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4화 〉활공(滑空) (164/164)



〈 164화 〉활공(滑空)

좀 어때?

네가 해냈어. 모두를 구했다고.

비행선은 무사히 안착했어.

기분이 어때?

미안하지만, 이번 일로 영웅대접을 받게 되지는 못할거야.

오히려 네 나락으로의 첫걸음이라고 장담하지.

워, 대답하려 애쓸 필요 없어. 난 네 관념을 통해 말하는 거니까.

뭐라고 말 해봤자 남이 보면 혼잣말로만 보일 껄?

하긴, 애초에 입이 움직이지 않겠군. 당연한 거야. 넌 지금 생물학적으로 사망상태거든.

네 상황을 조금 설명하자면, 글쎄... 일단 있는 그대로만 말해볼까?

넌 등짝을 전부 찢어 들어내고 전신의 피를 강제로 밖으로 밀어 냈어.

자각을 못한 것 같은데,  맨손으로 혼자서 바이킹식 극형을 해낸 거야.

 공중에 흩어진 내장을 주워 모으려면 인디아나존스가 12명은 필요할거라고.

맙소사... 내 작품이지만, 정말 매콤하게 돌아버렸구나, 상민아! 아니... 칼린!

슬슬 정신이 꺼지고 있겠지. 하지만 끝은 아니야. 다음에 눈 뜨면 많은  바뀔 거야.

그러니 지금 말해두지. 이 모든 건 거래야.

살아서  세계안에 있기만 하면 모든 건 인과 안의 사고야.

죽지 말라고.

죽지 말고, 제리코인지 뭔지... 그 역겨운 벌레 놈도 만나지 마.

그거만 지키면 돼.

피곤한가 보구나. 이해해. 하지만 부디, 다음에 눈 뜨고 나면 정신차리길. 다음부터 멍할 틈은 없어.

네 요람은 네가 부순 거니까.

#

밑바닥이 완전히 망가져버린 비행선이, 앙상한 내장을 질질 끌며 느리게 하강한다.  속도와 주위 환경에 맞춰지며 비행선 위로 펼쳐진 장막의 모양이 이리저리 유동적으로 바뀐다.

서서히 작아지며, 안정적인 착지가 가능한 위치까지 내려가자 그 크기를 점점 줄여 나간다.

마침내, 비행선이 완전히 자리에 착지한다. 15분간의 활강이었다. 착지과정이 조금 험난하긴 했지만, 무사히 안전한 평지 지대에 착륙을 성공했다.

비행선이 착륙하자 마자, 모두가 조금이라도 빨리 땅을 밟기 위해 서로를 제쳐가며 좁은 문에서 꾸득꾸득 튀어 나온다.

아직 무슨 일이 벌어졌는 지  수 없어 뛰쳐나온 사람들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다. 비행선의 위를 뒤덮었던 검은 장막의 정체가 뭔지 시선을 높이 들어 올린다. 모두의 시선은 기낭외피의 위쪽으로 모인다.

그리고 한 무리가 사다리를 통해 외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륑게를 필두로 소금부대원들이 상황파악을 위해 오르는 것이었다. 사다리를 오르자, 그 위에는 뭔가를 포기한 듯 앉아있는 갤러한이 있었다.

륑게가 가장 먼저 그를 향해 달려갔다.

"이 개 씨발 새끼야!"
그리고 욕설과 함께 그의 등을 걷어 찼다. 갤러한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고개를 돌렸다. 륑게는 그대로 갤러한의 멱살을 쥐었다.

"내가 징크스 만들지 말랬지,  좆만한 새끼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 갤러한을 몇 번인가 흔들어 댔다. 곧 다른 소금부대원들도  둘을 향해 달려와 둘 사이에 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패면 애가 아프냐? 꺼져봐."
"망할 징크스는 전부 세워 두고 지 혼자 어디론가 사라지고는, 걱정했잖아요, 씨발!"
"개, 갤러한! 무사해서 다행이야...! 무사해서 다행이다!"
"소니아 울잖아,  호로새끼야!"
안심해서 울기 시작하는 소니아를 두고, 핀과 륑게와 릴로가 갤러한을 둘러싸고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1분정도 이성을 잃고 갤러한을 두들겨 패던 그들은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갤러한이 전혀 저항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 이거 진짜 죽은 거 아냐?"
"뭐? 안돼! 갤러한!"
릴로가 던진 말에 륑게와 소니아가 반색을 띄며 쓰러진 갤러한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켜 세운다.

물론, 갤러한은 죽지 않았다. 그의 몸상태는 약간의 화상과 찰과상과 방금 동료들에게 구타당해 생긴 상처 뿐이었다. 맞아서 생긴 부상이 제일 큰 것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는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앞을 가리켰다.

"뭐야, 씨발! 어디 다쳤어? 빌어먹을... 기다려, 의사 부를게..."
"아니, 아니야..."
"말할 수 있어?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넌  여기 있던 거고? 비행선 내부에 있던 사람들 중 아무도 상황설명을 못 들었어."
"저, 저기..."
갤러한이 손을 향하고 있는 것은, 쓰러져 있는 칼린을 향해서 였다. 윗도리가 완전히 찢어 발겨지고 가면은 불타 있었다. 처참한 꼴이었다.

"저 새끼는  또 저 꼴이야?"
"제가 칼린씨에게 가  게요!"
륑게의 질문에 핀이 그렇게 말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갤러한은 그저 혼이 빠져나간 듯 손을 떨며 칼린을 가리키고 있었다.

"칼린은 나중에 걱정해. 지금은 네가 먼저야."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그는 분명히 보았다. 칼린이 자신의 등을 찢어 발기고서 그 장막을 꺼내는 것을 보았다. 열린 틈새로 그의 내장들이 태풍에 날아간 정육점 고기 마냥 흩날리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지금, 핀이 일으켜 세운 칼린의 몸에는 긁힌 상처조차 없었다. 갤러한은 그 자리에 앉아 칼린의 '회복'을 두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라드가 맞았어..."
"뭐 씨발?"
"전부 거기서 꺼져라!"
호령소리가 퍼진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보니, 요나가 아주 급하게 뛰어  듯 심각한 몰골을 하고서 올라와 있었다. 그녀는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입고 있던 정장 자켓을 쥐어 뜯어버리듯 벗은 후 칼린에게 달려갔다.

"비켜!"
그리고 칼린을 붙잡고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핀을 밀쳐내고서 그를  안아 들었다.

"칼린! 칼린!  말이 안 들리느냐!"
목을 태우는 듯한 목소리였다. 완전히 갈라진 목으로 지르는 소리에는 각혈까지 섞인 것 같았다. 그런 처참할 정도로 애절한 목소리에도 칼린은 반응이 없었다.

"지휘관님..."
"칼린! 일어나라! 일어나란 말이다!"
핀이 그 모습을 차마 볼  없다는 듯 요나를 불렀지만, 요나에게는 닿지 않았다. 그녀는 칼린을  번인가 흔들어 보고 그의 가슴에 귀를 갖다 대기도 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차가워진 그의 손을 마구 주무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상황이 바뀌지는 않았다.

"칼린! 부탁이다! 아니, 명령이다! 날 두고 가지 마! 씨발, 일어나란 말이다!"
"지휘관님, 칼린씨의..."
"입 닥쳐라!"
핀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다른 동료들도 뭔가의 직감을 느낀다. 소니아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린다.

"칼린씨의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그리고 핀이 무겁게 선포한다. 떨리는 목소리가 그의 참혹한 기분을 대변했다. 그가 눈물을 삼켜내고, 소니아의 무릎이 무너진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가장 처참하게 찢겨 나간 것은 칼린의 동료들이 아니었다.

"... 아니야."
붕 뜬 두 눈은 그 시선을 잃는다. 저물어가는 태양을 향하는 것인지, 망가진 비행선의 잔해를 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뭔가를 직시하기에는 너무 망가진 눈이었다.

"아니야."
거짓말이다.  바보들은 칼린을 모른다.

"아니란 말이다..."
그녀는 칼린의 축 늘어져 떨어진 두 손을 붙잡아 입을 맞춘다. 닿은 입술이 얼어 붙어 오는  하다. 전장에서 얼어붙은 투구에 입술이 대여 뜯겼을 때도 이렇게 차갑지는 않았다.

"거짓말..."
똑같이 흐느끼기 시작하는 소니아를 향해 륑게가 망토를 벗어 건낸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 보기 위해 갤러한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갤러한의 얼굴은, 어딘가 복잡하다. 읽어낼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말도 안되는 것을 보는 듯한, 절망에 빠진 듯하면서, 그러면서 어딘가 안심하는 듯한,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요나가 칼린의 뺨을 몇 번인가 쓰다듬는다. 핏기가 완전히 가셔서 그저 차갑다. 그러나 그 창백할 정도로 하얀 얼굴은 살아있었을 때와 다른 게 없었다. 아무리 봐도 요나에게는 그저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핀은 모른다. 칼린이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그는 괴물이다. 죽지 않는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상황은 거짓이다. 꿈이요 환각이다.

"아아, 칼린... 설령 이게 꿈일지라도..."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 내린다. 그 눈물이 흘러내리며 칼린의 차가운 시체 위로 떨어진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널 혼자 두지 않으마."
"... 지휘관님?"
요나가 자신의 검을 뽑아 들어 목에 갖다 댄다. 당황한 륑게와 릴로가 자세를 고친다.

"걱정마라. 이건 전부 꿈이다."
"지휘관님, 검을 내려 주세요..."
"전부 여기서 꺼져라. 둘만 있고 싶구나."
조금 들어올린 그녀의 눈에 이성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보이고 있는 것은 예술가들이 찬미하는 사랑이 아니었다. 더 징그럽고 무거운 것이었다. 제삼자가 보기에도 기괴할 정도로 비틀린 것이었다. 그 모습에 소니아는 자신이 느꼈던 것이 맞았음을 재확인했다.

"제발, 영주님..."
"명령이다."
핀의 부탁도 닿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이게 현실이든 허상이든 상관 없었다. 허상이라면 죽어서 깨어날 것이고 현실이면 살 이유가 없다.

"실망스럽군."
그리고 그런 경직된 분위기 속에, 한명이 추가로 난입 되었다. 라티아의 영주 미로코였다.

"아직 승객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중이다. 경이 이런 곳에 있을 때인가?"
"... 미로코."
"경칭을 붙여라. 역겨워서  참겠으니까."
그녀는 검을 들고 있는 요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요나의 광기가 지배하던 공간에 환기가 일어난다.

"미친년,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가는 군. 거기 죽은 네 종자에 대해 할 말이 없지는 않겠지."
 말에 요나의 눈이 희번뜩하게 돌아간다. 칼린을  바짝 끌어안고서, 그녀는 검을 미로코에게로 향했다.

"진짜 미쳐버린건가?"
"칼린은 죽지 않았다!"
"맙소사... 이게  요나라니..."
미로코는 짜증이 솟구쳐 오른 듯 말려 올라간 앞머리를 누르며 탄식을 뱉고서 요나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쪼그려 앉았다.

"잘 들어. 인명피해가 심각해. 네 종자는 왕도에 등록된 능력 이상의 능력을 보여줬고. 그 능력을 처음부터 썼다면 누구도 다치지 않고 끝났을 수도 있단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지친 듯 담배곽을 꺼내 들어  번인가 두들기고 한 개피를 꺼냈다.

"그가 보여준 능력은 일반적인 범주가 아니었지. 특수한 관리가 필요한 수준이었다. 넌 그걸 숨겨서 위기를 키웠어. 사상자가 생겼다고. 내 종자까지 죽었다."
그리고 신발 뒷창으로 성냥에 불을 붙인 뒤 담배에 불을 붙였다.

"... 성격은 음흉했지만 내게 과분한 아이였다. 마음 같아서는 그 놈을 살려내서  죽이고 싶군."
"너...!"
"'너'가 아니다, 빌어먹을 짬통자식아."
군인에 대한 멸시 표현이었다. 요나는 이성을 잃고 있었지만, 미로코는 차갑게 분노한 상태였다. 상황은 종자 하나의 죽음을 애도할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네 종자도 뒈져버렸으니 기다릴 것도 없군. 얌전히 따라와라."
"난 여기서 죽겠다."
"뒤져버리던가. 솔직히 나도 그 쪽이 더 좋을  같긴 해."
"잠깐, 잠깐만요!"
그리고 둘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서 흐느낌도 멈추고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핀이, 곧 자신을 의심하는 듯 눈가를 찡그리다가 눈을 크게 떴다.

"말도 안돼..."
"아, 또 뭐야, 씨발. 네 부대원들은 서커스에서 뽑은 거냐?"
미로코의 폭언에 아랑곳하지 않고, 핀의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의 눈은 부대원들도 본 적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심장박동이, 심장박동이 돌아왔어요!"
"뭐?"
"칼린씨의 심장박동이 돌아왔다 구요!"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요나였다. 검을 옆으로 던져버리고서 자신의 무릎에 기대 누워있는 칼린의 가슴팍으로 고개를 기울이고서 그의 심장박동을 들었다. 들리고 있었다. 미약하지만 확실하게 들리고 있었다.

"말도 안돼..."
"지, 진짜? 진짜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소금부대원들의 분위기는 조금 풀린다. 그리고 갤러한도 분위기가 바뀐다. 그의 표정은 이제 알기 쉬운 것으로 변해 있었다.

드러난 표정에는 경악과 공포만이 담겨 있었다.

"...그래. 안심해라... 안심하거라."
요나는 칼린의 심장소리를 듣고서 그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앞으로의 일은 앞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녀는 아직 손패가 많이 남아있다. 칼린만 남아 있다면 어찌되든 알아서 해결하고 해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을 덮어 씌우듯 안심감이 그녀의 몸을 장악해 온다.

"안심하고 자고 있으렴, 칼린... 내가, 내가 너를..."
한번 안심하게 되니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말조차 잇지 못하고 그녀는 칼린의 가슴을 적셨다.

"... 웃음도 안 나오는 군. 이딴 촌극을 봐서 불쾌하다."
그리고 미로코는 그들이 감상적인 분위기속에 빠질 틈을 줄 생각이 없었다.

"... 종자가 살아 있다면 청문회는 네 종자를 향한  되겠어. 시간을 벌었구나."
"...."
"그냥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어.  자리의 전원이 본 문제다. 각오해 두라고."
"... 돌아가겠다."
"어딜 가. 상황  안정시키고 떠나라고. 8영주라면 응당히 해야 하는  아닌가?"
"부대원."
완전히 지쳐서 잠긴 목소리는 망령의 것과 비슷했다. 부대원들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들자, 그녀는 칼린을 들쳐 메고 저벅저벅 걷기 시작했다.

"나 대신 뒤처리를 부탁한다."
"예?"
"권한을 맡기지."
"... 요나. 미친 거냐?"
"경을 붙이십시요, 전 경의 부하가 아닙니다."
요나는 지금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벨카로 돌아가고 싶었다. 성에 들어가야 했다. 칼린을 숨겨야 했다.

"갤러한. 실종자와 사망자수를 파악해라. 소니아는 나와 상시 연결 대기하도록 하고, 륑게와 릴로는 붙잡힌 범죄자새끼들을 벨카까지 운송 시켜. 세명 정도면 된다."
"그냥 그렇게 이 자리를 벗어나겠다고?"
"제 종자가 다쳤습니다."
"갓 나온 신생아도 지금 그 놈보단 상처가 많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막아 보시지요."
그렇게 말하고서 요나는 흘깃 미로코를 노려본다. 미로코는 그런 요나를 잠깐 노려 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담배 꽁초를 집어 던졌다.

"빨리 꺼져. 어차피  종자가 눈을 뜨면 그 때 부터 네 심문 시작이니까."
"그럼."
그리고 그녀는 능숙하게 칼린을 짊어지고 사다리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다리에 발이 닿으며 나는 특유의 금속음이 노을로 젖어가는 하늘에 울려 퍼진다.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소금부대원들은, 혼란스러운 상황이 너무 빠르고 정신없이 흘러가 그저 멍하게 자리에 서 있었다.

"... 미친 상관을 만나 다들 고생하네."
"... 아닙니다. 전 그럼 명령을 수행해야 해서..."
륑게가 먼저 미로코를 마주하는 위압감을 버티지 못하고 자리를 이동했다. 그 뒤로 소니아와 핀과 릴로도 이동을 시작했다. 갤러한이 요나에게 자신이 보인 이상반응을 들키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가까스로 제정신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넌 남아봐라. 할 말 있으니까."
"예?"
미로코가 그를 불렀다. 갤러한이 몸을 굳히자 미로코는 작은 몸을 그를 향해 돌렸다.

"받아라."
"이건...?"
"내게 직통으로 연결되는 전화표다."
얇은 금속 판자에 불규칙하게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였다. 일정 수준을 넘긴 귀족이 대리자를 거치지 않고 자신과 직통으로 연결할 대상에게 건내 주는 것이었다. 그 판자를 전화기에 끼워 넣으면 되는 것으로, 아직은 라티아에서만 활성화 된 것이다.

"... 실례지만, 이걸 왜 저에게?"
"넌 모든 걸 봤을 테니까."
갤러한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이런 험악한 분위기라면 화살이 현장을 보고 있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순서이다. 그에게 방금 본 것에 대한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 절 심문하실 겁니까?"
"원래는 그러려고 했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갤러한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거리가 가까워지니 그녀의 안색을 조금 더 정확하게 파악할  있었다.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새하얗다 못해 회색빛이 되어버렸었다. 엄청난 분노와 슬픔을 감당하는 중이었다.

"넌 다른 패로 쓸 수 있겠군."
"... 무슨 소리신지."
"널 잡아 고문할 수도 있겠지만,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것이 능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녀는 갤러한의 목깃을 잡아 약하게 끌어 당겼다.

"작은 거래를 제안하지. 생각해 보고 연락하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