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0화 〉백유선 1 (120/148)



〈 120화 〉백유선 1

第 二十二 章. 백유선

1.

백유선은 운이 없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독행대도 백유선이 여기 북경 유리창 골목에 오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장물처리였다. 북경 유리창은 물건 값을 제대로 지불해 줄 줄 아는 상인들이 많았다.

물론 장물인 만큼 백유선도 물건 값을 보통처럼 받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원 가격의 백분의  정도밖에 지불해주지 않는 건 너무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 유리창의 단골 상인들은 십분의 일 정도는 쳐줄 줄 알았다. 때문에 백유선은 발품을 좀 팔더라도 웬만하면 여기 유리창으로 와서 물건을 처분했다.

또 하나 백유선이 여기 유리창을 자주 찾는 이유는 바로 이곳 용경루의 음식 때문이었다. 용경루의 음식이 백유선의 입맛에 정말 맛있지 않았다면 장물 처리만 하고 절대 음식 따위는 먹지 않고 북경을 떠났을 것이다.

원래 백유선은 독행대도라는 스스로의 신분 때문에 북경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도둑질을 하려면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북경이 좋기는 하겠지만 아직 백유선의 실력으로는 북경의 고관대작들을 상대로 도둑질을 하는 건 너무 위험했다.

자칫 잘못 북경에서 도둑질을 했다가는 금의위나 동창의 고수들에게 추적을 받게 될 수도 있고 그랬다가는 끝장이라는 걸 백유선은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백유선이 스스로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백유선은 과거 좋은 사부를 만나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무공과 도둑질 수법을 익혔고 그걸 밑천 삼아 도둑질로 먹고 살고 있었다.

사부가 죽기 전에는 백유선에게 도둑질을 절대 못하게 했지만 백유선은 스스로 사부가 돌아가신 다음부터는 사부의 경고 따위는 무시하고 도둑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벌써 두 해째가 되지만 특별한 위험은 없었다. 그건 백유선의 무공 덕분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녀가 잔챙이 도둑이라는 이유가 더 컸다.

아무리 유명한 도둑의 제자라고 해도 백유선은 스스로 고관대작을 상대로한 그런 도둑질은 한 번도 하지 않았고 또 스스로 조심스러워서 숨은 고수가 많은 북경 같은 곳에는 장물처리나 용경루에서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니면 절대 출입하지 않았다.

백유선은 용경루에서 시킨 음식만 먹고 바로 북경을 떠날 생각이었는데 오늘은 정말 재수가 없는 건지 지금 그녀의 눈앞에 파락호 두 명이 버티고 서 있었다.

역시 혼자 용경루로 오지 말았어야 한다고 후회했지만 이미 후회는 너무 늦었다.

 명의 파락호는 최고급 비단으로 만든 의복에 손에는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부채를 들었고 뒤에는 두 명씩의 호위가 붙어 있었다.

북경에서 가장 흔한 파락호라고 할 수 있는 지체 높은 세도가의 귀공자가 분명했다. 이들은 대개 아비의 권세를 믿고 북경에서 여러 가지 패악질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고 그 중에는 여인을 희롱하는 일 또한 빠지지 않았다.

백유선은 강호에서 미인으로 유명했다. 독행대도라는 신분은 남에게 자랑할 만한 일이 결코 아닌지라 사람들에게 비밀로 했기 때문에 강호상에 알려진 그녀의 신분은 독행대도가 아니라 해결사  호위였다.

백유선이 정파 출신이었다면 무림오봉의 한 명에 들어가 무림오봉이 아니라 무림육봉이라 불렸겠지만 그녀는 정파 출신이아니라 사파 출신의 떠돌이라 강호에서는 그녀를 강호사미의 한 명으로 불렀다.

하여간 강호사미의 한 명으로 불릴 정도의 미인이 음식점에서 홀로 음식을 먹고 있으니 이런 파락호가 들어붙지 않을 리가 없었는데 백유선이 급한 마음에 실수를 한 것이었다.

파락호 중 한 명이 부채를 펴서 한껏 멋을 부리며 수작을 걸었다.

“여기 용경루에서는 보지 못했던 소저이신데 실례가 아니라면 저희들과 합석을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귀공자처럼 생긴 아니 진짜 귀공자이긴 하겠지만 실제로는 파락호인 녀석의 말로는 너무 정석적인 수작이었다.

남녀가 유별한데 처음 보는 여자에게 어딜 합석 운운한단 말인가.

하지만 백유선은 살아오면서 특히 사부가 죽고 혼자 강호를 떠돌게 되면서부터 이런 일을 너무나 많이 겪었고 이제 어떻게 처리하는  자신에게 가장 이익인지 잘 알고 있었다.

여기서 저 파락호들과 호위들을 때려눕혀 버리면 모처럼 북경에 와서 용경루의 음식도 먹지 못하고 그냥 떠나야 하고 백유선은 그런 결과를 전혀 원하지 않았다.

백유선은 이왕 이렇게   공짜 음식이나 잔뜩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파락호의 수작에 응했다.

백유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을 하며 말했다.

“남녀가 유별하지만 저는 강호의 여인이라 그런 예법에는 특별히구애받지 않습니다. 공자들의 위풍을 보니 대가 댁의 귀공자이신 듯한데 성함을 알  있겠습니까?”

파락호는 백유선 같은 미인이 자신의 수작에 응하자 얼굴에 희색을 잔뜩 띠우고 말했다.

“역시 저희 짐작대로 강호의 여협이셨군요. 저희는 우희남과 마천이라고 하는 서생입니다. 그저 집안이 남보다 조금 부유하여 이렇게 비단 옷을 입고 다니고 호휘를 대동할  있을 뿐 닭 잡을 힘 하나 없는 백면서생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소저의 별호와 방명을 알려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스스로를 우희남이라고 칭한 귀공자는 옆에 있는 동료를 마천이라고 소개한 뒤 백유선의 이름을 물었다.

백유선은 강호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사정이 밝았지만 북경에 있는 수많은 벼슬아치들과 귀공자들의 이름을 외울 수는 없어 우일남이라는 이름을 들어도 누군지 알  없었다.

백유선이 포권하며 말했다.

“저는 강호의 떠돌이 계집으로 그저 백유선이라는 이름만 가질 뿐 특별히 별호라고  것은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만약 상대가 강호인이었다면 백유선의 이름을 듣는 순간 이미 백유선의 정체와 섬전옥수라는 별호를 알아차렸겠지만 두 사람은 물론이고 뒤에서 시립하고 있는 네 사람의 호위들도 백유선의 이름을 듣고도 누군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희남과 마천 두 귀공자는 몇 번이나 백유선에게 자신들과 합숙하기를 권했고 백유선은 형식적으로 몇 번 거절하다가 못이기는  그들과 합숙했다.

두 사람은 과연 명문대가의 귀공자답게 으리으리한 상을 차리고 백유선을 대접했다.

백유선은 여러 번 이 용경류이 왔었어도 너무 비싸서 주문해 보지 못했던 음식이나 술을 하나씩 먹어볼 수 있었다.

술이 서너 순배 돌고 나자 백유선 곁으로 옮겨 앉은 우희남과 마천이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우희남은 술에 취해 실수를   젓가락을 일부러 바닥으로 떨어뜨렸고 그것을 줍는  탁자 아래로 들어가 백유선의 종아리를 슬쩍 건드리고 말했다.

“어이쿠 술에 취해 큰 실수를 했습니다. 백소저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여기서 만약 백유선이 종아리를 건드린데 대해 화를 내면서 나갔다면백유선이 그들에게 별 마음이 없다는 걸 드러내는 것이라  사람이 더 수작을 부리기 어려웠겠지만 백유선은 우희남의 손길이 닿은 종아리를 끌어당기지도 않고 그대로  채로 말했다.

“술에 실수를 한 것인데 실례가  게 무엇이겠어요. 그런데 젓가락은 찾으셨나요?”

백유선은 오히려 말을 더 간드러지게 하면서 우희남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우희남이 그런 수작을 부리는데도 백유선이 화를 내지 않자 이번에는 옆자리에 앉아있던 마천이 수작을 부렸다.

마천은 백유선의 앞에 놓인 옥 술잔에 술을 따라주면서 말했다.

“백소저의 나이가 우리보다 어리니 우리가 백 누이라고 불러도 되겠지?”

백유선이 간드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호, 이미 누이라고 부른 이상  누이라고 부를 필요가 뭐 있겠어요. 그냥 유선 누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럼 저도 천 오라버니라고 부를 게요.”

마천은 백유선이 자신을 천 오라버니라고 불러주자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탁자 아래서 우희남이 젓가락을 들고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나도 유선 누이라 부를 테니 유선 누이도 나를 희남 오라버니라고 불러주는 게 좋지않겠나?”

백유선은 이번에도 웃으며 말했다.

“희남 오라버니는  그렇게 탁자 아래 오래 계셨던 거예요. 젓가락 찾기가 그렇게 어려웠어요?”

우희남이 말했다.

“젓가락이야 금방 찾았지만 탁자 아래서 유선 누이의 아름다운 다리를 보니 그만 나도 모르게 몸이 움직이지 않았지.”

우희남의 말은 듣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상대인 백유선을 모욕하는 뜻이 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백유선은 전혀 상관없는  말했다.

“호호호호, 제가 옷을 홀랑 벗고 있어 다 벗은 허벅지와 종아리를 보신 거라면 몰라도 제가 발가벗고 있는 것도 아닌데  다리에 무슨 볼거리가 있다고 희남 오라버니는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러다 혹시 제 벗은 몸이라도 보면 석상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우희남과 마천은 백유선이 옷을 홀랑 벗고 있는 게 아니라느니, 벗은 몸을 보인다느니 하는 부끄러운 소리를 거침없이 하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우희남과 마천은 백유선과 합석을 했을  이미 마시는 술에 이미 일종의 음약을 타 놓았다.

우희남과 마천은 당금 조정에서 가장 강한 권세를 가졌다고 할  있는 병필태감 우경신과 제독태감 마상의 양자들로 이미 북경에서는 소문난 파락호들이었다.

양아비들의 권세를 믿고 두 사람은 북경에 사는 사람들에게 숱한 피해를 입혔고 특히 여인에 대한 희롱이 많았다.

용모가 조금 뛰어난 여인이 두 사람의 눈에 띠면 유부녀든 처녀든 가리지 않고 사람에게 희롱당하거나 강간당하기 일수였다.

두 사람은 부친의 권세를 빌려 동창과 금의위에 부탁해 특이한 약을 조금 얻은 적이 있었는데 바로 백유선에게 사용한 약으로 여인이 조금이라도 먹으면 성에 대해 훨씬 적극적으로 변해 유혹하기가 훨씬 편해지는 약이었다.

원래 두 사람이 원한 건 소문으로만 들은 여인이 먹으면 음기가 올라 남자와 합방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는 음약이었지만 두 사람의 주문을 들은 동창의 고수는 그런 약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구해 준 약이 바로 이 약이었다.

우희남과 마천은 그 동안 이 약을 사용해서  번이나 큰 효과를 보았고 그때마다 상대방 여인들은 자신들에게 편하게 넘어왔다.

이 약의 도움을 받은 이후 두 사람은 때때로 둘이서 한 여인을 상대한 적도 있었는데 이 약의 효과는 정말 대단해서 보통 같으면 전혀 통하지 않았을 상대도 이 약을 먹으면 두 남자를 한 번에 상대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올 정도였다.

우희남과 마천은 백유선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미 백유선이 절반 이상은 자신들에게 넘어왔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마음속으로 이미 백유선을 발가벗겨 둘이서 희롱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