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혈신문주 구양선 3
3.
두원기와 유헌백은 특별히 다른 곳에 감금당한 것이 아니라 바로 성무장 자신들의 방에 누워 있었다.
그들은 혈신문의 독문수법에 당해 쓰러진 순간부터 저항능력을 완전히 상실해 그들의 방에 그대로 데려다 두어도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쓰러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의 방에서 정신을 차렸지만 겨우 걸음을 걸을 수 있는 점을 빼면 무공은 고사하고 힘쓰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녀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고 용변을 보는 정도가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전부로 지금 같아서는 예닐곱 살 어린 아이와 싸워도 이길 수 없을 정도였다.
음식을 가져다 주는 하녀들은 무슨 엄명을 받았는지 두려운 표정만 얼굴에 가득할 뿐 자신들이 묻는 말에는 어떤 대답도 해주지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점심 무렵이 되자 등에 매고 있는 장검을 제외하면 완전히 발가벗은 여인들이 나타나 하녀들에게 그들을 부축하게 하여 어딘 가로 데려갔다.
그들이 힘겨운 걸음으로 건물 밖으로 나가자 성무장의 다른 젊은 무사들과 무림맹에서 양세현을 만나러 온 송석주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옆에 하녀들이 한 명씩 붙어 있었고 또 너댓 명의 등에 장검을 맨 발가벗은 여인들이 하녀들에게 뭔가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등에 장검을 맨 발가벗은 여인 하나가 두원기와 유헌백에게 말했다.
“저희 문주께서 두 분 대협과 성무장의젊은 무사님들을 모셔오라고 하셨어요.”
여인이 하녀들에게 그들을 부축하게 하자 두원기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 스스로 걸을 수 있으니 부축은 필요 없네.”
유헌백과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자 여인은 더 권유하지 않고 하녀들에게 그저 뒤에서 따르게만 하고 그들을 안내했다.
두원기가 발가벗은 여인에게 물었다.
“자네들은 누군가? 등에 장검을 매고 있는 거나 몸의 움직임을 보니 제대로 무공을 배운 처자 같은데 어째서 그렇게 발가벗고 혈신문의 명령만 따르고 있는 건가?”
여인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저희는 혈신문의 적신노(赤身奴: 알몸 노예라는 뜻)예요. 혈신문과 만났을 때 음탕한 본성을 들켜 자발적으로 혈신문의 노예가 된 계집들이에요.”
두언기는 물론이고 유헌백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전부 놀랐다.
두원기가 되물었다.
“자발적으로 혈신문의 노예가 되었다고?”
“네, 저희들은 음탕한 본성을 타고난 계집들이었어요. 우리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혈신문의 선자님들을 뵙고 그분들이 하신 일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 음탕한 본성을 깨우치고 우리들 스스로 그분들 앞에서 완전히 발가벗고 노예로 삼아달라고 애걸했어요. 우리 애원을 선자님과 문주님이 수락해 주셔서 혈신문의 노예가 될 수 있었고요.”
“흥, 뭔가 그들의 사악한 술법에 당한 것이지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있겠나.”
“모두 사실이에요. 두 분 대협과 소협들께서는 저희 본성을 보지 못해서 그런 동정을 하시는 거예요. 우리 혈신문에서 문주께서 어릴 때부터 직접 가르치신 선자님들을 빼면 다른 선자님들은 전부 저희들과 같은 문파 출신들이에요. 그분들은 저희처럼음탕한본성이 없어 문주님의 가르침을 받고 혈신문의 선자님들이 되셨고 저희들은 음탕한 본성 때문에 선자님처럼 될 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부 스스로 이렇게 빨가벗고 적신노가 되는 길을 선택했어요.”
뒤에서 따라오던 송석주가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들의 사술에 당해놓고도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는 거겠지.”
여러 젊은 무사들 중에 송석주가 비록 무공을 쓸 수 없어도 어느 정도 몸의 움직임이 활발했는데 다른 성무장 사람들이 오랫동안 혈신문이 안배해 두었던 약물에 중독되어 있었던 반면 송석주는 성무장에 있던몸이 아니라 약물에 중독되지 않아서 그랬다.
여인이 송석주가 의외로 목소리에 힘이 있는 모습을 보이자 조금 놀라며 말했다.
“소협께서 믿지 못하셔도 그게 사실인 걸요. 저희들은 이렇게 빨가벗고 사는 적신노가 되기 위해서 시험까지 치렀어요. 저희는 혈신문에서 우리처럼 음탕한 계집들을 적신노로 거두어들인다는 걸 알게 되자 선자님들 앞에서 바로 빨가벗고 저희들도 적신노로 거두어 달라고 애원했어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는 가까운 시장에서 빨가벗고 달리면 적신노로 삼아주겠다고 하셔서 수천 명이 북적거리는 시장에서 한 시진 동안 빨가벗고 달렸어요. 무공 사용이 금지되어서 경공도 사용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갔지만 결국 사람들에게 잡혀서 잔뜩 주물러지기도 했어요. 다른 애들도 비슷하고요.”
다른 여인들도 분분히 말했다.
“전 물구나무서서 마을 안 돌기였어요. 수백 호가 넘는 꽤 큰 마을이었는데 물구나무서서 마을 안을 돌아다니다가 개들에게 물리기도 했어요.”
“전 보지 까고 달리기였죠. 쟤는 그냥 빨가벗고 달리기였는데 제가 달린 곳은 사람이 적다고 보지 까고 하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두 손으로 보지를 발랑 까고 달렸죠.”
“전 시장에서 빨가벗고 춤추기였어요. 춤을 춰야하는데 파락호들이 자꾸만 절 만지려고 덤벼들어서 정말 힘들었어요.”
“전 관아에서 곤장 맞기였어요. 물론 빨가벗고 맞았죠. 여자가 빨가벗고 곤장 맞는다고 구경꾼들이 어마어마하게 모였어요.”
“저는 빨가벗고 말타기였는데 거꾸로 타기였어요. 안장도 없는 말에 두 손이 뒤로 결박된 채로 거꾸로 앉아서 타고 가니까 뒤쪽에서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전부 다 보였죠. 허벅지로 말을 꽉 붙잡는다고 정말 힘들었어요.”
다른 여인들이 분분히 자기 경험을 말하자 여인이 말을 이었다.
“들으셨다시피 저희들은 저 시험을 다 통과한 뒤에야 겨우 혈신문의 적신노가 될 수 있었어요.”
여인들의 황당한 경험담에 두원기를 비롯한 모두 입이 벌어졌다.
여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그렇다고 저희들이 저런 일을 하면서 힘들고 괴로웠던 게 아니에요. 저희들은 저런 일을 전부 즐기면서 했어요. 그래도 저희들이 음탕한 계집들이 아닌가요?”
다른 여인들도 전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 앞에서 빨가벗고 달리기 정말 기분 좋았어요.”
“나도 곤장 맞을 때 너무좋아서 몇 번이나 까무러쳤어요. 근데 사람들은 내가 곤장을 맞고 너무 아파서 까무러친 걸로 알았죠.”
“전 말 등에서 씹물을 질질 흘리는 바람에 나중에 내릴 때는 말 등이 전부 젖어있었죠.”
여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일행은 대청이 있는 연무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대청을 향해 걸어가다 대청 앞 섬돌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대청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섬돌 앞에 완전히 발가벗은 여인 한 명이 엎드려 있었다. 무릎을꿇은 자세로 두 손은 앞으로 내밀어 바닥을 집고 머리를 두 팔 사이에 완전히 처박고 있었다.
평소라면 놀라서 소스라칠 모습이었지만 어제부터 수많은 발가벗은 여체를 보았기 때문에 이때쯤에는 다들 덤덤해졌다.
하지만 섬돌 앞에 발가벗은 여인이 있는 이유는 명확했다. 다들 그 발가벗은 여인을 밟고 대청으로 올라오라는 뜻이 분명했다.
여인의 등을 건너 뛰어 계단을 디디면 여인의 등을 밟지 않고도 지날 수 있겠지만 이미 다들 내공을 잃고 남은 체력이 없어 여기까지 걸어오는 것만도 지극히 힘겨웠다.
그런 몸으로 여인의 몸을 건너뛰어 발을 디디면 그대로 쓰러져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일 것만 같았다.
두원기는 이런 상황에서자신이 제일 먼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유헌백은 겉으로는 활기찬 사람 같아 보여도 마음이 너무 섬세해서 큰 결단을 내리는 데는 부족한데가 있었다.
두원기는 과감하게 발가벗고 엎드린 여인의 등을 밟고 대청으로 올랐고 일단 두원기가 알몸 여인의 등을 밟고 지나가자 다른 사람들도 차례로 여인의 등을 밝고 대청으로 올랐다.
대청에는 이미 넓은 탁자와 의자들이 사십 여개 준비되어 잇었고 주석에는 스무 살이 조금 넘은 듯한 지극히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있었고 여인 주위에서 완전히 발가벗은 두 명의 여인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
여인은 두원기가 대청으로 올라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하며 말했다.
“혈신문주 구양선(歐陽宣)이 청성파의 두대협과곤륜파의 유대협께 인사드립니다. 여기 이 자리로 오시지요.”
두원기와 유헌백이 힘겹게 대청의 상석에 자리 잡고 앉자 다른 성무장의 젊은 무사들과 송석주도 의자에 앉았다.
구양선이 가볍게 손짓을 하자 뒤쪽에서 발가벗은 여인들이 나와 쟁반에 찻잔을 담아 가지고 와서 탁자에 놓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찻잔을 나르는 발가벗은 여인들중에는 유월련과 단명선도 있었다.
곤륜파의 장문부인과 점창파의 장문인이완전히 발가벗은 알몸으로 부산히 움직이며 시중을 들자 그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특히 곤륜파의 유헌백은 자신의 사매이자 문파의 장문부인이며 또 은밀하게 연정을 품어왔던 유월련이 발가벗고 사람들 시중을 드는 모습을 보자 분노로 심장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두원기가 구양선에게 물었다.
“우릴 어쩔 셈이요. 우릴 죽이려면 더 놀리지 말고 바로 죽이도록 하시오.”
구양선이 고개를 저었다.
“일단 먼저 차를 드세요. 손상된 내공을 최대한 빠르게 회복하려면 그 차를 드시는 게 좋아요.”
내공을 회복한다는 말에 두원기와 다른 사람들전부 차를 마셨다. 이미 자신들을 제압한 혈신문이 굳이 이런 일로 자신들을 속일 이유가 없었다.
뜨거운 차를 마시자 과연 몸이 한결 편안해지고 사지에 힘이 돌았다. 내공이 바로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조금 전처럼 걷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로 무겁던 몸이 갑자기 훨씬 가벼워졌다.
강호 경험이 많은 두원기와 유헌백은 구양선이 내준 차가 놀랍도록 효과가 빠르자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구양선이 말했다.
“대협들을 지금 죽이진 않을 거예요. 대협들은 그저 운 없게 여기 이 장소에 있었을 뿐이죠. 대협들은 무림맹으로 돌아가 우리 말을 무림맹에 전하면 그뿐이에요.”
두원기가 성난 어투로 말했다.
“무슨 말을 전하라는 거요?”
“우리에게 협력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지도모욕당하지도 않을 거라는 것이고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자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모욕당할 거라는 거죠.”
“모욕이란 뭘 말하는 거요?”
구양선이 발가벗고 서 있는 유월련과 단명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에게 저항한 자들의 아내와 딸이 이렇게 되는 것을 말하죠.”
두원기와 유헌백이 치를 떨었다.
하지만 구양선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저 아이처럼요. 얘 일어서서 대협들께 얼굴을 보이렴.”
구양선은 대청의 섬돌 앞에 엎드려 있던 여인을 가리켰고 구양선의 지적을 받자 여인은 몸을 일으켰다.
바로 성무장의 안주인 양세현이었다.
다들 양세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는데 어떤 이들은 양세현이 이들에게 해침을 당하지는 않았는지 걱정해도 도 어떤 이들은 양세현도 유월련이나 단명선처럼 양세현도 발가벗겨져 모진 수모를 당하지 않을지 걱정했다.
그러나 그들은 섬돌 앞에서 자신들이 등을 밟고 왔던 발가벗은 여인이 양세현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섬돌 앞에서 일어선 양세현은 두 손을 머리 뒤로 돌려 자신의 발가벗은 알몸을 사람들 눈앞에 활짝 드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