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죽림비궁 2
2.
양세현은 초산사효 앞에서 재주를 부리는 강아지처럼 쪼그리고 앉아 무릎을 벌려 보지를 보이며 두 손을어깨 높이로 들어 올리고 혀를 내밀고 헉헉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셋째가 말했다.
“요 암퇘지가 밥이 먹고 싶어서 강아지 흉내를 내는데 이만 먹게 해 줄까요?”
넷째도 말했다.
“역시 돼지는 먹을 것 앞에서는 정신을 못 차리는군요. 둘째 형 이만 먹게 해주지요?”
둘째가 양세현을 향해 말했다.
“좋아 먹게 해 주마, 대신 한 그릇을 먹을 때마다 가랑이를 벌리고 여러 손님들께 보지를 보이면서 재롱을 피워야 한다, 알겠느냐?”
둘째의 허락이 떨어지자 양세현은 급히 제일 가까운 그릇 앞으로달려가 그릇에 머리를 처박고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는 음식을 먹으면서 엉덩이를 최대한 치켜 올리고 가랑이를 쫙 벌린 채 엉덩이를 좌우로 실룩실룩 움직였다. 객잔 복도에 서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첫 번째 그릇의 음식을 다 먹고 나자 양세현은 몸을 빙글빙글 돌려 객잔의 손님들 모두에게 엉덩이를 보이며 소리쳤다.
“암퇘지가 보지를 벌려요. 모두 암퇘지 보지를 봐주세요.”
그리고는 그동안 훈련받은 대로 보지를 벌리니 주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저것 봐, 정말 보지가 저렇게 벌어져.”
“어이쿠 정말 저렇게 벌어지네.”
“이젠 완전히 진짜 돼지가 다 됐어.”
양세현은 다시 엎드려 두 번째 그릇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 그릇을 비울 때마다 빙 둘러서 자신을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지를 벌려서 구경시켰다. 양세현 스스로 생각해도 첫날보다는 보지가 훨씬 많이 벌어진다고 느꼈다.
“저기 초산사응 대협들이시죠? 이야기를 좀 할 수 있을까요?”
느닷없이 들려온 여인들의 음성에 초산사효가 모두 소리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모두 네명의 손에 장검을 든 무림 여인 네 명이 있었다. 모두 스물네댓 살 정도로 보이는 여인들로 양세현처럼사람을 압도하는 그런 미모는 아닐지라도 상당한 미인들이었다.
초산사효의 첫째와 여인들을 보면서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양세현이 마당에서 벌이는 짓은 남자들조차 웬만한 배짱이 없이는 구경하기 어려운 장면으로 여인들은 자기 방의 창문으로 내다보는 것은 몰라도 이렇게 대놓고 얼굴을 내밀고 구경하는 건 몸을 파는 청루의 기녀들 정도가 아니라면 생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무림인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자리에서 여자가 배짱 좋게 얼굴을 들이밀고 구경하고 있다가 자신들에게 말을 걸고 있으니 눈앞의 여인들에게선 뭔가 남다른 점이 있는 듯싶었다.
첫째가 입을 열었다.
“여협들은 뉘시오, 또 우리들에게 무슨 용무가 있으신 거요?”
여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저희들은 서천(西川) 죽림비궁의 제자들입니다. 혹시 죽림비궁의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초산사효의 둘째, 셋째, 넷째는 서천 죽림비궁이라는 이름에 어리둥절해 했지만 강호경험이 풍부한 첫째만큼은 다행히 이름을 알고 있었다.
아우들이 혹시 실수라고 할까봐 첫째가 서둘러 말했다.
“서천 죽림비궁의 이름은 오래전 들었소. 하지만 강호에 발길을 끊은 지 제법 오래라고 들었는데 웬일로 여기까지 오신 것이오?”
여인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저희가 강호에 발길을 끊은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옛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약속된 기한이 지났으니 다시 나온 것이지요. 그리고 저기 그 약속과 관련된 사람이 있어서 흥미가 생긴 것이고요.”
여인이 눈짓으로 그릇에 머리를 박고 음식을 먹고있는 양세현을 가리켰다.
첫째도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 암퇘지와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십 년 전 본궁과 저 여자 사이에 약간의 다툼이 있어 본문의 검진을 저 여자가 단신으로 깨뜨린다면 십 년간 본궁이 강호에 발길을 끊겠다는 약속을 했지요. 그리고 저 여자가 본문의 검진을 단신으로 깨뜨리는 바람에 본문이 지난 십 년간 강호로 나올 수 없었던 거고요. 그런데 십 년의 약속을 지키고 새로 강호로 나와 보니 저 여자가 저런 모습으로 있네요.”
첫째는 자신이 예전에 들었던 죽림비궁에 대한 소문을 떠올려보았다. 죽림비궁은 사천성 서남쪽에 있는 문파로 문도 전원이 여인으로 구성된 문파였다. 검술과 특이한 약술이나 독과 암기 등이 거의 사천당문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사천당문이 십이혈마의 난리 때 거의 멸문에 가까운 꼴을 당했으니 십이혈마에게 거의 피해를 입지 않은 죽림비궁이 실제로 이 부분에서는 강호제일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런데 진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조금 소문이 안 좋아서 여자들이 남자들과 조금 방자하게 놀아나는 편이고 문파에서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문도들을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때문에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고 특별히 사악한 일을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강호에서는 정파로 취급받지는 못하고 사파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었다.
지난 십여 년간 전혀 소식을 들을 수 없어 강호상에 이런저런 소문들이 돌아다녔는데 뜻밖에 양세현에게 패해 십 년간 봉문했다는 것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일이었다.
첫째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어 약간 감탄했는데 여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
“본궁의 궁주께서 그때의 패배로 울화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본궁은 절치부심 그때의 원한을 갚고자 십 년간이나 칼을 갈았는데 그때의 원인을 제공했던 여자가 지금 저런 모습일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첫째는 조금 우습다고 생각했다. 보아하니 이 여자들은 십 년 동안이나 양세현과 겨루기 위해 수련을 했을 터인데 정작 양세현이 지금 저렇게 사람들 앞에서 완전히 발가벗은 알몸으로 돼지처럼 먹이나 처먹는 처지가 되어 있으니 정말 기묘한 상황이었다.
첫째가 감히 웃음을 띠지는 못하고 말했다.
“우리에게 뭔가 할 말이 있으신 듯싶은데 무엇이요? 설마 저 모양이 된 암퇘지와 무공을 겨루겠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여인이 한숨을 쉬었다.
“십 년간의 노력이 헛된 것이었다 싶어 허탈하긴 하지만 아무렴 저런 것과어떻게 싸우겠습니까. 다만 길에서 이야기를 들으니 저 여자가 혈신문의 소유가 되었다고 하던데 사실인지요?”
첫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오. 저 물건은 이제 혈신문의 소유의 암퇘지일 뿐이오.”
“대협들이 혈신문의 협력자라는 얘기도 사실인가요?”
“그렇소 우리들은 혈신문의협력자로서 혈신문주가 우리에게 저 암퇘지의 조련을 위임하여 지금 저렇게 조련 중인 거라오.”
“그럼 우리를 혈신문주에게 소개시켜 줄 수도 있겠군요. 저희는 혈신문주와 만나 꼭 상의할 일이 있어서요.”
“그럴 수 있긴 하오만 우리가 왜 여협들을 위해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소.”
여인이 가슴 부위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야 당연한 말씀이죠. 그러니 저희들도 대협들께 아무런 대가없이 부탁을 드리진 않겠어요.”
그러면서 여인은 첫째를 향해 야릇한 눈웃음을 지었다.
첫째는 여인의 눈웃음과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동작을 보자 여인들이 만약 초산사효가 혈신문주를 소개시켜주면 몸을 주겠다는 약속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예전에 들었던 죽림비궁에 대한 소문이 사실인 듯싶었다.
첫째가 껄껄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협들을 혈신문주께 소개시켜 드리리다.”
그리고 약간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혈신문은 굉장히 무서운 곳이고 혈신문주도 무서운 사람이라 그들에게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우리가 책임을 질 수는 없다는 것은 미리 알려드리겠소.”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어요, 대협들께 책임을 묻는 일은 결코 없을 거라고 약속드리지요.”
첫째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약속하는 뜻으로 저 암퇘지를 여러 분께맡겨보고자 하는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시오?”
여인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감히 청하지는 못해도 바라던 바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함부로 다뤄도 괜찮을까요?”
첫째가 웃으며 말했다.
“저 암퇘지는 혈신문의 대법을 받은 몸이라 칼로 자르거나 하지 않은 한 전혀 상처가 몸에 남지 않는다오. 저 암퇘지의 볼기를 한 번 보시오. 조금 전 낮에 호주 지부의 관아에서 태형을 백 대나 맞은 엉덩이인데도 저렇게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하지 않소. 여협들이 어지간히 거칠 게 다루더라도 괜찮을 것이오.”
주위에서 지켜보던 다른 여인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혈신문의 대법이 정말 놀랍군요. 저 여자가 혈신문에 패하고 사로잡혀 저 꼴이 된 것도 다 그런 무서운 수법 때문이겠군요.”
“그렇지요. 또한 우리로서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무서운 수법도 많고 무공 또한 놀라운 수준이었소. 저 암퇘지는 중원 무림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고수인데도 불구하고 혈신문의 열네다섯 살짜리 계집애에게 순수한 무공으로 패배해 사로잡혔으니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여인들은 양세현이 열네다섯 살짜리 계집애에게 순수하게 무공에 패배하여 사로잡힌 몸이 되었다는 말에 다들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죽림비궁의 여인들은 동매, 서란, 남국, 북죽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양세현과 겨루기 위해 십 년간 죽림비궁에서 특별히 길러낸 여인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조금 전까지 초산사효의 첫째와 이야기를 나누던 여인 즉 동매가 음식을 먹고 있는 양세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정말 엄청나게 먹네요. 저렇게 먹고도 탈이 안 나나요?”
첫째가 말했다.
“우리도 무척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대법을 받으면 저렇게 먹어야만 하는데 다만 하루에 저렇게 한 끼만 먹으면 된다고 합디다.”
자신을 서란이라고 소개한 여인이 한창 음식을먹고 있는 양세현에게 다가가더니 엉덩이를 걷어찼다.
양세현이 앞으로 팍 꼬꾸라지더니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돌려 서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초산사효의 옆에 같은 차림을 한 여인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비천한 암퇘지가 소저께 죄를 지었나 봅니다.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세요.”
서란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네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알아?”
“저는 비천하고 멍청한 암퇘지예요. 부디 소녀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려주세요.”
“우리 옷차림을 보고 생각나는 게 없니?”
양세현은 그들의 옷차림을 보고 한참이나 생각하더니 비로소 뭔가를 깨달은 듯 머리를 바닥에 마구 조아리며 애원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멍청한 암퇘지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