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6화 〉활공(滑空) (156/164)



〈 156화 〉활공(滑空)

얼마나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먼저 입을 연 것은 이리하였다.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거야?!"
"네?!"
"파티 말이야!  돌아가도 되는 거냐고!"
이리하의 말에, 칼린은 퍼뜩 정신이 든 듯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린다.

"맞다! 파티!"
"얼른 가자! 영주가 너 없는  눈치채면-"
"이리하씨 먼저 들어가세요! 같이 들어가면 안되니까!"
"안될  뭐야!"
"이리하씨랑은 가까이 지내면 안되니까!"
이제 와서? 이리하는  질문을 뱉어 내려던 것을 참아냈다. 살짝 얼 타던 그녀는, 곧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먼저 들어 갈게!"
그녀는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칼린은 아직 일어서지 않았다.

"더 보고 가려고?!"
"금방 따라 갈게요!"
"원하는 만큼 보다가 적당히 와! 나올 때 자물쇠 다시 거는  잊지 말고!"
칼린이 천진난만하게 이리하를 향해 웃어 보인다. 이리하는 왠지 그 웃음을 보기 부끄러워져서 붉어진 얼굴을 돌려 숨긴다. 그리고 천천히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기낭 외피 바깥쪽으로 커다란 판이 붙어 있다. 자세히 봐야 보이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보였다. 그 판 뒤로 강한 불빛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리라.

'추모자 목록: 아스타, 라드'
판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빛을 받으면 글자만 드러나게끔 되어 있는 구조인가.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교활한 년. 요나, 그녀 앞에서는 이 모든  계획일 뿐이겠지.

'멍청하군.'
그녀는 혼자그렇게 생각하며 몇 초 정도  판을 바라보다가,  무사히 사다리를 내려갔다. 발판은 남겨두고 문만 닫으며 비행선 안으로 들어온다.

뒤에 따라 들어올 칼린을 위해 자물쇠는 잘 보이는 쪽에 내려 둔다. 그리고 담배와 함께 손거울을 꺼내 든다. 역시, 밖에 있으니 머리가 난장판이 되어 있다. 그녀는 그걸 대충 손으로 빗어 넘긴  발걸음을 옮긴다.

"난 보통 파티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데 말이야."
혼자 그렇게 속삭인 뒤, 묶었던 머리를 다시 풀어 내린다.아쉬울 것도 없다. 미망인이 되기 전이든 후든, 그녀는 인파들 사이에서 환영 받는 존재는 아니었으니까. 즐기는 건 이미 칼린과 전부 끝냈다는 기분이다.

어차피, 그녀의 파티는 지금 하는 게 아니니까.

#

"모두들 즐기고 계십니까."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모인 인파들을 한번 쓱 둘러보았다. 본격적인 파티를 시작하기 전 축사. 사교파티같은 것을 꺼려하는 그녀지만, 지금은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오늘 이자리는, 윌레인의 영광을 무사히 지켜낸 열명의 용사들을 위해 개최된 것입니다. 지금은 일곱명 뿐이지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인파들 사이에서 소금부대를 찾아낸다. 여섯 명이 보인다. 빌어먹을 미망인도 어느샌가 돌아 왔는가. 그런데 자리에 칼린이 보이지 않는다.

"라드. 그는 타고난 지략으로 소금부대의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주던 자였습니다. 꺾이지 않던 고고함, 아스타에 이어서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리다니, 그저 아쉬울 뿐입니다."
말하면서도 그녀의 눈동자는 계속 움직이며 칼린을 찾아보고 있다. 설마 다른 년과 놀아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 쓸데 없는 생각들이 점점 머리를 잠식해온다.

"저를 포함한 이 자리의 모든 분들이 그를 사랑했으리라고 믿습니다. 지금은 그가 부디 편히 쉬었기를 바라며, 잠시 묵념해 주셨으면 합니다."
모두가 잠깐 술잔을 내리 들고서 고개를 숙인다. 침묵속에서, 요나의 유영하던 눈이 조심스럽게 홀로 들어오는 칼린을 발견한다. 칼린은 두리번거리며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같이 숙인다.

"이 위대한 걸작품은 지금도 라드의 죽음을 전국에 퍼트리고 있습니다.분당 45장 꼴로 홍보지를 퍼트리고 있으며, 기낭외피 밖에는 그의 죽음을 알리기 위한 거대한 현수막까지 부착되어 있지요. 그의 위대한 생을 기리기 위해 기꺼이 뜻을 같이해 준 라티아와 사갈에게 국왕의 축복이 있기를."
그녀의 눈은 칼린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약간 헝클어진 머리. 급하게 정돈한 것 같다만, 그녀를 속일 수는 없다. 도대체 어디에 있다가나온 거냐. 무얼 하다가 기어 들어오느냐.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무슨 짓을 벌였느냐.

"다른 8영주분들도 모두 기꺼이 이 축제를 지지해 주셨습니다. 신참인 저를 따돌리지 않을까 걱정이었는데, 어리석은 것이었군요. 나라를 위하던 자의 죽음 앞에 그런 하찮은 권력이  뭐란 말입니까. 여러분. 8영주의 이름 아래, 우리 고국의 태양은 절대 지지 않을 것입니다. 국가를 이끄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명예와 애국심을 잃지 않으실 테니까요."
국가가 무어냐. 명예는 또 무어냐.   곁에 두기 위해서 이 모든 지랄을 펼쳤는데,   어느샌가 내가 모르는 곳으로 훌쩍 가 있었구나. 날 피하는거냐. 거부하는 거냐. 잠깐 혼자 둔 새를 못 견디고 대체 어디로 갔다 온 거냐.

"반동분자 에테롬을 처리했고, 나라는 다시 안녕을 되찾았습니다. 길게 말하고 싶지 않네요. 지금의 평화가 누구의 희생으로 이뤄졌던 것인지 생각하며, 부디 엄숙하게 즐겨 주셨으면 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소금부대원들과 이 자리에 없는 먼저 떠난 자들에게 무한한 축복을! 즐겨 주십시요."
혹시. 혹시라도  흰색 쥐새끼를 찾아보려고 나갔다 온 거냐. 만약 그런 것이라면-

그녀는 축사를 마치고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다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시작되고, 느린 파티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춤추기 시작하는 인파들을 헤치며 거칠게 발걸음을 옮겼다.

"요나경, 축사 잘 들었습-"
"죄송합니다. 지금은 조금 바쁘군."
말을 걸어오는 귀족들까지 밀쳐내고서, 그녀는 점점 깊숙이 들어갔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한 명밖에 없었다. 다른 좀벌레들을 거침없이 치우며 다가간다.

"아, 요나! 대단한 축사였-"
"어디 갔다 온 거냐."
조금 경직된 칼린의 앞에서 발을 멈춘다. 칼린은 갑작스레 닥쳐온 현실에 몸을 한층  뻣뻣하게 굳힌다.

"...네?"
"어디로 갔다 왔느냐. 머리가 헝클어졌다. 다른 귀족들이 축사를 할 때도  자리에 없었지. 도대체 어디에 갔다가 오는 거냐."
치켜 뜬 눈은 타오르는 것 같았다. 칼린은 칼린대로 당황했다. 그녀가 이렇게 격하게 화낼 일을 했는지 필사적으로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이리하와 나갔다는 걸 들킨  같지는 않았다.

"... 그게..."
"제가 1층 바에서 보는 야경이 끝내 준다고 말해줬거든요! 그걸 잠깐 보러 갔다 온다더니, 참... 오래도 봤네. 야, 칼린! 좋았냐?"
난입해서 답한 것은 갤러한이었다. 갤러한은 칼린에게 어깨동무를 걸며 둘의 사이쯤 위치로 자리를 잡았다. 칼린은 조금 당황해 갤러한을 올려다보았다.

"...  칼린에게 질문했는데. 칼린. 저 말이 맞느냐?"
"... 네. 투명바닥으로 야경을 보면 어떨까, 궁금해져서..."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가면을 가려진 눈을 통해 갤러한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갤러한은, 속을  수 없는 웃음을 걸치고 요나를 향해 말했다.

"뭐, 축사  늦은  가지고 그렇게 화낼 필요가 있습니까? 어차피 우리를 위한 파티인데!"
그렇게 말하고서, 칼린을 감싸 안은 팔에 힘을 더 준다. 요나는 그런 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 갤러한, 칼린. 경고다. 자리를 비우지 마라."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거, 잡놈출신이다 보니까 실수했나 보네. 마음이 붕 떠버려서 말이요."
"죄송합니다..."
"그것뿐이라면 됐어. 칼린. 나를 따라와라."
"어이쿠, 잠깐. 영주님, 칼린을 조금만 빌려가도 되렵니까?"
그대로 칼린의 손목을 붙잡고 자리를 나오려던 요나는, 갤러한의 말에 성가신듯 고개를 돌렸다.

"... 하?"
"부대원들끼리 하고 싶은 대화가 좀 있어서 그러는데... 내일이면 퇴임식이니까 마지막으로 그 정도는 시켜줄  있지 않습니까?"
"들어줄 가치도 없는 말이었군. 비켜라. 나도 할 대화가-"
"어이쿠, 지금 부대원들끼리 결속타임을 막으시려는 겁니까? 방금 전까지 그런 축사를 하셨던 분께서..."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고서 능청맞게 주변을 둘러본다. 주변 귀족들이 흘끔흘끔 이 쪽을 쳐다보고 있다. 요나는 작게 혀를 차고서 갤러한을 향해 속산인다.

"... 10분이다. 그리고 갤러한, 노린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따위 꾀는 상당히 불쾌하다. 무사히 전역하고 싶겠지."
"너무 그러지 마십쇼. 진짜 대화만 잠깐 하고 무사히 돌려보내 드린다니까."
잡혀 있는 칼린은 갤러한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  알  있었다. 그의 심장은 어딜 달리다 온 것처럼 빠르게 뛰고 있었고, 칼린을 잡은 팔은 딱딱하다 느껴질 정도로 경직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며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요나가 등을 돌리고 조금 멀어지고 나서야, 갤러한은 크게 숨을 내쉬며 몸에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칼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이리하 찾으러 갔다 온 거지?"
"...네."
"솔직히 말했으면 별로 좋은 꼴  볼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아니, 감사할 필요는 없고. 나도  찾고 있었거든."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조금 두리번거렸다. 지금 보니, 얼굴이  붉다. 아무래도 벌써 술을 조금 마신 듯 했다.

"취해야 할 수 있는 이야기예요?"
장난처럼 던진 칼린의 말에, 갤러한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 진다. 마치 속을 읽힌 듯한 표정이었다.

"... 조금 진지한 이야기긴 해."
"아..."
칼린도 짐작가는  많았다. 고양감이 조금 가라앉은 상태에서 생각해 보면, 지금 칼린과 갤러한은 조금 껄끄러운 상태이리라.

"갤러한, 저는..."
"일단 따라와. 부대애들 모이면  시끄러워질 테니까."
그는 칼린을 데리고 무도회장의 중간 쯤까지 파고 든 뒤, 거기서 방향을 틀어 야경이 보이는 창가 쪽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칼린의 팔에서 손을 떼고 입을 열었다.

"먼저 하나만 묻자."
"...."
"리쿠르트 해고시킨 거, 진짜 네 생각 맞지?"
역시 이 질문인가. 칼린은 무겁게 고개를 떨궜다.

"... 네, 맞아요. 선생님은 요즘 어떠신 가요? 모두와 같은 숙소를 이용중이라고 들었었는데."
"... 진짜 네가 해고시킨 거였구나."
의도적으로 대화 주제를 바꾸려던 칼린은 그 시도가 무색하게도 자연스럽게 다시 주제에 복귀했다.

"뭐라 할 생각은 없어. 네가 해고시킨 거라면, 내가 그걸로 뭐라 할 수는 없지. 그냥 궁금했어."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고서 창밖을 바라본다. 칼린은  말이 없어져 고개를 떨궜다. 둘 사이로, 잔잔한 오케스트라의 음악만이 흐르고 있었다.

"많이 멀쩡해 보이네."
"그런가요."
"그래. 배신당하고, 배신자였던 라드를 죽여버리고,도르베는 부대를 떠나버렸는데 말이야. 멀쩡해보여."
확실히. 취기 없이는 못할 말이었다. 칼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멀쩡하지 않으면 어쩌겠어요."
"죽은 거냐?"
"네?"
"내가 전에 했던 말 기억해?"
"... 무슨 말씀이요?"
"라무르 마을에서 했던 말."
칼린은 그 때의 기억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 때문에 그는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소니아랑 핀, 둘 다 패인이 됐었지. 핀은 어찌저찌 버텼다 쳐도, 소니아는 심했어. 라드가 죽은 직후에 손목을 그었었지."
"... 그랬나요."
"그래. 미친 것 같지?"
"별로-"
"미친   뿐이야."
칼린이 갤러한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갤러한은 눈을 마주하지 않는다. 그저 야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다른 애들이 보이는 증상은 트라우마지. 정상적인 놈이 힘든 상황을 겪을 때 보이는 증세야. 넌. 넌 우리 중 가장 정상이었는데. 그런데 이렇게 멀쩡하다고? 농담까지 던져 대면서? 이 파티가 무슨 파티인지는 알아? 라드의 장례식이다."
"갤러한?"
"라드가 죽었어. 넌 그 자리에 있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죽이려 했지. 처음에는 도덕경 따위나 읊더니, 이제 지 동료를 죽이게 되는 일에 눈도 깜짝 안 한다고?"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 목소리에 담긴 것은 분노나 질책 따위가 아니었다. 칼린이 가장 자주 접했던 감정. 그건 분명히 두려움이었다.

"무슨 일들이 일어났던 건지, 자각은 하고 있는 거야?"
"...  해야 할 일들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 누구를 죽일 때 아무 감정도  느껴지던?"
그 말에 떠오른 것은, 불과 한달 전 쯤 벌어졌던 성내 습격 사건이었다. 처음에, 그 여기사를 죽일 때에는 분명 한순간 망설임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거기에, 여기사를 죽이기 전에 느꼈던 망설임조차 '왜 죽일 수 없지?' 따위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칼린의 평정도 조금 흔들린다.

"제게서 무슨 말이 듣고 싶으신 건가요. 죽은 라드에게 사과라도 할까요?"
"또 빌어먹을 현실도피중인 건 아니냐?"
"전 제가   정도는 염병이 날 정도로 잘 알아요."
"그래서 그렇게 생각없이 다니고 있는 거냐?"
"그럼 제가 구석에서 질질 짜기라도 해야 만족하시는 겁니까? 내가 좆같이 힘들었을 때, 당신은 내 책임이 뭐느니 하면서 잘난  지껄여댔지."
"차라리 질질 짰다면 위로라도 해줬을 텐데. 전에도 말했지만, 난 시체한테  거는  따위는 몰라."
조금씩 서로를 향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갤러한의 말을 끝으로 다시 정적이 퍼진다. 칼린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떨군다. 갤러한은 조용히 씹는 담배를   꺼내 들어 입에 밀어 넣고서, 길게 한숨을 내쉰다.

"... 미안, 조금 흥분했어. 심한 말을  버렸네."
"... 제가 어쩌길 바라시는 건가요."
"넌 바뀌지 않기를 바랬거든.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사람도 바뀌고, 관계도 바뀌는 거야."
"전 적응했을 뿐이예요."
"모두가 적응해.  적응한 사람은 누가 있었는 줄 알아? 해롤드지. 지금 네가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제서야 칼린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의 얼굴 안에는 갖가지 감정이 엉망으로 뒤섞여 있다. 그가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칼린은 도무지  수 없었다.

"이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아니, 만약 하더라도 조금 더 괜찮게 말하고 싶었는데. 이젠 그게 안되네."
"제가 바뀌어서 그런 건가요?"
"내가 바뀌었어.  보는 시선이 바뀌어 버렸어. 역시 그게 제일 크겠지."

 수 없는 말을 뱉고서, 갤러한은 조심스럽게 팔을 뻗었다. 그 팔은 칼린 근처에서 정처없이 허우적대다가, 곧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 네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불편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갤러한이 뒤늦게 덧붙인 그 말은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칼린을 대하는 것은 명백하게 예전과 달라져 있었다.

"제가 뭔가 실수한 건가요?"
"아니. 아무것도. 그냥..."
이럴 수 있는 시간도 마지막일 텐데. 곧 떠날 칼린으로서는 그 어떤 응어리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미련은 없다. 적어도 살아남은 모두와는 끝까지 웃으며 이별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데.

"취해서 그래. 응. 취해서."
"... 그런가요."
"뭐, 즐기자고. 분위기 곱창내서 미안하고. 일단, 지휘관님이 쌍심지 키고 우리 쪽을 노려보고 있으니까. 고개 돌리지 말고 자연스럽게 절로 가. 알겠지?"
"... 네. 대화 즐거웠어요."
"뭔가 흐지부지하게 넘어가버렸지만, 내일을 평범한 대화나 할 수 있도록 해보자고. 리쿠르트가 뭐하고 있는지 안 궁금해?"
"원래 그런 거나 물어보려고 했는데 말이죠."
"미안하다니까... 취해서 그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서로  뭔가 캐묻는 일 없이, 아주 어른스럽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