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활공(滑空)
비행선이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기내에 불안한 소음이 발생하며 조금 흔들린다. 내부의 귀족들은 불안과 기대가 섞인 눈으로 창 밖을 바라본다. 천천히, 비행선이 부상하기 시작한다.
하늘을 찢으면 이런 소리가 나는 걸까, 그런 말이 들려올 정도로 큰 소리가 울려 댔다. 비행선은 적은 소음이 장점이지만, 아무래도 이 정도의 규모가 되면 소음문제까지 챙기는 것은 힘들었다. 떠오르기 시작한 비행선은 마침내 날아오른다.
시야가 점점 넓어진다. 올라가고, 올라간다. 귀족이고 승무원이고 신이 나서 창 밖을 바라본다. 어느정도 비행 안정권에 들어서자, 소음이 잦아들고 부드럽게 '둥실'하는 감각이 찾아온다. 그 조금 간지러운 감각에 모두들 한번 휘청이고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다. 이륙할 때는안전벨트를 매는 게 상식이겠지만, 이 세계에는 아직 비행 메뉴얼이 없었다.
벨카가 하늘을 찢는다. 마침내 구름을 뚫고 고공을 가른다. 천천히 비행선의 뒤 트렁크가 개방된다. 쌓여 있던 종이들이 한 장씩 바람을 타고 날아오른다. 작은 나비처럼 팔랑거리며 떨어진다.
찬란하게 흐트러지는 종이는 마치 비행선이 끝부터 산산이 부서지는 듯 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그 누구도 볼 수는 없었지만, 정말 꿈과도 같은 장면이었다.
#
"술은 적당히 즐기시는 거예요, 요나..."
칼린은 말은 그렇게 던지면서도 시선은 요나를 향해 있지 않았다. 그는 양 팔을 바닥에 짚고 투명한 바닥을 바라보는 것 외에 여념이 없었다. 하늘 위를 걷는 느낌. 그에게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다리 힘이 탁 풀리고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그리도 재밌더냐. 미련한 것..."
요나는 조금 불퉁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저렇게 애처럼 즐거워하는 칼린도 처음 보는 것 같아 그냥 내비 두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바의 술을 하나 가져와 칼린의 옆에 앉았다. 바닥에 그렇게 앉아버리는 것은 귀족으로서 어떤가 싶은 일이었지만, 지금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저기 흩날리는 종이들이 전부 우리를 홍보하는 종이인 건가요?"
"내용물이 궁금하다면, 가져다줄 수도 있다. 너와 난 이 비행선에 조타실만 제외하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어. 그럴 권한이 있지."
"정말요?"
칼린은 떠내려가는 종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그 말에 고개를 들어 올려 요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혹시 동력실도-"
"동력실은 안된다."
차가울 정도로 단호한 답을 하고서, 요나는 칼린을 바라보았다.
"엔진관련 실은 절대로 안된다. 권한의 문제가 아니야. 안전성의 문제다."
"아... 죄송합니다. 진짜 갈 생각은 없었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알겠느냐, 칼린. 동력실은 안된다."
"네."
확답을 듣고 나서야 요나는 표정을 풀고 다시 웃어 보였다. 그리고 같이 투명한 바닥을 내려다보며 술잔을 홀짝였다.
"이 비행선은 어디로 가는 건가요?"
"하인킬을 향해 갔다가, 네르바 쪽에서 선회해서 다시 라티아로 돌아올 거다. 소금부대가 지나온 길을 다시 거치는 거지."
"아..."
문득 그의 머리속에 라무르 마을과 칼타코가 떠오른다.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요나는 마치 그의 생각을 읽어낸 듯 입을 열었다.
"라무르영지는 하인킬을 향하는 길에 지나쳐 간다. 그 쪽이 전단지를 기뻐할 지는 다른 문제다만... 그리고 칼타코는 내가 좋은 생각이 아닐 것 같다고 제안했지. 아무래도 동떨어진 곳이고, 군사구역이기도 하고, 솔직히 좋은 기억은 없을 테니까."
명쾌한 답에 칼린은 말없이 바닥만 쳐다보다가 조용히 무릎을 모았다.
"그렇죠.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요..."
"많은 일을 해냈지. 실수투성이었지만, 어쨌든 해낸 거다."
"별로 떠올리고 싶지는 않네요."
첫 임무. 라무르 마을 복구 산업, 괴물 처치. 성공.
두번째 임무. 국가 재해급 위험도 A의 네크로맨서 사냥. 성공.
세번째 임무. 충족 토벌. 성공
네번째 임무. 칼타코와의 분쟁조절. 성공.
다섯번째 임무. 비공식임무, 배신자 라드 처단. 성공.
벨카호가 기억속을 유영해 간다. 그 상공에서 자신들이 지나온 길을 읽어낼 수는 없었지만, 칼린은 어렴풋이 떠올리기 싫었던 기억들을 회상하고 있었다. 전부 더 잘해낼 수 있던 것 뿐이었다.
"하나하나가 무리수에 가까운 일들 뿐 이었지. 원래는 대형 군대를 파견해서 해냈어야 할 일들이었다. 자랑스러워 해도 좋다는 거야."
칼린에게는 자랑스러울 것조차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다. 마리나 소니아라는 이름은 떠오르지만, 이제 와서는 그게 누구였는지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네 마음의 짐은 내가 짊어질 테니. 가볍게 즐기면 된다. 지나간 과거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맞지?"
그렇게 말하고서 요나는 조금 용기를 내 칼린의 손을 잡는다. 칼린은 그 손을 맞잡는 것으로 답한다. 그러나 머리속은 다른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 짐을 요나가 짊어진다. 그녀의 배려이고, 당연한 것이라고도했다. 주종관계란 그런 것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그래도 되는 걸까.
"라드의 장례식은 언제인가요?"
"내일 저녁. 저기 있는 파티 홀에서 치뤄질 예정이지. 이것 저것 많은 게 준비되어 있다. 벨카 호가 왜 검은 색인지 짐작가는 이유가 있느냐?"
"... 영주님이 좋아하시니까요?"
칼린이 이렇게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요나는 시종일관 검은색 정장을 입었고, 칼린에게는 보통 셔츠까지도 검은색으로 맞춰 입도록 하게 했으니까. 하지만 요나는 딱히 검정색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칼린이 검은 옷을 입었을 때 나오는 분위기를 좋아한 것이고, 검은 정장 특유의 어디든 사용 가능한 범용성을 좋아했을 뿐이다.
"기낭외피에는 벨카에서 만들어낸 조명이 달려 있지. 밤 하늘에 별들을 보던 사람들은 전부 보게 될 것이다. 어떤 비극이 일어났었는지 말이야."
"아하... 확실히, 좋은 생각 같네요."
"그나저나 하나 정정해 줄게 있군. 난 검은색을 좋아하지는 않아. 아니, 좋아하지 않았었다, 가 맞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칼린의 어깨를 잡아 끌었다. 그녀는 이색적인 분위기에 취해 조금 무리하고 있었다. 상기된 볼을 감추기 위해 담배를 꺼내 들고서, 그녀는 칼린을 끌어안은 팔에 조금 더 힘을 줬다.
"원래 내가 좋아했던 색은 파란색이야."
"파란색이요?"
"그래.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네가 배운 단어는 아니겠지만, 코발트블루라는 색을 좋아한다. 뭐랄까, 새벽빛의 색이지. 가끔 너무 일찍 일어나 버렸을 때 창 밖에서 네 이불을 적시는 그 색이 코발트 블루란다."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목을 한번 풀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바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조금 더 칼린에게 붙어 그의 가면을 잡아 올렸다.
"검은색은 네가 오고 나서부터 좋아지더군."
"저요?"
"그래. 왜일 것 같느냐."
분위기가 조금 무르익었지만, 칼린은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조금씩 다가오는 요나가 부담스럽고 부끄러워 조금 눈을 피했을 뿐이었다.
"모르겠네요..."
"네게 검은색이 어울리기 때문이란다."
반면 요나는, 이제 후진할 생각이 없다. 참아야 할 기간동안 훌륭하게 참아냈다. 8영주가 되었고, 자신의 영지 이름을 딴 천공섬에서 이렇게 서정적인 분위기까지 완성되었다. 유혹에 능숙하지 않은 그녀는 이제 그저 진심을 부딪쳐낼 뿐이다.
"우리가 처음 만난지 10개월이 조금 넘었다, 칼린. 하지만 우리는 아직 서로 좋아하는 색조차 모르고 살아왔구나. 서로 알아 갈 시간이 별로 없었지."
"... 요나? 지금 너무 가까워요..."
"좋아하는 색은 뭐니?"
"거, 검은색-"
"좋아하는 음식은? 좋아하는 스타일은?"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건 이세계 기준인가요, 아니면..."
"네가 좋아하는 음악은 어떤 종류였느냐. 네가 전에 말한 레코드판이라는 건 어떤 물건이느냐.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느냐? 아니, 역시 방금 질문은 없던 걸로."
요나가 점점 몸을 가까이 들이민다. 칼린은 계속 고개를 뒤로 빼다가 마침내 뒤로 넘어지고 만다. 요나는 그런 그를 덥치듯 같이 고개를 떨군다.
"요나, 아무리 그래도 이건 누군가에게 들키면 뭐라 변명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뭘 변명한단 거냐."
그녀는 칼린의 가면을 완전히 벗겨내고서 그의 눈을 바라본다. 서로의 숨결이 닿는다. 요나의 머리카락이 늘어져 칼린의 뺨을 간지럽힌다. 그제서야 칼린은 미묘한 기류를 읽어내고서 입을 다문다.
"난 아직 네가 궁금하다."
그가 등지고 있는 투명한 바닥으로 보이는 하늘이, 마치 둘만이 이 하늘을 유영 중이라는 착각이 들게 만든다. 적어도 요나는 그렇게 느꼈다. 둘만의 공간. 둘만의 유영. 이 창공에서, 오롯이 둘만이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대화하고 있다.
하늘의 색을 받아 푸르게 젖은 바는 불조차 켜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밝았고, 서로의 눈을 마주하기에는 차고도 넘친 것이었다.
"이 3일동안, 나에게 가르쳐 다오."
#
이리하는 동료들을 두고 혼자 비행선 내부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갤러한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로서는 요나와 칼린이 같이 있는 걸 가만 두고 볼 수는 없었다.
"... 지랄맞게 넓군."
이 장소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구역질이 나왔다. 내부가 얼마나 화려하든, 그녀에게는 그저 역겨운 장소일 뿐이었다. 그녀는 머리를 묶어 올리고서 가볍게 쌍욕을 뱉어 대며 시설들을 돌아다녔다.
아무튼 칼린이 보고 싶었다. 그에게는 들어야 할 대답도 있다. 또 어딘가에서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면 가슴 한 켠이 다시 아려 와 진다.
평속으로 걷던 발걸음에 조금 속도가 붙는다. 그리고 그녀가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향해 가던 때 였다.
모퉁이에서 한 여성이 불쑥 튀어나온다. 요나는 급하게 발을 멈추고 뒷걸음질을 친다. 모퉁이에서 나온 것은 보라색 머리를한 귀족이었다.
"어머, 이리하. 어디로 가시고 계셨나요? 소금부대원들과 함께 있을 줄 알았는데..."
"아, 교주님..."
그녀는 얼굴조차 숨기지 않았다. 그저 귀족식으로 옷을 입고 이 비행선에 올라탔을 뿐이다. 꽤 허술한 대처가 아닌가 싶지만, 교주의 얼굴은 단 한번도 수면 위로 떠오른 적이 없었으니 나쁘지는 않은 선택이다.
"허단 디알테스타만. 칼린을 찾고 있었습니다."
"... 성자라고 부르지 않으시네요. 이름으로 부르시는 군요."
"제 입장은 바뀌지 않았으니까요."
그녀는 칼린이 원하는 방향을 지지하기로 했다. 어떤 강요도 조종도 없이, 그저 요나의 속박에서 풀어주고서 그의 선택을 존중해 주기로 한 것이다.
신앙도 신념도 넘어선 선택. 그녀가 마주하는 것은 이제 온전한 칼린 뿐이었다. 그리고 교단은, 기본적으로 행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알기에 지금 길을 비켜 드리기는 힘들 것 같네요."
"... 무슨 말씀이십니까."
"성자와 요나가 같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당신을 노출시켜서 괜히 문제가 생기게 하고 싶지 않네요."
"하지만...!"
"우리 모두 벨카 영주의 집착이 얼마나 음탕하고 끔찍한 건지 알고 있지요. 그냥 최대한 위험요소를 줄이려는 겁니다."
이리하는 말을 멈추고 고개를 떨궜다. 이해는 하지만 깔끔하게 손을 털고 자리를 떠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이리하를 향해, 교주는 한마디 더 쐐기를 박아 넣는다.
"당신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그게 당신을 지지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교단에는 더 큰 목표가 있어요. 당장 이 배에서만 해도 말이죠. 부디 본분을 잊지는 말아주세요."
"교주님, 저는..."
"자매님의 마음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해해도 허락할 수는 없습니다. 조직의 수장이란 때때로 그런 법이니까요."
교주는 이리하를 살짝 밀쳐내며 앞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작게 속삭인다.
"그리고 교주로서 명령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 뭔가요."
"엔진실을 확인해 주세요. 교단에서 그게 가능한 건 이리하씨 뿐이에요. 직원으로 위장중인 분들 중에서도 엔진실에 접근 권한이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 알겠습니다."
"떠미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만, 이번 임무는 정말 중요한 겁니다. 성공한다면 상황을 크게 뒤엎을 수 있게 될 거예요."
이리하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에게서 멀어진다. 교주는 그런 그녀가 들을 수 있도록 조금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성자의 계몽은 확실히 이뤄낼 수 있으니까요. 부디 지금은 보다 큰 그림을 봐주시기를..."
#
소금부대원들은 승객들에게 둘러 싸여 이것저것 당하는 중이었다. 비행선이 무사히 이륙하고 나서 승객들의 관심사는 소금부대원들의 무공으로 이동했고, 결과가 지금 이 꼴이었다.
계속 쏟아져 나오는 질문들에, 모두들 힘들었던 것도 잊고 바쁘게 답하고 있었다. 릴로같은 경우에는 요나를 찾으려 할 정도였다.
이것저것 답해주던 그들은, 약 1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조금 쉴 틈이 생기게 되었다.
"나머지는 저녁에 조금씩 풀겠습니다! 여기서 전부 말해버리는 것도 폼이 안 사니까!"
갤러한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정중한 표현은 전부 우겨넣어 그렇게 말한 뒤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모두가 그를 따라 도망쳐 나왔다.
"맙소사... 칼린이랑 요나는 어디에 가 있는 거야... 둘이 없으니까 질문이 이쪽으로 몰리잖아."
"이리하도, 사람이 조금 모인다 싶으니까 어느새 사라져서는..."
모두들 숨을 헐떡이며 이런저런 불만을 토해낸다. 그들이 도망쳐 온 곳은 기내의 수면실이었다.
"아, 정말... 지쳤다... 그냥 앗싸리 자버릴까?"
"나쁘지는 않은데."
신기하게도, 그 고생을 하고 나니 오히려 떠들기 전보다 다들 상태가 꽤 괜찮아 졌다. 갤러한은 그걸 느끼고서 조금이라도 밝아진 동료들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뭐 어때. 자자고. 어차피 우리는 창 밖을 구경할 틈도 없을 것 같은데 말이야."
"3일 내내 이러지는 않겠죠?"
"파티 한번 하고 나면 더 물을 게 남겠냐... 남으려나?"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지껄이며 불 꺼진 수면실에 들어간다. 수면실이라고 해야 할까,그 방은 영안실에 가까운 것이었다. 통로의 양 옆으로 문이 다닥다닥 붙어있을 뿐이다.
"... 제작센스 이상하지 않냐?"
"하하! 이게 무슨 수면실이야, 씨발!"
륑게와 릴로가 웃어 제낀다. 소니아도 못 참고 웃어 버린다. 핀은 지팡이를 몇 번 튀겨보고서 말한다.
"이거.. .문 뒤에는 딱 침대만 있네요. 진짜 잠 밖에 못 자는 곳이예요."
"핳핳하! 뭐야 그게! 진짜 이해 안되네!"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나. 갤러한은 그렇게 중얼대며 들어올 때 받았던 열쇠를 꺼내 맞는 번호의 문에 꽂아 넣었다. 핀이 본 게 정답이었다. 안에는 황량하게 침대만 떡하니 놓여있었고, 머리맡에는 작게 창이 달려 있었다.
"그럼, 먼저 들어 갈게."
갤러한은 작게 말하고서침대로 엉금엉금 기어들어간다. 그는 틀어 막힌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창가에 걸쳐진 커튼을 열어보니, 동그란 창문 한가득 하늘이 매워져 있다.
혼자 보기 아까웠다. 이 풍경을 보여주고 싶던 놈이 많았는데. 그는 회상에 젖으며 리쿠르트가 준 함과 함께 종이를 꺼내 든다.
그리고 창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그려낸다. 지금 이 장면을 가장 보여주고 싶은 상대는 리쿠르트였으니까. 침대에 엎드려 누운 채로 힘들게 그림을 완성해낸 그는, 그 그림을 접어 함 안에 집어 넣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서 주머니를 뒤져 뭔가를 꺼내 바라본다. 리쿠르트에게 줄 약혼 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