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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지아◀ 제10화 [몽환] (10/28)

                   ▶환타지아◀ 제10화 [몽환]

       그녀는 오늘 검은 색 블레이져와 검정 스커트를 입고 속에는 흰색 

      블라우스를 받쳐입고 왔다. 손에 들고 온 흰색과 빨간 색 백묵 세 

      개를 흑판 밑에 가지런히 놓고는 아무 말없이 책을 펴들었다. 웬일

      인지 교실에는 그녀와 나 단 둘만이 있었다.

      

       커다란 창문에선 얇은 아이보리색 커튼에 한풀 걸러진 밝은 햇살

      이 부드러운 바람에 실려 살랑거리며 교실 안 쪽으로 연한 그림자

      를 드리우고 있었다. 마치 포그필터를 끼운 카메라로 바라보는 것

      처럼 사물은 저마다의 실루엣을 드리우고, 그 한가운데 제일 부드

      러운 빛에 둘러싸인 채 그녀가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온화한 표정이었지만 어딘가 슬픔의 그림자가 숨어

      있는 모습이었고, 그 슬픔의 그림자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신비롭게 

      만들어주는 안개 같았다. 

      

       그녀의 검지와 중지 손가락 사이에는 백묵이 끼워져 있었는데 가

      끔씩 그녀는 엄지로 그 끝을 톡톡 건드려서 백묵이 까딱까딱 거렸

      다. 아주 무심하게 습관적으로 백묵 끝을 건드리는 그녀의 표정은, 

      그러나 그 무심한 습관과는 달리 엷은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

      것은 그대로 나의 어둠이 되어갔다.

      

       언제부터일까? 그녀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나에게 의미로 다가

      오게 된 것은. 언젠가 그녀의 스타킹에 허벅지 뒤쪽으로 작은 구멍

      이 하나 생긴 것을 발견했을 때 그녀의 표정 역시 어딘가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표정이었었다. 

      

       그날 난 밤잠을 설쳤었다. 그녀의 아파트 불빛이 새벽까지 꺼지지 

      않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녀의 입은 쉴새없이 무언가 말을 하

      고 있었지만 나의 귀에는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오늘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녀가 읽

      던 책에서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본다. 깊은 눈. 그 깊은 곳 어디선

      가 찰랑이는 물결이 보인다.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는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여 책을 들여다본다. 곧은 이마와 가늘게 

      그어진 눈썹이 처연하다. 어느 순간 그녀의 양미간이 좁혀진다. 화

      가 난 것일까? 아니면....혹 그녀는 섹스를 하면서도 지금처럼 양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쓸까? 그녀의 고개가 다시 들리며 나에게 시

      선이 쏘아진다. 평소에는 고개를 돌렸겠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그녀

      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받아준다. 오히려 나의 시선을 받은 그녀가 

      다시 고개를 숙인다. 이상한 일이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백묵이 더욱 심하게 까딱거린다. 그녀의 

      신경이 날카로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신경이 날카로운 날이

      면 나도 덩달아 불안했는데 오늘은 그렇지가 않다. 마치 그녀를 화

      면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녀의 양미간이 다시 좁아진다. 그 사이에 세로로 주름살 두 개

      가 깊게 그어지는 것이 보인다. 그녀는 찌푸린 표정도 아름답다. 

      중국의 서시도 그랬다지, 아마? 장안의 여자들이 위장병 때문에 찌

      푸린 그녀의 얼굴을 흉내냈을 정도로...

      

       갑자기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백묵을 탁 소리가 나게 교탁 위에 

      내려놨다. 교탁에 부딪히는 서슬에 몇 조각이 났는지 그녀의 손바

      닥이 들리자 그중 한 조각이 또르르 교탁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것

      이 보였다. 

      

       그녀는 한숨을 크게 한 번 내쉬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강하게 바

      라보았다. 지금 그녀의 눈 속에서 일렁이는 것이 불길일까? 그녀는 

      교탁을 한 손으로 짚고 서서 나를 한참 바라보더니 또각또각 나에

      게로 걸어왔다. 어느새 단추를 풀었는지 블레이져 자락이 펄럭일 

      때마다 속에 받쳐입은 하얀 블라우스가 그녀의 스커트 속으로 들어

      가 있는 경계선의 주름이 보였다.

      

       내 앞까지 다가온 그녀는 블레이져 자락을 젖히고 왼손을 허리에 

      척 갖다대고 오른손은 이마에 댄 채 나를 내려보았다. 그녀는 지금 

      혼란에 빠져있는 것 같다.

      

      철썩-

      

       갑자기 그녀는 이마를 짚고 있던 오른손을 휘둘러 내 뺨에서 둔탁

      한 소리가 나게 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고개

      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하고 입술은 우

      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씰룩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보였다.

      

       그녀의 두 손이 내려와 내 머리를 감싸더니 그녀의 가슴에 안았

      다. 볼록한 그녀의 가슴이 얼굴에 느껴졌다. 난 손을 올려 그녀의 

      가슴을 만졌다. 따뜻하고 평화로운 기분이었다. 블라우스 단추를 

      열고 브레이지어를 들추니 꽂꽂하게 서있는 유두가 보였다. 유두를 

      입에 넣고 빨자  한없이 평화로웠다. 

      

      "아기 같아. 귀여운 아기..."

      

      그녀는 나직하게 말을 하며 내 머리를 안은 팔에 점점 더 힘을 주

      었다. 그녀를 전부 내 안에 빨아들이고 싶어 가슴을 더욱 세게 빨

      았다. 아아....

      

      -뭘까? 저 안에서부터 밀려오는 이 해일 같은 느낌은....

      

      

      그의 머리를 감싸안은 그녀의 팔이 부르르 떨리는 순간 상우는 눈

      을 번쩍 떴다. 그의 손에 가득하던 가슴과 그의 머리를 강하게 끌

      어안던 팔이 없어졌다는 허전함을 느낀 순간 상우는 그것이 꿈이었

      음을 깨달았다. 기분 나쁜 차가운 축축함이 사타구니에 느껴졌다. 

      팬티 속에 손을 넣어보자 손끝에 진득한 정액이 묻어져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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