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여진(餘震)
상황은 빠르게 변했다. 여유를 부리던 대사관 내부인원들은 그것에 즉각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무슨 씹-"
핀이 감지했던 것은 건물 아래에서부터 한 명씩 감지되기 시작하는 무장한 병력들. 저것들이 아군이 아니라는 것은 장님도 알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벌어진 일은, 핀이 지하에서부터 적들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도 전에 벌어졌다.
"아스타! 저걸 봐라!"
도르베가 소리치며 아스타를 불렀다. 아스타는 담배의 불을 끄며 창 밖으로 고개를 빼 보았다. 대사관의 밖에, 투명한 장막이 펼쳐지고 있었다. 오색으로 미묘한 빛을 내며 서서히 돔 형태로 대사관을 감싸는 그것은 영락없는 비누방울의 형태였다.
"뭐, 뭔데 저거!"
"모르겠다! 저건 대체 뭐냐!"
도르베와 아스타는 그 비누방울같은 장막을 바라보다가, 동시에 바깥에 있던 병력들이 피신하는 것까지 확인했다. 핀이 적들이 아래층에서부터 몰려오고 있다고 비명을 지른 것도 그 때였다.
"말도 안돼... 진짜로 공격해온 거라고?"
"정신차려 도르베! 핀! 지금 걔네는 어딘데!"
"아... 아직 1층에 도달 못한 것 같아요!"
"뭐, 뭡니까? 뭔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대사님. 가만 있으쇼."
아스타는 그렇게 말하고서 무기를 고쳐 쥐었다. 그리고 소니아에게 말을 전달하기 위해 귓가에 손을 댔다.
"소니아! 상황이 안 좋아! 전부 나와!"
'봤어! 이 돔은 대체 뭐야? 저기 날아오는 새끼들은 우리 편 아닌 거지?'
"날아오는 새끼들...?"
아스타의 말에 혼란해 하던 도르베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창 밖을 쳐다 보았다. 왕도에서나 볼 수 있던 에어택시 몇 대와, 직접 날고 있는 사람이 네 명. 그 준비성에서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지금 상대하는 적은 칼타코 뿐이 아니었다.
"이런 씨...팔. 야 소니아!"
'듣고 있어!'
"저것들 다 적이야! 돔은 우리도 아직 정체를 모르겠는데, 아마 저 날아오는 새끼들까지 들어오면 천장까지 닫힐 것 같아!"
'...'까지' 라고?'
"아래에서도 오고 있어!"
'니미랄! 진짜야?'
소니아의 당황한 듯한 목소리와 함께, 상황을 설명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잠시 뒤, 소니아가 갤러한의 말을 그대로 전달한다.
'야! 지하에서는 몇명이나 오고 있는데?'
"핀! 아래에 몇명이야!"
"몰라요! 계단을 통해 오는 건지 겹쳐서 들려서 모르겠어요! 그냥 존나 많아요!"
"존나 많대!"
'썅... 갤러한! 존나 많다는데?'
잠시 아스타의 머리속이 조용해졌다. 그 뒤 들려온 것은 갤러한의 작전이었다.
'야! 갤러한 말 그대로 전한다!'
"뭐!"
'대사들은 전부 2층에 모셔 둔다! 이쪽은 이리하가 지킬 거야! 상황은 릴로가 방금 설명하러 갔으니까 전달될 꺼고! 륑게가 대공 견제가 가능할 테니까 우리 넷은 위층으로 가서 날아오는 새끼들이랑 싸울게!'
"그래서, 우리 셋은 아래층에서 싸우라고?"
'핀한테 입구를 찾아내라 해서 막아! 일단 최대한 시간을 끌어!'
"야, 핀! 지금 가서 입구 막으면 안 늦냐?"
"존나 늦어요!"
"너무 늦었다는데?"
'지금 내려가! 우리는 올라가고 있어!'
거기까지 대화하고서, 아스타는 시선을 돌렸다. 도르베와 핀을 향한 것이었다.
"얘들아! 우린 1층에서 싸운다!"
"저, 저도 내려가야 될까요?"
바짝 쫄아서 질문한 것은 대사였다. 아스타는 달라붙으려는 대사의 머리를 대충 밀어내며 답했다.
"댁은 여기 있으쇼. 문 잠그고. 같이 마차 탄 인원중에 허연색 애 기억하지?"
"네? 네."
"그 친구가 여기 층에서 대사님들을 지켜줄 겁니다. 그럼, 실제상황이라서..."
"자자잦ㅈ자, 잠깐만요! 그 은발 분 한명에게 맡기는 건가요?!"
대사는 자신을 떼어내려는 아스타에게 더 끈끈하게 달라붙었다. 아스타는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발로 달라붙는 대사를 밀어냈다.
"거, 댁들 있는 곳까지 오지도 못하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일단 비켜요!"
"하지만, 온다면-"
"그리고 아마 입구 잡고 막아내는 건, 걔가 제일 유리할 걸? 특별히 사용범위 넓은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순수하게 강하니까. 그니까 즙 좀 그만 짜고 놓으십쇼. 문 너머로 누구 들어오면, 그 땐 우리 전부 뒤진 거니까 그 때 묘 깔고 즙 짜던가."
"그게 무슨..."
"야, 도르베! 나가자!"
아스타는 다음 말 까지는 듣지도 않았다. 문을 발로 차 열고서, 밖에 나와 있는 동료들과 시선을 교차했다.
"갤러한이랑 륑게는?"
"먼저 올라가 있어. 지금 인당 보험 얼마 넣었지?"
"내가 어떻게 아냐, 씨팔... 쉽게 끝나나 했더니..."
릴로는 그 말에 웃고서 이리하와 아스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 돈 벌게 만들지 마라."
"죽고 말지, 씨발. 가라."
"너 죽으면 내가 돈 버는 거야! "
릴로와 소니아도 그걸로 위층으로 올라갔다. 가운데 방 문 앞에는 오랜만에 전신갑옷을 입고 서 있는 이리하가 있다. 아스타는 받은 담배 중 하나를 이리하에게 건낸다.
"이거라도 피우면서 기다려."
"... 고마워."
이리하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도르베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녀도 예상치 못한 일에 크게 당황한 것 같았다.
"...너도 당황은 하는구나."
"뭐?"
"됐다. 수고하고."
그것으로, 아스타와 도르베, 핀은 아래층을 향해 내려갔다.
#
칼타코 독립군. 아니, 그들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신 도시국가 캄뷰로 정규군이었다.
공중에서 쳐 들어가는 병력 12명까지 포함해서, 43명의 별동대. 소금부대를 살상하지 않고 빠르게 대사들을 납치해 오기 위한 인력들. 그 중 10명이 교단 출신의 엘리트이며, 전원 상회의 물자로 무장하고 있다. 다만 무기는 간부를 제외한 전원이 둔기만 챙기고 있다.
이바노프는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는 자들을 바라본다. 이 가슴속 뜨거운 횃불을 불사를 때가 되었다. 뒤에 있는 자들 또한 자신과 같은 뜻을 한 용자들이다. 그렇다면 이 작전은 실패할 리 없다.
그 모든 확신을 담아, 이바노프는 카페트에 가려져 빛조차 세어 나오지 않는 지하통로의 문을 열어 젖혔다. 보이는 것은 밝고 깔끔한 대사관. 그들이 살고 있는 돼지우리와는 다른 정갈한 시설. 수세식 화장실에, 양초가 사용되지 않는 조명.
단 16명만을 위해 급하게 지어진 이 건물 벽은 동포들의 피로 칠했다. 밑바닥부터 뚫어낸 건물의 바닥과 벽은 동포들의 뼈를 눈물로 녹여내어 발라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이 시설은 칼타코 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돌려받자."
이바노프는 그렇게 말하고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 용자들이 빠르게 흩어진다. 그들이 건설했을 때 설계도에는 1층에 계단이 총 세 개가 있었다. 칼타코 주민이라면 이 대사관의 구조를 잊을 수 없다. 잊어야 할 것이 아니다. 분산된 병력들이 조용하게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흐윽-"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 다음으로 들린 것은, 세어 나오는 듯한 신음소리. 한 병사의 목에 화살이 박혀 있다. 이바노프는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위의 두 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이가 높은 1층에는, 식당 쪽에 외부 귀인이 왔을 때를 위해 만들어진 별도의 층이 있다. 창가의 풍경을 보면서 식사하라는 배려를 담아 만들어진 테라스 느낌의 계층이다.
그 곳에 핀이 활을 들고 앉아있었다.
"다들 거기서 멈추세요!"
당겨져 있는 시위.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서 있는 그에게 대항할 수단을, 이바노프의 병력들은 갖고 있지 않다. 이바노프는 가만히 핀을 올려다본다.
"이대로 돌아가신다면 이번 일은 최대한 선처하겠습니다! 윌레인 왕국은 칼타코를 받아들일 준비가 끝나 있는 상태에요! 이런 짓은 아무 의미도 없어요!"
이바노프는 그 말에 가만히 핀을 노려본다. 그 층계에는 이미 30을 넘는 인원이 있었다. 그러나 아직 쥐죽은 듯 조용했다.
"우리가 기습할 것을 미리 알고 있던 건가?"
이바노프의 딱딱한 질문. 핀은 그 말에 크게 답한다.
"물론입니다!"
거짓말. 파악하고 있었다면 지하통로부터 막아 놨겠지. 분명 외부 병력들에게서 이상한 낌세를 느끼고서 급하게 준비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닿고, 이바노프는 한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지 마세요...!"
장님 궁수의 마지막 경고. 이바노프는 그 말을 듣고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힘차게 손을 내렸다.
""""와아아아아아!!!!!""""
갑작스레 울리는, 폭발하는 듯한 함성소리. 30의 함성은 빠르게 그 장소를 뒤덮었다.
"젠장할!"
핀에게 그것은 갑작스레 눈 앞에 섬광탄이 터지는 듯한 감각이었다. 놓친 활시위에 걸려있던 화살이 날아갔고, 그것은 이바노프의 특이하게 생긴 무기에 의해 반으로 갈라졌다.
"삼분할로 올라가라! 우리의 것을 되찾자!"
빠르게 달려들어가는 병력들. 핀은 급하게 태세를 재정비하며 활을 다시 잡는다. 그 사이, 다른 계단들 앞에서 대기하던 도르베와 아스타도 나선다.
전투는 그걸로 시작되었다.
#
"에어택시가 왕도 밖에서 쓸 수 있는 물건이었냐?!"
"여유 부릴 때 아니니까 공격이나 계속해!"
륑게의 질문에 갤러한이 소리쳤다. 대공공격이 가능한 것은 륑게 밖에 없었다. 그가 한명이라도 떨궈 둬야 저들이 도착했을 시의 싸움이 수월해지리라.
"이 씨발! 소니아!"
"금방 갈게!"
릴로가 비명을 질러 대자, 소니아가 원형 탁자를 굴리며 다가간다. 곧 원형 탁자에 화살이 관통되어 들어온다.
"히익!"
"륑게! 저 날아다니는 새끼 활 들고 있어!"
"염병, 저건 못 맞추니까 알아서들 피해!"
륑게는 그나마 맞추기 쉬운 에어택시들을 노리고 있었다. 와중에 갤러한은 왜 저들 전원이 활로 무장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생각 중이었다.
'잡기도 힘든 대공 공격기회를 얻었는데 원거리로 무장한 게 세 명 뿐이라고?'
아직 그 위화감을 느낀 것은 갤러한 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병력들이 계속 가까워지고 있었다.
"륑게! 이 뒤로 와!"
"고맙다!"
원형 테이블 두개를 붙여 만들어진 임시 바리케이드. 륑게는 빠르게 그 뒤로 숨어 계속해서 마나를 방출해 냈다. 옆에서 갤러한은 자신이 챙겨온 포션을 넘기고 있었다.
"오케이! 한 기 더 맞췄다!"
갤러한은 그 말에 놓치지 않고 바리케이트의 밖을 보았다. 공격당한 에어택시는 빙빙 돌다가 곧 비누방울같은 장벽 너머로 빠져나가 떨어졌다.
'장벽은 물리적인 게 아닌 건가?'
저 에어택시는 분명 장벽을 통과하며 나가떨어졌다. 갤러한은 그걸 확인하고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병력들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대놓고 바리케이드 밖으로 나와 있는데 날 맞추지 않아.'
날아다니는 자들은 계속해서 화살을 바리케이드에 박아 대고 있었으나, 갤러한은 단 한발도 맞지 않고 있었다. 그는 모두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저놈들은 우리를 죽일 생각이 없어!"
"뭐?"
"저놈들은 우릴 죽일 생각이 없는 거라고! 위험사격만 하는 거야! 륑게! 사격 멈추고 마나 아껴!"
그리고 검을 뽑아 들고 다가오는 적들을 노려보았다. 이제 그들은 개개인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전면전으로 전원 제압한다!"
#
도르베는 혼란 속에서 무아지경에 가깝게 검을 움직이고 있었다. 함성 속에서, 떨어져 있는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다. 그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도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그 근간은 결코 두려움이나, 신병 특유의 전장의 광기에 도취된 상태 따위가 아니었다. 순수한 혼란. 다시 한번 자라나고 있던 믿음의 새싹을 어떻게든 지켜 내기 위한 발악과도 같은 것이었다. 커진 동공은 끊임없이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자들의 저의를 확인하려 했다.
그는 적들을 베어내는 것조차 망설이고 있었다. 그 안일함은 그가 검 집을 끼운 상태로 전투에 임하게 만들었고, 그의 적들은 그렇게만 상대하기에는 무장의 수준도 물량도 강력했다.
그럼에도 도르베는 마법을 쥐어짜내며 적들을 제압할 때까지 두들겨 패는 것을 반복했다. 6명정도를 제압했을 때 즈음에, 도르베는 저들 또한 자신을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르베의 가슴속에 다시 한 가닥의 희망이 떠오른다. 그의 움직임이 바빠지며, 눈 앞의 적들을 빠르게 제압해 나간다. 쳐들어 온 자들의 수는 적다. 심지어 이들조차 우리를 살해할 의지는 없다. 그래. 세라는 관여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의 칼타코 주민 중 불만이 있던 세력들이, 외부 반동세력들과 결탁해 일을 벌였을 뿐이다.
이자들만 전부 제압하면 다시 회복할 수 있다. 관계 회복이 가능하다. 도르베도 과거의 청산이 가능하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도르베!"
아스타의 목소리에, 도르베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조금 둘러본다. 거의 정리된 분위기. 아무래도 죽이지 않은 것은 도르베 뿐이었는지, 주변에는 폭발로 토막 난 시체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돌아오는 감각 속에서 피냄새가 진하게 도르베의 코를 찔렀다.
그걸로 아스타를 탓할 생각은 없다. 도르베도 그 정도로 어리지는 않다. 그는 아스타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약간 탄내가 나는 시체 파편을 발로 밀어냈다.
"무슨 일이냐, 아스타..."
"뭔 일이냐니, 씹... 위 좀 봐!"
도르베는 아스타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별도 층계에 대기하고 있던 핀이 쓰러져 있다.
"핀!"
도르베가 그 이름을 외쳐도 반응이 없다. 쓰러진 핀의 옆에 서 있는 것은, 이바노프와 통신기를 등에 매고 있는 병사였다.
"걱정마라. 죽이지 않았다."
이바노프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을 풀었다. 그리고 눈 앞의 참상을 내려다보았다.
"대단하긴 하군. 단 세명이서 거의 전원을 막아내다니 말이다."
"핀한테서 떨어져, 털보!"
"귀여운 별명을 붙여주지 않나."
이바노프는 가볍게 웃으며 서툰 윌레인어로 답했다. 그리고 자신의 무기를 고쳐 쥐었다.
"걱정마라. 전사를 인질로 잡지는 않아. 캄뷰로의 첫 걸음을 불명예스럽게 시작하고 싶지는 않거든."
"네가 뭘 하는 지는 안 궁금하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지? 네놈들이 하는 짓은 칼타코 주민들에게도 불이익으로 다가올 거다!"
도르베의 말에 이바노프는 그저 웃었다. 그리고 그의 무기를 펼쳤다.
"네 이름은... 도르베지. 전쟁에 참여했었다고 들었다. 올곧지만 어린 성격이라는 말도 들었지."
그의 무기는 정말 특이하게 생긴 것이었다. 도축용 칼 두자루가, 손잡이에 있는 사슬을 통해 연결된 형태. 사슬낫과도 닮은 형태였지만, 분명 다른 것이었다.
그는 그 무기를 고쳐 쥐고 난간에 기대 도르베를 보며 입가를 일그러트렸다.
"세라에게 들은 대로군."
도르베는 한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스타도 그 말을 순순히 믿지는 않았다.
"지랄 마! 떨거지들이 모여서 반란이라도 일으키려 하나 본데-"
"네놈들이 상대하는 건 칼타코 주민 일부가 아니야. 여기 들어온 것은 별동대고, 이미 대사관 밖은 점령이 끝났다."
"...뭐?"
"주둔병력은 전부 죽였다. 전화국도 점령해 뒀지. 네놈들의 저항은 사실 무의미하다."
이바노프는 덤덤하게 말하고서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그 남자는 칼린과 비슷한 키였지만, 덩치와 기백때문에 도르베의 두 배정도는 더 커 보였다.
"우린 네놈들을 죽일 생각이 없다. 대사들을 데리고 갈 때까지 얌전히 있는다면 손도 대지 않겠다."
"뭐 씨발? 난 죽일생각 만만이거든? 지금 너가 유리한 것 같냐? 야 도르베!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세라도 관계되어 있는 거냐?"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도르베는 물었다. 떨군 머리의 눈가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스타는 그 분위기에 잠깐 주춤하고서 입을 다문다.
이바노프는 그런 도르베를 바라본다. 처음부터 소금부대원들을 같은 인간으로 봐왔던 그로서는 약간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바노프는 거짓말을 할 생각도 뭔가를 더 숨길 생각도 없었다.
"원래 네놈들의 상대는 세라가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약해졌는지... 네놈들을 볼 수 없다고 했어. 일은 이렇게 흘렀지만, 그녀는 너네 셋과 진심으로 통하고 싶어했다."
"...그 결과가 이 소란이냐?"
"네놈들을 살려 두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마음속 깊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칼린의 헌신을 인정했고, 너네가 우리에게 베푼 친절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도르베가 검을 들어 올림에 따라, 이바노프도 준비 자세를 갖추었다. 아스타도 상황의 변화를 느끼고 검을 집었다.
"하지만 생존경쟁에서 개개인의 선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난 진심으로 이 칼타코라는 땅에서 희망을 느끼고 있었다. 전후 평화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했어."
"승자의 오만이었을 뿐이다. 패자들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잠깐의 정적.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아스타와 도르베가 이바노프에게 덤벼들었다.
#
선봉의 에어택시에서 내린 자는 푸르투가였다. 그의 허리춤에는 쌍검이 걸쳐져 있었다.
"...야, 푸르투가. 우리가 대준 담배를 생각해서라도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니냐?"
갤러한의 농담 섞인 질문에 그는 답하지 않았다. 그의 뒤에 따라, 무사히 대사관에 안착한 병력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었다.
"야, 륑게... 내가 빅센마르크 놈 들이랑 친해지지 말자고 했잖냐."
소니아가 그렇게 말하며 푸르투가를 노려보았다.
"저 새끼들은 진짜 속을 알 수 없다니까?"
륑게는 그 말에 그저 웃으며 소니아를 옆으로 밀어낸다. 그리고 갤러한보다 앞장서서 푸르투가를 바라본다.
"난 그 말은 지켰어."
"뭐?"
"그야, 반숙은 빅센마르크인이 아닌 걸."
무표정하게 서있던 푸르투가가, 그 말에 입가를 일그러트리며 웃는다. 얼굴의 화상자국이 같이 찌그러지며, 달빛 아래에서 번들거리며 빛난다.
"너 뭔 개소리를-"
"릴로, 너도 눈치챘지?"
륑게의 말에 릴로도 너클을 고쳐 잡으며 푸르투가를 노려본다.
"... 이주일쯤 전이지만 말이야."
"빅센마르크 출신이라면, 아무리 잘 배웠어도 윌레인어가 그렇게 유창할 리가 없다고, 나랑 릴로도 아직 억양이 살아있는데 말이지."
갤러한이 눈가를 찌푸린다. 륑게는 아랑곳하지 않고 푸르투가를 향해 계속 말한다.
"지금 항복하면 봐줄 수 있어. 너 윌레인 출신이지?"
담담하게 내던져진 질문. 릴로는 그것이 약간의 파문이라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의 병력들은 여전히 고요했고, 푸르투가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있었다.
"조국을 배신하면서까지 저 짝을 돕지 말자고. 응?"
"... 그래, 눈치 못 채고 넘기기에는 내가 말하는게 너무 유창했겠지."
푸르투가는 그렇게 첫 운을 뗐다.
"륑게. 고향이란 대체 뭐냐."
"네가 태어난 윌레인이 네 고향이야."
"아니. 고향은 돌아갔을 때 편한곳을 뜻하는 거야. 너라면 알고 있겠지."
그 말로 확실해졌다. 푸르투가는 확실한 윌레인 출신이었다. 소니아와 갤러한의 머리속에 커다란 물음표가 떠올랐다.
"처음으로 나를 버린 윌레인은 내 고향이 아니야. 두번째로 나를 버린 빅센마르크 또한 나의 고향이 아니고."
그는 유창하게 말하며 자신의 화상자국을 쓰다듬어 보았다. 그리고 곧 륑게를 향해, 친애를 담은 시선을 보냈다. 륑게도 알 수 있었다. 그 둘 사이에는, 처음부터 뭔가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하던, 내 고향은 날 받아준 이 땅 뿐이다. 내 조국은 이제 윌레인도 빅센마르크도 아닌 캄뷰로야."
그렇게 말하고서, 그는 그의 쌍검을 뽑아 들었다. 왼손에는 윌레인의 제식검이, 오른손에는 빅센마르크의 제식검이 들려 있었다. 륑게는 그의 말을 시릴 정도로 이해한다. 그렇기에 정면으로 마주보고 웃는다.
"그러냐..."
그리고 그의 충족의 곡도를 뽑아 든다. 그걸 신호로, 그의 동료들이 무기를 꺼내 든다.
"내 고향은 팀 원생텀이란 곳이고, 미안하지만 그 캄뷰로라는 곳은 존재하지 않게 될 거야."
그는 어딘가 슬프게 웃는다. 그 웃음은 언젠가 자신의 형제를 상대했던 때의 그것과 닮아 있다.
"젠장할, 난 친구복이 참 없다니까."
"동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