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활공(滑空)
칼린도 이제 이 세상의 축제를 몇 번인가 경험해 보았다. 그도 나름 파티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가 파악한 순서를 가볍게 나열해 보자면, 먼저 한 구석에 오케스트라가 모인다.
다음은 종업원들이 간단히 차려 입고서 자리에 모여든다. 바로 이것저것 하지는 않는다. 그저 홀 내부를 살피며 인원 확인을 하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해 볼 뿐.
마지막으로 파티의 주최자와 주역들끼리 모여든다. 저녁 축사 등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보통 모이게 된다. 여기까지 끝난 상황이면, 보통 요리사들도 요리를 끝낸 단계에 도달한다. 그 때 부터는 파티 준비가 끝난 것이다.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시작하면, 종업원들은 박자를 맞추듯 움직인다. 귀빈들을 위해 고도로 훈련된 접객. 그 접객에는 객들이 음악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신경 쓰지 않게 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
요리들이 하나씩 세팅되기 시작하며, 술잔들이 오고 간다. 이제 즐기면 된다. 망나니처럼 혼자서 즐길 것이 아니라, 제대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응대하며 분위기에 섞이면 된다. 원형으로 둥글고 느리게 춤을 추며, 그것을 첫 축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반복한다.
첫째. 과식 금지. 둘째. 소음 금지. 셋째. 과음 금지.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하나, 파티에서는 천박하게 굴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런 선상파티까지 초대될 정도의 영주라면 인망도 두텁고 어느 정도의 관용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들은 굳이 고급스럽게 보이지 않더라도, 도를 넘은 천박함만 아니라면 눈쌀을 찌푸리지 않는다. 규칙만 지켜라. 그게 신세대 귀족들의 새로운 메타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소금부대는, 당연하게도 어떤 규칙도 없이 즐기는 중이었다.
"웨이터. 잔 말고 병으로 가져와."
"하지만..."
"아, 변명 안 들어. 병 가져와."
륑게는 그렇게 말하고서 웨이터가 들고 있던 쟁반을 가져가 얹어져 있는 잔 6개를 전부 들이 마시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다른 부대원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이미 귀족의 파티를 한번 경험해 봤겠다, 그들의 행동은 훨씬 대담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귀족들이 눈치주지 않는 것은, 세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저들의 신분을 알기에, 두번째. 저들의 공로를 알기에. 세번째. 파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기에. 소금부대원 본인들을 제외한 파티의 모두가 이번 축사가 소금부대를 통해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 중이었다.
"조금 더 신중하게 행동하죠, 여러분. 일단 우리들 빼고는 전부 귀족이니까..."
"칼린... 영주가 가르쳤냐? 재미없는 소리를 하네. 벌칙! 마셔!"
"... 릴로, 은근슬쩍 어깨 더듬지 말아주세요."
칼린은 달라붙는 릴로를 조금 밀어내며 시선을 굴려 보았다. 이리하는 눈에 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지나치게 아름답고, 동시에 불가해주자다. 그의 기억으로는 이번엔 염색을 하고 오지 않았었다.
"... 이리하씨, 안 오네요..."
"야, 칼린! 그러고 보니 묻고 싶었어!"
륑게가 결국 술병을 집어 들고 왔다. 그는 릴로를 완전히 밀어버리고 칼린에게 어깨동무를 걸었다.
"이리하가 너만 챙겨주는 거 너도 느끼고는 있었지?"
"네? 아뇨, 별로 그렇게는 생각 안 하는데..."
"어른스러운 대답은 집어 치워! 마지막이잖아! 솔직해져 보자구. 이리하랑 무슨 일 있었냐?"
그 질문에 칼린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녀가 자신의 성에 찾아왔던 날이었다. 그 때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널 좋아해. 날 믿어줘.'
그게 무슨 의미였나, 이딴 걸 생각해 볼 정도로 칼린은 어린애가 아니었다. 그는 가면을 고쳐 올리고서 괜히 릴로가 건내 준 술을 들이 마셨다.
"어, 진짜 뭔 일 있던 거야? 야, 뭔데!"
"진짜에요, 칼린! 그 이리하랑요?!"
"아무 일 없었어요! 진지한 대화하자는 게 아니었나요?"
"그런 걸 맨정신으로 어떻게 하나요!"
핀도 신나서 술을 들이 마시며 위태롭게 지팡이를 흔들어 댄다. 칼린은 그런 그를 불안하게 쳐다보다가, 그의 수행원을 자리로 불렀다.
"핀의 부축을 부탁해요."
"... 칼린씨, 저 제 주량은 잘 안다 구요... 여러분이랑 마실 때 무리해서 마실 뿐이지. 아직은 괜찮아요."
"그래도. 불안해서... 떠올려 보세요, 핀. 우린 지금 성 같은 데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칼린의 말에 핀이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끝없는 어둠. 그리고 그 사이 부끄럽게 광채를 밝히고 있는,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 보이는 두개의 달. 하늘을 느리게 유영해가는 비행선 안에서.
"크게 흔들릴지도 모르니까. 아시겠죠?"
"... 칼린씨는 정말 23살이 맞나요?"
"당연하죠. 전 이리하씨를 좀 찾아볼 게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옮겼다. 결정된 것이 있다. 그걸 그녀에게 전달해야만 했다. 그 날 이후로 만나지 못했으니까. 마음을 전달받았다면, 거기에 불성실하게 답해서는 안된다.
그는 무도회장을 나와 중간 홀을 따라 걷는다. 조용한 비행선이지만, 기계 자체에서 나는 소음은 어쩔 수 없다. 조금 웅웅 대는 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칼린은 벽에 뻗어 있는 배관 하나에 손을 대고 걸었다.
어둡고 조용한 홀. 그는 이 곳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언제부터 였을까. 태양 아래보다 어두운 곳이 마음이 편하다고 느끼게 된 것은. 아마 이 세계에 온 처음부터 그랬던 것이 아닐까. 숲에서 생존을 위해 이리저리 분투할 때. 그 떄는 살기 위해서 해가 떨어지고 움직였었다. 아마 그게 계기가 된 것은 아닐까.
일단 파티장에 사람이 많은 것이 그를 가장 불편하게 만들었다. 춤추는 귀족들이 자신의 근방에 다가올 때 마다, 그의 팔에는 어느정도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말 그대로, 휘두르면 그 상대를 반토막낼 힘 정도가, 어쩔 수도 없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 나도 바꼈네."
적응하는 건가. 앞으로 원래 세계로 돌아갔을 때 적응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일단 돌아간다면 최선을 다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둠 저 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많이 바꼈지."
다가오는 것은 이리하였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머리칼은 빛나고 있었다. 칼린은, 이미 1분 전쯤 부터 그녀가 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이 쪽으로 온 거니까.
"이리하, 찾고 있었어요."
"우연이네. 나도."
이리하는 싱긋 웃으며 칼린을 향해 다가간다. 그녀는 검은색 롱 드레스를 입었다. 이 세계에서 드레스는 처음 보는 것 같다.
"옷, 잘 어울려요."
"고마워. 내가 직접 골랐어. 넌..."
그녀는 칼린을 아래에서부터 쭉 훑어보고서, 피식 웃어버린다.
"넌 새까맣네. 까마귀 같아."
"그런가요?"
"그래. 가면도 이상하게 생겼어."
"이거 턱이 분리되요. 엄청 편한걸요."
칼린은 가볍게 웃고서 이리하의 옆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요나에게 배운 에스코트를 시도한다.
"난 에스코트 대상이 아닌데. 너랑 같은 군인이야."
"한번 받아보고 싶지 않나요?"
"선심 쓴다 이거야?"
"배운 건 써 먹어야죠."
이리하는 그가 내민 팔꿈치를 가만히 내려보다가 조심스럽게 새하얀 손을 뻗었다. 길고 하얗게 뻗은 손. 가녀려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여기저기 그녀가 벌여온 전부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색만 하얄 뿐, 공사장 인부보다도 더 뒤틀린 손을 가지고 있다.
"파티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어머, 고마워라."
홀을 걷는다. 둘이서. 긴 홀은 아니지만, 둘의 침묵은 그 공간을 억지로 잡아 늘리고 있는 듯 했다. 울리는 기계소리를 찢어내며, 둘은 그저 걸었다.
"이리하."
"왜?"
"영주님은 제가 당신과 있는 게 싫으시대요."
아무렇지도 않게, 화두가 던져진다. 이리하가 그걸 모를 리 없음을 알고서도. 그녀는 말 그대로 요나에게 맞아 죽을 뻔 했다.
"알고 있어."
"그런가요?"
그녀의 굽이 높은 신발은 양탄자 위를 걸을 때 기분 좋은 소리가 난다. 칼린의 신발도 통굽이다. 저벅저벅과 또각또각의 중간정도의 소리. 둘의 마음은 그 소리에 맞춰 점점 차분해진다.
"그 때 하셨던 말, 대답. 안 물어 보시네요."
"재촉은 멋이 없거든."
"어른이네요."
"어른이지."
그녀는 은빛 머리칼을 한번 쓸어 넘기고서, 아무래도 성가신지 평소처럼 묶어내려고 한다. 한 손으로 힘들게 고무줄을 꺼내는 그녀를 보고서 칼린은 잠깐 발걸음을 멈췄다.
"묶으시고 계속 가죠."
"고마워."
그녀는 칼린에게 가볍게 눈인사하고서 고무줄로 머리를 묶는다. 조금 숙여진 머리에, 머리칼만큼이나 투명하게 비치는 목덜미가 드러난다. 칼린은 그걸 보며 송곳니가 조금 간지러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리하는 언제나 절 믿어 주셨죠."
"넌 믿을 만하니까."
"동료가 되느니, 뭐느니. 그 말들도 사실은 절 꼬시려던 거였나요?"
"아니. 다른 쪽 문제였어. 부끄러우니까 그건 잊어 줄래?"
"동요를 안 하시네요. 재미없어라."
"설마. 속으로는 부끄러워서 울고 싶어 하고 있다고. 그것보다, 이성을 놀리는 게 너무 능숙한걸? 플레이보이였어?"
"지금은 여유로울 때니까요. 조금 플레이 한다고 큰 문제가 생기겠어요?"
이리하는 머리를 묶고서 칼린을 바라본다. 가면이 두꺼워 보인다. 부술 수도 없을 정도로 단단해 보인다.
"발걸음도 멈췄겠다, 재미없는 이야기 하나 듣고 가실 래요?"
"부탁해. 적적하거든."
"겁쟁이 하나가 있었는데... 그 겁쟁이는 세상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거에 적응을 못했대요."
"... 계속 해봐."
"자기만 바뀌면 될 일인데, 바뀌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있다가 계속 실수를 반복하고. 겁쟁이의 주인에게 민폐만 끼쳤죠. 그래서 겁쟁이는 세상을 뜨기로 결심 했대요."
이리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칼린도 굳이 정적을 깨지 않았다. 둘은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 엔딩이 어떻게 돼?"
"겁쟁이는 무사히 세상을 떠나요."
"누구랑?"
"혼자서."
"그건 겁쟁이 본인의 선택이야?"
"여러가지 요소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게 중요할까요."
"중요하지.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서 내린 결정이라면, 난 겁쟁이가 세상을 뜨는 걸 도와줄 거야."
그녀는 칼린의 팔을 잡는다. 칼린은 자연스럽게 팔을 조금 굽혀 그녀를 받친다.
"하지만 그 겁쟁이가 그저 도피하려고 세상을 뜨는 거라면, 두들겨 패서라도 말리겠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칼린을 잡아 끈다.
"어디로 가시나요?"
"보여주고 싶은 게 있거든."
"이리하, 전 방금 제가 할 말을 한 것 같-"
"받아들이지 않아. 네 대답은 이 배에서 내렸을 때, 좋다 싫다 로만 듣겠어. 그런 편법으로 넘어가려 하지 마."
그녀는 올곧은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거절당했음에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칼린은 그런 그녀의 강함을 동경한다. 그것은, 그녀와 서로 싫어해 마지 않는 요나에게서도 보이는 것이었다.
"싫다면 지금 확실하게 말해."
대답할 수 없었다. 그 은빛 눈동자가 너무 빛났기에. 이리하는 웃으며 그를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칼린은, 조금 끌려가는 형태로 그녀의 뒤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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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파티홀과는 반대방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조금 더 깊숙이. 조금 더 어두운 곳으로. 몇개의 문을 통과하고 나니. 맨 처음 미로코가 안내했을 때도 보이지 않았던 시설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몇번의 골목을 지나치고 나서야, 둘은 어느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문 뒤에서는 작게 바람이 세어 들어오고 있었다.
"여기는 어디죠?"
"문을 열어보면 알게 될 꺼야."
"하지만... 잠겨 있는 걸요."
칼린은 문에 걸쳐져 있는 두꺼운 자물쇠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이리하는, 별거 아니라는 듯 주머니에서 작은 갈고리와 핀셋을 꺼내 들었다. 3분 후, 자물쇠가 열렸다.
"자, 열어봐. 조심하고."
"... 부대에서 떨어져서 이런 걸 하고 계셨나요?"
"일단 열어보라니까."
조심하라니. 문 뒤에 도대체 뭐가 있길래. 칼린은 작게 중얼대며 문을 잡아 당겼다.
문 뒤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무슨...?"
"어때?"
밤바람이 불어 들어온다. 문 너머는 완전한 밤하늘이었다. 조금만 더 집중해서 보면, 밤하늘에 자수처럼 박혀 있는 별들이 보인다. 칼린은 몇 걸음인가 더 뒷걸음질쳐 그 광경을 바라봤다.
"이, 이런 문은 열면 안되는 거잖아요..."
"그래. 그런데 이쁘지?"
답조차 할 수 없었다. 아름다웠다. 역겨운 세계라는 것을 한순간 잊어버릴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기다려봐..."
이리하는 몸을 굽히고, 문 아래에 조금 튀어나와 있는 손잡이를 잡아 밀어낸다. 여러 번 접혀 있던 발판이 펴지며 맑게 조립음을 낸다. 끝까지 뻗자, 사람이 걸터앉을 수 있을 정도의 발판이 생겼다.
"따라와봐."
"자, 잠깐 이리하씨!"
이리하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발판을 타고 앞으로 나선 뒤, 문 옆에 있는 비행선 외피에 달린 사다리를 잡아 오르기 시작했다. 칼린도 당황해 그녀를 잡으러 따라 올라갔다.
"이리하씨! 위험해요!"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모험은 싫어해?!"
"싫다구요! 얼른 내려와요!"
그녀는 고개를 내려 칼린을 보고서 웃었다. 칼린은 사다리를 오르며 계속 시야를 가리면서 흩날리는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녀는 다시 시선을 들어 올리고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칼린은 벌써 훌쩍 올라가 버린 그녀를 따라 조심스레 사다리를 올랐다. 바닥을 보면 안돼, 바닥을 보면 안돼,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그는 지금 이 상황을 퍽 즐겁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사다리의 끝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비행선의 최상단, 기낭 외피의 위까지 올라간 상태였다.
"발걸이에 발 걸치면서 와! 바람이 세니까!"
이리하의 목소리에 칼린은 바닥을 보았다. 사다리와 같은 형태로 굽어 있는 철사들이 여기저기 박혀 있다. 여기에 발을 걸치며 한 걸음씩 가는 건가. 그는 발을 걸치며 천천히 이리하를 향해 뒤뚱뒤뚱 걸어갔다.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이리하!"
탓하듯 소리치는 목소리에, 분노는 담겨있지 않았다. 걱정 반, 즐거움이 반이었다. 이리하는, 그런 칼린을 보고 조금 웃으며 발걸이를 잡고 옆을 보며 앉았다.
"여기 와봐!"
기낭 외피 위는 평평했다. 스테이지라고 해야 할까, 아마 정비하는 자들만이 밟게 될 곳이겠지만, 분명히 안정된 바닥이 있는 곳이었다. 아마 발걸이가 없어도 강한 바람만 불어오지 않으면 낙사하지는 않을 정도의 넓고 평평한 바닥이다.
칼린은 힘겹게 이리하의 옆까지 다가가 양 손으로 발걸이를 잡고 몸을 쭈그렸다.
"도대체 여기는 왜 데려온 건가요?!"
"앞을 봐!"
칼린은 이리하가 보고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커다란 달이, 시야를 가득 매우고 있다. 이 순간, 칼린의 머리는 다른 모든 것을 잊었다.
"어때?!"
"아름다워요..."
작게 중얼거린 말은 비행선 밖에서는 전달되지 않을 것이었다. 가면까지 쓰고 있으니 읽어내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 풍경을 본 사람이 할 말 따위는 정해져 있는 것이다. 이리하는 웃으며 다시 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런 풍경을 가면 쓰고 보기는 아깝지 않아?!"
"... 정말 그러네요!"
칼린은 그렇게 소리치고서 가면을 벗었다. 자연스럽게 그것을 던지려던 손을 멈추고, 그는 가면을 조심스럽게 품 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달을 바라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처음부터 절 벗겨볼 생각으로 불렀군요!"
"틀린 말은 아니지!"
서로를 향해 소리치며, 둘은 아이처럼 웃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칼린은 전상민으로 돌아와 있었다.
"... 이 비행선에서 내리게 되면 말이야!"
"네!"
"그 때는 넌 어떤 방향으로든 바뀔 거야!"
또 아리송한 말. 지금만큼은 그만 둬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또 그녀답다. 달처럼 떠있는 그녀에게는, 뒷면같은 비밀이 있는 게 어울린다.
"난 그 때 네 대답을 들어야 겠어!"
분명 칼린의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그 스스로도 알고 있다. 당장 내일이 연구 발표일이다. 생각이 바뀔 리가 없지. 그럼에도, 그녀가 보여준 풍경은 너무 아름답고 귀중한 것이었다.
"... 이번엔 이리하가 이겼어요!"
잔뜩 웃음이 섞인 말이었다. 이리하가 그를 향해 담배를 건내 주었다. 그녀는 그대로 성냥을 찾아 불을 붙이려 했지만, 강한 바람에 붙일 수 없었다. 곧 그녀는 그 작업을 포기하고 성냥과 담배를 저 멀리 하늘로 집어 던졌다.
"곧 초광월이 찾아올 거야!'
완성되지 않은 두개의 보름달. 칼린은 그저 그 풍경에 사로잡혀 더 이상 이리하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리하는 한번 더 소리쳤다.
"그 날, 내가 널 구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