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타지아◀ 제6화 그녀의 밤 2 - 초희
"수고하셨습나다, 감독님.."
"밤새 고생했어, 가서 좀 쉬어.."
장흥에 있는 영화세트장을 벗어나며 초희는 뒷좌석에 길게 몸을 뉘였다.
어젯밤부터 시작된 촬영이 예상보다 늦게 끝나는 바람에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세
트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국도로 나서기 전 조그만 저수지 주변에 있는 카페로
놀러 나온 젊은 아베크족들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그녀도 그들처럼 어울리고 싶
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잠이 들었다.
장흥에서 곧장 이동한 정동 스튜디오에서 미니시리즈의 촬영까지 끝내고 초희가
청담동 집으로 들어온 것은 새벽 세 시였다. 물먹은 솜처럼 축축 쳐지는 몸을 이
끌고 현관문을 열자 매니저인 현우가 활짝 웃으며 그녀를 맞아준다.
"즐거운 뉴스 두 가지. 어느것 먼저 들을래?"
현우에게 즐거운 뉴스란 또 새로운 일거리가 들어왔음을 뜻하는 것이다.
초희는 왈칵 짜증이 난다. 그렇지 않아도 잠잘 시간도 부족한 판에...
"홍콩 영화사에서 초희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한 편 찍고 싶다는 연락이 왔어. 조
건도 아주 좋고. 어때?"
"나 지금 굉장히 피곤해."
초희의 심드렁한 대답에도 아랑곳 않고 그는 계속 말을 했다.
"지난번 계약건 있지? 영화 열 편 찍기로 한거, 드디어 내일 계약금으로 10억이
들어온다. 어때 너무 좋지? 그렇지?"
"................"
초희는 그의 얼굴을 한 대 갈겨주고 싶었다.
"피곤해, 나 잘 꺼야...."
방으로 들어온 초희는 깨끗하게 펼쳐져 있는 침대를 보며 그대로 그 위로 쓰러지
고 싶었지만 참았다. 지금 그 위에 누우면 아침까지 깨어날 자신이 없었기 때문
이다.
훌훌 옷을 벗어 부치고 뜨겁게 쏟아지는 샤워기 아래에서 벽에 기대어 섰다. 따
뜻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가자 졸음이 쏟아졌다.
-이대로 쓰러지고 싶어....
젖은 머리도 말리지 않고 침대 위로 쓰러지자 담요를 들어 덮는 것조차 힘겨웠
다. 그래도 자동차 뒷좌석이나 분장대기실 구석의 소파에서 쪼그리고 자는 것보
다는 나았다. 스물스물 쏟아지는 잠 속으로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우는 담요를 벗기고 알몸으로 잠들어있는 그녀의 가슴을 만지며 키스를 해왔
다.
"피곤해, 다음에...."
그러나 그녀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그의 혀와 손길은 그녀의 몸 전체로 뱀처럼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제발 나 너무 피곤하단 말야..."
초희는 현우의 가슴을 손으로 밀었지만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손가락 사이를 혀
로 핥아대며 그녀의 몸을 깨우려 했다.
"싫어.."
"오랫동안 못했잖아. 잠깐만.."
철없던 십대 때 처음 현우의 꼬임에 넘어가 관계를 가진 뒤 둘은 내연의 관계를
지속시켜왔다. 물론 현우는 틈만 나면 둘이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자고 떠벌렸지
만 그것은 지금 초희가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입 때문이었다.
여배우와 매니저와의 내연관계. 그것은 초희에게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었다.
매니저로서의 현우의 능력은 뛰어났지만 가끔 초희는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번의 실신 이후 그녀는 더욱 자주 그 생각을 떠올렸다.
현우의 노력으로 초희의 몸에서도 서서히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쏟아지는
잠을 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온몸으로 퍼져가는 나른한 열기 때문에 더
빨리 잠에 취해버리는 것 같았다.
초희는 잠에 취해 현우의 중량감이 몸을 누르는 것을 느꼈다. 익숙한 느낌의 몸
이 그녀의 몸 속으로 들락거리는 것을 느끼며, 언젠가 신문에서 보았던 어는 종
군위안부의 기사를 떠올렸다. 섹스에 미친 일본병사들을 상대하느라 섹스를 하면
서 잠도 자고, 짐승처럼 헉헉거리는 병사의 몸 아래 깔려 밥도 먹었다는 가슴 아
팠던 이야기.
-마치 창녀가 된 것 같아......
눈물 한 방울이 점점 흐릿해지는 초희의 의식 한가운데서 그녀의 얼굴 위로 흘러
나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