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타지아◀ 제15화 인터뷰 혹은 납치 (15/28)

                  ▶환타지아◀ 제15화 인터뷰 혹은 납치

     "초희예요. 제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언제쯤 가능할까요? 가급적 빠

     르면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일정이 잡히는 대로 연락을 드리지요. 그럼.."

     

     전화를 끊고나서 초희는 흥분으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얼음물

     을 단숨에 마셨다. 목울대를 타고 뱃속까지 전해지는 시원함이 머리끝

     까지 짜릿했다.

     

     "민승환씨? 어쩌면 다음주 중에 원하시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래요? 언제요?"

     "일정이 잡히는 대로 연락 드리지요. 참 지속기간은 생각해 보셨습니

     까? 주말로 예정하고 있는데 좀더 긴 시간을 원하시면 휴가를 내시지

     요.."

     "년차휴가를 내지요. 그런데 진짜입니까?"

     "신뢰가 가장 중요한 사업이라고 말씀드린 것 같군요. 그럼.."

     

     흥분으로 손이 떨려서일까? 승환은 자꾸만 자판기 동전투입구에서 미

     끄러지는 동전을 줍느라 몇 번이고 허리를 숙여야 했다.

     

     "민대리. 결혼 몇 년찬데 아직도 구멍 하나 못 맞춰?"

     

     승환의 뒤에서 김차장이 느물대며 농담을 건네 왔다. 

     

     "차장님 다음주에 휴가를 좀 냈으면 하는데요.."

     

     겨우 동전투입구에 동전을 넣으며 승환은 김차장에게 말을 했다.

     

     "집에 무슨 일 있나?"

     "아뇨. 제 개인적인 볼일 때문입니다."

     "그러게 하게. 휴가계획서나 내 책상 위에 갖다 놔. 밤에도 구멍 못 

     찾아 헤매지 말고."

     "네. 고맙습니다."

     

     승환은 자판기에서 밀크커피 버튼을 주먹으로 탕하고 쳤다. 그의 얼굴

     에 웃음이 가득했다.

     

     

     일주일 뒤.

     

     "오늘 저녁 인터뷰는 사양하지 마십시오.."

     

     알쏭달쏭한 전화연락을 받고 초희는 의아해 매니져에게 저녁에 스케줄

     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없다는 대답이었다. 

     

     -무슨 뜻이지?

     

     초희는 저녁이나 함께 하자는 동료연기자의 전화를 받고 메니져와 함

     께 장흥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모처럼 스케줄에 여유가 있어 

     부족한 잠이나 보충할까 했었지만 친구의 초청을 받고 자기도 오랜만

     에 남들처럼 웃고 즐기는 것도 좋으리라 여겨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약속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약속장소는 장흥에 있는 작은 호수를 지나

     서 오분쯤 가다가 샛길로 접어들어 가면 있는 곳이었다. 호수 근처에 

     즐비한 라이브 카페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산 속에 폭 파묻혀있는 것처

     럼 아늑하고 정감 넘치는 곳이었다. 통나무로 만든 탁자와 의자로 만

     들어진 야외 식탁의 아래로는 시원한 계곡물이 졸졸졸 흐르고 있었고, 

     해우소란 이름의 작은 건물을 부속 건물로 가지고 있었다.

     

     "아저씨. 저 해우소가 무슨 뜻이에요?"

     "근심을 덜어주는 곳이란 뜻입니다."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터에게 해우소의 뜻을 물으니 그렇게 대답하며 

     묘하게 웃고 있었다.

     

     "무슨 근심이요?"

     "남자나 여자나 하루 몇 번씩 아랫배에 근심이 가득 차잖아요? 그걸 

     풀어주는 곳입니다."

     

     웨이터는 빙긋 웃으며 그렇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 !"

     

     그제서야 초희 일행은 그 말뜻을 알아차리고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재미있다 그치?"

     "그러게 말이야"

     

     웃고 있는 그들에게로 웨이터는 미소 띤 얼굴로 음식을 가져오기 시작

     했다.

     

     "얘 먹자. 맛있겠다"

     "많이 먹어. 술 한잔할까 우리? 아저씨.."

     

     그들이 웃고 떠들며 모처럼 해방된 기분에 젖어 있을 때 레스토랑 한 

     구석에선 그들을 계속 주시하고 있는 시선이 있음을 그들은 몰랐다.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라는거야?

     

     승환은 그의 사무실 근처에 세워져있는 렌트카를 타고 약도에 그려진 

     대로 이곳에 와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자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

     다. 휴가일정을 E-MAIL로 보낸 뒤 나흘 후 사무실 근처에 렌트카와 약

     도가 있을 테니 그곳으로 가라는 연락을 받고 무작정 이곳으로 바람처

     럼 달려왔던 것이었다. 결혼 초만 해도 가끔 주말에 놀러왔던 곳이라 

     찾아오느라 애를 먹지는 않았지만 모든 곳이 너무도 많이 변해 있었

     다. 담배를 꺼내 물고 차에서 내려 다리 운동도 할겸 근처를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건물들은 러브호텔 아니면 레스토랑겸 카

     페들이었다. 카페들이야 그렇다 치고 러브호텔의 주차장 안에는 이미 

     많은 수의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주말도 아닌 평일에.

     

     -이 동네는 순 놀고먹는 놈들만 오는 덴가? 

     

     하긴 주차장 안에 있는 차들의 번호판은 친절한 호텔주인의 배려로 전

     부 가려져 있었다. 세우면 딱 자동차의 번호판 높이로 제작된 가림막

     들이 자동차마다 앞에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짚차들은 높이가 맞지 

     않아서인지 수건으로 가려져 있었고.

     

     -공식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곳이라 이거지?

     

     승환은 러브호텔의 주차장 안을 들여다보며 웃음을 흘렸다. 번호판 가

     림막이 보여주는 뻔한 눈속임이 한심했던 것이다.

     

     -부부가 따로 애인이랑 놀러와서도 저렇게 해놓으면 모를까? 

     

     승환은 짖궂은 상상을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피우고 있던 담배를 손

     가락으로 멀리 튕겨내며 승환은 시계를 보았다.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조바심이 불러내는 짜증이 일었다.

     

     

     

     한 남자와 여자가 초희들이 앉아있는 곳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남자는 

     외국인으로 보였다.

     

     "실례합니다. 초희씨."

     

     초희는 갑자기 누가 자기를 부르자 고개를 돌렸다. 모르는 얼굴들.

     

     "누구시죠?"

     "이쪽은 제 친구 스트라이드라고 하는데요 여기서 초희씨를 보더니 꼭 

     악수라도 하고 싶다고 해서요. 열렬한 팬이래요."

     "Hi miss. Chohee."

     

     스트라이드라는 외국인은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겠다는 듯 초희의 

     손을 덥석 잡고는 놓으려 하지 않고 있었다. 연신 두손으로 초희의 손

     을 주무르며 뭐라뭐라 떠들어대고 있었다. 초희는 그의 손에서 자기 

     손을 빼고 싶었지만 워낙 그가 세게 잡고 있어서 뺄 수가 없었다. 외

     국인의 호들갑으로 레스토랑의 손님들이 전부 자기를 쳐다보고 있어서 

     불쾌한 표정을 지을 수도 없었다. 

     

     "Thank you, thank you.."

     

     그저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할 수밖에. 

     

     메니져가 웃으며 스트라이드의 여자 친구를 바라보자 그녀가 외국인에

     게 몇 마디 건네 보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초희의 손을 계속 주무르

     는 그를 보고는 이쪽을 향해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초희

     는 계속 웃고 있기도 난처했다. 소리라도 빽 질러보고 싶었지만 남들

     의 이목도 있고해서 그러지도 못하고, 입은 웃고 있었지만 이 불쾌한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어 울고싶은 심정이었다.

     

     드디어 매니져가 스트라이드의 팔을 잡고 NO, NO 하며 밖으로 끌고 나

     갔다. 하지만 이내 달려와 초희에게 쉴새없이 I love you 어쩌구저쩌

     구 떠들어대는 통에 매니져도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도 

     화를 내지는 못하고 웃는 얼굴로 계속 외국인을 끌어내고. 그러기를 

     한동안. 드디어 매니져가 소리를 지르자 머쓱해하는 외국인의 등뒤에

     서 웃음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불쑥 튀어나왔다.

     

     "안녕하세요? W-NET입니다. 놀라셨죠?"

     

     몰래카메라였다. 코미디 프로에서 인기를 얻더니 이젠 아무 프로그램

     에서나 그걸 모방하고 있었다. 그리고 W-NET이라니. 케이블 티브이에

     서까지 이러는 줄은 몰랐다. 초희는 모처럼만의 휴식이 방해를 받은 

     것에 짜증이 났다. 하지만..

     

     -혹시?...

     

     매니져 역시 갑작스런 그들의 출현에 당혹해하고 있었다. 외국인과 그

     의 여자친구는 옆에서 웃고 있고, 레스토랑 안의 손님들도 모두 호기

     심 어린 눈초리로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W-NET의 깜짝 인터뷰입니다. 십분만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호수로 

     가서 촬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초희는 어떤 예감으로 만류하는 매니져를 따돌리고 그들을 따라 나섰

     다.

     

     "금방 갔다 올께요. 식사마저 하고 계세요."

     

     

     여자가 남자들과 나타나 그의 차에 오르자 승환은 약도에 그려진 나머

     지 3킬로미터의 여행을 계속했다. 숲으로 둘러싸인 공터로 들어가자 

     커다란 콘테이너 트럭이 기다리고 있었다. 승환은 조심스럽게 콘테이

     너 속으로 차를 몰았다.

     

     승환의 차가 콘테이너 안에 완전히 들어가자 육중한 콘테이너 문이 닫

     히고 거친 트럭의 엔진소리와 함께 이미 어두워진 밤 속으로 트럭이 

     서서히 움직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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