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1화 〉활공(滑空) (161/164)



〈 161화 〉활공(滑空)

약하면 약해서 멸시당하고 조롱 당하다가 죽는다.

강하면 강하다고 관리당하고 이용당하다가 죽는다.

어떤 사람이든,  세계에서 개인은 존중해 주지 않는다.

그게 싫었다.

#

이리하는 엔진실 문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두꺼운 철문에, 방음처리까지 완벽하게 되어 있다. 아무리 이 앞에  있어도 반대편의 정보를 받아들일 방법은 없다. 그러나, 이리하는  너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녀는 피우고 있던 담배의 불을 문에 지져 껐다. 엔진실은 꽤 무거운 자물쇠가 걸쳐져 있다. 단순한 열쇠로 여는 자물쇠가 아니다. 락픽킹이 불가능한, 특수한 방식으로 제련된 주술 제련 잠금장치였다.

물론 이리하도 이걸 락픽킹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반대손에 들고 있던 피가 잔뜩 묻은 열쇠를 꺼내 들었다. 꽂아 넣고 열쇠를 돌리자, 무거운 소리가 들리며 자물쇠가 떨어져 나간다. 곧, 자물쇠와 함께 걸려있던 투명한 경보시스템들이 같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참 지랄맞게 철저하다고, 이리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짧게 혀를 찼다. 그리고 검을 뽑아 든 뒤, 앞으로 바뀌게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나라. 다른 국가들의 정세. 일단은 한 때 동료였던 자들이 죽을 것이고, 작전이 성공하면 교단은 이름을 알리게 될 것이다. 본격적인 구호 활동과 전쟁을 나설 것이고, 거점을 잡아 적극적인 투쟁활동을 시작할 것이다. 정말 많은 것이 바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녀가 마지막에 떠올린 것은, 앞서 떠올린 것들과 비교해서 하찮고 사소한 것이었다.

"... 칼린."
그가 이 쪽으로 오면, 그녀의 계획은 성공이다. 그 다음부터는 칼린의 의지에 맡길 것이다. 그녀는 검을 들고 엔진실 내부를 역겹게 쳐다보다가, 안쪽 벽에기대 앉아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허가된 시간은 딱 30분이었다.

처음에는 그의 무른 점이 흥미를 끌었다. 이리저리 상냥하고,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웠다.  전투에 능숙해 보이면서 폭력을 행하기는 싫어했으나, 그 대상이 자신이 되는 것은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스스로를 바꿔보려고 엉망으로 노력하는 것이 보였다. 라무르 마을에서 실패를 겪고  후, 그의 상태는 크게 악화 되었었다. 당시 그에게는 의지할 곳이 없었으리라. 아니, 결국그는 끝까지 소금부대원들에게 의지는 하지 않았다.

자신의 감성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걸 인정하며 타인을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을 때. 자신의 상냥함이 민폐이며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음을 곱씹을 때. 그런  마다, 그는 대체 어떤 기분으로 세상을 바라 봤을까. 그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세계의 완벽한 이방인이었다. 선 밖에 있는 존재였다. 강했지만 유약했다.

이리하 또한 그랬었다.

#

실망하지 않았다. 가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믿지도 않았다. 이바노프도 배신했고, 라드도 배신했다. 미망인 따위가 배신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속을 알 수 없던 수상한 년이었다.

그를 위로하던 입은 그를 속이던 것이다. 그에게 사과하던 입은 그를 공격할 것이다. 그는 전혀 충격 받지 않았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꼴사나운 패배자. 이미 한 번 신나게 져 놓고서, 그는 또 어디로 달려 가는가. 왜 달려가는가. 누구를 상대하러 달리는가. 무엇 때문에 달리는가. 아무것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비명소리. 겁에 질린 사람들은 그를 지나치고. 고요하게 춤추던 귀족들은 울상으로 자신의 부모 되는 자의 이름을 외친다. 인파에 밟혀 찌그러진 사람의 시체가 보인다. 구석에서 울면서 구호를 기다리는 자도 보인다. 승무원들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활짝 열린  귀와 눈. 아수라장. 지옥도. 과도하게 올라오는 스트레스.  마음을 죽여야 했다. 칼린은 거기서 더 마음을 죽여야 했다. 꼴사나운 패배자. 목줄을 쥐고 있던 주인조차 잃어버리고, 이젠 그 역할까지도 실패해버리고,  한번 변화를 마주하려 하고 있다.

숨을 헐떡이는 것은, 우수한 그의 체력이 부족해질 정도로 달려서가 아니다. 메케하게 올라오는 연기 때문도 아니었다. 이리저리 울려 대는 경보음과 조명이 어지러워서 그런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충격 받지 않았다.

그 머리속에 요나의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엔진실. 엔진실로 가야 한다는 사실만이, 칼린의 머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그의 몸이 이 선택이 앞으로의 길에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승무원들의 시체가 이리저리 누워있다. 귀족들의 시체도 몇개 널부러져 있다. 귀족들의 시체는 특히 감정적으로 훼손되어 있었다. 그걸 보자 알 수 있었다. 칼린은 그 길 너머로 지난 게 누구인지 떠올릴  있었다. 교주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떠올릴  있었다.

평등한 세계 라느니, 뭐느니, 그녀가 하는 말은 반 체계적이었는데. 미등록 마법사였는데. 그가 이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면 이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수 있던 걸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는 전혀 충격 받지 않았다.

어지럽게 뿌옇게 흔들리는 그 시야 속에서, 점점 정적이 다가오고, 언젠가 무시하고 지났던 그 신음소리가 들려온다면, 엔진실이 가까워진 것이다. 어떤 기계구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거기서는 인간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꼴사나운 패배자. 달려라. 그 머리가 멍청해 질 때 까지 달려라. 그 끝에 있는 것은 작은 문이다. 작고 사방이 틀어 막힌, 좁은 길 끝의 나락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불이 꺼진 상태로 열려 있는  문 너머로 누가 있는지 칼린은 알고 있다. 그는 쥐어 짜지듯 올라오는 구역질을 손으로 막아내며 거칠게 검을 뽑는다. 비틀거리며, 눈을 빛내며 휘청휘청 문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좁은 문의 정면으로, 찬란한 은발의 여성이 앉아 있다. 그녀가 뽑아 들고 있는 검보다도 빛나고 있는 머리칼. 어리석게도 칼린은 그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저주의 결과물이었지만, 달처럼 빛난다고 생각했었다. 칼타코에서 그녀가 자신을 간병하며 달에 비치는 머릿결을 넘길 때.분명 아름답다고 생각한 머리칼이었다.

천천히, 그녀가 눈을 뜨며 자신을 올려다본다. 몸을 일으킨다. 길고 시원하게뻗은 몸에 정장이 잘 어울려. 하지만 피가 잔뜩 묻어 있다. 그 어떤 해명도 필요 없을 정도로 명확한 복장이었다.

"... 이, 리하..."
"... 안녕, 칼린. 교주님이 제대로 안내해 주셨네."
괜히 숨이 껄떡하고 올라와, 칼린의 말은 중간에 한  끊어지고 말았다. 파르르 떠는 입술과 눈은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허공으로 맴돌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도발해야 할까?

"... 왜?"
겨우 뽑아낸 한마디가 그것이었다. 왜냐. 원론적인 단 한마디였다. 이리하는 빛을 등진 칼린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녀의 검을 들어 올리고서 슬프게 웃었다.

"칼린. 내 마지막 설득이야."
 손을 뻗어, 긴 손가락으로 어둠 속 한 점을 가리킨다. 칼린은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내 동료가 되어 줘."
"장난하지 마..."
"이야기를 들어."
"너까지?"
"네가 결정할 일이야."
"넌 날 몰라."
"그래서 네게 맡길게."
다시 한번, 이리하는 그 손가락을 향한다. 칼린은 그녀가 무엇을 가리키는 건지 알고 있다. 그녀는 엔진실의 점등 스위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칼린의 야시경 같은 눈으로도, 그 엔진실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특수한 장치가 있는  같았다. 이리하와칼린 사이의 검정은 어둠이 아닌 다른 것인 것 같았다. 칼린은 서서히검을 뽑아 들며 이리하를 향해 토해 내듯 말했다.

"난 네 말을 듣지 않아."
"모두 설명 할게.  스위치를 키면."
"내가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아? 벌써 몇명이 죽었는지는 알아? 이 비행선에는 부대원들도 타고 있어."
"스위치를 켜, 칼린. 그게 시작이야."
이리하는그저 그렇게 말할뿐이었다. 칼린은, 검 끝을 떨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잘 익은 과일에서 과즙이 터져 나오듯, 그의 턱을 타고 피가 흘러나왔다. 믿어서는 안된다. 이 스위치가 뭔지 모르니까. 그는 두번 다시 멍청해 지지 않는다. 요나의 말을 들어. 저년의 목을 잘라라. 그녀의 뜻을 따르고, 때가 되면 돌아가면 될 뿐인 일이다.

배신 따위 아무 충격도 주지 않는다. 이유 따위 궁금하지도 않다. 라드고 도르베고 이리하고 갤러한이고 륑게고 소니아고 릴로고 핀이고 아스타고 뭐고, 신경 쓰지 않아. 어찌되든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생각과는 반대로, 그의 손은 점차 스위치를 향해 뻗어가고 있었다. 그저 스위치를 끼는  뿐이라면. 그걸로 조금이라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그의 혼란스러운 정신은, 어느새 틈새로 뿌리를 내리던 것의 싹을 꺼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후회하게 될 그 선택지를 고른 것이다.

칼린이 그 스위치를 올림과 동시에, 엔진실의 사면에서 뭔가를 빨아들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강한 흡입소리와 함께, 칼린의 시야를 막고 있던 그 어둠들이 사라져 간다. 벽으로 빨려 들어간다. 시야가 점차 확보되며, 칼린의 생각보다 밝고 넓은 내부가 점차 모습을 드러낸다. 이리하가 등을 기대고 있던 곳부터, 엔진실 전체의 구조까지 전부 드러나온다.

하얀색 둥그런 장치들이 있다. 그 장치들은 서로간 3센치정도의 텀을 두고 배치되어 있다. 중간중간에  장치의 아래로 이리저리 구불구불하게 뻗은 호스들이 역겹게 얽히고 섥혀 있다.

두꺼운 호스들은 이리하가 기대고 있는 큰 기둥을 향해 연결되어 있다. 기둥은 투명한 유리바닥을 통해 보이는 아래쪽에 달린 거대한 엔진과 연결되어 있다. 엔진실이라는 것은 두개의 층계로 이뤄져 있던 것이다. 엔진의 동력을 만드는 것은 그 흰색의 장치들인 듯 했다.

흰색의 장치들 위로는, 연분홍색으로 발그레 색을 물들인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거기 있었다. 근육이 드러나온 듯한피부색으로, 몸에 털이란 털은 전부 깎여서, 침을 질질 흘려가며, 이리저리 튀어나올 정도로 크게 부릅 뜬 안구를 굴려 대며 기기마다  명씩 걸려 있었다.

그래. 그들은  기계에 '걸려' 있었다. 양 팔과 다리를 뻗고, 손등과 발등에 전극이 꽂혀 걸쳐져 있었다. 크게 뜬  눈은 눈꺼풀이 제거된 상황이었다. 몸 이곳 저곳에 굵다란 호스가 달려 있었고, 심장 근처에는 얇은 관이 매달려 있었다. 입가에 매달고 있는 관에서는 그들이 흘리는 침이 옆으로 줄줄 샜다. 그 침은 검은색이었다.

그들은 호스가 조금 꿈틀댈 때 마다 앙상한 몸을 비틀며 지옥 밑바닥을 긁어내는 듯한 신음소리를 냈다. 칼린은 이 소리를 들었다. 들었었다. 듣고도 넘어갔었다. 차갑게 머리가 식으면서 다음으로 그를 향해 엄습해 온 것은 그 방의 악취였다. 목숨만 겨우 부지중인 그들은 죽은 자들 보다도 심한 악취를 뿜어 대고 있었다.

칼린은 그 모든 것들에게 오감을 유린당하며, 몰려오는 혐오감과 구토감에 약간 허리를 굽혔다.  그는 발작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투명한 위액을 뱉어대기 시작했다. 이리하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자신도 괴로워 눈을 감았다.

"역시 마도방식에 대해 몰랐구나. 다행이라 해야 할까... 충격적인 걸 보여줘서 미안해."
이리하는 자신이 처음 마도방식의 '배터리'들을 접했던 날을 떠올려보았다.  자리에 박제되어 있던 것은, 그녀의 부모님이었다.

"마도방식이라는 건, 마정석에 등록된 마법을 사용해 구동하는 방식의 기술이야. 이치에 맞지 않는 화력 또는 구동성능을 낼 수 있으니 효율로만 따지면 기계방식 따위보다 훨씬 좋지. 문제가 있다면, 마정석은 마나의 주입이 멈추면 발동을 멈춘다는 거야."

칼린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려 눈 앞의 모든 것을 다시 한번 바라 보았다. 한  한  바라보며, 이것이 현실인지 또 빌어먹을 환각인지 구분해 보려고 했다. 매달린 사람들 중에서는 아직 성인도 되지 않아 보이는 어린애들도 있었다.

"개인이 사용하는 정도의 도구라면 문제가 없지. 껐다 켰다를 자유롭게 하면 되는 거야. 약간의 규제와 함께. 개인이이용하는 에어택시의 이용 범위가 왕도 안쪽으로 제한되는 것도 이런 이유야. 문제는, 중간에 실수로라도 꺼지면 안되는 것들은? 마도방식의 공장이나, 이런 비행선들은?"

노인도 있고, 어린애도 있다. 칼린에게는 그저 핏덩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 어린애들도, 지옥도에서 꺼낸 듯한얼굴로 괴로워하고 있다. 하얀색 방이 그의 눈을 더더욱 아프게 찔러온다.

"심장 옆에는 마관이 있어. 그 곳으로 외부 관을 연결하면, 생산되고 순환되어야 할 마나를 바로바로 뽑아낼  있지. 바닥까지 긁어내지 않는 이상, 8시간 정도면 마나는 다시 회복돼. 사람은 가장 우수한 '마나탱크'야."

그는 터덜터덜 걸어 눈 앞에 있는 한 어린아이에게 다가간다. 부르르 떨면서, 호스 너머의 이빨을 따닥따닥 떨고 있다. 붉게 충혈된 눈에 바짝 마른 양 볼은 너무 급속도로 늙어버린 노인처럼 보였다. 쭈글쭈글한손가락들이 움찔대며 그 끝을 치켜 올리면, 칼린의 심장도 멎어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포로나 범죄자, 생포  미등록 마법사들... 괴물은 생존률이 낮아서  사용하지 않아. 머리에 간단한 시술을 끝내고 나면, 그들은 다시는 지성을 가질 수 없게 돼. 그저 마나를 생산해낼 뿐인, 닳지 않는 '마나배터리'가 되지."

그 어린아이의 손등에 있는 클로버모양의 점이 눈에 띈다. 칼린은  점을 알고 있다.  적이 있다.

칼타코에서 그에게 꽃을 건내 줬던 아이가 분명 이런 점이 있었다.

"이 사실은 딱히 숨기는 사실도 아니야. 모두 알고 있는 '상식'에 불과하지.  소금부대의 동료들까지 모두 알고 있는 상식이라고."

칼린의 시선이 옆으로옮겨진다. 점점 개인이 아닌 전체의 얼굴을 확인하게 된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그  죽은 자들과 비슷한 신음소리를 흘려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  대부분이 구면이라는 것이.

"이 비행선의배터리는 소금부대의 활약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지. 이 '배터리'들은 요나가 직접 선발했어. 칼타코에서 말이야."
칼타코의 인부들. 반란에 참가하지 않았던, 평범한 인부들. 칼린의 다리가 무너진다.

이리하는 무감정 하게 검을 뽑아 들어, 근처에 있는 배터리의 심장을 조준해 찔러 넣는다. 검을 타고 흐르는  까지도 검은색이었다.

"모든 걸 알고도  막을 거라면, 검을 들어. 아니라면 나를 도와 이 배에 탄 전원을 죽여. 선택해라."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기계적으로 매달린 사람들 한명 한명을 찔러내고 있었다. 칼린은 검을 쥘 수 없었다. 멍청하게 눈 앞에 펼쳐진 역겨운 현실을 바라보며 그저 고요하게 숨을 죽이고 있었다.

모두가. 그가 알던 모두가. 그가 믿던 모두가. 이런 지옥도를 묵인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인가. 네크로맨서를 생포 했었다면, 그도 저렇게 되었던 건가. 나를 제외한 모두는 그걸 알고 있던 것인가. 요나는. 요나는 심지어  지옥도의 붓을 잡은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칼린조차. 그 스스로조차 이 악몽을 만들어낸 데에 지분이 있다. 자책으로 인한 고통이 그의 심장을 강하게 움켜 잡는다.  끝까지 걸쳐진 거친 숨에 침까지 흘러나온다. 엉망으로 얼굴을 구기며, 그의 감정은 곧 분노로 이어졌다.

뭐가 정의로운 소금 부대냐. 뭐가 민중의 평화를 위해서냐. 전부 빌어먹을 광대놀음이고 소모품이다. 이 자리의 전원을 죽여야 한다. 인륜을 벗어난 모두를 죽여버려야 한다. 요나라는 괴물을 찢어 죽여야 한다. 그  나도 죽는 것이 맞다. 죄를 청산해야 한다.

전부. 전부 죽어라. 이 빌어먹을 땅을 밟고 사는 모든 생물체를 증오한다. 환멸감에 토가 나온다. 끔찍한 괴물들 사이에서, 괴물이라며 스스로를 경계하던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져 구역질이 나온다.

칼린은 피로 검을 뽑아내 가까이에 있는 '배터리'의 배 안에 찔러 넣었다. 짧은 단말마가 울리고,  그것은 고개를 떨궜다. 죽고 나서야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리하는 그 모습에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결정한  같네."
망설일  없다. 여기 있는 전원을 죽여내고, 나의 죄를 씻어내자. 괴물이 되어버리자. 그거면 된다. 그거면 되는데.

"따라와 주지 않는 거구나."
그럴 수가 없다. 미련하게도. 칼린은 그럴 수 없다. 이 세상의 역겨운 일면을 바라보고 나서도, 그는 사람을 증오할 수 없다. 스스로를 혐오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화살을 돌리는 것은 해내지 못한다. 차오른 숨이 마치 흐느낌처럼 그의 호흡을 끊어낸다.

"전... 저도 모르겠어요..."
"이걸 보고도 말이지."
"역겹고 혐오스러워요. 환멸감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아...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리하..."
발걸음을 옮기며, 그는 옆에 있는 배터리들을 하나씩 찌른다. 그 감각이 그의  안에 진하게 달라붙어서, 선명한 고통으로 그의 가슴에 박혀 들어간다.

"전... 전 이리하처럼 단호하게 결정해낼 수 없어요...!"
"지금은 그걸로 좋아."
이리하는 엉망으로 일그러진 칼린의 얼굴을 향해 다가가, 그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 후회 없는 네 선택이라면, 그걸로 좋아."
칼린은 그녀를 향해 검을 세울  없었다. 또 한번, 그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회색지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리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생겨난포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사랑해."
그리고 담담히 그렇게 말했다. 칼린은 얼굴에 검정색 피를 닦아내고서, 멍하게 이리하를 마주 보았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 이제 이 비행선은 활공을 시작할거야. 하지만 여긴 활공지로는 적합하지 않아. 살아남으려면 뭐라도 해야  꺼야."
그녀의 눈에 눈물이  방울 흘러나온다. 딱 한 방울. 그것은 뺨을 타고 흘러 턱까지 느리게 떨어진다.

"어떤 선택을 하게 되더라도 응원할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에, 이리하는 눈가를 닦아내고서 포탈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