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여진(餘震)
이리하는 가만히 문 앞에 앉아있었다. 한쪽 무릎만 꿇어앉은 그녀는, 언제든지 다가오는 자를 베어낼 준비가 되어 보였다. 불쾌감이 깊게 박힌 얼굴에는 흉흉함이 서려 있었다.
곧, 그녀의 대검이 약간 떨렸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계단 쪽을 바라본다. 벽에는 그림자가 점점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위아래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다가오는 소리까지는 들리지 않는다.
계단을 통해 올라온 것은, 무장한 병사가 아니었다. 이 자리에 맞지 않는 정장이었다. 그러나 분명히 무기를 들고 있었다. 위 아래의 병사들이 들고 있는 몽둥이 따위의 무기가 아닌, 상회에서 지급한 소총이었다.
"이리하씨, 무기를 내려주세요. 당신이 교단측 협력자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글쎄. 내가 너네를 도와야 할까? 교단에서는 분명 소금부대를 건드리지 말자고 했던 것 같은데 말이야."
이리하의 기운이 조금 더 흉흉해진다. 그녀의 대검이 치켜 올라가고, 세라는 그것을 보며 조금 웃는다.
"교주는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소금부대와 부딪히지 않고서 독립을 이룰 수 있을 리 없잖습니까. 교단 안에서도 의견이 갈리던 안건이었어요."
"그래서, 여기 참여한 교단원들은 전부 변절자라고 보면 되는 거야?"
"너무 그러지 마시길. 모두 우리의 독립을 진심으로 바라는 분들이시고, 교주님과 의견이 달랐을 뿐이니까요."
세라는 그렇게 말하고서 자신의 무기를 장전한다.
"아무튼... 이리하씨와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부디 그 자리를 비켜 주시겠습니까?"
"계약을 어긴 자의 말을 들을 이유가 있나?"
"우리는 여러분을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대외적으로 무력의 차이를 보이기 위해 이런 수단을 사용했을 뿐이고, 항복해 주신다면 대사만 데리고 나갈 겁니다. 그러니까 부디..."
이리하는 가만히 그런 세라를 노려보았다. 위 아래로 시끄러운 그 건물 속에서, 그 둘이 있는 층계 만큼은 침묵이 지배했다. 곧 이리하는 대검을 내려 놓았다.
"한 명만 데려가."
"...한명이면 충분하죠.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총 줘봐."
"예?"
세라는 조금 의문을 품고 이리하에게 총을 건냈다. 그녀는 그 총구를 돌려 자신의 왼팔로 향했다.
"무슨...!"
크게 당황해 높아진 세라의 목소리도 총성을 가릴 순 없었다. 이리하의 플레이트 갑옷 아대를 뚫고서, 깔끔하게 관통한 상처가 생겼다. 그녀는 뚫린 팔을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으... 씹! 제기랄!"
"왜 이런 짓을..."
"눈뜨고... 그냥 문 열어주면... 애들이 납득할 거 같아...?"
이리하는 그렇게 말하고서 총을 세라에게 던져 건냈다. 세라가 그것을 받자, 이리하는 다친 팔을 끌고 방 옆쪽에 기대 앉았다.
"한명 아무나 데리고 가... 빨리 이자리에서 꺼져."
세라는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방의 문을 열었다.
대사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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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한은 기절해 있다. 릴로는 손바닥을 깊이 배여 너클을 놓쳤다. 륑게는 팔이 베였고, 소니아는 코피를 뿜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캄뷰로 공습부대원들이 쓰러져 있다.
"...씨발, 다들 성가시기는."
륑게는 그렇게 말하고서 무릎 꿇고 있는 푸르투가에게 다가갔다. 푸르투가는 륑게를 올려다보며 이를 드러낸다.
"용케도 막아 냈군 그래..."
륑게는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푸르투가를 내려다 본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뽑아 든다.
"우릴 너무 얕봤구만."
"뭐... 그런 것 같군."
계속 헐떡이다가, 결국 그는 앞으로 쓰러졌다. 넘어진 자리에서 흥건하게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세상이 넓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을지도 모르지... 전 병력을 다 끌고 왔어야 했나?"
"이제 와서? 멍청하긴..."
륑게는 웃으며 푸르투가의 곁에 앉았다. 릴로와 소니아는 갤러한을 부축하고서 땀을 닦는다.
"야 륑게! 어쩌지?! 우리 밖으로 도망쳐야 되냐? 대사들 모시고 일단 그란칼로 도망가?"
그란칼. 운송담당을 맡은, 오로아나 상회가 대기하고 있던 곳. 아직 소금부대원들은 거기가 다임상회의 공격으로 무너진 것을 모른다.
"그러게... 이걸 시발 어쩌냐."
륑게는 웃으며 앞으로 쓰러진 푸르투가의 주머니를 뒤져 본다. 꾸깃한 담배곽이 나온다. 그는 반가운 표정으로 거기서 담배 두 대를 꺼내 든다. 성냥으로 거기 불을 붙인 그는, 향을 음미하며 하늘을 바라본다.
"아스타는 지금 어떻대?"
"아 맞다, 아스타!"
릴로의 말에 소니아가 귓가에 손을 댄다. 륑게는 그 장면을 보며 담배 한 대를 쓰러진 푸르투가의 입에 물린다.
"...치...워라... 숨쉬는데 방해돼..."
"거, 곧 꺼질 숨인데 담배나 펴."
"호로새끼..."
"너나 나나."
푸르투가는 그의 적들을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했던 것은, 다른 층계의 전투와는 달리 명백히 목숨을 건 전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은 서로를 향해 웃었다.
곧, 푸르투가의 담뱃불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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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노프는 강했다. 아스타와 도르베, 둘을 상대하면서도 그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물론 전투가 1대 2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남아있던 병사들은 계속해서 덤벼들었고, 도르베와 아스타 둘은 서서히 깎여 나가듯 힘이 빠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오래 싸우지 않았나?"
"입 닥쳐라!"
도르베는 분노에 몸을 맡겼다. 그의 검은 어느 때보다도 격했고,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이바노프는 단조로워진 도르베의 공격을 막아내며 상황을 보았다. 그리고 무기를 접어들고 도르베를 향해 말했다.
"우린 이렇게 싸울 필요가 없다. 항복해라. 항복하고 그란칼로 도망쳐. 잡지 않겠다."
"너넨 국가 반역자다! 모조리 죽여 버리겠어!"
"... 그렇다면 기절시켜서라도 내쫒겠다."
"도르베! 일단 좀 진정해!"
아스타도 다시 그 자리에 합류해서 도르베에게 붙었다.
"침착해! 거의 다 잡았으니까! 저것들 다 죽이고 대사 데리고 그란칼로 도망만 치면 우리가 이겨!"
"아스타..."
그녀의 몸은 피로 젖어 있다. 적들의 피 뿐이 아니다. 그녀의 마법 특성상, 이렇게 장기전을 벌였을 때 좋을 것은 없다.
땀에 젖은 머리가 번들거리며 이마에 달라붙고 있었다. 거칠게 헐떡이며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도르베는 자신의 상황을 파악할 틈이 생겼다.
그 자신의 상황도 결코 좋지 않았다. 아버지가 준 의지의 관절 틈까지 피가 들어가 삐걱거렸고, 뒤늦게 몰려오는 통증들이 여기 저기를 엄습해왔다. 급소를 피한 공격들은 무겁게 그의 몸을 누르고 있었다.
"도르베, 잘들어... 우리 아직 불리한 상황 아니야. 제정신 유지하고 이제 저 왕초새끼만 죽이면 돼. 술집싸움 기억하지?"
아스타는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말하고 있지만, 크게 헐떡이는 숨을 전부 감출 수는 없었다. 적들은 아직도 8명 넘게 남아 있었고, 핀은 위층에 쓰러져 있었다.
"끝까지 침착하, 게, 지형 지물 다 쓰면서... 끝까지 가면 우리가 다 이겨. 맞지?"
8명의 병사와 이바노프가 원형으로 둘을 서서히 압박하며 다가온다. 그제서야 도르베는 자신이 무모하게 움직여 왔음을 깨닫는다. 이 상황이 자신의 분노로 초래된 것임을 알아챈다.
"아스타..."
그러나 그럼에도 그녀는 항복을 권유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을 따라 주었다. 이런 순간에 와서도, 그녀는 기죽지 않았다. 아직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어리게 굴 수는 없었다.
"미안-"
그가 입을 벌리자, 아스타가 노려본다. 피칠갑을 하고 있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다. 그러나 그 눈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 눈으로 도르베에게 원하는 말이 있다고 호소한다.
"...아니, 고맙다, 아스타. 조금만 더 등을 맡기마."
"그래야지."
자세가 안정되었다. 등을 맞대고 서로의 호흡을 느낀다.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 검날을 향한다. 호흡의 운을 맞추고-
"가자!"
다가오는 적의 공격을 받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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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은 말의 속도를 더 높인다. 말을 몰아봤으니 마차도 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영 서툴다.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아무리 애써도 원하는 만큼의 속도가 나오지 않았다.
"방금 그건 대체 뭐요?"
대사가 뒤에서 창을 열고 묻는다. 칼린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답한다.
"몰라요! 산적일지, 뭔지, 아직 파악이 안됐다구요!"
다시 고개를 돌려 어두운 숲을 바라본다. 얼마나 더 가야하는가. 어디로 가야하는가. 가는 길이 맞기는 한가. 혼란스러운 머리속에서 가장 간절하게 떠오르는 것은 따로 있었다.
"제발... 제발 그냥 아무 일도 없기를..."
그는 혼자 되내이면서 채찍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말이 속도를 더 올리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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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노프는 정면의 싸움을 지켜보다가, 곧 핀이 기절해 있는 난간 쪽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린다. 그리고 통신기를 매고 있는 병사에게 질문했다.
"바바라에게 연락은?"
"아직 없는 뎁쇼?"
상회에서 온 이 남자는 아무래도 조금 수상하다. 신자로서, 그는 상회보다 교단이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그 또한 마키도의 경고에 공감했었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번 작전에서 상회의 공로를 뺄 수는 없는 것이었다. 무기, 식자재, 폐차하려던 에어택시까지 고쳐서 들여올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었다. 마력을 충전할 수 없는 구조라고 했었던가. 그 비싼 에어택시를 일회용으로 쓰고 버리는 도구로 사용할 정도의 자본이다.
상회는 분명히 자신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바노프는 그 상황을 인정하고 있었기에 의심가는 것을 더 캐묻지 않았다. 통신병은 그런 이바노프의 눈치를 보고서 매고 있던 통신기를 바닥에 내려 놓았다.
",,, 그 자리에서 계속 대기하고, 바바라에게 연락이 오면 바로 불러라."
"예이~."
늘어지는 대답. 이바노프는 살짝 눈가를 찌푸리고 다시 정면의 싸움에 주목한다.
둘은 치열하게도 싸우고 있다. 머리를 두들겨 맞으면서도, 피조차 닦지 않고 싸우는 모습에 약간의 존경을 느낀다. 그러나 전사로서 느끼는 존경은 적의로도 이어지는 것이다. 그 둘이 5명째 쓰러트렸을 때, 이바노프는 다시 그 싸움에 난입했다.
"덤벼라아아아!!"
아스타의 열기를 띈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검이 날아온다. 이바노프는 그것을 막아내고 오른손에 들린 검을 던진다. 그 검은 도르베의 방어막에 막힌다.
아스타는 그 방어막에 피를 묻힌다. 그대로, 도르베는 그 방어막을 이바노프에게 날린다. 이바노프는 자신의 검을 끌어들여 방어막을 쳐낸다. 곧, 방어막이 터지며 그의 검 한쪽이 망가진다.
'...훌륭하다.'
각자도 강하다. 그러나 저 둘은, 정말로 조합이 좋았다. 위협적이지만 자칫 무질서하게 발사되는 아스타의 마법을, 도르베가 조율하며 사용하고 있다. 한 두 번 합을 본 것이 아니리라.
"계속 간다!"
둘은 정리된 부하들을 두고 이바노프에게 덤벼 들었다. 이바노프는 망가진 반대쪽 검부분을 휘두르며 견제한 뒤, 몸을 낮춰 달려오는 도르베의 발을 건다. 넘어지는 도르베를 넘어서 날아든 것은 아스타였다.
이바노프는 어깨로 사슬을 넘겨 오른손의 검을 휘두른다. 아스타를 향해, 그의 오른 검날이 원형궤도로 날아온다. 곧 그것은 도르베의 방어막으로 다시 막힌다.
아스타는 그 방어막을 피가 잔뜩 묻은 왼손으로 밀어내며 검을 뽑는다. 날아오는 붉은 방어막을 피하기 위해 옆으로 구른 이바노프에게 아스타의 검이 내려와 찍힌다. 사슬을 당겨 아스타의 자세를 무너트리면, 도르베가 다시 달려와 무기를 휘두른다.
이바노프는 그 찰나의 순간에 검을 겨우 빗겨 피해낸다. 그의 뺨이 크게 찢어진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 달린 신호장치를 확인했다. 초록색으로 돌아가 있는 레버. 누군가가 대사를 뺴돌려내는 것을 성공한 것이다. 이제 그는 시간만 끌다가, 위에서 내려오는 병력들과 함께 적당히 자리에서 도망치면 된다.
"한눈을 팔아?!"
그러나 둘의 기세는 죽지 않는다. 쉴 틈을 주지 않는다. 한번의 유효타격이 들어갔음에도, 그 둘의 공격은 마치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처럼 순환된다.
치열한 공격속에서 깎여 나가기 시작한 것은 이바노프였다. 그 둘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내고 있는 듯 했다. 비명과도 같은 기합을 내지르면서 공격하는 둘에 의해, 이바노프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지금이다, 도르베!"
"알고 있어!"
합을 맞춘 듯한 대사. 이바노프가 뒷걸음치던 다리에 뭔가 걸린다고 느낀 것은 그 말과 거의 동시인 순간이었다. 그의 몸이 뒤로 넘어지며 자세가 무너졌다. 천천히 떨어지는 시야속에 보인 것은, 어느샌가 자신의 발 뒤에 서 있는 도르베의 방어막이었다.
그리고 그의 몸 위로 검이 교차해 날아온다. 수직과 횡으로 동시에 날아오는 검. 어디로 피해도 치명상이 남을 것이다. 그의 시야가 가장 안전한 방향을 찾기 위해 서서히 느려지던 그 때, 그의 입가에 환희가 걸쳐지던 바로 그 때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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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베는 검을 내리 꽂으며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 이번 싸움은 절대로 무모한 것이 아니었다. 이길 수 있는 것이었다. 아스타와 자신이 함께라면 이정도는 가벼웠다.
그가 핀이 있는 층계 쪽으로 고개를 올린 것은 그 확신 때문이었고, 그것은 속단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봤을 때 악수는 아니었다. 그의 시야속에 들어온 것은, 그 층계에 대기하고 있던 이바노프의 통신병이 통신기를 열어 뭔가의 조립을 끝낸 모습이었다.
기묘했다. 통신기의 안쪽은 비어 있었고, 그는 이상하게 생긴 지팡이의 조립을 끝마친 상태였다. 그 지팡이의 구멍이 아스타를 향해 있었다. 처음보는 것이었지만, 도르베의 생존감각이 전신을 아프게 찔러 대며 말해주고 있었다.
저것이 위험한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 구멍에서, 한순간 시야를 멀게 만들 정도로 강한 불꽃이 튄다. 전사의 함성보다도 큰 소리가 울려 퍼지며, 그 통신병이 반동에 몸을 젖히는 것이 보인다.
내리 떨구던 검의 방향을 돌리며, 도르베는 자신의 마법을 쥐어 짜낸다. 그리고 아스타를 향해 모든 마나를 끌어올려 방어막을 만들어낸다.
아스타도 그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린다.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기준으로, 모두의 시간이 다시 정상적으로 흐른다. 흐름을 잃고 앞으로 구르는 아스타를 향해 도르베가 달려들어 잡는다. 이바노프는 급하게 일어나 자신의 통신병을 올려다본다. 그가 그 통신병의 연기가 오르는 총구를 노려보고 있을 동안, 도르베는 아스타를 감싸고 급하게 숨을 곳을 찾아 뛰어 든다.
"... 이게 무슨 짓이지?"
이바노프는 노기를 참아내며 그 통신병을 노려본다. 통신병은 총구를 위로 들어 올리며 능청맞게 웃는다.
"계약 이행."
"소금부대는 죽이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
"상회는 그걸 바라지 않는다고도 말했죠. 에테롬씨는 철저한 계약 이행을 좋아하십니다."
이바노프는 그의 뒤에 열려 있는 통신기로 시선을 돌린다. 안이 비어 있는, 통신기 모양을 한 빈 통이었을 뿐이다. 이것은 철저하게 계획된 것이었다.
"...상회는 불이익이 생겨도 괜찮은 건가?"
"계약만 철저하게 이행해 주셨다면, 우리는 당신들의 충실한 개가 되었을 거요. 교단하고만 짝짜꿍하면서 우리한테만 뭘 그렇게 숨겨 대더니, 이제는 저들을 죽이지도 말라고?"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다시 총구를 내려 도르베와 아스타가 숨은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단... 내가 댁 목숨을 구한 겁니다. 인의니 뭐니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좀 더 큰 뜻을 위해 당신은 여기서 죽으면 안되지. 그딴 거 따지다가 방금 걸로 죽었으면 독립이고 뭐고 끝장나는 거요."
"네놈..."
"걱정마쇼. 여기 무저항중인 맹인 놈은 안 죽여. 우리도 약간의 타협을 봐주지. 맞서는 놈들만 죽이겠소."
이바노프는 그 통신병을 노려보다가, 곧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 때, 아스타와 도르베는 식탁을 눕혀 꽤 안전한 임시 바리케이드를 만들었다.
"아스타! 괜찮느냐!"
도르베는 헐떡이는 아스타를 보며 몸을 더듬어 보았지만, 이미 피 칠갑이 되어 있기에 어디에 부상을 입었는지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패닉이 온 도르베를 보며, 아스타가 그의 머리를 감아 올렸다.
"야... 안 맞았어. 그냥 놀라서 그래. 네 방어막이 막아준 것 같아."
"지, 진짜냐? 아무데도 다치지 않은 거냐?"
"에이씨! 두 번 묻지 마!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잖아!"
아스타는 그렇게 소리치고서 식탁 밖으로 고개를 조금 내밀었다.
"그나저나 처음 보는 무기인데... 저걸 어떻게 공격하냐."
"기다려라! 내가 방어막을 밟고 가면-"
"아스타는 도르베를 바라본다. 방금 그 방어막으로 분명 마나를 전부 소진했으리라. 병든 닭처럼 떨면서 식은땀을 흘려 번들거리는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어 넘긴다.
"아, 아스타? 이런 때에 뭐냐!"
"아니, 너 마나 다 썼잖아. 허세부리지 말고 일단 숨-"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총성이 울리며 식탁에 구멍이 생긴다. 깔끔하게 관통된 흔적. 저자들의 무기는 활 따위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었다.
"여기 계속 여기 있으면 위험하겠는데..."
"용서 못한다! 아스타! 난 아직 마법을 더 사용할 수 있다! 너도 폭발 시킬 준비를 해라!"
아스타는 기운차게 말하며 주먹을 쥐는 도르베의 손에서, 피가 스며들어 반쯤 적색을 띄기 시작한 그의 의지를 보았다. 그리고 체념한듯 웃으며 그의 머리를 잡아 눌렀다.
"야. 일단 진정해봐. 저쪽도 같은 수에 계속 당하지는 않을 거 아냐."
"뭐?"
"쉿. 진정해... 나한테 다 계획이 있으니까."
다시 한번 울리는 총성. 뚫린 구멍은 전의 것 보다 아스타와 도르베가 있는 방향에 가깝다. 아스타는 그 구멍을 잠깐 보다가, 도르베의 턱을 잡아 올려 눈을 마주한다.
"너 이 누나 믿지?"
"뭔 소리냐, 갑자기!"
"믿냐고."
사뭇 진지한 목소리. 장소가 장소지만, 여전히 도르베는 거기에 솔직히 답하기는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타와 눈을 마주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말이 나오는 것이다.
"...믿는다. 갑자기 무슨 말을 시키는 거냐..."
아스타는 베시시 웃었다. 도르베도 처음보는, 그녀의 가장 순수한 웃음이었다. 그리고 도르베의 뺨을 쓰다듬는다.
"이 누나가 끝내 주는 계획 하나 세웠어. 조용히 따라와."
"무슨-"
도르베는 말을 끝내지 못했다. 아스타의 주먹이, 도르베의 상복부 근처로 깊숙이 파고들어간다. 강하게 때려 맞은 도르베는 거칠게 헐떡이던 모든 숨을 토해낸다.
"흐, 하, 하스타...! 왜...!"
"쉿... 한숨 자."
그녀는 자애롭게 웃으며 무너지는 도르베의 머리를 누른다. 그리고 그를 품속으로 눕히고서, 하염없이 그 머리를 쓰다듬어 본다.
"아, 씨발 진짜... 어쩐지 요즘 일이 너무 잘 풀렸지."
그녀는 웃음을 터트리며 도르베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곧 비통함을 끌어 모은 듯한 목소리로 되내었다.
"내가 무슨 사랑이야... 그치, 도르베?"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잠든 도르베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그저 만족스러운 듯 웃다가, 천천히 그를 품속에서 치웠다.
그리고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자신의 구멍 뚫린 배를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