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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화 〉여진(餘震) (125/164)



〈 125화 〉여진(餘震)

걔 아버지가 애 좀  부탁한다고 했잖아.

그래서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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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병은 방아쇠에 걸친 손가락에 힘을 준다. 총을 쏘는 데 제일 중요한 것. 방아쇠는 절대로 한번에 당기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 서서히. 조금씩 눌러서 최대한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식탁 뒤에, 저들의 위치는 어느정도 파악이 되었다. 남은 세발이면 저 둘의 목숨을 끝내기에는 충분하다. 그리고 그때-


"야! 멈춰봐!"

신경질적인 목소리.  팔이 하나 빠져나온다.  칠갑으로 붉어진 팔이다.

"항복! 항복하면 살려준다매!"
그렇게 말하며, 붉은 머리를 한 여자가 몸을 일으킨다. 그녀 혼자만 몸을 일으켜 세운 것이 의심이가 통신병은 총구를 돌린다.


"야! 도르베는 기절했어! 기다려봐... 어우, 씹... 무겁냐..."
그녀는 식탁 뒤에서 기절한 도르베를 끌어당긴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총구에 중지를 날린다.


"...항복이라고?"
"그래. 항복이다, 씨발. 갑자기 이상한 무기를 꺼내내."
아스타는 비틀거리며 벽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벽에 기대, 몸을 질질 끌면서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서서히 몸을 움직인다.

"기다려봐... 어우, 타이밍도 좋아."
그녀는 그렇게 몸을 질질 끌며 움직이다가, 곧 귓가에 손을 댄다.


"어... 소니아. 우리 졌다. 내려와서 좀 도와주라."
'뭐? 야! 뭔 상황인데!'
"핀이랑 도르베가 기절했어... 나 혼자 남았고. 대사들 다 모시고 내려와."
'이런 씨발, 진짜?'
아스타는 그 말에 답하지 않고 연락을 끊어냈다. 그리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벽에 거의 몸을 부대끼면서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다가간다.

"뭐야, 한발 맞은 거냐?"
"아니. 근데 굳이 안 맞아도 그게 아플 거 같다는  알거든."
그녀는 웃으며 계속 발을 옮긴다. 얼굴은 시체처럼 하얗게 질린 상태로, 몸을 질질 끌며 걷는 모습이 언데드같다.


"...이상한데."
통신병은 직감적으로 묘한 것을 깨닫고 다시 총을 들어 올렸으나, 어느새 도착한 이바노프가 그 총구를 잡아 내렸다. 그리고 통신병을 노려보며 낮게 말했다.


"그냥 둬라."
"...하지만-"
"항복했다."
그리고 그는 핀의 몸을 들어 올려 아래로 내려주었다.

"사실 대사는 한  확보했다만... 세명인 편이 더 좋겠지."
"아아, 그래. 동료들이 데리고 내려올 테니까 조용히 기다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들이 있는 아래까지 지나쳐 간다. 마치 1층 벽 전체에 몸을 문대려고 하는 것처럼. 비틀거리며.


"... 아스타! 지금 왔어!"
기절한 갤러한을 들쳐 맨 릴로가 그렇게 소리친다. 누구 하나 정상인 꼬라지가 없다. 이리하는 팔에 피를 흘리며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고, 륑게는 소매 끝까지 피로 젖어 몸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소니아는 코피를 대충 닦아낸 것이 굳어 퍽 웃긴 꼴을 하고 있다.

"엽."
아스타는 그런 그들을 향해 계단 벽 쪽으로 몸을 부비며 다가온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웃어 보인다.

"도르베는 식탁 뒤에. 핀은 홀에 있어."
"넌 괜찮은 거야?"
"뭐...  좋진 않은데, 쟤들보다는 나아."
그녀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 하며 기절한 자들을 향해 턱짓을 했다.


부대원들 뒤에 숨어있는 대사들은 울상이었다. 사시나무처럼 떨며, 익숙치 않은 피냄새에 혼절을 겨우 참아내고 있는 듯했다.

"미안해요, 이건 못 막겠더라... 이젠  짜도 돼."
아스타가 대사중 한 명의 뺨을 톡톡 친다. 뺨에 피가 잔뜩 묻자, 대사는 비명을 간신히 참아내며 눈물을 흘린다.

"어우... 조금 지나가자..."
아스타는 계단을 지나쳐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는 동안, 륑게가 이바노프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너가 여기 왕초냐?"
"... 강습부대는 어떻게 됐지?"
"종이비행기 타고 온 애들? 우리가 다 죽였다."
"...그런가."
이바노프는 잠깐 묵념하고서 숨을 참는다. 그의 생각보다 손해가 막심했다. 설마 푸르투가까지 죽지는 않았겠지. 막연하게 떠오른 생각은 그것이었다. 그러나 알고 있다. 푸르투가가 살아있었다면, 저들이 이렇게 내려오는 것은 불가능했음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야... 항복하면 살려주는 거지?"
"...그런 약속이었으니."
"씨발... 영웅놀이도 끝이네."
륑게는 허탈하게 웃으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피로 굳은 머리는 내려가는 일이 없었다. 그는 이바노프를 노려보다가,  웃으며 무기를 내려 놓았다.

"너네가 이겼다. 데려가."
"아, 안돼! 안돼! 죽고 싶지 않아!"
"재네는 형씨들 안 죽일거요. 걱정말고."
"이, 이쪽으로 올 떄도 걱정, 하지 말라, 했잖아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지, 그들의 말은 떠듬떠듬 이어졌다. 릴로가 눈을 찡그리며 그들을 노려보자, 곧 다시 조용해졌다. 1층에는 울음소리만이 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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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가 날 믿는다잖냐. 범죄자 새끼가 솔직히 언제 그렇게 믿음을 받아 보겠어? 나름 굳엔딩이지,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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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타는 크게 그 방을 한바퀴 돌아, 정문 쪽에 멈춰 선다. 그리고 부대원들을 향해 소리친다.


"야, 이거! 막은  열어야지!"
"...아."
동료들이 한 명 두 명씩 걸어가 막아 둔 정문을 뜯어낸다. 그 동안, 이바노프는 그들을 향해 말한다.

"칼린과 라드에게도 전해라. 네놈들은 항복했다고. 윌레인에서 쫓기는 생활이 되어서 도망칠 곳이 필요하다면, 뭐... 네놈들은 무리지만, 칼린은 받아줄  있다고도 전해."
"뒤지게 영광이네, 씨발새끼야!"
소니아가 그녀답지 않게 거친 어투로 욕설을 날린다. 그러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참패였다. 그녀의 작은 술집을 만들어 보겠다는 꿈도 같이 날아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걸로 그들은 역적이 될 테니까.

"그란칼로 도망치면 다임상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그들과 함께 도망쳐라. 미안하지만, 다 같은 곳으로 보내줄 수는 없어., 전부 흩어져서 도망치도록."
"...다임상회?"
"더 자세한 것은 말하지 않겠다."
륑게의 질문을 일축하고서, 이바노프는 머리를 붙잡았다. 그는 사실 마음속 깊이 안심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아스타는 다치지 않은 듯했고, 도르베와 핀은 기절했다. 그게 끝이다. 저들이 그래도 항복을 하긴 했다. 대사들만 데리고 가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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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씨발! 감빵까지 갔다 와서 걸뱅이로 죽을 줄 알았더니, 국가 영웅 대접도 받아보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녀보고! 돈도 평생 다 못  정도로 벌어봤는데! 이건 호상이지, 호상. 응.


#

"야, 근데..."
소금부대원들이 문을 전부 뜯어내고, 핀과 도르베를 회수했을 때 쯤이었다. 아스타는 계속 빙빙 돌다가 곧 제자리에 풀썩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까 그냥 항복 취소. 그거 안 할래."
"...뭐?"
이바노프가 얼굴을 찡그리며 그녀를 쳐다본다. 다른 동료들도 사색이 되어 그녀를 돌아본다.


"항복 안할거라고. 도르베가 하지 말랬어."
"야, 너 갑자기 뭔 개소리야!"
륑게가 소리쳤다. 곧, 통신병이 다시 총구를 돌려 아스타에게 향했다. 이바노프가 당황하며 그를 잡으려 했지만, 통신병은 그저 이바노프를 조용히 노려보는 것으로 그를 제지시켰다.

"끝낼  끝내야죠, 대장... 다른 놈들은 전부 항복 찬성한 거잖아."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아스타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린다. 정조준은 끝났다. 그러던 중, 아스타가 자신의 손을 높게 들어올린다. 엄지를 들고 있다.


"뭐, 일단 멈추고 내 말이나 들어보라니까."
통신병은 불길한 예감에 얼굴을 찌푸린다. 아스타는 그런 그의 표정을 즐기듯 웃는다.


"내 마법 말이야... 날 가만 둔 거 보니까 뭐, 정확히 원리는 몰랐나봐?"
이바노프가 추측한 것은, 아스타의 마법이 손에 닿은 것을 터트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피를 폭발 시키는 마법이거든, 내가 가진 게. 뭔 뜻인지 이해 가?"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왼손으로 자신의 배를 눌렀다가 들어 올렸다. 흥건하게 젖은 피가 손바닥을 타고 뚝뚝 흘렀다.

"이런 씨발..."
통신병이 한탄처럼 욕설을 내뱉었다. 이미 1층 벽 전체가 그녀의 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아스타는 그 모습에 참을  없이 신나는 듯 쿡쿡 웃었다.


"아스타! 괜찮은 거야?"
"안 괜찮아. 비장에 맞았어."
그녀는 웃음기를 머금고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계속해서, 꿀렁거리며 피가 분출되고 있었다. 이 피는 멈출 수 없다. 이런 부상을 치료할  있는 병원따위, 이곳에는 없다. 동료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뭘 바라는 거냐."
이바노프의 말에, 아스타는 고개를 들어 올린다. 조금 힘겨워 보인다.


"내 동료들과 대사들의 탈출. 그리고 추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대사관은 전략적 요충지가 될  있다. 일단대사관 탈취 자체가 꽤나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이바노프는 이 곳을 쉽게 포기할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좋다."
"이바노프씨!"
"어쩔 수 없다. 마법을 빨리 파악했어야 했어."
"정신 차리십쇼!  말이 진짜인지도 모르는 거고,  피가 저년 꺼라는 것도 모르는 거 아니요?!"
"뭐, 병신아. 시험해 볼래?"
아스타는 손을 흔들며 비웃어 댔다. 통신병은 그 말에 몸을 조금 떨었다.


동료들이 그녀를 바라본다. 특히 소니아가 얼굴이 하얗게 바래져 그를 쳐다본다.


"거, 거짓말이지? 진짜?"
"... 륑게, 끌고 나가주라."
"응."
"야, 륑게! 진짜 그냥 버리고 가려고?"
"아스타 결정이야."
륑게는 아스타에게서 눈을 피하며 소니아의 팔을 붙잡았다.

"먼저 간다, 아스타.  존나 멋졌다."
"오냐."
점점 약해지는 목소리에 소니아의 몸이 크게 튀었다. 릴로까지 합세해서 그녀를 붙잡는다.

"너 보험비는 창관에 탕진할거야."
"헤헤... 좆대로."
"썅년, 화도 안내내."
릴로도 아스타를 보며 입가를 일그러트리며 웃는다. 난동 피우는 소니아를 붙잡은 그녀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거기,  묻은  좀 닦아주고... 어디까지 멀어져야 안 터지는  정확하게 재 본적이 없으니까. 되도록 다 닦아주고 옷 다 벗기고 멀리로 꺼져..."
"...그래."
그녀의  끝에는 이미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도, 다른 모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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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점점 아파 오네... 안 아픈 게 아니었구나,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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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노프와 통신병이 천천히 발을 옮긴다. 그리고 자신의 아직 숨이 붙은 병사들을 질질 끌며 어디론가 발을 옮긴다.

"...넌 전사다."
아스타는 더이상 말할 힘이 나지 않는다. 그녀는 힘겹게 손을 들어 올려, 그녀의 중지를 들어 올린다. 이바노프는 그걸 보고서 가만히 눈을 감는다.

"지하통로로 나가자."
"... 알겠소. 젠장 할,  기회를 놓쳐버리는 군."
"대사 한 명은 확보했으니 이정도면 선전이야."
그런 말과 함께, 둘은 지하통로의 문을 열었다.  그 문이 닫히는 소리가 퍼지고, 황폐한 대사관은 이제 정적만이 남는다. 정적과 아스타만이 남았다.


그녀는 느리게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본다. 작전성공. 어떠냐, 도르베.  계획 존나 쩔지.


혼자 피식 웃고서, 그녀는 주머니에서 집혔던 피에 절어버린 담배를 꺼낸다. 눅눅하고 축축하다. 이런 건 피기 힘들다. 아쉬운 대로, 그녀는 그걸 입에 물어본다. 비릿한 피냄새가 그녀의 비강을 타고 흐른다.


아... 이거... 진짜 아프네. 죽을 정도의 상처는 오히려 안 아플 줄 알았더니.

일단 사는 게 최우선인 인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래왔고, 당장 어제까지도 그랬다. 명예니 동료니 약속이니, 별 지랄맞은 핑계를 대가며 죽어가는 놈들을 봐왔다. 아스타는 그들을 비웃어 대는 쪽이었다.


"크... 큽... 크하하하하하!"
그 대상은 자신도 예외가 아니었다. 꼴 좀 보라지. 여기저기 피칠갑을 두르고, 팔 다리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 상태로 바닥을 기고 있군. 일평생을 버러지 마냥 구르면서 살면서도 호강 한 번을 못하더니, 묘비석은 존나  걸로 장만하게 생겼다.

내 죽음을 맞이할 이는 누구도 없다. 여기서 혼자 싸늘하게 식어가겠지. 죽으면 끝이야. 그 뒤에 명예는 어디 있고 약속은 어디 있고 사랑은 어디 있는데. 죽으면 그냥 죽는 거지. 호상이 뭐고 굳엔딩이 뭐야. 다 살아남은 놈들이 하는 씹 개소리다.

아, 씨발. 죽기 싫다. 진짜 죽기 싫다. 엄마,  죽고 싶지 않아요.

감각조차 잃은 그녀의 뺨에 핏물이 씻겨진다. 눈물로 씻겨 내려가며 하얗게 핏기 잃은 얼굴이 조금씩 드러난다.


"....주, 죽고 싶지 않아..."
그녀는 담배를  깨물어 본다. 죽을 수 없다. 전부 눈앞이다.  이제 영웅이고, 조금만 버티면 범죄자 꼬리표도 청산이다. 이딴 곳에서 혼자 외롭게 죽고 싶지 않다. 차가운 돌바닥에서 드러누워 죽고 싶지 않다. 그 새끼들한테 보험금을 주고 싶지 않아. 나 죽은 돈으로 빡촌 가지마, 릴로 씨발년아. 죽고 싶지 않다. 고향도 아니고 정도 들지 않은 비정한 땅에서 죽고 싶지 않다. 아무튼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죽고 싶지 않아....!"
그녀의 몸이 앞으로 풀썩 쓰러진다. 눈 앞에 문이 보인다. 아직 몰라.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잖아. 운 좋게 대단한 마법을 가진 사람이 살려줄 수도 있잖아. 생각해 보니 포기하기에는 이른거다.  씨발 멍청한 새끼, 이런 짓을 하는  아니었다. 정신 차려.  악물어. 움직여. 움직여.


다리는 이미 딱딱하게 굳었다. 양 팔을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며, 그녀는 애벌레 마냥 바닥을 기어간다. 춥다. 춥다. 바닥이 차갑다. 이빨이 딱딱 소리를 내며 부딪힌다. 누가 담요 좀 깔아줘. 도르베. 도와줘.

피가 길게 이어진다. 그녀의 눈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거칠어진 숨으로 눈물을 삼켜내며 계속 기어간다. 문이 저 앞이야. 저 앞인데.  너머에 날 고쳐줄 대마법사가 있어. 도르베가 데려와 줬을 거야. 살려주라.

버러지새끼처럼 목숨을 구걸할 걸. 싸우지 말 것을 그랬다. 바로 항복을 했어야 했다. 아아. 제발. 죽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나 조금만 도와주세요. 죽고 싶지 않아요.

팔이 무너진다.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1층  정 가운데쯤에 피로 길을 이어낸 상태로 뻗은 그녀는, 말 그대로 버러지 시체같다. 그녀는 가까스로 몸을 뒤집어 천장을 바라본다. 에너지 아껴야 되는데, 눈물이라도 멈춰야 되는데 이게  멈춘다.


내가  싸웠더라.

도르베, 너가 싸우길래 싸웠지.


야, 존나 후회되는데, 너가 원망스럽지는 않다.

이러면 후회하는 것도 아닌가.

바닥을 쓸어서 이제 담배는 길바닥에 버려진 꽁초와 다를 바가 없어졌다. 그녀는  담배를 씹어대며 꺼져가는 시야를 느낀다. 차가운 바닥, 무너져 가는 거대한 건물. 그 한가운데에, 그녀 홀로.

나도 반반한 집에서 행복하게 자라고 싶었는데.

마을 안에서 진짜 평범하게 자라서  거 다해보고 싶었는데.


가끔은 친구들이랑 술도 마시고, 별볼일 없는 이야기하면서,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울어보고, 그렇게 살고 싶었는데.

사랑도 해보고, 결혼도 해보고. 애는 안 낳았을  같아. 난 애들이랑은 안 맞아.


근데 그랬으면 아마   만났겠지.

꼬부라지고 젖은 담배를 꼿꼿하게 세운다. 천장이 뿌옇다. 조명의 빛이 퍼져 나가 눈을 덮는다. 아아, 점점 하얗게 된다.


마지막은  개좆같은 세상을 비웃기나 하자. 웃어라.


"...거, 담배 좀 피려는데..."
일렁이는 정신 속에서, 힘차게 손을 뻗어내라. 주먹을 들어 올려라.


"불  주쇼."

#

얼마나 더 달렸을까. 왠지 모를 불안함에 말의 박차를 올리던 칼린이, 고요한 숲의 한가운데에서 폭음을 들은 것은 언제일까.


숲의 날짐승들이 놀라 때 지어 도망친다. 대사들도 그 소리를 듣고 흠칫 놀란다. 그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가장 연로한 대사가 창을 열고 칼린을 쳐다보며 외친다.


"지금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설명하세요! 윌레인은 뭔가 계획을 꾸미고 있는 겁니까?!"
대사는 그렇게 외치며 칼린의 등을 바라본다. 칼린은 대답하지 않는다.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다.


"방금 그건 분명히 빅센마르크 방향에서 난 소리였어요! 확실히 말하시지 않는다면 외교문제로 넘기겠습니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보며 말하기 위해 힘겹게 창에서 목을 빼내 외친다. 그러나 그럼에도, 가면을 쓴 칼린은 꿈쩍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의 고삐만 후린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상황 설명을 하지 않으실 거면 마차라도 멈-"
"닥쳐."
"...뭐라고?"
대사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그를 쳐다본다. 그는 정면에서 고개를 조금 돌려서, 대사와 눈을 마주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닥치라고."
뚜렷하게. 한 단어 한단어를 무겁게. 그 말에는 경고의 의미가 엄숙할 정도로 무겁게 담겨 있었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대사는 그저 천천히 고개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창을 닫고 조용히 머리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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