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4화 〉독사 (134/164)



〈 134화 〉독사

꿈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곳이 있지. 나한테는 그 우물 안이 그랬어. 좁고 깊은 우물이었지. 물은 말라버린 곳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바닥은 축축했던 것이 기억나.

유난히도 햇빛이 뜨거운 날에는, 누님은 내 위로 허리를 굽혀서 태양빛을 막아 주셨지. 불 꺼진 저녁이 되면 잠든 내 눈깔 위로 기어가는 지네같은 버러지들을 직접 잡아서 치워 주셨어.


횃불을 든 개자식들이 우물 아래를 쳐다보다가 가래침을 뱉어 대면,  무서워서 누님의 품 속에 더 깊이 숨었었지. 그 때는 횃불에서 떨어지는 기름이 누이의 등짝을 태우고 있는 것도 몰랐어.

내가 두렵고 서러워서 눈물 흘리면, 누님은 작게 속삭이곤 했지.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아무일 없을꺼야...  말을 하면서 내가 잠들 때까지 노래했어. 우물에 스며들어오는 듯한 달빛은 서정적이었고, 그 빛을 휘젓듯 흘러 들어오는 누이의 노래소리는 아름다웠어.

그래도  때가 그립지는 않아.

#

아스타의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이 더 흘렀다. 라드는 그 이후로 단 한번도 벨카로 간 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집 안에서 멍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몇몇씩 찾아오던 에테롬의 부하들은, 3일 전부터 그 발걸음을 멈췄다. 아마 그가 뭔가 일으킬 생각이 없다는 것을 눈치챘으리라. 이제 그에게서 완전히 관심을 끊었을 것이다. 라드는 단 한번도 중요한 인물인 적 없었으니까. 그는 자리에 누워서  밖을 보았다. 집과 같이 딸려 있던, 라드는 건드려 본 적도 없는 텃밭에는, 이제 시체가 몇 구정도 들어가 있다.


한가한 오후. 그는 처음 겪어보는 무력감과 탈력감에 그저 멍하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문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칼린이예요, 라드. 소집일정 전해드리러 왔어요.'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확실한 칼린의 것이지만, 목소리는 믿을 만한 정보가 못된다. 그는 천천히 몸을 끌어 문 앞으로 다가가, 구멍을 통해 문 너머의 상대를 살펴본다. 확실한 칼린이었다.


"매번 수고하는군. 미안해."
라드는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어 주었다. 칼린은 흐릿하게 웃으며 별거 아니라고 한다. 그가 들어올 때 까지 문을 잡아주던 라드는, 곧 주방에서 딱딱하게 굳은 육포와 얼어버린 포도주를 가지고 나온다.

"먹겠어?"
"아... 육포만 받겠습니다."
"그런가."
라드는 웃으며 고무 뭉탱이 같은 육포를 식탁 위로 던져두고 화로에 불을 올리기 위해 장작을 꺼내러 나갔다. 곧 그가 장작을 사두지 않았음을 깨닫고, 그는 적당히 지난번에 자신이 부셨던 싸리비 가지를 가져와 넣었다. 곧 불이 올라오며 붉게 허름한 집 안을 달구었다.

라드는  근처에 대충 포도주 병을 갖다 놓고서 칼린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서? 소집일정은?"
라드는 칼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시선을 의식해서 였을까. 칼린은 최대한 입을 벌리지 않으며 육포를 깨작 깨작 씹어 대고 있었다.


"이틀 후. 다음 임무에 대해 브리핑이 있을 거예요. 평소 모이던 그 자리로 오시면 됩니다."
"... 조금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이상하군."
"저는 잘 모르겠네요."
임무 간격이 너무 짧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려는 것 일까. 떠오르는 의문점을 누르고서, 라드는 담배를 꺼내 들었다.

"... 담배는 맛있으신 가요, 라드씨."
"응?"
불을 붙이려던 라드는 칼린의 질문에 잠깐 손을 멈췄다. 칼린은 육포를 내려 두고 라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왜, 지난번 임무가 끝나고 피는 담배는 각별하실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칼린은 웃으며 온화하게 그렇게 말했다.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미묘한 긴장감을 느낀 라드는 잠깐 담배를 씹어 대다가, 곧 웃으며 불을 붙였다.

"솔직히... 쓰군. 피울 게 못돼. 이젠 그냥 끊기에는 너무 늦어서 피는 느낌이군."
"그런가요."
"그렇지. 이번 임무는 끝 맛이 별로 안 좋았으니까... 누가 예상했겠어?"
눈을 감고 담배연기를 들이 마시는 라드를 보며, 칼린은 조용히 입가의 웃음을 풀었다. 그는 아무 말없이 담배피는 라드를 바라보다가, 곧 다시 육포를 향해 손을 뻗었다.


"... 아무도 예상 못했겠죠."
"그렇지."
"주둔군단, 기욤씨, 칼타코의 국민 다수, 아스타씨까지 죽어버렸으니까. 최악의 결과가 나왔죠."
"난 네 걱정이 됐었는데 말이야."
"전 괜찮아요, 라드씨."
라드는 눈을 뜨고 가늘게 뜬 눈으로 칼린을 노려보았다. 칼린도 라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조금 붉어진 눈으로.

"라드씨는, 괜찮으십니까? 아무렇지도 않아요?"
라드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입가를 조금 일그러 트리며, 담배를 내려놓았다.


"말했잖아. 담배 맛이 쓰다고..."
"아. 그런가요."
눈을 감고 있어도 칼린의 시선이 느껴졌다. 라드는 잠깐 그 시선을 곱씹으며 담배를 떨궈 두었다. 잠시 뒤, 칼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이제 가보겠습니다. 육포 잘 먹었어요."
"오냐."
"그럼, 이틀 후에 뵙겠습니다. 이만."
조용히 나가는 칼린. 라드는 덜컥 소리를 내며 닫힌 문을 가만히 쳐다보며 직감했다. 그런가. 요나가 말한, 용서하진 않았다는 것은 이걸 의미했나.


"...들켰군."


#


"이번 임무는 특수한 것이다. 싸울 필요 없어. 우습지만, 명성이 높아질 수록 최전방에서 싸울 일은 사라지지. 그런 거다."
요나는 그렇게 운을 떼며 지도를 펼쳤다.


"단순한 운송업무야. 신설된 철로를 이용해 윌레인 서부  황무지로 향한다. 개척지에 물자를 옮기는 거지."
"... 그걸 왜 우리가 합니까?"
"이번 운송 물자가 그 지대의 존망을 걸고 있는 중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 지도 쪽을 가리켰다.


"열차에는 보라색 기를 걸어  것이다. 열차강도들도 건드리지 않을 테지. 거기에 굳이 안전에 안전을 거듭해서 너네들을 보내는 것이다. 정규군 200정도를 우겨 넣고 호위 보내는 것 보다, 상징성이 있는 소수가 더 효율적이라는 거지."
"잘 모르겠군."
"네가 이해할 필요가 있는 문제도 아니고 말이다. 아무튼, 이런 임무의 특수성 때문에 지원자만 받은 것이기도 하다."
그녀는 웃으며 모여 있는 자들을 둘러보았다. 핀과 소니아가 자리에 없었다.


"누가 건드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소금부대의 무력이 아닌 명성 값이 필요했을 뿐이니까. 화물과 네놈들만 갔다 올 뿐이야. 외부의 개입이 없는 서부로의... 여행정도로 생각하고 즐겨 주길 바란다."
모두가 조용했다. 그 누구도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정적속에서 도르베의 주먹이 뿌득 거리는 소리가 났다.


"화물의 내용은 말해줄  없다. 일개 병사들이  필요 없는 물건이지. 특별히 질문사항이 없다면 이번 브리핑은 여기서 끝마친다."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방을 나서려다가 발을 멈췄다. 그리고 웃으며 라드에게 고개를 돌렸다.

"... 전원 이번에는 사고 없이 임무가 끝나기를 기원하마. 가벼운 임무라고 방심하지 말고. 칼린. 따라오너라."
"네."
칼린은 무감각한 목소리로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요나를 따라 간다. 남은 인원들 사이에 약간의 정적이 흐른다.

"먼저 일어나지."
이리하가 먼저 자리를 떴다.


"... 쉬운 임무네."
"가자."
갤러한과 릴로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라드는 가만히 그들  명 한 명을 관찰한다. 곧, 륑게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 간단하구만."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라드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웃는다.

"그지?"
라드는 아무 대답하지 않는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륑게는, 곧 다시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먼저 움직이고 있는 갤러한과 릴로를 향해 달렸다.


자리에 남은 것은, 도르베와 라드 뿐이었다.

"... 도련님은 안 나가나?"
라드의 질문에 도르베는 말없이 그의 의지를 까딱거린다. 아스타가  의지. 너무 사치스러워서 조명에 비쳐 번쩍댄다.


"...이봐, 라드."
"어."
"아스타는 말이다... 감각이 조금 이상했지. 응. 그랬어."
그는 번쩍이는 의지를 끼운 주먹을 꽉 쥔다. 라드는 조용히 정면만을 바라본다.


"너도 아스타가 죽었다고 생각하나?"
그 질문에, 라드는 입을 다문다. 묵묵히 있는 라드의 뒷모습을 보며, 도르베는 주머니에서 그가 줬던 금화를 꺼내   돌려 보았다.


"답하지 않는 건가."
이제  능숙하게 굴릴 수 있게 되었다. 동전으로 연습했었지만, 이젠 다른 것도 막 굴려 댈  있다. 라드가 계속 알려준 덕분이었다. 륑게는  동전을 굴려 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먼저 일어나지."
그릭 문을 나서다가 발을 멈추고 라드를 돌아보았다.

"이번에도 잘 부탁한다."
공격성을 억누르고 있는 듯한 말투에, 라드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담배를 꺼내 의자에 기대 누웠다. 그리고 천장을 보며 바시는 눈을 가렸다.


"하, 씨발... 그래서 그랬나."

소금부대원 전원이, 이젠 자신이 첩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조용한 황무지를 향해 가는 열차여행이다.

요나는, 자신을 살고 싶도록 만들었다. 죽어도 상관없는 놈을 죽이는 것은 성에 차지 않았으리라. 잔인한 년.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들이마시며, 빈 방에서 결론을 내렸다.


소금부대의 이번 임무는, 택배 운송. 및 배신자의 처분... 인가.


#

칼린은 조용히 요나를 따라 걸었다. 그녀의 방에 어느 정도 가까워지면, 그녀가 또 말을 걸어온다.


"칼린."
"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칼린은 요나의 올려 묶은 꽁지머리에 시선을 두고 걷는다. 그렇게 걷던 그는 곧 그녀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다.


"아무 생각도..."
"호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네요."
그는 무감각하게 말하고서 다시 요나를 뒤따른다. 요나는 고개를 돌려 칼린의 얼굴을 바라본다. 검정색 눈 안쪽에는 붕괴가 보인다. 정신적으로 몰려 있는 자의 눈. 요나는 그 눈이 익숙하다.

전쟁에서  나쁘게도 살아남은, 세상의 극한을 경험해 본 자들. 그리고 매음굴에서 그저 하루를 벌어 사는, 인간의 밑바닥을 경험해 본 자들. 빛을 잃고 나락으로 빠져버린, 내일을 증오하는 사람들의 눈. 그 눈은 검고 깊기에 자칫하면 빠져들어간다.


그렇기에 경계를 담아, 그런 자들이 풍기는 분위기를 '퇴폐'라는 단어로 표현하고는 했다. 빛을 빨아들이는 검은 눈이라고 해서,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결코 유혹당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배웠다.

요나로서는 퇴폐적인 자들에게 끌린다는 것을 이해할  없었다. 그녀에게는 그저 나약한 자들로만 보였었다. 그러나.

"칼린."
"예."
그녀는 발걸음을 한번 멈추고서 칼린과 눈을 마주한다. 깊게 깔린 눈. 죽은 목소리. 그녀의 볼이 약간 상기된다.

"네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공격성입니다."
젖은 밤하늘처럼 내려앉은 눈동자. 그 눈은 결코 희망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아직 뭔가를 바라는 눈.  눈이 향하는 것은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네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충성심입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내가 조금만 더 건드린다면. 저 눈을 마침내 매음굴의 천한 것들과 같은 수준까지 몰락시킨다면.

"네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요나 당신이십니다."
그때. 그때  눈은. 나로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 훌륭하구나, 칼린."
요나는 홍련의 미소를 담아 그의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눈을 바라보았다.

#

정기적으로 열리는 상회의 회의. 다임상회의 대표로서, 에테롬에게 그 회의는 어떤 안건보다도 중요한 것이었다. 12명의 조합대표  7명 이상이 회의의 필요성을 느꼈을 때 진행되는 긴급회의. 그 날 아침, 에테롬은 드물게도 식사까지 거르고 급하게 회의에 참가했었다.

내용은, 당연하게도, 다임상회의 상권 제한에 대한 건이었다. 12명 전원 만장일치로 결정된 회의였다. 에테롬이 회의장에 도착하자,  두명의 총구는 전부 에테롬을 향했다.


"... 에테롬씨, 감당 못할 짓을 하신 겁니다. 상회가 흔들리고 있어요. 당신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목소리에 뒤이어 3명정도의 대표들이 동조했다. 에테롬은 그런 그들을 보며 등을 의자에 기댔다. 그는 조합대표들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전부 소심한 찌질이들. 그런 소인배들이기에 자신만큼 높이 올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분쟁 원인은 사소한 거였잖습니까! 왜 그냥 사소하게 넘어갈 생각을 안하고 일을 키우신 겁니까!"
"당신은 대표 자격이 없어!"
"책임지고 혼자 짊어 지시오!"
점점 열을 띄는 분위기. 조합대표들은 어지럽게 소리쳐 대기 시작했다. 에테롬은 높아지는 언성들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가만히 상황을 보았다. 뭐라고 대답이라도 해보라는 소리도 잦아들 무렵. 에테롬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들은 상인 자격조차 없습니다."
"...뭐라고?"
"삼류 찌질이들.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지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뒤에 서 있던 장신의 동양계 여성이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다.

"상인이라는 자들이, 계약상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해 싸우는 자를 향해 손가락질을 해?"
"상대를 보란 말입니다!"
"위대한 윌레인의 국기 아래, 대가 없이 뭔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국왕저하 뿐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연기를 들이마셨다.

"상대가 거지건, 부자건, 귀족이건, 노비건, 동물이건, 버러지건... 상업에 몸을 담은 자가 계약조차 이행시키지 못한다면, 그건 삼류 잡배에 불과하지. 당신들도 처음에는 분명 나를 지지했었을 텐데요."
"지금 우리의 꼴을 보시오! 전부 바닥으로 몰리게 생겼잖소!"
"멍청하긴. 눈 앞의 상황만 보니 잡배가 되는 겁니다."
"뭐야?"
"상황을 정말 제대로 읽었다면, 지금  상황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텐데."
그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눈빛은 이미 살벌한 것으로 굳어 있었다.


"윌레인 최대규모의 상회가 일개 촌뜨기 영주에게 계약을 물렀다면 어떤 파급효과가 생겼을 까요. 요나에 대한 적대는 필요한 것이었고, 초반까지는 그 견제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었소."
"왜 적당히 뺄 줄을 몰라서 이렇게 일을 크게 키웠냐는 말이다!"
"머저리 같으니. 그 촌뜨기 쪽은 그나마 머리를 쓸 줄 이라도 알지. 설마 그 쪽에서 계약을 파기할 때 우리의 방해공작이 있을 거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겠습니까? 우리가 공격했던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 후퇴라는 선택지는 없었던 거요."
"무슨-"
"우리 쪽이 물러난다고 그 쪽에서 공격을 멈출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이거요. 벨카는 소금부대를 지원할 대형 상회가 두곳이나 더 생겼으니까."
조합대표들이 조용해졌다. 확실히, 상황 자체는 에테롬으로 시작된 것이지만, 이 흐름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이성을 잃었기에 현재만 보고 뱉어 낸 어리석은 책임 전가였다.


"... 그렇다면 어쩔거란 말입니까? 그렇게 뻗대며 말했으니 뭔가 대책은 있겠죠."
"물론 계획은 있지요. 이제야 차분히 들을 준비가 된 듯 하군."
에테롬은 그렇게 말하고서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여성을 가리켰다.


"이게 제 계획입니다."


-

회의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에테롬은 무사히 자신을 물어뜯으려던 12명의 조합대표들을 진정시켰다. 그는 피곤한  양 팔을 휘둘러 대며 고개를 꺾었다.

"피곤?"
"아... 네. 조금 피곤하군요. 멍청이들을 달래는 일은 언제 해도 지치네요."
"돼지새끼, 몸 좀 움직여야 함."
"... 송 윤씨, 윌레인어 모르시는 게 확실하죠?"
둘은 짧게 대화한  마차에 탔다. 삐걱 소리와 함께 마차가 조금 내려 앉았다.


"... 확실히 살은  뺄 필요가 있겠네요."
"생각만 하는 거 보면 당신도 멍청함."
"송 윤씨, 전 당신 고용주에요."
할란이 마차를 움직였다. 마차는 언젠가 라드를 불러냈던 술집을 향해 움직였다. 날이  어둑해 졌다. 회의가 이 정도로 길어진 적이 있던가. 에테롬은 밀려오는 피로감에 안대를 덮고 잠깐 단잠에 들었다.

그리고 눈을  것은 작은 소란 때문이 되었다.

"에테롬씨. 눈 좀 떠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이런, 벌써 도착했나요?"
"그것도 그런데..."
조심스럽게 말하는 할란과, 검을 쥐고 있는 송윤. 에테롬은 성가신듯 눈을 비비며 안대를 위로 들어 올렸다.


"나 참… 또 뭡니까?"
"직접 보시죠."
그 말에 에테롬은 창 밖으로 두꺼운 목을  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인물을 목격하고 눈가를 한껏 찌푸렸다.

"아, 정말. 귀찮은 일들이 줄줄이..."
마차를 막고 있는 것은, 라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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