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file-00 크리스탈 호수의 살인귀-1
눈이 어지러워질 정도의 다양한 색상의 빛이 밤을 잊은 것처럼 반짝이는 조명. 파리 한 마리 지나갈 틈도 없을 정도로 고층 빌딩이 빽빽하게 늘어선 거대한 도시.
빌딩의 각층마다 불이 훤하게 켜져있어, 겉보기에는 맑은 밤하늘에 별을 수놓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장 높은 건물의 옥상 위의 방송이 그런 분위기를 순식간에 박살 냈다.
아이돌 가수와 인기 영화배우가 홀로그램 모니터로, 24시간을 일 해도 피로를 못 느끼고 ‘기분까지 좋게 만드는 약.’의 광고 영상에 나와 떠들어대고 있었다.
“기업에게 선택 받은 축복이 가득한 여러분. 일하는 게 힘드시죠? 저희 기업에서 새로 발매한 러블리&쥬스 하나면!”
홀로그램 화면 안의 아이돌 가수는 한참 동안 떠들어대다가, 주사를 목덜미에 꽂은 뒤 눈을 위로 치켜뜨며 혀를 죽 빼문 채 다시 대사를 이어갔다.
“이,이,이, 이렇게 즐거운 기…기부부부분을 유지하면서 최대 48시간 동안 식사. 수면 등을 취하지 아아아않고서도 기업의 업무를 전부 다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숩니다. 아~행복해!”
거기까지 말한 뒤, 아이돌 가수는 얼굴을 붉히며 눈을 위로 치켜뜬 채 바닥에 쓰러졌으며. 뒤이어 섹시스타로 이름난 영화배우가 그녀를 안아 들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어딘가 사라지는 것으로 광고가 끝났다.
그 옆에는 예능 프로그램의 신이라고 불리는 코미디언 한 명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를 부랑자나 노숙자들의 습격을 대비한 ‘한 방에 다 죽이는 살충제.’ 등의 대기업의 신약 제품들을 환한 미소로 홍보하고 있었다.
그것도 살충제에 피를 토하면서 죽어가는 부랑자의 실제 영상을 배경으로 두고 있어, 괴리감이 심하게 드는 풍경이었다.
“당신의 집에도 시리즈 H 범죄. 기업에 소속되지 않은 실직자들이 언제 들어올지도 모릅니다. 그 때 일일이 총이나 수류탄으로 쏴죽이면 뒤처리도 더럽고 집이 엉망이 되죠? 이 살충제만 살포하면 집도 이상 없이 해충 같은 부랑자들만 깔끔하게 쓸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코미디언은 살충제가 들어있는 통을 빈민가 골목에 던졌다. 그러자 잠시 후 살충제 통에서 연기가 확 터져 나오면서, 조잡한 컨테이너와 판자 몇 장 붙인 집집마다 돼지 멱을 따는 것 같은 비명소리와 기침 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후. 유리조각을 테이프로 적당히 발라 붙인 창문이 깨지고, 피투성이가 된 부랑자 몇 명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피와 함께 온갖 욕설을 토해내다가, 끝내 반쯤 걸쭉하게 녹은 폐와 심장 등을 뱉어내며 그대로 바닥에 입술을 붙이고 말았다.
코미디언은 부랑자들이 핏덩어리를 토하는 모습을 보며 폭소를 터트렸다. 잠시 후 부랑자들의 시체가 뼈까지 한꺼번에 녹아내리자, 코미디언은 청소기를 들어 그 ‘쓰레기’를 전부 쓸어 담은 뒤 다시 멘트를 이었다.
“죽은 해충은 3분 만에 전부 다 녹아내리니 나머지는 청소기나 비닐봉투로 쓸어 담으면 주변 정리도 확실! 지금 이 살충제 ‘라이어트!’를 구입하시면 청소용 비닐봉투 500장과 청소기가 무료! 지금 전화 주세요!”
그리고 바로 옆의 모니터에서는, 멋진 몸의 운동선수가 사설 소방업체 광고에 나왔다. 부랑자나 부랑자에게 당한 가족의 시체 처리.
사고나 재난 현장 정리 등이 깔끔하다는 것을 자랑하며, 실제 부랑자들을 진압한 후의 현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광고 영상을 보는 지상의 행인들은 하나같이 자극적이고 원색적이며, 토막 난 시체나 여성의 알몸이 그대로 나오는데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광고 영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편으로 밑에 사람들이 떠들고 자동차 경적 소리나 엔진음이 작지 않을 텐데, 가장 높은 건물 옥상에서 흘러나오는 홍보영상 소리에 전부 다 묻혀버렸다. 게다가 심야시간 특유의 싸늘한 어둠마저도, 대기업들이 우후죽순으로 틀어놓는 광고 영상에 덮여 밤인지 낮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한밤중이라는 것도 인식할 수 없는 건물 숲 안에서. 마치 전갈이나 독사 머리 같은 형상의 검은 전투헬기 한 대가, 밀림 같은 건물 틈새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며 움직이고 있었다. 헬기 안에서는 알몸에 코트만 걸친 젊은 여성이, 모니터로 누군가와 대화 중이었다.
그녀의 모습은 알몸에 코트라는 특이한 옷차림 외에도, 허리까지 닿는 길이의 노인 같은 흰 머리카락.
이마 전체에 가로로 길게 나 있는 흉터 자국에, 면도날같이 예리한 오른쪽 눈 밑에 일부러 찍어놓은 것 같은 눈물점 한 쌍. 목 아래에서부터 음부까지 닿는 수술 흔적 같은 가느다란 선이 특히 눈에 띄었다.
특히 약간 근육이 잡힌 단단한 윤곽의 몸을 세로로 나눈 것 같은 이 선 때문에, 그녀는 지금 알몸이 아니라 투명한 바디슈트를 입은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흰머리의 여성은 소파에 드러누워 맥주와 함께 나초 칩이라도 씹는 것 같은 투로, 조종석 중앙의 모니터를 향해 투덜거렸다.
“이봐. 가끔 이런 취미 생활 정도는 봐주면 안 돼?”
“안 됩니다. 회장님께서 이런 식으로 도시 밖에 나가서 일 크게 벌린 게 이번 달에만 몇 번이죠? 지금 시리즈 X의 정비도 애먹고 있는 중이라는 거 모르십니까?”
헬기 안의 모니터에는 세 개의 화면이 떠올라 있었다.하나는 도시의 위쪽의 야경.
다른 하나는 바로 그 아래쪽에서 많은 사람들이 커피나 담배 대신. 피처럼 붉은색의 약물을 목덜미에 주사하며 바쁘게 달려가거나, 옥상 위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광고 화면을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모습.
마지막 하나는 아나운서처럼 단정한 머리에, 농담이나 욕설 같은 건 모른다는 듯 일자로 굳게 다물린 입. 그에 어울리지 않는 큼직한 선글라스를 쓴 흑인 청년이, 그녀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 화면이었다.
“내 병은 잘 알고 있잖아? 방 안에 처박혀서 그놈의 계약서나 월 매출표. 그리고 손익 계산서 같은 걸 보면서 살다가는 머리가 터져 죽을걸!”
흑인 청년은 화면을 더 넓혀, 양옆에 쌓여 있는 업무 파일들을 가리키며 한숨을 내 쉬었다.
“그래서회장님이 업무를 내팽개칠 때마다제가 대신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대체 뭐가 불만이라서, 그렇게 또 시리즈 X를 끌고 빠져나가는 겁니까?”
회장이라 불린 여성은 잠시 뭔가 고민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가볍게 신음소리를 흘렸다. 흑인 청년은 마른 침을 삼키며 그녀가 무슨 대답을 할지 기다렸다. 하지만 회장은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신음소리를 흘리다가. 눈을 번쩍 뜨면서 환한 미소로 대답했다.
“아 미안. 엘름 시티는 전부 다 빠져나갔지만 별로 즐길 게 없어서 잠이 왔거든. 나머지 잔소리는 즐기고 온 뒤에 들어둘 테니까, 지금은 나대신 고생 좀 해줭 보너스는 금일봉에 내 몸으로 추가 지불 해줄게.”
그때 흑인 청년의 표정이 당장이라도 방금 먹은 걸 게워낼 것 같았지만, 억지로 구겨 참는 것처럼 변했다. 그와 동시에 구역질 소리가 흘러나오면서 모니터가 꺼졌다.
“에이 진짜. 이 볼륨 있고 빵빵한 몸이 어디가 싫다고 저런 반응을 보이냐. 기분 나쁘게. 확 일 년 내내 감봉해버릴까?”
회장은 통신 모니터를 끈 다음. 앨름 시티의 풍경을 한 번 더 내려다봤다.
“겉보기에만 활발해 보이고, 더 자세히 내려다보면 전부 다 배 까뒤집고 죽은 물고기밖에 없네. 역시 그게 퍼진 이후에는 도시는 그냥 수족관이야 수족관.”
그렇게 코웃음을 치며 앨름 시티 밖으로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