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독사
우물 밑바닥에 깔린 진흙은 지독한 냄새를 풍겨 댔지. 아닌가. 진흙이 아니라 같이 썩어가던 시체에서 풍기던 냄새였을지도. 이제 와서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말야.
누님의 뚫린 다리에서도 그것과 비슷한 냄새가 났었어. 역한 냄새를 풍겨 댔지만, 그 우물 안에서 가장 포근한 곳은 누이의 품속이었고. 그래서 내가 시체냄새에서 조금 포근함을 느끼는 걸지도 몰라. 내 근간같은 곳이었으니까.
누님은 달밤에 노래를 끝내면 날 다독이며 말했지. 넌 죽지 않을 거라고. 어떤 방법을 써서든 넌 내보낼 거라고. 만약 살아남는다면, 네 누이가 한 헌신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베풀 줄 아는 선한 자가 되라고. 사람이 되라고... 맙소사, 그 똥통에서 그랬다니까. 나랑 그릇의 크기 자체가 달랐던 거야.
그러니까 누님의 부탁은, 애초에 나에게는 무리였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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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씨. 치워주세요."
"다녀옴."
에테롬 옆에 앉아있던 동양계 여성이 마차에서 내렸다. 라드는 마차의 앞에서 발을 떼지 않고 그 동양계 여자의 눈을 노려보았다.
"에테롬! 거래하고 싶소!"
에테롬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안대를 다시 내리며 잠들 준비를 했다. 송 윤이 검을 뽑았다. 특이하게 생긴 검. 천천히 라드에게 걸어오는 그녀는 움직임에 높낮이가 생기지 않는 특이한 보폭을 사용하고 있었다.
"에테롬! 에테롬 씨!"
라드는 그저 목놓아 그를 불렀다. 송 윤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에테롬은 들을 생각이 없고, 라드는 송 윤을 막아낼 실력이 없다. 그러나 애초에 이 자리에서 살아남아도 그는 이대로 가면 죽을 것이다.
"에테롬 선생님! 제발! 제발 이야기만이라도 들어 주십쇼!"
라드가 송 윤의 검간에 들어왔다. 그녀는 검을 잡고 무표정하게 라드를 바라보았다.
"반가웠ㄷ-"
"잠시만요, 송 윤 씨."
거합을 준비하던 검이 멈췄다. 그녀는 멈춘 상태로 가만 있다가,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에테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빠꾸?"
"저 라드씨가 저기까지 굽혔으니... 이야기는 한번 들어 볼랍니다."
에테롬의 얼굴에 진심은 없었다. 그저 흥미 본위의 문제. 그는 라드를 돕는 것에서 더 이상 이익을 바라보지 않았다.
"말해 보시죠, 라드씨... 제 부하들을 셋인가 죽여 놓고서, 포기하고 살려드리니까 이렇게 찾아온 이유나 들어보죠."
"한번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쇼!"
"나 참..."
라드의 말투는 과거의 그것이 아니었다. 완벽히 상급자를 대하는 자세. 지금 에테롬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일면이다.
"라드씨... 우린 당신의 누이를 놓쳤습니다. 봐 드린게 아니라 놓친 거예요. 본 상회는 언제든 기회만 생기면 당신과 당신의 누이를 죽일 겁니다..."
에테롬은 송윤의 무기를 치우며 라드에게 다가갔다.
"찾아올 대상을... 잘못 찾으신 것 아닙니까?"
"... 에테롬 선생님! 이번에는! 이번에는 정말 해낼 수 있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한없이 저자세로 나오는 라드의 모습에 에테롬의 입가가 올라간다. 결국. 결국 위기상황이 오면 여유라는 것은 무너지지. 라드가 갑자기 왜 위기를 느꼈는지는 모른다. 그 이유 따위는 궁금하지도 않다.
"뭘 해낸다는 말입니까?"
"소금부대의 이번 임무, 무조건 실패 시키겠어! 제발, 한번만 도와 주십쇼!"
에테롬은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 이번 임무?"
들은 것이 없다. 소금부대는 왕명을 직속으로 하달 받는다. 구호부대 특성상, 임무 수행에 홍보성도 가져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정보를 구하기 쉽다.
즉, 다음 임무가 있는 것이라면 에테롬이 그것을 듣지 못하고 놓칠 일은 없었다.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라드를 향해 질문했다.
"바라는건?"
"내가 택배를 부수겠소. 선생은, 당신은 그냥 내가 그 열차 안에서 도망칠 수 있도록 해 주면 돼! 당신도 소금부대의 명성이 서부 끝까지 퍼지는 건 원치 않을 테지!"
비참할 정도로 파들 대는 라드의 꼴을 보고서, 에테롬은 대략 상황이 어떻게 흐르는 지 눈치챘다. 그는 웃으며 라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이번 임무는 서부 끝으로 화물을 옮기는 임무고, 당신은 동료들에게 배신자라는 것을 들킨 것 같군... 맞나요?"
"맞소! 맞습니다!"
"이거야 원..."
라드는 이를 뿌득 갈고 있었다. 살고 싶었다.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고민하는 에테롬을 향해, 그는 또다시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빌겠소! 이번 임무는! 무조건 성공할 수 있어!"
"... 이런 겁쟁이는 필요 없지만 말입니다."
"임무만 해내면 어찌되든 좋잖소!"
"그건 그렇지만... 당신은 내 소중한 부대원을 죽였지."
"목숨을 건 싸움이었어! 원한다면 사과라도 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넙죽 업드렸다. 에테롬은 그런 그를 만족스럽게 내려다보다가, 곧 송 윤을 향해 손을 들어 칼을 집어넣도록 했다.
"그렇다면 라드씨, 거래를 하죠."
그리고 상인의 혓바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약... 그 화물 속에 있는 것이 정말로 쓸모있는 것이라면... 전 당신을 주저하지 않고 구하러 가겠습니다."
"...뭐라고?"
"부셔 보시죠. 당신을 구하러 가는 인원은 당신이 타는 철로를 따라서 보내겠습니다. 10명 정도의 인원을 준비하도록 하죠."
라드는 에테롬이 내민 손을 멍하게 쳐다보다가 다급하게 붙잡았다.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에테롬 선생님!"
"이제야 서로 완벽하게 존중하는 관계가 된 것 같아 좋군요, 라드씨..."
라드는 그의 손을 자신을 구해줄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 마냥 소중히 붙잡았다. 에테롬은 절대로 거래를 파기하지 않는다. 거래 자체에 함정을 파는 경우는 있어도, 이번에는 내용이 간단한 만큼 그런 일은 없을 듯 했다.
"거래하신 겁니다, 에테롬 선생님..."
"그 호칭은 그만 두세요. 학자가 된 적은 없으니까... 용건이 끝나면 슬슬 비키시죠."
"네, 네! 금방 가겠습니다!"
라드는 꿇은 무릎을 피고 허둥지둥 자리를 비킨 뒤, 에테롬을 향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에테롬이 마차에 들어가서도 그 자세는 변하지 않고 있었다. 송 윤은 에테롬을 따라 마차에 들어가며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 지난번이랑 많이 달라."
"그런가요? 근간은 똑같은 것 같은데 말이죠."
"실망. 저런 걸 어떻게 쓰고 다녔음?"
"못 쓸건 뭐죠?"
"나만큼 강한 것도 아님. 거의 내 옆의 돼지새끼만큼 겁쟁이임. 내 고향에서 저런 건 괴물 미끼로 조기교육함."
거침없는 그녀의 독설에, 에테롬은 살짝 웃으며 고개 숙이고 있는 라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송 윤씨... 저자의 근간은 바뀌지 않았어요. 다만 이제서야 욕심이 자신을 향했을 뿐이지."
라드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꽉 문 입술에서 흐르는 피가 그걸 말해줬다.
"그리고 전 저자를 다시 이용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 모습을 잠깐 즐기다가, 에테롬은 그렇게 말하고서 등을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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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스는 저녁식사를 끝마치고 방탕하게 누워 라드의 눈알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만 더 깔끔하게 뽑혔었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그저 하염없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였다.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 이 시간에?"
유스티스는 친구가 없다. 유감이지만,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부지깽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문으로 다가가 열쇠구멍을 쳐다보았다.
문 밖에 서 있는 것은 라드였다.
"또 뭐야!"
그녀는 문을 열지 않고 소리쳤다. 문 너머의 라드는 조용히 있다가, 곧 천천히 입을 뗐다.
"거래 하나 하지."
"... 이번엔 어디 걸고?"
"내 전신을 걸지."
"뭐?"
그녀는 깜짝 놀라 얼떨결에 문을 당겨 열어 보았다. 문 앞에 서 있는 라드는 평소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건조하게 메마른 모습을 벗고, 지금은 마치 진흙처럼 질퍽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 순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너... 뭔 일 있냐...?"
"들어가도 되나?"
"음..."
라드는 진흙이 잔뜩 묻은 발로 그녀의 집에 들어왔다. 늘어진 상태로 발걸음마다 젖은 흙소리를 내는 그는 정말 진흙이 된 듯 했다.
"어... 술 가져 올게."
그래서 유스티스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대하며, 아끼던 독주를 다락에서 꺼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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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드는 몇 잔인가 그녀가 준 독주를 마시고서 아직 쓰라린 그의 입술을 한번 훑었다. 그리고 유스티스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리고 담배를 꺼내 들었다.
"한 대 필래?"
"아니, 나도 담배 있거든."
"그런가."
짧게 끊어 말하고서 그는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약간 올라오는 취기와 함께 입을 열었다.
"거래하자고. 네 도움이 필요해."
"... 내용 듣기 전에는 아무 말 안할거야."
"내가 제시하는 건 네 괴짜모임에 내 시체를 기증하는 것."
"계속해봐."
"그러니까 날 살려."
핀트가 어긋나는 대화에 유스티스는 조금 고개를 기울였다. 라드는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기고서 말을 정리해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서부로 갈 거야. 열차를 탈 거고."
"어떤 열차?"
"조닐을 지나치며 서부랑 이어지는, 치클 운송용 열차."
"그런데."
"열차는 서부 끝 종점, 케니스역으로 향할거고. 난 열차가 거기 도착하기 전에 화물을 부수고 탈출해야 해."
"... 왜?"
"궁금한가?"
라드의 질문에 유스티스는 답하지 않았다.
"열차보다 먼저 케니스로 도착해야 해. 그러니 도와줘."
"그 말은... 네가 열차를 멈추지 않는 이상, 열차보다 빠른 탈 것을 준비해야 한다는 거고... 넌 열차에서 그 탈것 사이로 이동까지 해야 된다는 뜻이야."
"다 감안하고 있어."
"다 감안하면 어쩔 건데... 열차보다 빠른 게 있어? 그냥 속도만 따지면 안되는 것 정도는 알지?"
단순 속도로만 따지자면, 잘 키운 말은 열차보다도 빠르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지속성이었다. 열차만큼 오랫동안 속도를 유지하는 말은 없다.
"... 이 곳에 쓰고 싶지는 않았다만... 누님 결혼식때 사용하라고 준비해둔 게 있어. 그걸 사용하면 될 거야."
"... 결혼식에 쓰는 걸로 뭐 어쩌겠다는 건데."
"미리 말해주지는 않을 거야. 돈만 있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다만 그걸 사용하면 확실히 열차도 따돌릴 수 있어. 확답하면 뭔지 알려주지."
두루뭉술한 말이었다. 유스티스는 조금 생각해 보았다. 먼저 그가 말하는 열차를 따라잡을 수 있는 수단. 그건 어떤 것이 되었든 별 상관없기는 하다. 그 성능에 대해 허풍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면, 결국 그의 손해가 될 테니까.
"... 너, 시체를 우리한테 기증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지?"
"잘 알고 있지. 너네에게 몇 구 찾아준 적도 있잖아."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시체 성애는 우리 협회원 중에서 제일 정상적인 쪽이야. 조금만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네 시체는 범해진 후에 부위 선별되어 식재료가 될 거야. 못 먹는 부위는 장식용으로 가거나, 미술 재료로 쓰일 거고. 어디 대학에 시체를 기증하는 거랑 같은 취급하고 있지는 않겠지."
"전부 알고 제안한 거야."
"... 그렇다면야."
유스티스는 라드를 잠시 바라보다가, 곧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쉽지만, 물건 같은 건 따로 못 줘. 내 물건은 왕도의 주술사에게 전부 넘기기로 했거든."
"우린 네 시체만 가지면 돼."
"그럼 다행이군. 걱정 마. 이번에 살아남아도 오래 살 생각은 없어."
"그렇다면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그리고 담배를 문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에서 종이를 가져왔다.
"이게 계약서야. 서명해 둬."
"고맙군."
라드는 그녀가 같이 건낸 펜에 잉크를 묻히며 그녀에게 성냥을 건내 줬다. 유스티스가 담배불을 붙일 동안 라드는 그 계약서에 서명했다.
"넌 이걸로 30살 전에 최대한 손상이 없도록 음독자살을 해야 해."
"알았어."
"그 전에 다른 사유로 죽어도 시신은 우리에게 기증되는 거고."
"알았어."
"... 좋아. 전력으로 도울게, 라드. 협회원 한 명이랑 네 구출작전은 세워 둘게. 고마워."
그녀는 계약서를 챙겨 어딘가로 향했다. 지하실에 들어갔던 그녀는, 곧 거기서 나와 라드에게 강한 아편을 건내 주었다.
"꽤 고생하고 온 것 같은데,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도록 해."
라드는 그 아편을 내리 보다가, 곧 별 망설임없이 그녀가 건낸 파이프를 집었다.
"굳이 오늘 돌아가 준비할 필요는 없지. 아직 하루 남았으니까..."
"그래. 피우면서 쉬고 있으라고. 입술에 바를 연고를 챙겨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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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잠들었을까. 마지막 기억은 아편으로 녹아 내린 듯 사라져 있었다. 라드는 아직 방 안에 자욱한 아편의 냄새를 손으로 휘휘 저으며 퍼트렸다. 그리고 떡진 머리를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일찍 나가네?"
거실의 소리가 들렸던 걸까. 방에서 자고 있던 유스티스가 나와서 라드에게 인사한다. 라드는 그런 그녀를 쳐다보다가 문득 잊었던 것을 떠올린다.
"혹시 검 남는 게 있나?"
"검?"
"응. 칼. 검. 뭐라 부르던."
유스티스는 잠깐 눈을 위로하고 생각해 보다가 답했다.
"있을 리 없잖아, 멍청아...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가... 아쉽군."
"애초에 검은 어디 갔는데?"
"내꺼는 뭐... 왕도의 주술사님께서 가져갔거든. 배신자의 검은 귀한 거라면서 말이지..."
그는 대충 흘려 말하고서 문을 열었다. 회색 빛 새벽이다. 공기가 차갑다. 그 공기를 정면으로 받으며 그는 한 짝 뿐인 눈을 약간 누그러트렸다.
"식탁위에 둔 쪽지에, 너가 이용할 물건에 대한 정보가 대충 적혀 있어. 위치도 거기 적혀 있으니까 부디 꼭 확인해 달라고."
"오냐. 오늘 저녁에 먼저 출발해보지 뭐."
"그래주면 고맙고."
근처 마구간으로 발을 옮기려던 라드는 문득 떠오른 질문에 발을 잠깐 멈췄다. 그리고 쪽지를 확인하러 간 유스티스를 향해 고개를 돌려 질문했다.
"유스티스. 내가 겁먹은 걸 느꼈나?"
"응?"
그녀는 쪽지를 집어 들다가 갑작스레 들어온 질문의 답을 생각해 내기 시작했다. 몇 번인가 고민하던 그녀는 무겁게 입을 뗐다.
"그게... 겁먹었다는 걸 느꼈다, 라... 아니. 그런 건 아니지?"
"그럼 원래 손님들에게 귀한 아편을 선물해주나? 아니면 혹시 친구의 정?"
"역겨운 소리를 또..."
얼굴을 홱 찌푸리는 것이, 그 말은 진실임에 틀림없었다.
"난 지금 어떻게 바뀌어 있지?"
라드 스스로도 알 수 없었기에 한 질문이었다. 자신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다닐지도, 어떻게 보일지도 알 수 없었다. 누이의 임신 이후 느끼는 모든 감정 하나하나가 너무 낯선 것이었다.
유스티스는 그의 표정에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녀는 자신이 느꼈던 위화감을 최대한 생각해 보다가, 곧 가장 먼저 떠올렸던 말을 뱉었다.
"뭔가 말이야. 음...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렵지만?"
"조금 더... 사람 같아졌다는? 느낌이 들었네."
잠깐의 정적. 둥그래진 눈과 약간 벌어진 입. 라드의 처음 보는 표정에, 유스티스는 자신이 말을 잘못 선택했다는 것을 알았다.
"야 미안해! 때리지 ㅁ-"
"그런가-"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린 그녀는 라드의 대답에 천천히 눈을 떴다. 라드는 그 표정 그대로 잠깐 있다가, 곧 입을 벌려 크게 웃었다. 천진하고 상쾌한 웃음. 유스티스는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하하하하! 그런가! 그랬구나!"
라드 스스로조차 놀랄 정도로 깔끔한 웃음. 그렇게 웃는 건 얼마나 오랜만인가. 그는 한참을 그렇게 웃다가, 천천히 웃음을 멈추며 숨을 골랐다. 그리고 충격을 받아 굳어버린 유스티스가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뇌까렸다.
"... 조금 더 빨리 알았어도 결과는 같았겠지."
그는 말을 타고 자리를 떴다. 잿빛 하늘을 가르며 해가 떠오른다. 평야에 홀로 서 있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본 것을 의심하며 도통 발을 옮기지 못하고 있던 유스티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