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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두 얼굴-143화 (143/152)

<-- [외전 특별편] -->

목하에게만 간신히 들리도록 낮게 속삭인 말에 그녀의 귀뿌리까지 단풍마냥 곱게 물들었다. 도운은 가마꾼들과 벼리에게 쉬고 있거라. 한마디 하고는 사슴이나 지나다닐 법한 작디작은 오솔길을 헤치고 풀숲 안으로 들어갔다. 물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으나 금방이라도 끊겨버릴 것 같은 길은 목하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여기로 가는 거 맞아요?”

“예.”

도운이 몸을 약간 숙이며 길게 늘어진 덩굴 아래를 지나쳤다. 뒤이어 드러난 계곡의 풍경에 목하가 탄성을 질렀다.

선녀가 내려와 멱을 감고 간다는 폭포가 바로 이곳일까. 작게 떨어지는 폭포수 아래 단풍잎이 비처럼 쏟아지고, 맑디맑은 물은 서역에서 건너온 진귀한 보석보다 아름다운 초록빛이었다.

“내려가 보시겠습니까?”

“내려갈 수 있어요?”

목하가 눈이 동그래져 올려다보자 도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나는 듯 가벼운 몸놀림으로 바위를 밟고 아래로 내려가 편평한 자리 위에 목하를 내려놓았다. 발을 뻗으면 물에 담글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자리에.

“벗겨드리겠습니다.”

“네? 여기서요?”

눈이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커진 목하가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빼었다. 도운의 손이 치맛자락 안으로 쑥 파고들었다. 이 상황, 왠지 익숙한데.

“왜 그러십니까?”

제 손에 비해서는 턱없이 작은 버선발을 감싼 도운이 무심하게 물었다. 그의 표정관리는 너무나 능숙하였기에 목하는 자신이 놀림당하였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자꾸 왜 발을 만져요!”

“이것 좀 벗기겠습니다.”

그러면서 버선을 쏙쏙 벗겨버리고는 목하를 안아 물가에 조금 더 가까이 앉혀 놓는다. 치맛자락을 걷어 그녀에게 쥐여준 도운은 눈에 띄게 가늘어진 종아리를 조심조심 물속에 넣어 주었다. 차가운 물살이 발목을 휘감아 간지럽혔으나 목하의 발은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시원하다.”

도운에게 생긋 웃어 보인 목하가 몸을 숙여 손끝을 물에 담갔다. 조금 위에서 떨어진 단풍잎 하나가 헤엄치다 그 손가락 사이에 걸리었다.

“이거 봐. 얘가 스스로 왔어요.”

단풍잎을 재빨리 건져 올린 목하가 제 치맛단에 그것을 눌러 닦고는 도운에게 건넸다.

“며칠 전에 낙엽 준 것. 보답.”

목하의 손바닥 위에 놓였을 때는 제법 큰 단풍잎이었는데, 도운의 손 위에 놓이니 자라다 만 것처럼 보인다. 잠시 그 붉은빛을 들여다보던 도운은 단풍잎을 잘 챙겨 소매 안에 넣고는 무언가 찾는 양 품을 뒤적거렸다.

“저도 보답을 하겠습니다.”

“뭔데요?”

바로 어제 저자에 나가 황후마마 부럽지 않을 만치 온갖 선물을 받은 터다. 한데 또 무엇일까. 목하가 이것저것 상상하는 동안 품에서 연둣빛 꾸러미를 꺼낸 도운은 그것을 옆에 놔두고 목하의 발을 물속에서 꺼내 닦았다. 그의 무릎 위에 얌전히 놓인 한 쌍의 발은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

“풀어 보십시오.”

곱게 싸인 비단보를 풀어낸 목하는 고맙다는 인사도 잊은 채 물끄러미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새하얀 비단 버선과 색 고운 수혜 한 켤레. 이제 자신과는 별 관계가 없다 생각했던 물건들이었다. 물에 씻겨 조금은 차가워진 발등에 조심스러운 입맞춤이 차례로 내려앉았다.

“예전에.”

도운이 따뜻한 입술의 감촉이 남은 발을 버선으로 감싸며 나직하게 말을 꺼냈다.

“제가 이 산의 꼭대기 언저리에 지내며 훈련을 받을 때 일입니다.”

“여기서요?”

“예. 근거지는 이쪽의 반대편이지만, 이 산입니다. 훈련생 중 하나가 낭떠러지에서 굴러떨어져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낙오된 훈련생은 그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습니다. 제힘으로 일어서지 못하면 죽습니다.”

“너무해요.”

목하의 이마에 순수한 안타까움이 떠올랐다. 두 발에 차례로 버선이 씌워지고, 도운은 이제 수혜에 놓인 나비 문양을 손끝으로 쓸어보고 있었다.

“훈련생은 삶을 포기하고 누운 채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떨어지면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팔도, 다리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 며칠이 지났는지도 모를 어느 날에, 작은 계집아이 하나가 훈련생을 발견했습니다.”

도운이 신겨준 수혜는 목하의 발에 꼭 맞았다. 문득 어제, 저자에서 도운이 발을 만지겠다며 가마에 손을 집어넣은 일이 생각났다. 발 크기를 재어보려고 그랬구나. 목하는 날아갈 듯한 자태를 자랑하는 수혜를 바라보며 생긋 웃었다.

“그 아이는 작은 몸으로 부지런히 나무를 주워다 부목을 만들고, 약초를 찧고, 속치마를 찢어 훈련생의 다리에 감아 주었습니다. 자신이 먹으려고 가져온 주먹밥도 모두 그에게 내주었습니다. 내리 사흘간 훈련생을 찾아온 아이는 나흘째부턴 보이지 않았습니다. 허나 그 아이 덕분에 목숨을 건진 훈련생은 이틀 뒤에 부러진 다리로 산을 올라 훈련장으로 돌아갔습니다.”

“... 가려고, 했는데.”

잔잔하게 불어오던 바람이 뚝 멈추었다. 목하의 눈앞에 시체처럼 누워 있던 소년 하나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녀가 놀라서 지른 비명에 귀찮은 듯 눈을 뜨고 매섭게 노려보던, 검은 옷의 소년.

“숙부님은 가난하셨어요. 쓸모없는 계집아이 하나를 거두기엔 벅찰 정도로. 궁에 무수리로 들어가면, 숙부님도 입 하나를 덜고 저 또한 평생을 배곯지 않을 것이니 어쩔 수 없었어요. 가끔 생각했어요. 살아있기를 바랐어요.”

“이리 살아있습니다. 훈련생 또한 종종 그 아이를 생각했습니다. 하여 부인과 함께 이곳에 오기를 꺼렸습니다.”

“언제 알았어요?”

“아까 가마에서 부인을 안아 들 적에. 이십여 년 전, 이맘때쯤 같은 향기가 나던 아이가 산 주변에 살지 않았습니까.”

아무래도 도운을 마음에 담지 않으려면 너무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였나 보다.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손을 내밀어 그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미끈한 콧대를 만져보던 목하의 몸이 살짝 들어 올려져 도운의 무릎 위에 안착했다.

“좀 만지겠습니다.”

“또 발이죠?”

이번엔 안 속아. 태연하게 그에게 등을 기댄 그녀의 치맛자락 속으로 손 하나가 거침없이 들어왔다.

“발도 좋으십니까?”

목하가 설마, 하는 사이 단정하게 매어져 있던 고름이 풀어져 바람에 날렸다. 치마 안에서 목하의 허리를 단단히 안은 도운이 한 손으로 치마말기 안에 숨어 있던 가슴을 한쪽만 꺼내 쥐었다.

“여긴 밖이잖아요!”

“저도 압니다.”

매끄러운 목선에 입술을 대기 전, 도운이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그가 세차게 빨아들인 살갗 안에서 실핏줄이 터져 목 위에 단풍을 그려내었다.

“알면 좀, 자제를....”

“전에는 밖에서도 먼저 해달라 하셨으면서.”

그래, 안 된다는 도운을 유혹한 적이 없다고 하진 않겠다. 그런데 여긴 너무 밝고 트였잖아. 목하가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낸 것도 아닌데 가느다란 허벅지를 양쪽으로 조금 더 벌린 도운이 먼저 그녀를 안심시켰다.

“여기는 들어오는 길이 없어 누구도 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얼굴은 울상인데, 숨은 점점 가빠진다. 허리를 감고 있던 손이 지분지분 아래로 내려가 속곳 위를 살살 긁고 있는 까닭이었다. 갈라진 틈에서 물기가 배어 나와 얇은 비단을 조금씩 적셨다.

“조금만. 어제 그냥 잤으니까.”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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