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타지아◀ 제2부 No.8
2-13. [[ 복수할거야...- 청조 ]]
"그 새끼를.... 죽여버리고 싶어요.."
"아주 과격한 생각을 하고 계시는군요.."
"제가 당했던 만큼, 아니 그보다 더 그 새끼에게 돌려주고 싶어요.."
"충분히 생각해 보신 후에 다시 연락을 주십시오. 순간의 생각으로는 감당
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법이니까요.."
"제가 겪었던 고통을......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고....수치스러웠는
지....모르실 거예요. 그래서.....그런 말도 하실 수 있는 거고...."
"아무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보신 후에 연락을 주십시오. 그럼.."
검사대 위에 눕는다는 것은 참으로 수치스럽고 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검
은 색 비닐레쟈로 씌워진 매트리스의 차가운 감촉도 그렇고, 그 위에 누워
무릎을 곧추 세우고 다리를 벌린 채 의사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도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 수치스러운 것은 그러한 자신을 냉소 섞인 눈으로 비웃듯
바라보는 간호사의 시선이었다.
-난 다 알아... 한심한 여자 같으니라구....너 같은 여자가 여자 망신을 다
시키고 다니는 거잖아....하려면 티를 내지 말던가....한심해....
흡사 그런 눈빛이었다. 얼음처럼 싸늘한 시선. 그것이 더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었다. 직업 특성상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때 유산을 위해 병원을
두세 번 다녔었지만 그때마다 자신의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비참함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었다. 당당하게 검사대 위로 올라가 다리를 벌린 채 의사에
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유부녀들의 정리되지 않은 모습들이, 그때만은 그렇
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런 말....오해는 마십시오. 혹시 강간이라도 당하신 겁니까? 경찰을 불
러드릴 수도 있는데요..."
"...아니에요..."
"질 파열과 항문열상이 꽤 심합니다. 저......남편분과 상의하셔서 좀더 부
드러운 부부생활을 하도록 하세요..."
"............."
자상한 눈빛으로 위로해 주는 의사의 말에 청조는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뻔
했다. 그러나 자신이 복수를 하기 전까지 눈물은 방해만 될 뿐이었다.
-개새끼....복수할거야....
"걷기 불편하시죠? 한 열흘 정도 휴양이 필요합니다. 될 수 있는 한 걷는
것은 삼가시고 마음의 안정을 가지도록 하세요."
".....고맙습니다..."
측은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의사를 뒤로하고 병원 문을 나서며 청조는
다시 한번 입술을 깨물었다.
"꼭 그 남자, 주사장이라고 했나요? 그 남자여야만 합니까? 다른 사람도 가
능합니다만...전문적인 S. M클럽의 종사원이 더 안전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돌리려 애를 쓰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아니요...다른 사람은 필요없어요. 꼭 그 새끼여야만 되요..."
청조의 말투는 단호했다. 병원 검사대 위에서 비참한 모습으로 다리를 벌리
고 누워있던 모습이 다시 떠오르자 다시금 치가 떨렸다.
"상당히 감정이 격앙되어 있군요. 좋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보지요.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만....."
"노력으로는 안돼요. 꼭 되어야만 합니다."
얼핏. 눈에 띄지 않게 작은 동작으로 머리를 옆으로 흔드는 그를 보며 청조
는 다시 한번 못을 박듯 말을 했다.
"최선을 다하지요. 좋은 결과를 기대하십시요.."
그 남자는 여유있는 미소를 남긴 채 떠났다. 그가 떠나자 청조는 겨우 참고
있었던 신음을 흘렸다.
2-14. [[ 쇼핑 그리고 식사 ]]
<<전국적, 국제적인 수사 공조체제를 구축하고도 아무런 실마리를 찾지 못
하고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범인의 세 번째 요구가 전달되었다는
제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희씨의 메니져가 범인의 요구사항을 들어주
어, 이미 돈을 외국으로 송금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초희씨의 메니져 주
변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는 여자 속옷을 고르는데 영신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쉴새없이 매장 안을
돌아다니며 영신에게 어울릴만한 색상과 디자인을 찾으며 종업원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이따금 옷걸이에 걸린 속옷을 들고 와 자신의 몸 위에 대
보기도 했다. 영신은 그렇게 여자 속옷을 고르는 일에 열중해 있는 그를 새
삼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남자가 여자 속옷 매장에 오면 대개는 쭈뼛거리
는데 그에게서는 전혀 그런 빛이 보이지 않았다.
한번은 남편과 백화점에 왔다가 무심코 속옷매장에 들러 속옷을 산 적이 있
었는데 그는 결코 매장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계속 매장 밖에서 쇼
핑백을 들고 어색한 표정으로 왜 이리 오래 걸리느냐는 투의 불만 가득한
눈길을 보내오고 있었다. 그후로는 두 번 다시 남편과 동행해서는 속옷매장
근처도 가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오히려 너무나 자연스럽게 속
옷을 고르는 그의 모습에 자신의 행동이 어색해지고 있었다.
"이거 어때요?.."
한참을 진열대를 뒤적이다가 그가 손에 들고 온 것은 검은 색 G-스트링이었
다.
"전...그런거 못 입어요.."
"왜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전 한번도 그런걸 입어본 적이 없어요..."
"잘됐네요. 그럼 이번에 한번 입어봐요. 아주 섹시할 것 같은데...."
"아이 참....."
망설이는 그녀를 보며 그는 웃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속옷은 보여주기 위해 입는 거래요..."
귓가에 느껴지는 간지러운 그의 입김을 느끼며 영신이 고개를 돌리자 그의
장난기와 기대감이 뒤섞인 눈이 보였다.
-저 눈길.....난 저 눈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거야....
영신은 기대감인지 두려움인지 자신도 알 수 없는 흥분이 솟는 것을 느꼈
다. 결국 영신은 그녀의 뜻대로 무난한 모양의 분홍색 속옷 한 세트와 그
가 끝끝내 고집하며 손에서 놓지 않던 검은 색 G-스트링 한 세트를 같이 사
고야 말았다. 검은 색과 밝은 은회색의 실크 슬립과 함께.
"이제 식사하러 갈까요?"
그는 영신을 랍스터 전문점으로 데려갔다.
"랍스터 좋아해요?"
"아뇨..먹어본 적이 없어요.."
"좋아하게 될 겁니다.."
검은 바닷가재 한 마리를 웨이터가 쟁반에 담아오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삼백 그램입니다."
"좋아요. 반은 버터구이, 반은 칠리로 해줘요.."
메인디쉬가 나오기 전까지 둘은 애피타이져를 먹으며 이런저런 말을 했다.
"전 새우나 가재를 보고 처음엔 빨간 색인지 알았어요. 그런데 커서 새우나
가재를 보니까 검은 색이더라구요. 익으면 빨갛게 변하는데, 아직도 그게
너무 신기해요. 왜 그렇게 되는지 알아요?"
"아니요.."
"이건 제 개인적인 결론인데, 열받아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도 열
받으면 얼굴이 붉어지잖아요.."
"에이,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피이..."
영신은 그의 말에 웃음을 지었다. 언제고 자신을 편하게 해주는 남자였다.
적당한 즐거움도 줄지 아는 사람. 이윽고 메인디쉬가 나오자 그는 군침을
삼키며 손을 물수건으로 닦으며 말했다.
"장담하지만, 랍스터는 포크나 다른 기구를 사용해서 먹는 것보다는 손으로
먹는 게 백배는 맛이 있어요.."
그는 아직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랍스터 한 조각을 손으로 집
어들었다.
"앗 뜨거워..."
손끝을 연신 입김으로 식혀가며 그는 랍스터의 껍질을 벗겨내었다.
"혹시 플래시댄스라는 영화 본적 있어요? 오래된 영환데..."
"네..."
"거기에서 여자 주인공이 남자주인공과 저녁식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죠. 남
자는 사장님이었고. 둘이 랍스터를 먹으러 가는데 여자의 의상이 굉장했었
죠.."
"네. 턱시도를 벗으니까 등이 다 패인, 가만 패인게 아니던가요? 아무튼 손
목과 셔츠 앞자락만 있는 옷을 입고 나와서 웨이터를 놀라게 하죠?"
"네. 그리고 둘이 랍스터를 먹는데, 여자가 발끝으로 남자의 사타구니를 더
듬으며 아주 섹시한 눈빛을 보내며 랍스터를 입에 넣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 그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더라고요..그때는 어려서 그 장면이 뭘 의미하
는지 몰랐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에로틱한 장면이었어요. 그 눈빛이 아
직도 선해요.."
-이 남자..지금 나에게 뭘 원하고 있는 걸까?
"저에게 그런 것은 바라지 마세요..."
"오해하지 말아요. 이상하게도 랍스터를 먹으면 자꾸 그 영화가 생각나서
하는 말이니까.."
자신의 말을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그는 열심히 먹는데 열중했다. 그
가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래요? 얼굴에 뭐 묻었어요?"
자기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영신의 시선을 의식한 그가 고개를 들
며 물어왔다.
"아니요...먹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어서요..."
"그래요? 어떤데요?"
"참 열심히 먹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욕일까요, 아님 칭찬일까요?.."
"칭찬 쪽에 가깝겠지요. 저도 한번 그렇게 먹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
으니까....옆에 있는 사람까지도 식욕이 동하게 하는 모습이예요.."
"듣기 좋군요. 돼지처럼 먹는다는 소리인 것 같기는 한데...하하하.."
"그런 뜻으로 말한거 아니예요..."
영신은 그가 얄밉다는 듯이 가늘게 흘겨보았다.
"그 모습....아주 섹시하다는 거 알고 있어요?.."
"자꾸 놀리시면 저 진짜로 화낼 거예요.."
"아니요..진심입니다.."
그들이 웃고 즐기는 사이 꽤 커 보이던 랍스터 한 마리가 껍질만 남기고는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는 아쉽다는 듯이 그것들을 내려다보며 꼬리지느러
미를 집어들었다.
"사람들은 이 지느러미를 안 먹고 모두 버리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가장 맛있다는 것을 몰라서 그런 거예요. 이곳에 올 때마다 다른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았지만 이건 매번 그냥 버려지더라구요. 이 안에 얼마나 맛있
는 것이 숨어있는지 알고나면 아마 후회할 겁니다.."
그는 지느러미를 벗기는데 열중하면서 영신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자... 아 해봐요.."
그는 아주 작은 고깃점이 들려있는 손을 영신에게 뻗으며 그렇게 말했다.
"..아....."
지느러미 속에서 나온 작은 살점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것이 다른 부위
의 맛과는 달리 독특했다.
"어때요? 아주 색다른 맛이죠?.."
"그러네요..부드럽고 졸깃한 게 아주 맛있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양이 너무 적어요..우리 어머니 표현을 빌리자면 벗겨먹
다가 굶어죽을 판이죠.."
"어머....호호호...재미있으신 분이신가 봐요, 어머니께서?"
"가끔 돌발적인 표현을 하시곤 해요. 언젠가 게를 잔뜩 사와서 그것을 먹을
때 하신 말씀이세요. 게는 몸통보다 다리가 많잖아요? 몸통을 먼저 먹고나
서 잔뜩 남아있는 게다리를 잡수시면서 그러시더라구요.."
그는 다섯 개의 지느러미중 한 개만 자신이 먹고 나머지는 모두 영신에게
주었다. 마지막 살점을 들고 그는 다시 영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미 익숙
해진 그의 동작. 영신은 고개를 그에게 내밀며 입을 벌렸다. 그는 칠리소스
가 잔뜩 묻어있는 자신의 손가락까지 그대로 영신의 입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냥 빨아먹어요.."
영신은 입안에 들어온 그의 손가락에 묻어있는 칠리소스를 빨아먹었다. 검
지손가락이 깨끗해지자 그는 다시 다른 손가락을 영신의 입속으로 넣었다.
영신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두들 식사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그
리고 그들 테이블 앞에 있는 커다란 화분의 넓은 이파리가 영신에게 안도감
을 주고 있었다.
영신은 그의 눈을 보면서 그의 손가락을 빨았다. 혀로 손가락 전체를 감싸
며 세게 빨아보았다. 그는 손가락 끝을 움직이며 영신의 혀와 치아를 쓰다
듬었다. 그의 눈 속에서 작은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 남자는 자신의 것을 입 속으로 넣고싶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자 영신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가 다른 손을 뻗어 영신
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서는 영신이 그의 손가락을
빨 듯이 자신의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손가락에 묻어있는 칠리소스를 다
빨아먹은 후에도 그의 혀는 영신의 손가락을 놔주지 않았다. 교묘하게 움직
이는 그의 혀는 영신의 손가락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그의 입 속에서 자신
의 약지와 새끼손가락 사이를 움직이는 혀를 느꼈을 때 영신은 작은 한숨을
남몰래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의 눈길을 벗어날 수는 없는 몸짓이
었다.
-아...어쩌자는 거야, 여기에서...
영신은 손가락으로 이렇게 큰 흥분과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
다. 자신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가며 자기 몸 어딘가에서 수축이 시작
되었음을 알았다.
"..........."
소리를 입 밖으로 낼 수도 없었다. 자꾸만 벌어지는 입을 다물려 영신은 입
술을 물었다. 그의 혀가 움직이지 못하게 잡으려 손가락에 힘을 주어봤지
만, 미끌거리는 뱀장어처럼 그의 혀는 아주 쉽게 그녀의 손가락 사이를 빠
져 나가버렸다.
-아...나뻐...이 남자...
영신은 자신의 흥분이 곧 위험수위를 넘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영신은 그에
게 자신의 상태를 알리려 눈짓을 했지만 그는 그것을 외면한 채 계속 자신
의 손가락을 빠는데만 열중해 있었다.
-아...못 참겠어...싫어...아...
영신의 표정은 울상이 되었다. 그제서야 그는 영신의 손이 빠져나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영신은 가볍게 주먹을 쥔 채 호흡을 가담듬기 위해 애를 썼
다. 아직도 저 안에서는 수축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
오자 영신은 그를 가볍게 흘겨보았다.
"당신...나쁜 사람이예요..."
"싫은 표정은 아니던걸요.."
"못됐어요...."
그는 대답 대신 윙크와 함께 가볍게 입술을 내밀며 키스사인을 보냈다.
-저 모습....날 미치게 해....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영신에겐 진한 애정으로 다가왔다.
"피이..정말 못됐어..."
영신은 그에게 다시 한번 고운 눈흘김을 보냈다. 이번에도 그가 자신을 섹
시하게 봐주기를 바라면서.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