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다분교 여교사 K 2
[......아,....예..]
과부의 집에 들어서자 열 대여섯쯤 되 보이는 녀석이 선생들을 보자 얼른 쪽문으로 들어갔다.
[허,녀석하구는...]
[누구예요.]
[우리 학교 6학년 길선입니다. 저렇게 쑥기가 없어서야...]
k는 소년이 숨어 버린 쪽문쪽을 쳐다 보았다. 소년이 이쪽을 보다 k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숨
었다.후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저, 아짐씨 계시오잉?]
예의 몸빼바지를 입은 아낙이 부엌에서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왔다. 참 인상이 좋은 여자라
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집은 허름한 초가집이었지만, 주인의 인상을 보니 생활하기는 편하겠
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따, 오셨소. 이런 얘기씨가 어떠께 이런 데서 살꼬... 걱정스럽네.]
아낙이 k를 보며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괜챦아요, 사람사는게 다 그렇지요]
[얼른 들어 가시요]
아낙의 방은 정말 말대로 초라했다. 신문지로 대충 발라놓은 곰팡이내 나는 방에서 정말 k는
살기가 쉽지마는 않을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따 길선이 이놈은 어디갔을꼬. 선상님께 인사라도 할것이지. 아까가진 있었는디....]
두 사람이 방에 들어서는 것을 보며 아낙이 걸레를 들었다.방을 둘러보며 k가 쭈빗쭈빗 서있
자 박 선생이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어디에 앉을까 고민스러울 정도로 방은 앉기도 민망했
다.
[여그가 선상님 방이니 좀 보시요]
바로 옆방에서 아낙이 소리를 질렀다. 박선생이 k의 가방을 들고 앞장섰다. k도 박선생을 따
라가며 비교적 정갈한 마당을 훑어보았다. 아까 그 소년이 쭈빗거리며 쳐다보다 기둥뒤로 숨
었다.귀여운 녀석이군. k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돌았다.
k의 방도 아낙의 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정갈한 도회풍의 도배가 인상적이었다.여의
곰팡이내도 도배를 해서 그런지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좁은대로 있을만했다.
[박선생님이 부랴부랴 도배했지라우. 요런 촌에서 요런 요상스런 도배는 처음 본당께]
아낙이 수선스럽게 방을 훔치며 k를 찔끔거리며 쳐다보았다.
[됐어여. 아주머니 깨끗한데요.]
k가 어지러워 아줌마를 제지했다. 그제서야 아낙이 걸레를 놓으며 히벌레 웃었다.
[근데 아주머니. 주인 아저씨는 안 계신가요?...]
[글씨유.이미 저 세상사람이 됐을구만요. 바다 나갔다 안 들어온지 오래됐응께... 시체도 못
찾아 헛 장사가 벌써 몇번인디....]
아낙이 눈물을 훔쳤다. k는 괜히 물어 보았다 싶었다.민망하여 밖으로 나갔다.
외딴섬의 밤은 너무도 어두었다. 전기가 아직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런 외딴섬에서 k는 난생처
음 호롱불을 맞으며 방에 앉아 있었다. 갑자기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루도 지나지 않아 가족이 눈앞에 아른 거렸다.그래 여기서 일년만 쉬었다 가자...k는 또다시
자신을 다잡았다.그때 문앞에서 무언가 아른거렸다.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바로 옆이
아낙의 방이었지만, 이런 외딴오지에서 의지할 것은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야]
문앞의 형상이 후다닥 거렸다. 얼른 방문을 열자 소년이 마당에 널부러졌다.어이없었다. 소
년이 부끄러운지 마당에서 일어나며 쭈빗거렸다.
[너, 이리와봐...]
k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소년이 어거주춤 k 앞에 섰다.
[너 몇살이니...]
[열 다섯살인디여...]
[그럼 나이가 국민학생이 아닌데.....]
[여그는 다 그래요... 학교가 몇년씩 늦는디요.....]
[그렇구나...]
k는 소년의 머리칼을 매만져 주었다. 소년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였다.
[선상님, 우리 선상님이 돼나요?]
[글쎄.선생님도 궁금한데...선생님이 됐음 좋겠니?]
[......예]
길선이 쑥스럽게 말하고는 고개를 숙였다.길선을 보며 섬아이들이 궁금했다.길선처럼 순수한
아이들일까? 어찌되었건 자신이 맡아야 할 아이들일 것이다. 학교가 몇년씩 늦는다는 길선이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분명 도시의 국민학생과는 다른 억쎈 아이들일 것이다. 아니 벌써
중학생의 나이를 먹어버린 아이들을 국민학생이라고 해도 되는 것일까? 아뭏튼 내일 학교에
가보면 알 것이다.
k는 난생 처음 집을 떠나 잠을 청했다. 정말 단 한번도 외박을 해 보지 않은 k였다.너무나 완
고한 집안 분위기를 떠나 그 시절 여인네의 외박이 어디 상상이나 될일인가? 대학을 나온 그
녀였지만, 외박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너무나 여성에게 엄격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 누
구나 인정하는 외박임에도 k는 하나도 즐겁지가 않았다. 내일은 새로운 섬생활이 시작된다.
답답한 설레임이 k를 감쌌다.
다음날 아침 k는아낙이 차려준 아침을 들고 방문을 나섰다. 이런 섬에서의 식사치고는 비교적
깔끔한 아낙의 음식솜씨가 좋았다. 방을 나서자 박선생이 마당에 서 있다 히멀건 미소를 얼굴
가득 안고서 그녀를 맞아주었다.
[어마 선생님이 벌써 나와계신줄 알았으면 먼저 나오는건데요.]
[아닙니다. 늦지도 않았는데, 천천히 드시라고 인기척을 안했습니다. 자, 가시지요.]
[예, 선생님 아침은....]
[홀아비 생활 십수년입니다. 왠만한 여자보다 더 나을걸요,하하하]
박선생의 너털웃음이 k에게 시원하게 다가왔다. k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학교일도 있고 해서 4학년까지 맡을테니, 선생님이 나머지를 맡으시면 어떨까요?]
앞만보고 가는 k에게 박선생이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어린 아이들보다야 대가리 큰애들을 다루기가 쉽겠지요?]
[예, 박선생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반은 어떻게 나누어져 있나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한 반이구요, 나머지가 한반입니다.아무래도 학습 난이도가 비슷한 학
년끼리 나누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두 학급을 왔다갔다 하면서 수업 하셨겠네요?]
[그렇지요, 어떤땐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하하하....]
[아,예. 힘드셨겠어요...]
[어쩌겠습니까? 아무도 부임을 할려 하지 않으니 나라도 그렇게 할수밖에 없었지요.]
[근데, 선생님은 어떻게 이 섬까지 오셨어요?]
[글쎄요....오지의 아이들에 대한 스승으로서의 의무감이 아닐까요. 제가 아니면 이 아이들은
목포까지 나가 공부해야 되는데, 그 학비를 감당할 학부형이 이섬에는 없을겁니다. 그럼 이
아이들은 영원히 글씨도 못읽는 사람이 되겠지요. 도시에서 편안히 아이들의 존경을 받으며
선생질해도 좋지만, 그런것 보단 이런데서 정말 교육의 참 모습을 실천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는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젊은 시절의 그런 객기가 이렇듯 비참한 노총각으로 남았지만요,
하하하]
박선생의 말에 괜히 k 의 얼굴이 민망했다. 단순히 연애의 도피처로 이 섬을 선택한 자신은
어쩌면 교사의 길에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았다.
박선생이 학교에 가자마자 종을 쳤다.
아이들이 우르르 운동장으로 나왔다.그게 이 학교의 법칙인가 보았다. 해맑은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k의 얼굴에 미소를 번지게 했다. 조금만 아이부터 이미 어른의 키에 이르는 큰애까지
다양한 크기의 아이들이 우르르 운동장으로 몰려갔다. 한 20여명쯤 될까? 아이들은 나름대로
의 질서 대로 줄을 서며 계속 자기들 끼리 지껄였다. k에게 눈을 고정한채 떠드는 것으로 보
아 아마도 아이들에게 그녀는 크나큰 흥미거리일 것이다.[자, 여러분 여길 주목해 보세요.]
박선생이 소리치자 아이들이 일제히 박선생을 보았다.
[여기 k선생님을 소개할께요. k선생님은 광주 k대학을 나와 T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시다
가 이렇듯 뜻한바가 있어 우리 신안초등학교 홍다 분교에 부임하셨습니다. 여러분 k선생님을
박수로 환영합시다.]
아이들이 와 하며 일제히 박수를 쳤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그녀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여러분 만나서 반가와요. 잘 지내도록 해요.]
[자, 그럼 선생님 5,6학년 아이들 인솔 부탁하겠습니다. 바로 들어가자 마자 왼편이 5,6학년
교실입니다.]
k가 제법 큰애들에게 손짓하자 아이들이 그녀를 일제히 쳐다보았다.
그 사이 낯익은 길선의 모습도 보였다. k가 길선을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길선이 얼굴이
벌게져서 머리를 숙였다. 아이들은 비교적 나이가 많아서인지 그리 시끄럽지 않게 k를 따라
교실에 들어왔다. 이미 k키보다 큰 애들도 몇있었다. 교단에 서자 8명쯤이나 될까 한 아이들
이 자기 자리에 각자 앉았다. 계집애가 셋이고 다섯은 사내아이들 이었다.교단에서 보니 제일
뒷자리에 유달리 크고 제법 근육이 발달한 사내애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그 아이에 비하면
길선은 아직 어린 아이였다.그 아이는 아직 사춘기의 풋내나는 얼굴이었지만, 이미 몸집은 어
른의 그것처럼 보였다.
[자,이름부터 부르겠어요.... 박영식]
까부잡잡하고 비교적 깡마른 아이가 앞에서 대답했다.
[김 길선]
영식 옆에서 수줍은듯 길선이 에 하고 조그마하게 소리냈다. k가 가벼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최 애숙]
시골아이치고는 얼굴이 깨끗하고 예쁘장한 여자 아이가 책을 보다 대답했다.
[김 순이]
역시 통통한 몸집의 여자아이가 대답했다. 여자아이들은 벌써 철이 든듯 조용히 앉아있었다.
[채 말봉]
이름이 이상했지만, 웃음을 참으며 k가 불렀다. 가운데 몸집이 크고 떡대가 비교적 발달한 아
이가 변성된 목소리로 대답했다.아이는 정확히 k의 눈을 주시하며 한치의 움직임도 없이 팔짱
을 낀 도발적인 자세로 앉아 있었다. 눈이 꽤 매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충석]
말봉이 옆에서 삐딱하게 앉아 있던 아이가 예하고 크게 소리쳤다. 조용한 분위기를 깨는 충석
의 큰 목소리에 다른아이들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석 충이]
채 말봉 오른쪽에 앉아 있던 녀석이 코를 후비다가 대답했다. 비교적 지저분한 아이라는 생각
이 들었다.
[박 말순]
뒷자리에서 한 여자가 모기만한 소리를 냈다. 그 아이는 아이라고 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나이
들어보였다.가슴도 비교적 발달한게 어른이었다.
[박 말순, 몇살이에요?]
[저.....]
[부끄러워 말고 말해 봐요.배우는 건 부끄러운게 아니에요. 오히려 칭찬 받을 일입니다.]
[열 아홉살이래요.]
지저분한 석충이가 촐싹거리며 말 했다.
[그러는 학생은 몇살이에요?]
[열 세살 인데요. 충석이는 열 네살. 말봉이 형은 열 여섯인데요...]
[석충이 학생이 대변인이군요.]
아이들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자, 좋아요. 음 길선이 나이는 알고....박영식부터 나이 얘기 하기예요. 선생님이 알아야 하
니까 이름 나이 이렇게 말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