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활공(滑空)
'영주님! 일어나십시오! 위급상황입니다!'
요나는 문 앞으로 들려온 다급한 발소리에 눈을 떴다. 그리고 그 뒤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즉각적으로 환복을 끝마치고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습격입니다! 니노씨가 사망했어요!"
"뭐?"
요나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폭음이 들려왔다. 아래쪽에서 울린 폭음은 곧 거대한 흔들림을 불렀다. 방이 크게 기울며, 물건들이 이리저리 날아가 깨졌다. 요나는 문틀을 악력으로 붙잡아 버틴 뒤 상황을 즉각적으로 파악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8영주가 타고 있는 비행정을 기습해?"
"일단 따라오세요! 영주님들부터 대피해야 합니다!"
승무원은 다급하게 그렇게 소리 지르고서, 요나의 팔을 잡아 끌기 시작했다. 요나는 짐을 쌀 틈도 없이 그를 따라가며 검을 고쳐 쥐었다.
"상황이 벌어지는 곳으로 안내해라! 내가 막는다!"
"안됩니다!"
"난 군인이다!"
"지금은 8영주의 위치가 우선입니다!"
그녀에게 달가운 말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사실이었다. 일단 8영주가 전부 탈출에 성공해야 했다. 다른 전원이 죽더라도, 그들 8명만 살아 있다면 어떻게든 국가 붕괴는 막아낼 수 있다.
"... 젠장."
"이쪽입니다!"
승무원은 그녀를 이리저리 잡아끌며 어딘가로 안내하고 있었다. 요나는 곧 그 승무원의 팔을 거칠게 풀어냈다.
"영주님!"
"내 종자를 구해야 한다."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자, 빨리!"
다시 그녀를 잡으려는 승무원의 팔을 밀쳐내고서,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 맨 처음 탑승 전에 안내가 있었다. 탈출 루트를 어디로 정했는지, 8영주들에게만 따로 정해진 길이 있었을 것이다. 승무원들과 8영주만이 아는 비밀 최단기 루트였다.
그리고 그가 그녀를 안내하고 있는 길은, 그런 최단기루트가 아니었다. 하다못해 탈출 경로에도 벗어나 있었다. 요나는 그 승무원을 노려보았다.
"... 내 종자를 구해야 한다."
승무원은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느꼈다. 그는 숨을 들이마시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 따라오시지 않으렵니까."
"내게 같은 말을 세 번이나 시키려는 건가. 대담하군."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그를 무시하듯 등을 돌렸다. 승무원은 그때를 노렸다는 듯 번개같이 양손을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으로 옮겼다. 그의 검이 검집을 삐져나와 빛을 발할 때였다.
요나의 다리가 뒤로 뻗어나와 그의 검을 잡은 손을 차냈다. 그가 고통에 검에서 손을 떼자, 요나는 그대로 그의 팔 안쪽으로 팔을 집어넣고 꺾어 들어 올렸다. 칼린이 가르쳐 준 기술이었다.
"으...으익-"
한쪽 팔을 봉쇄당한 그는 반대쪽 팔로 요나를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요나는 잡고 있던 팔을 완전히 꺾어 부셔올린 뒤 그대로 팔꿈치로 그의 턱을 후려쳤다.
이빨이 부서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그의 고개가 크게 젖혀지자, 요나는 그의 다리를 뒤로 걸어 그를 뒤로 눕혔다. 그가 완전히 누워버리자, 그녀는 그의 입 위로 거세게 발을 내리찍었다. 승무원의 아래턱과 목이 완전히 부서졌다. 그는 몇 번 움찔대다가, 곧 몸에서 체액을 뿜어내며 움직임을 멈췄다.
요나는 끈적해진 구두를 천천히 그에게서 뗀 뒤, 착검을 다시 하고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표정은 이미 평정을 잃은 것이었다. 불안함에 하얗게 질려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떨고 있었다.
"칼린... 칼린!"
그렇게 중얼대며, 그녀는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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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은 잠을 자지 않는다. 자는 것보다 밤을 지새우는 것이 정신적으로 덜 피곤해졌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그는 모두가 깨어나는 시간이 될 때까지 창 밖만 망연하게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폭음과 함께 큰 진동이 그의 방을 뒤흔들었다.
그는 진동에 휘말리지 않도록 균형감각을 이용해 벽과 천장 등을 이리저리 밟으며 넘어지는 것을 피했다. 진동이 멈추자, 그의 머릿속에서는 단 한 가지밖에 떠오르고 있지 않았다.
"... 습격이다."
그는 중첩된 지위가 있으므로 개인 방이 따로 부여되어 있었지만, 8영주급의 귀빈실은 아니고 구석 쪽에 따로 존재하는 방에서 혼자 머무르던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요나의 안전이었다. 그다음은 원인 파악이다. 요나의 방까지 찾아가기 위해, 그는 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착검한 후 방문을 박차고 나왔다.
붉은색으로 점등하기 시작한 조명들. 시끄러운 소리. 그는 이런 시청각적 요소에 상당히 민감해진 상태이다. 그런 아수라장들 속에서, 패닉은 빠르게 전염되었다. 귀족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서로를 붙잡고 있었다. 칼린은 자신에게 달라붙으려는 귀족들을 밀어내며, 때로는 발로 걷어차 내며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영주실, 영주실...'
마음속으로 그렇게 되뇌이면서 이리저리 달리고 있으니,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당연하다. 그가 가는 방향은 안내에서 공지한 탈출루트와는 정 반대의 길이었으니까.
점점 사람의 소리가 줄어들며, 마침내 그는 비행선 내부의 경고음만이 울려 퍼지는 지점까지 도착했다. 방향이 기억나지 않아 그가 표지판을 확인하려 할 때 였다. 저 앞에 있는 모퉁이에서, 한 여성이 느릿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타이즈의 수녀복. 느린 발걸음. 손에는 칼린의 검과 비슷한 정도의 길이를 가진 검까지. 그녀는 수상하다는 단어로는 부족할 정도로 수상해 보였다. 곧, 칼린은 그녀의 보랏빛 눈을 마주했다.
"... 누구냐."
칼린이 먼저 검을 잡았다. 그의 눈이 조금 붉게 물들며, 가면 밖으로 흉흉한 기운을 뿜는다. 하지만, 여성은 거기에 웃으며 화답하고서, 그를 향해 손 키스를 날리고 말하는 것이다.
"궁금하면 따라오시죠."
그렇게 말하고서, 그녀는 방향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칼린은 우선순위를 바꿨다. 먼저 저 위험분자를 잡아야 한다고, 그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흔들리는 비행선 안에서 재주 좋게 균형을 유지하며 그녀의 뒤를 따라 달렸다.
그녀도 상당한 실력자인듯했다. 균형감각에 칼린에게 뒤지지 않았다. 이리저리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던 그 둘은, 어느새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 칼린은 검을 고쳐지며 그녀를 향해 겨누고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신원을 제시하세요. 마지막 경고입니다."
"살벌해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등지고 있는 문을 활짝 열었다. 칼린은 그제야 자신들이 있는 위치를 파악했다. 이리하와 왔던 곳. 비행선의 기낭외피와 이어지는 탈출로였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장 재앙일 부분은 뭐... 기낭외피와 엔진실이겠지.'
그의 머리속에 떠오른 것은, 전날 니노와 했던 대화였다. 저 세력은 이 비행선째로 터트리려고 하는 것 같았다. 칼린은 더 생각할 것도 없었기에 다급하게 그녀를 뒤따라 나왔다. 그리고 기낭외피의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거세게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아래에서 폭발해 올라오는 연기가 그의 눈을 메케하게 찌른다. 구름을 가르며, 비행선은 감속할 기세를 보이지 않고 날고 있었다. 이리하와 달밤을 봤을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아마 조타실도 이미 점령당한 듯 했다.
이대로 기낭외피에 손상을 입으면 모두 죽는다. 칼린은 눈을 한번 비비고서, 가면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사다리를 올랐다. 그러자 기낭외피 위 플로어에, 마치 자신을 기다리듯 팔짱을 끼고 서 있는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칼린은 완전히 사다리를 오른 뒤 그녀와 마주섰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
그녀의 목소리는 신기한 것이었다. 기내에서는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느끼지 못한 것도 이상할 정도였다. 이렇게나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도, 전달력의 차이라고 할까. 조곤조곤히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칼린에게 분명하게 전달되어 들려왔다. 마치 머리속에서 직접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였다.
"제가 기억 안 나시나요?"
움직임 또한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외부에서 보일 만한 것이 아니었다. 머리카락과 케이프는 끊임없이 휘몰아치고 있었지만, 타이즈를 입은 몸은 정적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 모습에 칼린은 그녀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목걸이를 꺼내 목에 둘렀다. 곧 칼린의 시야가 일렁이며, 보라빛 눈과 머리칼을 한 고혹적인 여성에서, 상대적으로 평범하게 생긴 갈색머리 여성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페이크와 같은 모습이었다. 물론 칼린은 그걸 알아보지 못했다.
"... 알아보지 못하는 건가. 뭐, 상관없어요."
"절 여기로 유인한 건가요?"
"그럼요. 싸우기 전에 잠깐 대화나 해 볼까 하고..."
"문답무용."
칼린이 먼저 덤벼들었다. 역풍을 갈라내며, 그는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여성은 그 검을 몸을 살짝 비틀어 피한 뒤, 마치 안개처럼 어디론가 흩어지듯 옆으로 빠져나갔다.
"성급하시네요.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그 한순간. 단 한 순간 시야를 놓쳤는데, 이미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칼린의 반사신경은 제리코의 움직임까지 따라잡았던 것이다. 그는 처음 겪는 현상에 크게 당황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이 참에 자기소개를 하죠.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작은 조직의 수장을 맡고 있는 프레데리카 라고 합니다. 당신은?"
"자기소개는 얼굴 보면서 하죠."
"칼린인가요. 당신 같은 고귀한 존재에게 걸맞지 않은 천박한 이름이네요."
어딘가, 칼린의 주변에 있는 것은 확실했다. 목소리가 그의 주변으로 돌고 있었다. 칼린은 도움이 안 되는 시야를 포기하고, 청각을 조금 더 집중했다.
"칼린씨, 우리 조직이 뭐하는 곳인지 알고 계시나요?"
방금, 모르는 손길이 그를 도발하듯 등을 훑고 지나갔다. 칼린은 방금 자신이 급소를 당할 뻔했음을 알고 먼저 몸을 크게 뒤로 빼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눈을 감고서 소리에 집중했다.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칼린이 교주의 말에 경청하는 형태가 되었다.
"우리 조직은 소외된 사람, 착취당하는 사람, 고통받는 사람, 등. 사회구조에 억눌려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모였답니다. 위대한 분의 뜻 아래에 우리 모두가 평등한 사람이자 인격체임을 인정하고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모여들었죠."
그녀는 칼린을 바로 죽여 없앨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에게는 절호조의 기회였다. 기회만 잡히면, 그는 그녀의 하얀 목살을 베어 가를 준비가 끝나있다.
"조금 다른 사람, 너무 강한 사람, 너무 약한 사람, 또는 노비들까지. 모두가 같은 사람인데, 그 대우는 천차만별이 되죠. 말 해 보세요, 칼린씨. 지성과 인격이 있다면 인격체로서 존중받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너무 강하다느니 조금 다른 것 가지고 차별대우나 경계를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칼린의 집중은 거기서부터 조금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이야기를 더 들어서는 안 될 것 같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경계자세를 풀 수도 없었다.
"생각하지 않으셨겠죠. 그냥 그런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넘기시지 않으셨습니까? 언제부턴가, 그런 걸로 고민하는 스스로가 바보 같다고 느껴지시지 않으셨습니까? 무력감에 절망해 버려서 포기하시지는 않으셨나요?"
명백한 도발이었다. 칼린은 그 도발에 크게 휘둘리고 있음에도, 분명하게 집중을 유지하며 그 목소리의 위치를 따랐다. 얄밉게도 그의 검간, 그 바로 뒤쪽에 서 있었다.
"매정한 사람. 이대로면 저 혼자만 대화하겠군요."
그녀의 목소리는, 그렇게 말하고서 한 걸음 정도 앞서 나왔다. 그와 동시에, 칼린의 검이 뽑혀 나왔다. 분명하게 인간의 반응속도를 넘긴 검이었다. 그러나 그의 검은, 허망하게도 검날에 부딪히는 소리만을 남기며 중간에 멈춰섰다. 칼린은 그 충격에 눈을 크게 떴다. 눈앞에는, 교주가 그녀의 검을 부드럽게 움직이며 그에게 다가오는 장면이 있었다.
"제가 조금 더 우세한 상황이 되어야 대화를 해주실 것 같네요."
이상한 광경이었다. 그녀가 천천히 춤추듯 검을 움직이면, 그 검궤를 따라 검날이 그 자리에 남는 것이다. 초고속카메라에 초당 프레임이 남듯, 그녀가 검을 움직이는 궤도의 위로 그녀의 검날이 남아서 고정되는 것이다.
"마검 '글링어'... 이 검이 춤 춘 자리에는 '흔적'이 남습니다."
그녀는 허공에 검날들을 설치하며 칼린을 향해 느리게 다가온다. 더 검날이 많아지면 승기를 놓칠 것이다. 칼린은 그렇게 판단하고 다시 한 번,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정면으로 덤벼들었다.
그녀가 남겨둔 검날들 사이로 유연하게 파고들어, 그 검을 내리찍는다. 교주는 붉은빛 도신을 가진 그 검으로 칼린의 검을 막아낸다. 그리고 곧, 칼린의 명치가 세게 걷어차인다.
"카학...!"
칼린은 그제서야 그녀의 다리 쪽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오른 다리가 투명해진 상태였다. 반사신경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무릎 꿇은 칼린의 주변으로 검날들을 설치했다.
"분명 전면전이면 이길 수 있으시다고 생각하셨겠죠... 당신은 아직 부족해요. 정확히 따지면 전투경험이."
그리고 검날을 세 개 정도 연달아 설치한 뒤, 그 칼등 위로 앉아 검날 사이에 갇힌 칼린을 내려다 보았다.
"...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죽여."
"그런 살벌한 짓 하지 않아요. 대화나 하자니까."
그녀는 칼린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표정에는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검에 둘러싸여, 그 스스로는 분명 제 죽음을 확신하고 있음에도. 그는 이미 죽어있었다.
".. 생각했던 것보다 중증인걸요. 어쩌면 판단을 잘못했을지도."
"죽여."
"어떤 미련도 없으시군요. 하다못해 뭘 원망하는 것조차 없어. 진 게 분하지도 않으시군요."
"목숨 구걸이라도 바라셨나요?"
칼린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조소를 날렸다. 교주는 그런 칼린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약하게 눈가를 찡그린다.
"... 이건 정말... 비극이네요."
"비극?"
"현실을 바라보는 걸 완전히 포기하셨군요. 지쳐버린 거겠죠. 애초에 당신은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
"중요한 건 시작점이 아니라 자질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성자가 될 수 없어요... 당신의 정신은 분명 숭고한 것이었지만, 이젠 그것도 완전히 불이 꺼졌어요. 죄인은 아니지만, 당신은 아마 살고 싶지 않으시겠죠. 당신을 구하지는 않겠어요."
칼린은 그녀의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의욕을 잃었다. 결과도 나오지 않는 지금, 차라리 죽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때, 그의 몸을 움직일 한마디가 나왔다.
"그러니까 이건 마지막 자질시험입니다. 이 비행선이 떨어지는 걸 막고 싶으시겠죠. 기회를 드리겠어요"
"뭐?"
"기낭외피는 그냥 두겠습니다. 엔진실만 폭발해도 이 배는 끝이에요."
"... 제게 당신이 엔진실로 가는 걸 막으라는 건가요?"
"엔진실 담당은 제가 아니에요. 이리하지."
그 말에, 칼린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다가, 그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조용히 되물었다.
"... 누구라고?"
"이리하. 당신의 동료. 엔진실은 그녀의 담당입니다."
"무, 무슨 소리를, 아니, 당신이 어떻게 그 이름을..."
이리하. 조금 특별한 그의 동료. 처음에는 서로 경계했었지만, 지금 와서는 가장 믿고 있던 사람 중 하나였던. 길치에, 선물센스가 이상한. 서로 비밀을 공유했던. 자신을 사랑하는. 그 이리하.
"엔진실 담당은 그녀예요. 전 기회를 드린 겁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칼린을 향해 작은 쪽지를 건내 주었다.
"이건 당신의 주인이 어젯밤에 불태운 편지입니다. 제 동료가 복구시켜둔 거죠. 일단 가져가시죠."
그와 동시에, 그를 감싸는 검날들이 하나씩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교주는 더 말하지 않고 등을 돌렸다. 그녀의 눈앞으로 사람의 몸만 한 구멍이 드러났다. 그녀는 그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칼린은 무릎을 꿇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 칼날들이 전부 사라지고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몰려오는 바람 사이에서 조각상처럼 가만히 꿇어앉아 있던 그는, 고개를 하늘로 들어 올렸다.
"거짓말이야."
아니. 요나는 처음부터 그녀를 믿지 말라고 했어. 나도. 나도 어찌 되든 상관없어. 이 세계의 인간 따위 어찌되든 상관없어. 요나 이외에는 그 누구도 믿지 않았었단 말이야.
허탈한 혼잣말은 스스로 부정할 수 있는 것이었다. 바로 엊그제. 그 때 온 이 장소는 최고의 장소였는데.현실이 무겁다. 이성이 날아갈 것 같다. 막아놨던 것들이 튀어나온다. 밀려서 꾸덕꾸덕 기어나온다.
"... 이리하."
한껏 일그러진 그 얼굴에,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꽉 쥐어진 양 주먹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한숨처럼 튀어나온 그 말이야말로 절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