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3화 〉장송곡 (133/164)



〈 133화 〉장송곡

사람이 많이도모여 있다. 도르베의 인생에서 두번째로 사람이 많이 모여 있다. 첫번째는 현 왕의 즉위식 때였다.

도르베는 소금부대원들과 함께 퍽 멍한 표정으로 모인 자들을 바라본다. 온통 검정색. 날은 춥지만  햇빛이 강하다. 저들은 등이 따갑지는 않을 런지. 참 많이도 사람이 모였다. 그의머리속에는 유감보다도, 그저 멍하게 그런 하잘것 없는 생각만이 떠오르고 있었다.

실감이 가지 않는다. 아직 그는 아스타를 보내 줄 수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는 아스타의 시체도 보지 못했고, 그녀의 원수조차 잃어버렸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가 죽었다는 흔적이 없는데 어떻게 보낼 수 있는가.

도르베는 눈물 흘리는 자신의 동료 몇명을 보며 죽은 눈을끔뻑였다. 목이 말랐다. 멍하게 풀린 정신이 괴롭다. 끝부터 타 들어가는 정신을 붙잡으며 아스타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해 보려고 하지만, 무리다. 도르베는 도저히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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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레오는 요나에게 검은 예복을 한 벌 빌려 입었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약식으로 예를 갖춘 뒤, 그대로 인파를 뚫고 벨카를 나섰다. 거대한 인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가레오 경도 자신의 친우가 되지 않겠느냐고. 농담도 아니다. 이미 8영주의 과반수와 밀접하게 엮임으로서 방패를 만들어 놓았다.

아직 무너트릴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주들이 요나와 경계없이 관계를 만들  있던 이유에는, 분명 그녀의 불완전성이 눈에 띄기 때문이리라. 아직은 상대할 수 있으니까. 아직은 더 커도 위협되지 않을 것 같으니까.

그녀가 하고 있는 짓은 그림자 놀이이다. 작은 덩치를후광으로 불려 크게 보이려 하고 있을 뿐, 실제로 그녀는 위기상황에봉착해 있다.

8영주와 같은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은, 결국 기간제 구호부대의 인기와 명성으로 불린 것. 인기는 영원하지 않으니  공기는 곧 빠진다. 게다가 그녀는 이번에 미쉘을  손으로 죽였다. 상회와 미쉘의 관계성을 조작할 방법을 잃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는 무섭도록 유능하게 자신의 사경을 기회로 돌리며 전진하고 있다.아직까지 그녀는 단 한치의 퇴보도 허락하지 않고 맹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녀의 맹진을 막을 수 있을까. 그는 그녀와 즐겼던 체커판을 다시 떠올려 본다. 다음 위기에 그녀가 어떻게 대처할  생각해 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더 이상 그녀가 미쉘 관련 문제로 자멸하는 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분명히 8영주의 자리를 가져갈 것이다. 소금부대의 명성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 안정적으로 주변을 정리할 것이다.

"... 나도 늙었나."
전면전으로 이기는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아침에  체커 한판에 상당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고, 이젠 그냥 자신의 성에서 느긋하게 피로나 풀고 싶었다. 생각을 관두고, 그는 담배를 물었다.

"최대한 빨리 여길 뜨자꾸나."
"예, 주인님."
태양인가. 확실히. 걸맞는 호칭이다. 가레오는 마치 눈부신 듯 하나같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군중을 보며 그렇게 평을 내렸다. 검게 퍼져 있는 그들은 태양 아래의 그림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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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은 3일에 걸쳐서 치뤄졌다. 그동안 소금부대원들은 전원 성의 단상에서 아스타의 관을 지켰다. 물론, 관 안쪽은 비어 있었다.

둘째날에는 마레가 각본을 짠 아스타를 주제로 한 오페라가 나왔다. 왕도에서 극을 할 예정이며, 이미 노래 가사들은 음유시인들을 통해 퍼져 나갔다. 그러고도 혹시나, 윌레인 대륙 안에 아스타의 죽음을 모르는 자가 생길까 싶어 비행선까지 다시 날렸다.

마레는 또 새로운 시도를 해냈다. 요나가 들여온 태양석을 보고서 떠올린 아이디어로, 비행선의 옆면에 커다란 홍보문구를 붙이자는 것이었다. 그 외부에 조명을 붙여 밤에도 볼 수 있도록 하면 밤낮으로 구경꾼들에게 큰 각인이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비행선은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아오를 예정이었다. 도르베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죽음까지 홍보되는 것 같아 심히 불쾌했다.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아스타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어 뻘짓으로 보였다.

장례식의 마지막날은 외부인들이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한 시기였다. 벨카의 인파는 서서히 줄어들고, 마침내 19시에 장례식의 모든 절차가 끝났다. 라드는 준비해 놓은 말을 타고서 먼저 자리를 떠났다.

남은 9명은 어색하게 자리를 지키다가, 곧  관짝 앞에서 모여 있는 자신들을 비웃듯 등을 돌렸다. 저녁하늘이 회색으로 물들 때 쯤이었다.

"전원 다 있는가."
소금부대원을 향해 다가온 것은 요나였다. 부대원들이 약간의 긴장감을 갖고 몸을 움츠리자, 그녀는 실수했다는 듯 웃어 보였다.

"이거야 원, 미운 털이 제대로 박힌 건가. 이래뵈도 자네들의 상관이다."
"... 그런 게 아닙니다."
"아니라면 다행이군. 사실 오늘이 브리핑 날짜거든. 기억하고 있나, 륑게?"
확실히, 지난 번 칼린과 병실로 찾아왔을 때 말했던가. 3일 후 아스타의 장례식, 5일 후 브리핑이라고. 륑게는 도르베에게 전달하는 것도 까먹었는지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도르베는 그 소식을 간호사에게 전달받아 들었다. 그러나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최근 여러가지를 계속 생각하고 잊었다. 그것을 반복하다 보니 꽤 얼이 빠져 있는 상태였다.

"걱정 마라. 오래 잡지는 않으마. 시간도 이렇게 늦었으니 말이다."
잿빛 하늘에서 눈이 한송이  떨어진다. 요나는 웃으며 등을 돌리고서 부대원들을 향해 목을 꺾어 말한다.

"따라오너라."
"하지만... 라드가 떠났는 뎁쇼. 데려올까요?"
"아니. 필요 없다. 이번 임무는 특별한 거라서 말이지, 지원자만 받기로 했다."
그녀의 눈은 요염하게 일그러진다.  금빛 눈 안에는 시커먼 악의가 가득하다.

"라드는... 필참이니까. 뭐, 군들도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 주면 하는 군."
그 악의를 읽어내지 못하고, 소금부대원들은 의문과 함께 요나를 따라간다. 눈이 떨어져 내린다. 하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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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에 대해서. 끝의 끝, 30도, 7이 앞. 오퀴테스 절, 거인의 꼬리.'
갤러한이 라드에게 건내  쪽지는 그런 내용이었다. 리쿠르트가 전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했다. 해석도 안되는 쪽지를 아무 해명도 없이 자신에게 건내 준다는 것은,  사이는 꽤 신뢰가 기반이 된  했다.

라드는  편지를 받고서 이게 무슨 뜻인지 고민했었다. 선생이 칼린에 대한 것을 물어보려 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뒤에 내용은 해석이 어려웠다. 그리고 꼬박 하룻밤 동안 생각해보고서 나름의 결과를 냈다.

끝의 끝. 날짜. 아스타의 장례식의 마지막날.

30도, 7이 앞. 시간. 7이 시침을 가리키고 30도 간격으로, 6에분침이 도착해 있을 때. 19시 반.

오퀴테스절, 거임의 꼬리. 장소. 오퀴테스의 희곡 중, 멍청한 기사가 성을 거인으로 착각하고 덤벼든 이야기. 거인의 꼬리라면 성의 뒷문 쪽.

라드는 말을 타고 먼저 떠나는 척 하다가, 곧 크게 돌아 성의 뒤쪽으로 향했다. 약속시간보다 조금 빠르게 도착했지만,  자리에는 이미 후드를 눌러쓴 인영이 하나 대기하고 있었다. 라드는 말에서 내려 그 인영을 향해 다가갔다.

"댁이... 선생이라고 보면 되는 건가."
"반가워요, 라드씨. 분명 해석해 낼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상대측은 후드조차 벗지 않고서 손을 불쑥 들이밀었다. 라드는 그 손을 어색하게 쳐다보다가,  재미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 이제 악수는 하지 않기로 해서 말이지."
"그러시다면 야. 급하실 텐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목을 한번 가다듬었다. 그리고 라드를 향해 질문했다.

"아시는 걸 전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뭐에 대해?"
"칼린에 대해."
라드는 리쿠르트의 질문에 조금 눈가를 찡그렸다가,  눈을 감았다.

"꽤 직설적이군 그래. 하지만 질문의 범위는 넓어. 내가 칼린의 말버릇이라도 알려줘야 하나?"
"당신은 칼타코에서부터 제 연락을 받으셨습니다.  때 까지만 해도 제게 뭔가를 알려줄 생각이 있으셨던 거겠죠. 그런데 모든 뜻을 분명히 알고 오신 게 확실해진 지금 그런 말을 하시는 건... 뭔가 마음의 변화가 있으셨나요?"
라드는 아차 싶어 자신의 입을 가렸다. 한마디로 꽤 많은 것이 들통났다. 젠장 할. 머리 좋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질색이다.

"... 아무튼. 더  말 없다면  가겠어. 오늘  건 그냥... 이해했겠지?"
"제게 당신이 아무것도 모른다, 란 입장을 고수하기로 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입니까."
"그래. 그럼."
"이유라도 말하고 가 주실 수는?"
눈 앞의 여자는 라드가 마주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머리가 좋은 부류이다. 아마 에테롬만큼. 방향성은 다르지만, 그녀는 에테롬과도 머리싸움으로 지지 않으리라.

 오래 대화해서 좋을 것이 없다.

"선생. 내가 전하고 싶은  다 전한  같군. 이만  보오."
"... 그렇게 하시는 겁니까."
"눈도 오니까 말이야."
뒷말을 듣지 않으려는 듯, 라드는 급하게 말에 올라탔다. 리쿠르트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성의 외벽에 등을 기댔다.

"...  끊어졌네..."
눈이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리쿠르트는 피지도 않는 담배 생각이 떠오른다. 어쩌면 흡연이라는 건 그저, 멍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말이 그의 집에 도착한 것은 새벽달이 가까워졌을 때 였다. 그는 지친 자신의 말을 다시 마굿간에 묶어 두고서, 몸에 쌓인 눈을 털고 집 밖에 걸터져 있는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언제든지 자신의 흔적을 없앨 수 있도록 최저한의 조건만 유지해둔 집. 가만히  집을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 그는 생각해 보면 평생 빗자루질이라는 것을 해 본적이 없다.

그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어디에서나 불쾌한 손님이었고, 자신의 집조차 스치는 자였으니까. 남지 않고, 남기지 않는 자. 발자국도 없이 기어서 사라지는 자. 그것이 '독사' 라드였다.

그는 자신이 왜 빗자루를 쥐었는지 뒤늦게 떠듬떠듬 생각해 보았다.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일단 하염없이 빗자루를 쥐고 자신의  앞을 쓸어 보았다.

눈이 계속 내려온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눈이 쌓여 있겠지. 지금 청소하는 데에 의미는 없다. 그래도 계속 쓸어 본다. 어느 정도 쌓인 눈을 쓸어본다.

누이가 임신했다. 병도 나았다. 이젠 남자친구도 있다. 퍽 건실해 보이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와 함께 무사히 도망쳤다. 자신이 모르는 곳으로. 이제 누이는 그의 도움이 필요 없다.

내가 삼촌이라니. 그 누님이 아이를 갖게 되다니. 그렇게 힘들게 평생을 살아왔는데, 그런 누님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니. 생명이라는 것은 어떻게 이렇게 신기한가. 그 극한의 상황속에서 어떻게 둘은 사랑하게 되었고, 새 생명을 잉태할 각오를 했을까. 라드가 알 방법은 없다. 그는 이야기 밖의 인물이니까.

눈이 쓸린다. 고요한 거리에, 라드가 눈을 쓸어 넘기는 소리만이 쌕쌕 울려 퍼진다.

이 통증. 가슴 속의 저릿한 아픔. 라드는 어쩔 수도 없는 살인마다. 악인, 선인, 어른, 어린이, 노인, 여자, 남자, 병자, 동업자. 전부 가리지 않고 죽여왔다. 손에 피가 마르면 돈이 없다는 뜻이었기에. 단 한번도 그들이 살아있는 생명들이라는 것을 잊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하지만.

적막속에서, 라드의 빗자루질이 잠깐 멈춘다. 그의  쥔 주먹은 추운 날씨 때문에 조금 붉게 상기되었다.

그 아이가 보고 싶다. 누님을 만나 용서받고 싶다. 아이의 얼굴을 보고 싶다. 그 아이에게 삼촌으로서 있고 싶다.  아이에게는 이 세상의 몇 안되는 밝은 면 만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그건, 라드가 없는 세계에서 더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왜냐.

라드는 다시 빗자루를 움직여 본다. 싸악- 싸악, 그 싸리빗은 아직도 미련하게 옅게 깔린 눈 만을 치워내고 있다.

못 만날 건 뭐가 있을까. 그래. 그는 이제 영웅이다. 요나는 자신의 부대에 배신자가 있었음을 숨기고 싶어 한다. 나는 요나에게 충실하다. 아니, 이젠 확실히 충실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괜찮아 지는 게 아닐까. 소금부대를 전역하고 나면면죄부가 생긴다. 그걸로 내 과거를 청산할  있는 것 아닐까.

어쩌면. 모든 게 끝나면 그는 국가의 영웅이라는 명성 아래에, 자신의 누님이 꾸린 행복한 집에 슬쩍 들어가, 아이에게 무공을 말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감히 국가가 용서한 그의 죄를  따질 자가 있을까. 그럴 리 없지. 왕의 이름 하에 부여된 면죄부에 누가 토를 달까.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신경질적으로 빗자루가 움직인다. 점점 가속을 붙이며, 빗자루 소리가 정적을 매워 나간다. 그리고 곧 바닥이 드러난다.

라드가 청소하지 않았기에 쌓인 낙엽,  위로 얼어붙은 바닥이 드러난다.

라드는 그것까지 청소해 보기 위해 빗자루를 흔들어 본다. 그러나 얼어붙은 것을 빗자루로 어떻게 해낼 수 있을 리 없다.

"...젠장."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얼음바닥을 긁어내 듯, 싸리비를 거칠게 흔들어 댄다. 얼음조각이 이리저리로 튀며 라드의 손을 찌른다.

"젠장, 젠장할, 씨발...! 씨팔!!"
라드의 빗자루질은 점점 거칠어지다가, 결국에는  분을  이겨 거칠게 휘둘러지던 빗자루를 부셔버리고 만다. 나뭇가지들이 멋대로 흩어지며, 빗자루는 완전히 부서진다. 그는 거기서  가장 길게 뻗은 나뭇가지 한자루를 주워들어 성화를 못 이겨내고 얼음조각 위로 긁어 댄다. 붉게 부어 터진 손에서 피가 흘러나온다.

"씨팔! 치워져! 저리 꺼지란 말이야!!!"
탄식인가, 비명인가, 절규인가. 이미 다 쉬어 버린 그 목소리는 인간의 것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근처에 인가조차 없어 듣는 자도 없이 묻힌 그 목소리는 라드 스스로에게도 닿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그가 포기하고  앞에 얼어붙은 낙엽조각들을 바라볼 때. 그는 망연자실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느새, 그가 쓸어 놓았던 곳에도 다시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다.

그는 붉게 상기된 눈으로 그것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시야에는 오로지 설국. 짙어 지는 눈보라. 하염없이 바람에 날아가는, 한 때 자신의 빗자루였던 나뭇가지들. 이제 그의 손에는 그저 초라하게 길게 뻗은 나뭇가지 한 자루 뿐이다.

알고 있었다. 더럽게 살아온 놈이 깨끗하게 죽으려 해서는 안되었다. 언제 어디에서든 자신의 무덤을  준비는 되어 있었다. 누님의 병만 제대로 낫고 나면 언제 누구에게 죽든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각오가 그의 죄책감을 덜어주고 있기도 했었다.

그런데, 좆됐다.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늦바람이 불어온다.

죽고 싶지 않아졌다.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남은 게 없는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게 되어 버렸다. 조카의 얼굴조차 평생 못 볼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 날, 어느 작은 마을에서는, 새벽에 인근의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소문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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