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2화 〉활공(滑空) (152/164)



〈 152화 〉활공(滑空)

활공.(滑空)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체가 지면을 향해 하강 비행하는 것.

인생의 모든 것은 최고점을 찍고 나면 떨어지게 되어 있다. 천장에닿으면 떨어지게 된다. 그것이 급강하냐, 활공이냐의 차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인생에 최저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닥에는 끝이 없다. 한 번 곤두박질치기 시작하면,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무저갱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급강하가 아니라 활공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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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차례 눈이 내려왔다. 벨카는 처녀의 이름에 걸맞는 새하얀 베일을 걸치고 새단장을 했다. 활기를 찾은 거리에게 눈은 더 이상 죽음과 기근의 상징이 아니었다. 연인들은 사랑하고, 아이들은 재잘댄다. 거리에 웃음소리가 첫눈만큼 청량하게 울려 퍼진다.

포근하게 쌓인 눈을 바라보며, 칼린은 그 어떤 것도 떠올릴 없었다. 좋다 나쁘다 같은 감상의 문제가 아니었다. 안개 낀 머리는 그 어떤 것도 떠올리는 것을 거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뭔가가 떠오르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목도리를 조금 내리고 입김을 뿜어내 본다. 하얗게, 허공으로 오르며 흩어진다. 사라져가는 김을 바라보고 있으면, 옅어지는 숨결 뒤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여성 하나가 보인다.

롱코트를 입고 담배를 물고 있는, 금발에 키가 큰 여성. 그녀는 칼린이 나온 것을 확인하자 발을 돌리고 웃어 보인다.

"왔느냐."
그녀의 금발은 태양빛이 조금 비칠 정도로 찬란하다. 푸른 눈은 연기 너머로 까지 보일 정도로 광채가 살아 있다. 약간 붉어진 양 뺨이 그녀가 어느 정도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칼린은 그런 그녀를 향해 가볍게 웃어 보이고 다가간다.

"오래 기다리셨나요?"
"아니. 얼마 안 기다렸다. 다만 잡담 할 시간은 없을지도 모르겠군."
그녀의 아래에 떨어진 담배꽁초들은, 그녀가 자신을 배려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게 해 준다. 칼린은 그걸 굳이 짚을 정도로 눈치가 없는 놈은 아니다. 그는 펄을 들어 올리고서 그녀를 향해 말한다.

"주인공은 마지막이니까요?"
"그래. 그런거다."
요나는 간단히 답하고서 칼린이 내민 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곧 수줍게 팔을 얹었다. 그리고 한걸음 앞서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 훌륭하다. 가르친 보람이 있군."
"별 말씀을요. 그럼..."
둘이서 타기에는 조금 과하게 화려하고 커다란 마차가 있다. 마부석에는 알레프가 대기하고 있다. 발걸음마다 산뜻하게 밟혀 들어간다. 마차 앞에서  두 번씩 발을 털고서, 몸을 굽혀 마차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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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티아에 온 걸 환영하네."
여전히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있는 라티아의 영주가 다가왔다. 그녀는 흰색 장갑을 벗고서 손을 맞부딪쳐 소리를  후, 요나와 칼린의 마차로 다가왔다.

"그래. 신설한 열차는 어땠어?"
"나쁘지 않더군. 특히 위생시설이 말이야."
"아, 화장실 말야? 신경  썼지. 전염병이 계속 생겨났으니 말이야..."
요나와 미로코, 둘은 어느  말을 놓는 관계가 되었다. 미로코는 가볍게 웃고서 칼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 가면을 씌웠나. 조금 너무 싸고돈다는 생각은  해 봤어?"
"이런, 거기까지 주의를 들어야 하는 건가."
"그냥 농담이야!  풀으라고. 종자! 이름이 뭐였더라?"
"칼린입니다."
"하! 하하! 난 이름에 편견은 없어. 너도  좀 풀라고. 이제부터 파티인데 말이야."
그녀는 웃으며 칼린의 어깨에 손을 얹으려고 하다가 그만 뒀다.

"... 보아하니 보디터치를 쉽게 시켜주는 종자는 아닌가 보군. 내 앞에서 그런 분위기로 있는 건 중죄다. 알고 있어?"
"... 죄송합니다. 당한 게 있어서..."
칼린은 지금 보디터치는 커녕, 낯선 자의 3미터 근방에 들어가는 것조차 자동반사적으로 경계하고 있었다. 미로코는 그런 칼린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악수정도는 괜찮나?"
"... 네. 배려 감사합니다."
"예의바르고, 동시에 밥맛이군! 봐주지! 좋은 날이니까!"
미로코는 힘차게 칼린의 손을 부여잡고 몇 번인가 흔든 뒤 고개를 돌렸다. 역과 마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광장. 그리고  광장에서도 이미 거대한 비행선이 보이고 있었다.

"난 이번 프로젝트에 아주 기대가 커! 마레라는 자가 천재긴 천재더군! 어찌나 아는 게 많던지..."
"이런. 마음에 들었나?"
"그럴리가! 인간으로서는 최악이야! 각설, 슬슬 움직이자고."
그녀는 작은 몸을 통통 튀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단발 종자에게 다가갔다.

"네 동료들은 이미 비행선 안에서 대기중이니까. 늦으면 우릴 버리고 갈지도 몰라?"
"에, 진짜입니까?"
"칼린. 헛소리에 일일이 반응해 주지 말거라. 그럴 리가 없잖느냐."
"친해졌더니 말이 서슴없어졌는데?"
많이 친해진 걸까. 칼린이 봐 온 인상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요나의 팔을 잡고서 미로코를 따라 비행선을 향해 걸어갔다.

라티아의 거리는 다른 대도시들과 또 다른 것이었다. 석재 바닥면에, 멀리에서도 보이는 공장. 여기저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 칼린이 보아도 신기한 것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 저건 뭐죠?"
"음, 간단한 보조장치라고 생각하거라. 개발 중이라고는 들었다만, 솔직히 상용화는 평생 무리일것 같군."
칼린이 가리켜 말한 것은, 짐꾼들이 사용하는 철제 외골격에 관한 것이었다. 요나는 그 외골격 하나에 사용된 비용이 얼마인지 안다. 때문에 별로 비전이 맑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우린 공업의 도시야! 뭐든 시도해 보고, 만들어진 걸 끝없이 개량하지. 저런게 언젠가 왕도를 가득 매꿀 수도 있는 거야."
"... 개멋있다..."
칼린이 한숨처럼 뱉어 낸 말에 요나가 조금 눈치를 줬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로코는 신경 쓰지 않고 신나게 앞으로 걸어 나간다.

"그리고 그런 우리가 단언컨데, 개량이 필요 없을 정도의 궁극에 기술 결정체. 그것이 바로 이번에 우리가 타게  이 비행선이라는 거지. 뭐, 빅센마르크와 전쟁할 때 만들어 둔 걸 개량한 거지만... 짜잔!"
그녀의 발걸음이 멈추고, 자랑하듯 팔을 펼치며 몸을 빙글 돌린다. 칼린은 눈 앞의 거대한 비행체를 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게 승객분들이 타게 될, 세 영지의 기술의 집합체... '퀸 벨카'호다. 역사상 최고규모의 비행 여객선이지."
칼린은 비행선을 본 적이 없다. 서울 하늘에는 비행선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는 해외여행 갔을  야경속에 섞여 본 것도 같지만, 확실한 기억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살던 세계에서도 이정도 규모의 비행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란 것이다.

"대단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정도 뿐이었다. 칠흑색 외피에금박을 두른 고급스러운 객실 부, 그에 맞춰서 마찬가지로 검은 색의 기낭 외피. 자칫 밋밋해 보일 수 있을 디자인에 금색 외골격을 빽빽히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볼수록, 여기저기에 섬세한 조각들이 박혀 있는 것을 알  있었다.

"상세한 정보를 말해줘 봤자, 비전문가인 당신들이 즐거워할  같지는 않네. 어때? 빨리 안쪽 구경도 해 보는 건?"
칼린의 반응이 만족스러웠는지, 미로코는 짧은 키를 까치발로 세우며 가슴을 핀다. 칼린의 어느 정도 남아있던 소년심이 문득 고개를 들어 올린다.

"요나씨."
"그래."
"빨리 들어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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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은 버건디색의 양탄자가 깔려 있다. '최대한 화려하게'라는 부탁을 받아 만들어진 샹들리에 조명도 그 명령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었다. 기낭외피 안쪽에도 방을 만들어 뒀기에, 내부는칼린의 예상보다 훨씬 넓고 훌륭한 것이었다.

"아래로 내려가면 유리바닥으로 만들어진 바가 있지. 술은 공짜라네, 친구들."
미로코는 그렇게 말하고서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아무래도 각방까지는 조금 무리가 있어서 말이야. 침대만 들어있는방 형태로 비치하기는 했는데, 그것도 대단한 거라고?"
"네, 굉장하네요..."
"식당과 주방은 합쳐져 있어. 분할해 둘 공간이 없던 것도 사실이지만, 장인들의 요리실력을 바라보며 식사할  있지. 저거 봐라. 수조가 있어서 즉석으로 날생선을 먹을 수도 있어!"
"굉장해요..."
"그치? 그리고저쪽 문을 넘어서 나오는 게 파티홀이야! 개인적으로 춤추는 건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일단 사교적으로 중요한 위치인 정도는 아니까 무리해서 이층구조로 만들었지. 춤추다 지치면 계단을 올라가서 테라스로 야경을 바라보는 거야... 이건 어때?"
"정말 굉장해요...!"
칼린은 요나조차 본 적 없는 표정으로 미로코의 말에 맞장구를  댔다. 요나는 조용히 칼린과 미로코 사이로 끼어들며 살짝 칼린을 밀어냈다.

"확실히 굉장하군. 이것저것 정성들였겠어."
미로코는 요나의 견제를 눈치채고 조금 어벙하게 서 있다가,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웃으며 요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네덕이지. 설마 세 영지가 있는 거 없는 거 전부 끌어 모아서 이런 합작을 만들어 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방식은 조금 거칠었지만, 역시 네가 미쉘보다 나은 걸?"
"고맙군.  안에는 총 몇명이나 타는 거지?"
"한... 승무원까지 포함하면 70명은 타지 않았을까?"
"많이도 우겨 넣었군 그래."
"적정인원이야, 적정인원! 느긋하게 구경하라고! 화장실은 아래층 바 근처에 있어!"
그녀는 요나의 어깨를 톡톡 치고서 자리를 옮겼다. 요나에 대한 배려이자, 조타실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요나는 고양된 칼린의 팔을 잡고 자신의 옆으로 끌어당겼다.

"상당히 만족스러운가 보구나, 칼린."
"대단하지 않나요? 저, 비행선은 처음 타봐서..."
"대단하군. 널 여기까지 고양시키다니 말이다. 못해낸 거였지."
그 말에 칼린이 고개를 돌려 보니, 요나의 얼굴이 조금 굳어 있다. 아무리 그래도 칼린은 사회생활 짬이 있는 성인 남성이다. 상사를 두고 언제 까지고 눈치 없게 들떠 있지는 않는다.

"... 여기에 요나도 기여했다는 거 아니에요. 정말 대단해요, 요나."
그는 가면을 살짝 벗어 올려 요나를 향해 웃어 보인다. 요나는 얼굴을 상기시키며 칼린의 가면을 붙잡는다.

"나쁜 것만 배워서는...!"
"아, 갤러한씨도 저기에 있네요."
"말 바꾸지 마라!"
요나는 불평처럼 그렇게 말하고서 칼린의 가면을 끌어내렸다. 칼린은, 모여있는 부대원을 보고서 움직임을 멈췄다.

6명밖에 모이지 않은 부대원. 모두들 마냥 밝은 표정이 아니다. 왜 6명인가. 공백의 세자리는-

모두 상복을 입고 있다. 그것 만으로 충분했다. 모르던 것도 아니었지만, 새삼스레 다가오는 것이 있다. 뭉툭하게 닳았던 가슴 속이 또 한번 묵직하게 아리다.

게다가 갤러한은, 갤러한은 자신이 리쿠르트를 쫓아냈다는 사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런 것을 생각하니 괜히 다가가기 힘들어지는 것이었다. 그에게  이상 부대원은 안식처가 아니었다. 괴로운 기억까지 함께 떠오르게 하는, 조금  복잡한 것이 되어 있었다.

만나면 분명 반갑게 인사할  있을  알았는데, 하고 칼린은 혼자 작게 되뇌었다. 요나는 그런 칼린을 바라보다가,  그의 옷소매를 잡고 뒤로 끌었다.

"영주님?!"
"같이 바를 보러 내려가 보자꾸나. 저녁에 이용하게 될  같으니 말이다."
"네? 하지만..."
"시간은 많다. 너도 역시 직접 만나니 껄끄러운 것 아닌가?"
요나의 말에 답할  없었다. 요나는 끌어당기는 팔에 힘을 조금 실으며 말했다.

"3일이다. 3일 밤낮으로 주구장창 놀 예정이야. 저녁이면 분위기가 무르익고, 다들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무공을 떠벌일 시간이 생기겠지. 그런 분위기에서 말을 걸어도 좋을 게다."
거기까지 말하고 요나는 웃어 보였다.

"그렇지?"
칼린은 잠깐 생각해 보다가, 곧 미소로답하며 그녀를 따라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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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 중에 깜둥이가  있네... 여기저기에서 다 데려온 건가."
"륑게. 그 단어표현은 조금 안 좋다고 생각하는데."
"네가 내 엄마냐?"
자신에게 핀잔을 준 이리하에게 퉁명스럽게 답한 륑게는, 곧 릴로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깜둥이, 깜둥이 이 지랄. 지한테서 나는 말똥냄새도 못숨기는게!"
"야, 너한테   아니잖아!"
여느 때처럼 티격태격하는 분위기이다. 평소라면 이 때 쯤, 소니아가  사이를 중재하고는 했다. 둘은 말싸움을 계속 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소니아에게 향했다.

소니아는 가만히 탁자에 기대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시선은 륑게와 릴로를 향해 있지 않았다. 그저 까맣게 죽은 눈으로 샹들리에에 매달린 전구 개수를 세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확인하고서, 둘은 누가 먼저라 할  없이 말싸움을 멈췄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 소니아씨. 조금만 기운 내죠, 우리..."
핀이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소니아를 향해 다가간다. 소니아는 그제서야 조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린다.

"응? 미안, 집중 안하고 있었어."
어떻게든 쾌활하게 말하지만, 이미 분위기는 죽어버렸다. 부대원 전원이 붕 떠버린 공기속에서 그저 죽은 생선처럼 눈알만 유영시키고 있었다.

"젠장, 또 뭐야..."
갤러한은 잠깐 바를 구경하고 올라온 사이에 다시 침체되어버린 분위기를 보고 가볍게 탄식했다. 그는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기고 소니아와 핀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제발 부탁인데, 그냥 생각없이 좀 즐기자... 이대로 끝내면 끝 맛이 너무 안 좋잖아."
"... 미안해."
"그래, 임마. 기운 좀 차리고."
갤러한은 소니아의 어깨를감싸고 몇 번인가 흔들었다. 그러다가 곧 당황해 소니아를 밀쳐내듯 떼어냈다.

"핀 우냐?"
"그치만... 마지막이라는 걸 아는데...  진짜... 감정을 못 잡겠어서..."
"아이고... 이리 와, 핀..."
릴로가 팔을 벌려 핀을 끌어안아 준다. 그리고 등을 토닥이며 그를 달래준다.

"그래,그래... 뚝 그치고. 그러면 마지막으로 함 할래?"
"저, 저리, 꺼져요, 릴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핀은 어지간히 혼란스러웠는지 릴로의 품에서 떠나지는 않았다. 갤러한 입장으로서는, 별로 유쾌하지는 않았다.

“이리하, 너도 애들 좀 달래 봐. 칼린  들 때 보니까 그런  잘 하는 것 같더만."
"난 애는 잘 못 다뤄."
"잘났다, 씨발."
즉답하고 어디론가 고개를 돌리는 이리하를 향해 작게 욕설을 날리던 갤러한은,  멀리에서 자신들을 등지고 걸어가는 요나가 보였다. 그 옆에는 처음보는 가면을 쓰고 있는 칼린도 있었다.

"저쪽도... 흡! 도착했나 보네요... 인사 드려야죠."
핀이 코를 삼키며 그렇게 말한다. 이리하는 바로 칼린 쪽으로 발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려 한다.

"칼ㄹ-"
"야 이 멍청아!"
그런 이리하를 뒤에서 붙잡아 세운 건 갤러한이었다. 그는 이리하의 입까지 틀어막으며 그녀를 붙잡았다. 이리하가 갤러한을 거칠게 뿌리치고 돌아보자, 갤러한은 조금 착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본다.

"뭔데?"
"... 일단 그냥 두자고. 말 걸지 마. 둘만의 시간을 잠깐 주자."
소니아와 이리하가 이상하다는 듯 갤러한을 쳐다본다. 갤러한은 어떻게 변명할지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가 손까지 휘젛으며 떠벌인다.

"아니, 저쪽도 우리를 봤을 거라고. 그런데 발걸음을 돌린 거야.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칼린도 여러가지로 우리를 보기 껄끄러운 상황일 수도 있으니까, 괜히 섯불리 다가가지는 말자 이거지. 어차피 뭐, 분위기 좀 무르익으면 저쪽에서 찾아올 거라고..."
"우리한테 했던 말이랑 정확하게 정반대인  같은데."
"게다가 네가 요나와 칼린을 둘만 두자고 제안한다고? 뭔가 숨기고 있는 거냐?"

소니아와 이리하가 한마디씩 던진다. 갤러한은 난처한 듯 손을 휘둘러 댄다.

"입장차이! 저쪽은 뭐냐, 좋든 싫든 우리한테 와야 된다고! 지휘관과 부대원 입장이기도 하고, 요나가 오면 칼린도 어쨌든 따라와야 할 테니까! 아무튼 지금 맞보는 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닐 것 같다는 거지!"
"... 칼린씨를 따돌리려는 건 아니죠?"
"이 씨발, 임무 다 끝났는데 내가 왜 그래!"
핀의 말에 필요이상으로 크게 답하고서, 갤러한은 고개를 돌려 부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를 바꿨다.

"그것보다, 그래! 식당 구경 갈래? 주방이랑 붙어있다고 들었어!"
"... 수상한데."
"주방장들 오기 전에 어떤지 내부구경 해 보자고! 그런 거 좋아하잖아?"
"뭐, 싫어하지는 않지..."
대화주제는 성공적으로 바뀌었다. 약간의 의문은 남아있었지만, 갤러한의 말에 틀린 건 없었다.어쨌든 그 둘은 3일간 소금부대를 피해 다닐 수는 없는 위치였다.

"자, 가자! 승무원들 벌써 한 명씩 들어오고 있더라!"
다급하게 그런 말을 하며 모두를 끌고 가는 갤러한은, 어딘가 초조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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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 정도의 무리가 일렬로 걸어온다. 5명은 승무원복을 입고 있고, 한 명은 귀족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  보라색머리의 귀족 여성은 높은 굽의 신발이 적응되지 않는지 조금 비틀거리고 있다.

위태로운 걸음으로 걷던 그 여성은 어느새 비행선 근처까지 도착했다. 그녀는 뒤에 있던 승무원에게 작게 투덜댔다.

"... 통굽이었으면 이러지 않았을 거예요."
"일단 격식은 지켜야 하니까요."
"저도 압니다."
약간 단호하게 말하고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의 양 옆에는 가드들이 서 있다. 가드들은 그들의 앞길을 한번 막아낸다.

"우리가 마지막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 비행선의 마지막 승객이었다. 보라색 머리의 귀족 여성은 그 말에 부채를 들어 올려 미소를 감춘다. 그리고 가드들을 향해 작게 속삭인다.

"그럼. 평등한 세계를 위하여... 허단 디알테스타만."
"허단디알테스타만."
 대화를 마지막으로, 가드들이 문을 연다. 6명의 무리는 조용히 비행선 안에 들어간다. 문이 다시 닫히고, 전 승객이 탑승했다는 안내가 나온다.

소금부대의 마지막 파티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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