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초산사효 3 (69/148)



〈 69화 〉초산사효 3

3.

초산사효는 발가벗은 채로 달려가는 양세현을 둘러싸고 성무장을 향해 말을 달렸다.

관도를 지나던 사람들이첫눈에도 흉악해 보이는 무림인들이 완전히 발가벗은 여인을 데리고 달려가자 일제히 길 좌우로 비켜섰다. 양세현이 혼자서 달려올 때와 달리 뒤에서 뭐라고 수군거리는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넷째가 그런 모습을 보며 말했다.

“빨가벗긴 계집애를 데리고 다니니 이런 효과가 있을  몰랐네요. 진작 무림의 계집애 하나를 잡아다 이렇게 홀딱 벗겨서 데리고 다닐  그랬어요.”

다른 셋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셋째가 말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확실히 겁을 줄 수 있는 줄 알았다면 넷째 말대로 이렇게 하나 잡아다 데리고 다닐걸 그랬어요.”

둘째가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무림의 계집애는 이렇게 홀딱 벗겨서 데리고 다니면 자살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싶네.”

셋째가 말했다.

“어라 정말 그렇군요. 입에 재갈이라도 물리고 다닌다면 모를까 정말로 힘들겠는데요.”

첫째가 말했다.

“그건 둘째가 잘 모르는 소리일세. 사람이 혀를 깨문다고 바로 죽지는 않네. 더구나 무림인이라면 더 죽기 어렵지. 게다가 무림의 여자들이 자존심이 강하고 정조를 생명처럼 안다는 것도 웃기는 얘기일세. 실제로 죽인다고 위협하면 빨가벗고 뜀박질을 할 계집은 명문정파의 계집 중에도 얼마든지 있네. 수치스런 일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결을 한다는 거나 문파에 누를 끼치기 싫어 죽음 택한다거나 하는 일이 과연 몇이나 있을  같나. 그런 건 대부분 지어낸 이야기거나 자기네 명성에 흠이 되니 억지 죽음을 강요해놓고 뒤에서 지어낸 얘기가 대부분이라네. 하여간 그런 얘기들은 전부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겉치레일 뿐이라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앞에 두고 살려준다고 해보게 뭘 못할 거 같나. 지금 이 계집애도 아마 그런 걸걸.”

첫째는 말을 중단하고 양세현에게 물었다.

“계집년 너도 죽기 싫어서 이렇게 빨가벗고 달리는 게 맞지?”

그것은 사실이었다. 양세현은 달리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네 쇤네는 죽기 싫고 시키는대로 하면 살려준다고 해서 혈신문에서 시키는 대로 이렇게 옷을 전부 벗고 달리는 거예요.”

첫째가 계속 말을 이었다.

“봤지 바로 눈앞에 이렇게 증거가 있군. 사실 예전에도 몇 번 그런 광경을  적이 있다네. 거의 이십 년 가까이 되는 옛일인데 난 아직 강호의 햇병아리 시절이었지 당시 호남에 상교방이라는 사파의 문파가 있었는데 정파 놈들과 시비가 붙었지 난 그때 상교방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들 편을 들어 싸웠는데 우연히 정파의 젊은 계집 둘을 잡았는데 그때 우리 동료 하나가  계집애들에게 빨가벗고 물구나무를 서면 살려주겠다고 했더니 조금 주저하기는 했지만 둘  정말 빨리도 홀딱 벗고 물구나무를 서더군.”

넷째가 말했다.

“에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뒤에 그 계집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물론 며칠 동안 데리고 다니면서 우리가 전부 맛을 보고 약속한 대로 살려줬네. 그때 맛을 보면서 봤더니  다 처녀도 아니더군.  뒤에 우연히 소식을 들었는데 돌아가서 시집가서 아무  없었던 듯이  살았다더군.”

첫째가 계속 말을 이었다.

“자네들은 무림에 출도하기 전이라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옛날 십이혈마가 난리를 피울 때도 이 계집애처럼 무림의 여자를 빨가벗겨서 끌고 다니는 일이 제법 있었다네.”

넷째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엣 진짜 이렇게 무림의 여인을 홀딱 벗겨서 데리고 다녔습니까?”

첫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십이혈마의 일이 무림의 금기라 정파인이고 사파인이고  거론하지 않으니 자네들은 잘 모르는 걸세. 그때 십이혈마에게 당한 무림 여인들의 수는 헤아릴 수도 없을 걸세. 물론 개중에는 사파 여자들도있었지만 정파 여자들도 엄청나게 많았다네. 십이혈마 중에서 특히 육마가 이런 식으로 여자들을 희롱하길 좋아했지. 성무장이 예전 십이혈마의 거처였다는 얘기는 자네들도 들었지. 십이혈마가 한창 활동할 때 바로 이 관도로 빨가벗은 정파 여인들이 숱하게 끌려갔다고 들었네.”

둘째가 물었다.

“직접  적은 없으십니까?”

“여기서 직접 보지는 못했고 다른 곳에서 봤네. 여기야 십이혈마의 집 앞인데 내가 무슨 용기로 여기서 돌아다닐 수 있었겠나.”

“그럼 어디서 보셨습니까.”

“항주에서 봤네. 화산파의 제자였는데 처녀 때는 섬서사미의 하나라고 불릴 정도로 당시에는 꽤 유명한 여자였지. 당시 나이가 열여덟 살 정도 되었을 거네. 그 여자가 완전히 빨가벗겨져서 항주거리를 이리저리 끌려 다니고 있었지. 끌고 다닌 남자들은 듣기로는 삼마의 부하들이라고 들었는데계속 돌아다니면서 자기가 화산의 누구누구다 하고 큰 소리로 말하게 하더군.

조금만 목소리를 낮추거나 걸음걸이를 늦추어도 삼마의 부하들이 대나무를 납작하게 깎아 만든 죽편으로 사정없이 때리고 그 여자는 그때마다 폴짝폴짝뛰면서 삼마의 수하들에게 잘못했다면서 살려달라고 싹싹 빌더군.”

“이름은 기억이 안 나십니까?”

“그 때는 기억했는데 지금 당장은 기억나지 않네. 새로 한  듣기만 하면 바로 기억이 날 것 같은데 말이야. 당시엔 워낙 충격적인 일이라 확실히 기억했었는데 그 뒤로 비슷한 일을 여러 번 보면서 기억이 흐려졌나 보네.”

양세현은 살짝 몸을 떨었다. 섬서사미의 하나로 화산파 제자이면서 발가벗겨진 채 끌려 다닌 여자라면 풍소연이다. 자신과 함께 사도백천을 도와 십이혈마와 싸우다 잡혀갔던 여자로 당시에 일이 조금만 바뀌었어도 풍소연이 아니라 양세현 자신이 잡혀가서 그 꼴을당했을 것이다.

만약 그때 자신이 잡혀가고 풍소연이 남았다면 사도백천의 아내는 풍소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싶어 몸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때 잡혀가지 않은 대신지금 혈신문에 잡혀서 암퇘지가  버렸으니 특별한 차이는 없는 것 같기도 했다.

둘째가 달려가는 양세현의 등을 채찍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때 그 여자가 섬서사미의 하나로 불렸다면 상당한 미인일 건데 계집과 비교해서 어떻습니까?”

“글쎄 그때는 나도 강호 경험이 일천할 때라 여자를 보는 눈도 형편없어서 장담은 못하겠네만 이 여자만큼은 아니었던  같네. 솔직히  이렇게 예쁜 계집은 오늘 처음 보네. 그런데 이런 미인을 처음 보면서 완전히 빨가벗은 모습을 보다니 오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의 날이 아닐까 싶네.”

“하하 저도 이런 미인을 본 건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그 뒤에 어떻게 되었다는 얘긴 못 들었습니까?”

“항주뿐만 아니고 양주와 소주에서도 똑같은 모양으로 끌려 다녔다고 들었네. 뭐 그 뒤에는 삼마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거처로 끌려가서 이리저리 여러 남자들에게 돌려지지 않았겠나. 그리고 그 뒤에는 죽었든가 아니면 사도백천에게 구해졌겠지.”

“그런 여자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면 그 뒤에 어떻게 되었다는 얘기가 있을  같은데요.”

“그게 전혀 알 수가 없네. 사도백천이 구했다면 이름을 바꾸고 어딘가에 숨어살게 해 줬을 것이고 아니면 자기 문파의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겠지.”

“자기 문파에 죽임을 당해요?”

“자네는 정파 놈들의 체면이라는 걸 모르나. 그놈들은 자기네 문파의 명예에 해가 된다 싶으면 몇 번이고 자기네 제자를 죽일 놈들일세. 그런데 여자라고 예외가 될  같은가 어림도 없는 소리일세.”

“그런데 어째서 십이혈마가 사라진 뒤로는 그런 일이 없는 겁니까?”

“사실 그런 일은 어지간한 배짱이나 힘이 없이는 할  없는 일일세. 사실 십이혈마가 나오기 전에는 사파에서도 그런 짓을 벌이지 못했네.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적당히 재미를 보다 놓아주거나 죽이거나 할 수는 있어도 그렇게 명문의 제자를 빨가벗겨 대로로 끌고 다니거나 하는 일은 전혀 할 수 없었지 십이혈마 정도나 되니까 그런 일을 마구 벌인 걸세. 그 뒤로 십이혈마가 사라지자 정파의 힘은 형편없이 약해졌지만 사도백천이 살아 있으니 그자의 위엄에 눌려 아무도 감히 그런 일을 벌일  없었지.”

“사도백천이 죽은 뒤에는 무림맹이 있고요.”

첫째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무림맹은 종이 호랑이일세. 무림맹이 지금까지라도 위세를 떨쳐온 건 사도백천의 위엄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일세. 사도백천이 죽고 벌써 오 년이니 이제 곳곳에서 무림맹에 도전하는 자들이 나올 거야. 무림맹 놈들은 그동안 무림의 질서가 유지된 게 자기네 힘으로 알겠지만 무림맹주 남궁석진이나 남궁세가의 힘 따위로는 어림도 없네. 그래서 화산, 종남, 점창파가 이미 당한 거고. 아직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당한 곳이  많을 수도 있을 거야.”

양세현은 점창파뿐만 아니고 화산파와종남파도 당했다는 얘기에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 점창의 단장문이 빨가벗겨져서 대리 성내를 끌려 다녔다는 얘기는 사실일까요?”

“글쎄 나도 반신반의했네만 이 계집을 보면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네. 이런 미인이 홀딱 벗고 관도를 뛰어다니는데 점창파 여장문인이 대리성내를 빨가벗겨져서 끌려 다녔다고 해서 뭐가 이상하겠나.”

“근데 사도백천의 마누라 사도부인은 도대체 무슨 일로 성무장을 떠났기에 성무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아마 무림맹에 불려가지않았겠나. 무림맹 놈들이 아무리 귀가 어두워도 지금쯤은 화산이나 점창의 소식을 들었을 거고 허겁지겁 사도부인을 불러 들였겠지. 사도부인은 그 자신의 무공도 극히 높은데다 사도백천의 마누라라라는 위명도 있으니 무림맹에 큰 힘이  수 있네.

아마 혈신문이라는 놈들은 그것을 알고는 사도부인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성무장을 털어먹고 있는 거겠지 알다시피 성무장에는 사도부인과 두원기, 유헌백  사람을 빼고는 제대로 무공을 가진 이가 없으니 더욱 쉽게 털어먹고 있을 거고 이 계집에게 이런 일도 시킬 수 있는 거겠지. 내 생각엔 이 계집이 약간의 무공도 있다고 하니 사도부인의 친척이 아닌가 싶네.

얼굴이 이렇게 예쁘니 과거 강호 제일의 미인이라던 사도부인의 친척이 아니라면 이렇게 예쁜 여자가 또 있긴 어렵지 않겠나. 사도백천 자신은 아들 사도공자를 빼면 가까운 친척이 없었으니 사도씨는 아닐 거고, 사도부인의 성이 양씨라고 했으니 이년도 양씨 아닐까 싶군.”

첫째의 말을 듣고 있던 둘째가 양세현에게 물었다.

“계집애야 네 성이 혹시 양(楊)이냐?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

양세현도 그 정도는 대답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네 제 성은 양이에요.”

첫째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 보게 내 말이 맞지 않나. 아마 사도백천의 마누라인 사도부인의 조카쯤 될  같군. 사도부인은 자기가 자릴 비우는 사이 이 계집애에게 성무장을 맡겼겠지만 혈신문이라는 놈들이 쳐들어 와서  계집애를 이렇게 홀딱 벗겨서 희롱할 거라는 생각은 못했을 걸세.”

“근데 사도부인이 두원기와 유번백을 데려간 건 바로 아침이었는데 벌써 이런 일을 한다는 게 이상하군요.”

“그래서 내가  혈신문이라는 곳이 바로 일개 사파 집단이라고 추정하는 걸세. 보나마나 그들이 나가기만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덮쳤겠지. 이런 일은 원래 빠르면 빠를수록 좋네. 번갯불에  구워먹듯이 자리를 비운 즉시 해치우는 게 가장 좋네. 사실 그때가 사람들을 공격하기 제일 좋은 시간일 세. 미처 뭔가 준비를 하기도 전에 바로 당하는 거니까.”

“그나저나 혈신문들이라는 놈들의 실력이 대단하면 어쩌지요? 이 계집애가 하는 짓을 봐도 무슨 지독한 짓을 당했는지 감시하는 놈도 없이 나루터까지 혼자서 달려갔다 오면서도 도망칠 생각도 못하지 않습니까.”

첫째가 다시 껄껄 웃었다.

“내가 혈신문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점도 바로 그거라네. 원래 빈집털이를 하는 놈이니 그렇다는 점도 있지만 이 여자를 다루는 방법이 바로 과거 십이혈마가 여자를 다루던 방법이라는 걸세. 보나마나 십이혈마의 과거 추종자들 중 하나가 혈신문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만들어 다시 활동하는 것일 걸세. 혈신이라는 이름부터 혈마와 딱 비슷하지 않나. 그리고 십이혈마를 추종한 놈들 중에 제대로 된 고수는 사도백천의 손에 전부 죽고 남은 자가 없다네.”

달리면서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양세현은 첫째의 추리에  구멍이 있다는것을 알았지만 잠시 생각을 해보니 혈신문주와 혈신문의 어린 처녀들의 무공이 오히려 너무나 기이한 것이라 첫째처럼 판단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역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넷째가 말했다.

“두 분 형님은 무슨 그런 어려운 얘기들을 하시오. 그보다 이 계집이나 좀 데리고 놉시다. 우리가 나중에 이 계집을 데리고 다닐 때도 지금처럼 이렇게 달리게 되겠죠?”

둘째가 대답했다.

“그렇겠지.”

“그럼 연습 삼아 지금좀 데리고 놀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넷째는 말을 마치자 바로 말채찍으로 양세현의 둥근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아앗!”

양세현이 짧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더 빨리 뛰어갔다.

셋째도 넷째의 그런 행동을 보고 웃으면서 양세현의 뒤로 말을 달려가 말채찍으로 양세현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이년아 더 빨리 뛰어.”

성무장으로 접어드는 길이 나올 때까지 두 사내는 그렇게 양세현의 엉덩이를 말채찍으로 찰싹찰싹 때리며 달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