인지, 유탄발사기로 옵션을 바꿔 슬러그탄을 다리 사이의 바닥에 정확히 박아 넣었다.
패거리들에게 잡혀 있던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엎드렸고 소녀를 둘러싼 이들은, 그 상황이 즐거운 모양인지. 그녀를 발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큰 소리로 웃어댔다. 하지만 정작 위협사 격을 받은 키 큰 여성은 여전히 멍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할 뿐이었다.
“헛 참. 저년 봐라? 쫄지 않네. 아랫도리 정도는 좀 축축하게 적셨으면 재미있었을 텐데 말이야. 역시 약에 찌든 년인가?”
그때. 쌍안경 남자는 아주 잠깐이지만, 그녀의 입가에 초승달 같은 미소가 걸린 걸 봤다. 그는 순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는 걸 부정하기 위해, 더욱 빠르게 걸어가 그녀의 가슴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은 총구가 닿으면서 움푹 팼고, 잘 부푼 빵 반죽 같은 탄력이 그의 총 손잡이를 통해 전해졌다.
“이봐! 너 뭐하는 년이야? 귀먹었어? 말을 못 하면 비명이라도 질러 보라고!”
그는 그 여성 탄력 있는 가슴 감촉에 흥분하면서, 철판으로 가려진 물건을 뻣뻣하게 세웠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약에 취한 사람처럼 들릴 듯 말 듯 입술을 오물거리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쌍안경 사내는 그녀의 바로 앞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그는 달빛을 받아, 농익은 과일 같은 윤기를 내는 그녀의 가슴을 세게 움켜쥐었다.키 큰 여성은 거북이 마냥 엎드린 소녀를 빤히 쳐다보며, 헤 벌어진 입으로 침 한줄기를 흘릴 뿐이었다.
젊은 여성은 소녀를 향해 넋이 빠진 미소를 지으며, 그너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얹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장기를 뽑아다 팔아봤자 하루 먹을 식량도 안 나올 저 꼬마를 구하려고? 다크나이트 흉내라도 낼 생각이야 아가씨? 고담시의 배트맨이라도 되려고?”
그는 키 큰 여성이 움직이지 못하게 허리를 붙잡은 뒤, 연분홍색의 유두를 꼬집어 올리며 실실 웃어댔다. 그리고 자신의 아랫도리에 갖다 붙인 박쥐 모양 철판을 손가락으로 가볍게쳤다. 그 여성은 다시 한번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알아들을 수 없으니까 좀 크게 말해보라고?!”
그가 일부러 도발하듯 키 큰 여성의 입가에 귀를 갖다 대자, 그녀는 순간적으로 씩 웃으며 새하얀 이를 드러냈다. 순간 쌍안경 남자는, 그녀의 눈에 광기에 가까운 생기가 번득이는 것을 봤다.
동시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섬뜩한 미소에 얼어붙어 버렸다. 뒤이어 그녀는 맹수처럼 입을 크게 벌린 뒤 쌍안경 남자의 귀를 깨물어, 마치 얇게 자른 햄처럼 그 남자의 귀를 끊어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