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file-00 크리스탈 호수의 살인귀-2
엘름 시티. 대규모의 화학 회사를 여러 개 끼고 있는 대기업들과 약품 생산시설이 밀집된 기업도시.
그리고 기업 소속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여러 종류의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형형색색의 불빛이 어지럽게 움직이는 번잡한 자유 합중국 소속의 기업도시다.
고층건물 옥상에서 깜박거리고 있는 비행기 충돌 경고등. 홀로그램 모니터로 크게 띄워놓은 아이돌 가수의 광고 영상. 자유 합중국 어디서나 볼법한 한밤중의 화려한 곳이다.
하지만 그 도시 외곽은 어떤 건물보다 더 높고 두터운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벽 바깥의 풍경은 다른 모습으로 밤을 잊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래. 여기 실직자놈들 정말 싱싱하네. 어디 그중에서도 제일 먹음직한 놈들 없나?”
엘름 시티와 거대한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쓰레기 처리장 크리스탈 레이크. 엘름 시티의 어떤 기업에도 소속되지 못하거나 소속되기 거부한 사람들.그리고 어떤 사정으로 인해 기업에서 쫓겨난 ‘실직자’들이 거주하는 황무지다.
기업이라고 하는 축사 없이 살아가는 실직자라는 야생동물들은 항상 굶주림에 시달리며, 우리 안의 가축들을 미워하고 또 틈만 나면 잡아먹을 생각만 가득했다.
그 탓에 생활에 필요한 농사나 축산. 정수와 건설. 기타 생산시설 같은 건 거의 없다고 할 만한 상황에서도, 인간형 이족보행 전투 차량 시리즈 H나 시리즈 H 전용 총기류 등을 제작하는 시설만 가득했다.
또한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은 엘름 시티의 실직자들은, 기업들이 마구잡이로 버린 화학약품 섞인 물을 마시고 독극물이 포함된 공기에 접촉해. 이미 인간이라고 보기도 힘들 정도로 뒤틀리고 문드러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금속판과 세라믹 재질의 합판을 대충 이어붙인 건물들 역시, 화학약품에 찌들어 죄다 똥 같은 갈색으로 변한 상태다.
그들은 오늘도 기업에서 쓰다 버린 건설용 중장비와, 사설 경찰들이 구식이라고 폐기한 시리즈 H. 워커-B 타입을 몰고. 건물 잔해와 쓰레기만 가득한 크리스탈 레이크의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
이 크리스탈 레이크에서 나오는 중장비와 시리즈 H. 그 밖의 모든 물건들은 전부 다 엘름 시티의 대기업들이나 기업 소속의 직원들이 쓰다 버린 물건이지만, 자체적인 생산 시설과 자본이 없는 크리스탈 레이크의 부랑자들에게는 귀한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안 그래도 전구 앞대가리 같은 둥글기만 한 투구에 렌즈 몇 개만 붙여놓고, 어린애가 큼직한 골판지 박스를 뒤집어쓴 것처럼 비대하고 단순하게 각진 외관의 저가형 기체였다.
거기에 온갖 쓰다 버린 건설장비를 덕지덕지 붙이고 다녀, 싸구려 할로윈 코스프레 같은 몰골을 자랑하고 있었다. 회장은 그런 쓰레기더미들을 끌고 다니는 구더기 같은 부랑자들을 보며, 꼭 벌레를 손가락으로 눌러 죽이기 전의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
“으음. 그래 역시 이런 똥통 안에서 팔팔하게 움직이는 녀석들이 보이지. 싱싱해 보이고 먹음직한데. 그 중에서 가장 군침 돌게 하는 팔팔한 놈들이잡히면 좋겠는데.”
회장은 마치 요리되기 전에 수족관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보듯, 지저분한 거리를 날뛰는 부랑자들을 죽 둘러봤다. 그리고 그중에서 한 무리의 부랑자들이 눈에 띄었다.
“다 때려 부숴!”
“이것만 뚫어내면 엘름 시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어! 우리를 쫓아냈던 엘름 시티의 배불뚝이 돼지 새끼들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단 말이야!”
그들은 공사용 중장비랑 시리즈 H의 부품을 이어 붙여 개조한 워커-B 타입으로, 엘름 시티의 두터운 외벽을 뚫고 들어가려는 중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엘름 시티의 주민들에게 추방당한 크리스탈 레이크의 부랑자들은, 엘름 시티 사람들을 미워하고 있었고. 또한 엘름 시티의 깔끔한 물건과 상하지 않은 음식. 막 생산라인에서 출고된 시리즈 H등을 탐내고 있었다.
덕분에 이런 식으로 외벽을 뚫고 엘름 시티를 약탈하려는 이들은 늘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회장은 이런 약탈자들을 보자마자, 군침을 삼키며 희열에 가득 찬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그녀는 조종석 천장에서 작은 케이스 하나를 꺼내, 그 안에 들어있는 새끼손가락 크기의 주사기 중 하나를 뽑아 들었다.
“우와! 오늘도 싱싱한 약탈자들이네. 주님인지 뭔지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일용할 양식 감사히 먹겠습니다!”
회장은 주사기를 목덜미에 꽂은 뒤, 피스톤을 힘껏 눌렀다. 압축공기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주사기 안의 약물이 텅 비어버렸고 그녀는 빈 주사기를 조종석 바닥에 버렸다. 그 다음 헬기의 모니터를 전부 다 꺼버린 다음, 뒤에 숨겨져 있는 크고 붉은 버튼을 눌렀다.
전갈 같은 형상의 전투헬기는, 장갑판과 내부 골조 등이 이리저리 복잡하게 갈라지고 분해되더니. 순식간에 인간 형상으로 재조립된 채 지면을 향해 떨어졌다.
그것은 팔과 다리 몸체와 머리는 인간과 비슷하긴 했지만, 정확히는 인간의 골격에 사마귀와 전투 헬기를 한데 섞은 기형적이고 기괴한 형상이었다.
마치 곤충을 떠올리게 하는 가느다란 역관절 다리. 헬기의 머리 부분이 변형된 여성의 육체 같은 흉부와 골반부.
뱀처럼 여러 개의 관절을 이어붙인 미끄러운 허리. 말벌 배 같은 형상을 한 등 뒷부분의 엔진. 왼쪽 어깨 장갑에는 헬기 꼬리가 그대로 붙어있고, 오른쪽 어깨는 절반 정도 접힌 프로펠러가 달려 있었다.
게다가 왼팔 하완부에는 코코넛 크랩을 떠올리게 하는 접근전용 집게손이 하나 더 붙어있고, 오른팔은 큼직한 그레네이드 런처가 장착되어 있어 좌우 대칭이 전혀 맞지 않았다.
여기에 다른 시리즈 H에 비해 작은 크기의 머리는 사마귀처럼 뾰족했고, 정 중앙에 붉은빛을 내뿜는 외눈형 카메라가 하나 박혀 있었다.
뒤통수에는 머리카락 같은 굵직한 와이어 다발이 길게 늘어져 있어, 멀리서 보면 인간 여성을 떠올리게 하는 외장이었다.
다만 역관절로 접혀 있는 다리나 가느다란 보조 팔처럼 군데군데 벌레와 비슷한 파츠가 섞인 것이, 전체적으로 휘갈겨 칠한 것 같은 검은 페인트와 어우러져 불길하고 음산한 느낌까지 주는 외형이었다.
“어이쿠 이런! 이대로 떨어지면, 블랙 맨티스 녀석의 수리비 갖고 또 말 나오겠지.”
회장은 헬기가 인간형으로 변할 때 분리된 프로펠러를, 엘름 시티의 외벽에 깊게 박아 넣었다. 프로펠러는 금속제 외벽에 박히는 것과 동시에. 마치 지옥의 사자가 거대한 낫을 들고 달려가듯 사정없이 불똥을 튀기며, 인간형 헬기와 함께 지상을 향해 낙하했다.
“모두들 굿 이브닝!”
인간형으로 변한 전투헬기 블랙 맨티스는 막 외벽을 뚫으려는 거대한 시리즈 H를 짓밟으며 사뿐히 바닥에 내려앉았다.
블랙 맨티스의 하이힐 같은 뾰족한 발에 밟혔던 시리즈 H는, 정강이 앞부분과 어깨에 장착된 서스펜션의 반동으로 일어나려 했으나. 블랙 맨티스가 벽에 박힌 프로펠러를 뽑으면서 크게 휘두르자, 그대로 조종사와 함께 두 동강이 나 바닥에 다시 한번 엎어져 버렸다.
막 두 동강 난 시리즈 H 뒤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누추한 몰골의 부랑자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앞에 서 있는 불길한 형상의 블랙 맨티스를 올려다봤다.
블랙 맨티스는 머리 부분의 외눈형 카메라를 번득이며, 곤충의 입 같은 마스크를 열고 회장의 목소리를 그대로 증폭시켜서 넓게 퍼트렸다.
“오늘도 안녕하신가? 기업에서 내쳐버린 쓰레기 떨거지 양아치 나부랭이들? 한창 재미 보려는 중에 좀 미안하지만.”
회장은 기세 좋게 외친 뒤, 다시 마스크를 닫았다. 그리고 블랙 맨티스는 서부개척시대의 총잡이처럼 자세를 낮춘 뒤, 허리춤에 채워진 두 자루의 기관단총을 뽑았다. 그리고 지면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한 발 한 발 바닥에 박힐 때마다, 그 충격에 사람들의 몸뚱이가 산산조각 나면서 사방으로 튀었다. 총알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사람들은 토마토가 바닥에 떨어진 것 같은 흔적만 남겼다.
시체 파편 중 한 조각이 카메라까지 튀자, 모니터가 새빨갛게 변하면서 분리된 사람의 상반신이 화면 안에 들어왔다. 회장은 그 모습을 보자마자. 먹음직한 회를 한 점 먹은 것처럼 입맛을 다시며, 총성이 묻혀버릴 정도로 크게 광소를 터트렸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나하고도 재미 좀 보자고. 날 뿅 가게 해달란 말이야 이 냄새 나는 부랑자 놈들아!”
무수히 바닥에 떨어지는 탄피 역시, 사방으로 마구 튀면서 벽 앞에 서 있던 개미 떼 같은 부랑자의 몸을 짓이겨댔다.
잠시 후 탄창이 전부 다 비어버렸는지, 기관단총에서는 총구의 불꽃이 순식간에 가라앉고 방아쇠 쪽에서는 빈 격철 소리만 났다.
블랙 맨티스가 새 탄창을 꺼내 장전을 하던 중, 전방에 번개가 연속으로 치는 것 같은 총성과 함께 사방에 불꽃이 번득이며 블랙 맨티스의 장갑판에 불똥이 튀겼다.
블랙 맨티스의 장갑판 곳곳이 찌그러지며, 어깨와 옆구리 등에 구멍이 났다. 블랙 맨티스는 재빨리 본체를 건물 틈에 숨기며 두 자루의 기관단총의 탄창을 갈아 끼웠다.
회장이 블랙 맨티스의 카메라 줌을 올려보니, 여기저기에 누더기를 이어 붙여 만든 것 같은 조잡한 시리즈 H 무리가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회장은 다시 한번 입맛을 다시며 입꼬리를 귀 끝에 닿을 정도로 죽 찢어 올리며 한마디 흘렸다.
“그래 이제야 메인 디시가 오셨군.”
블랙 맨티스는 기관총을 다시 허리춤에 채운 뒤, 바닥에 대충 꽂아둔 프로펠러를 빼 들어 눈 앞의 시리즈 H 무리를 향해 힘껏 날렸다.
뒤이어 뒤로 뛰며 건물 외벽을 박차고 대각선 방향으로 높이 떠올랐다. 까마귀처럼 하늘에 떠 있는 블랙 맨티스는 두 팔을 지상 쪽으로 향한 채, 시리즈 H 무리의 머리 위로 기관단총의 방아쇠를 당겨 무쇠 우박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자유 합중국의 노숙자 구역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오늘도 모든 것이 버려진 쓰레기장. 크리스탈 레이크에서는 화약 냄새와 불타는 냄새. 총알에 짓뭉개지는 사람들의 피비린내. 폭발소리와 비명소리. 타이프라이터를 두들기는 것 같은 총성이 한데 섞인 축제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