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2화 〉여진(餘震) (122/164)



〈 122화 〉여진(餘震)

검이라는 무기의 이점은 무엇인가.

도신이라는  부분 전체가 무기가 되는 것이 첫번째 이점이다. 날을 사용하는 무기 중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스치면 베이고 찌르면 관통하고 찢으면 베어 가른다.

그리고 두번째 이점은, 모든 냉병기가 가지고 있는 이점이기도 하다. 바로 무궁무진한 사용법이다.

검의 기본 형태라고도 불리는 윌레인 제식검만 하더라도 사용되는 검술이 수십가지가 된다. 여기에 개개인의 마법이 다른 이 세계에서는 냉병기의 활용법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해 진다.


뭐가 어찌되었든, 평범한 경우에는 공사판에서나 사용되는 장도리로 검을 상대할 수는 없다.


그러니 라드가 바바라를 마주하며 자신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은 결코 자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판이 나지 않고 있었다. 라드의 검을 바바라는 계속 아슬아슬하게 막아내고 있었고, 라드가 사용하는 꼼수를 전부 미리 피해내고는 했다. 3분정도 합을 나누고 나서야 라드는 원인을 깨달을 수 있었다.

"... 날 읽어냈군."
"무슨 소리신가요, 선배님?"
바바라는 손에 든 망치를 붕붕 휘두르며 웃는다. 라드는 잠시 검을 내리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낸다.


"네가 내 공격을 피하는 것. 반사적인 게 아니야.  공격이 행해지기 전에 내 행동을 읽어내고 있어."
그리고 주머니에서 고무줄을 꺼내 젖어서 내려가는 앞머리를 묶어냈다.

"그게 '명안'이라는 별명의 비밀이군. 안 그래?"
바바라는 눈을 크게 뜨고 라드를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박수를 쳤다.


"언제 알아 내실까 하고 보고 있었는데... 제 예상보다는 늦었지만 어쨌든 알아보시네요! 역시 선배님이십니다!"
"과찬이구만."
"그래서 선배님은 그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 물어보면 가르쳐 줄래?"
"하하하! 이건 예상 못했는데!"
그는 진심으로 즐거운  크게 웃었다. 그리고 공구통에서 못을 한 움큼 쥐었다.


"저 말이죠, 어렸을  창관에서 자랐거든요."
쇠들끼리 부딪히며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울린다. 그는 몇 번 그 속을 뒤지다가 못에 손가락을 찔렸는지 급하게 공구통에서 손을 빼냈다.

"아차차... 실수했네. 아무튼, 창관에서 일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이거죠. 그래서 전 즐길   즐기신 손님분들 마사지를 담당했었는데... 어떻게 7살짜리가 창관에서 잡일도 아니고 마사지라는 담당을 부여 받았을까요?"
라드는 그의 의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 기습을 하려는 것은 아닌  하다. 그는 완전히 가드를 내리고 있었다.  떨궈져 있는 장도리를 든 손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모르겠네."
"저 말이죠, 사람 몸이 투시가 돼요."
바바라는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내리쬐는 달빛 아래에서 그의 눈은 조금 파란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니, 라드씨의 알몸이 보인다, 이런 게 아니라... 근육의 움직임을  수 있다고 해야 되나? 네. 이렇게 마법을 쓰면... 라드씨가 근육 덩어리로만 보인다는 거예요."
"그거 별로 유쾌한 경험은 아니겠군."
"하지만 편하죠.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 미리 보는 거니까. 마나가 어디로 흐를지 미리 보니까. 라드씨는 자기가 유리하다고 생각하셨겠지만, 저 한테 검술이나 잔 꼼수는 통하지 않는 걸요."
그가 못을 다시  움큼 쥔다. 그리고 손가락에 몇개인가를 끼우고 라드를 향해 웃는다.

"이 싸움은 시작부터 선배님이 불리했어요."
"...그러냐?"
라드도 검을 다시 제대로 잡는다. 적당히 할 상대가 아니다. 가진 패를 전부 사용해야 한다.

"이제 서로 숨기는 거 없으니까, 진심으로 할 게요?"
"고마워라."
라드는 이빨을 드러낸다. 짐승처럼, 파충류처럼. 그는 마치 뱀처럼 웃는다.

 사이에 어둠이 드리운다. 달을 가리는 구름이 지나간다. 마침내 구름이 조금씩 걷혀지며 서로의 모습이 다시 보이기 시작할 때, 둘은 너나 할  없어 서로를 향해 덤벼든다.


라드는 잡고 있던 검을 빗변으로 휘두른다. 바바라는 그 검을 망치의 노루발 부분으로 잡아낸 뒤 옆으로 돌려 치운다. 다시 휘둘러지는 망치를, 라드는 손 째로 밧줄로 잡아낸다.


'잡았다.'
라드가 그의 승기를 확신했을 때, 바바라는 한치의 멈춤도 없이 반대 손에 들고 있던 못으로 밧줄을 찢어낸다. 검지와 중지 사이의 못이다.


라드도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거리를 벌리기 위해 발을 뺀다. 그러나 바바라는 한발 더 앞서서 다음 못을 세운다. 중지와 약지 사이의 못이다. 그 못은 라드의 오른 다리를 향해 내려간다.


라드의 뒷걸음질 치던 다리에 못이 박혀 들어간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어쨌든 거리를 벌린다. 바지가 조금씩 피로 젖어 들어간다.

바바라는 그를 추적하지 않는다. 그저 자리에 서서 라드를 보며 웃는다.  웃음은 그의 앳된 얼굴에 맞춰서 천진난만해 보인다.


"못, 뽑으셔야죠, 선배님."
그리고 그 천진난만함이야 말로 그를 상대해온 사람들이 가장 두렵게 여기던 것이었다. 라드는 그를 가만히 노려보다가, 다리에 박힌 못을 잡아 빼낸다.  깊숙이 박혔기에 장갑을 끼고 있지 않았다면 뽑아 내기 힘들었으리라.

바바라가 조금씩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라드도 그를 견제하기 위해 발을 옮기려 한다. 그러나 곧 자신의 몸에 생긴 위화감을 눈치챈다.

오른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신기하죠? 그거."
바바라는 계속 발을 옮기며 주머니에서 못을 하나 더 꺼낸다. 라드는 당황하지 않고 다리를 질질 끌며 그의 대칭점으로 움직인다.


"근육이 보이면  좋은 점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느냐로 그 사람의 버릇을 파악할 수도 있고, 어디를 공격해야 좋을 지도 보이거든요. 실력 있는 검사들은 서로 움직임만으로 그런  파악한다는 데, 전 그런 건 무리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보고 하는 거죠."
"... 지나치게 수다스럽군."
"봐주세요! 제가 선배님이랑 싸우는 걸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라드와 바바라는 서서히 원형을 그리며 서로에게 다가간다. 먼저 움직인 것은 라드였다. 그는 무너진 오른 다리 쪽으로 넘어지듯 구르며 검을 움직였다. 바바라의 하단을 노린 공격이었다.


바바라는 앞에 디디고 있던 다리를 들어올리는 것으로 그 공격을 피해냈다. 라드는 왼팔에 걸린 밧줄을 늘려 휘두른다. 바바라의 반대쪽 다리를 밧줄로 잡아내려 한 것이다.

바바라는 들어올린 앞다리로 라드의 턱을 차낸다. 라드는 뒤로 나가 떨어졌지만, 적어도 바바라의 다리를 확실히 잡아낼 수는 있었다. 구르는 라드를 따라서 바바라가 넘어졌다. 라드는 그대로 검을 집어 들어 바바라에게 내리 찍는다.


"헤헤! 이렇게 나와야지!"
바바라는 못을 바닥에 꽂아 라드의 밧줄을 고정시킨다. 그리고 라드의 검을 망치로 막아낸다.


바바라가 아래에 깔린 대치상태. 그는 라드의 검을 잡은 팔뚝에 못을 박는다.

"읏-"
라드는 약하게 신음소리를 내고서 자신의 팔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눈치챘다. 더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즈음 본능에 따른 움직임을 행했다. 반쯤 구르면서 그는 바바라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바바라는 그런 그를 잡지 않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떨리던 오른팔이 결국 검을 놓쳤다. 라드는 짧게 혀를 차고 바바라를 노려보았다.


"검, 주우셔야죠."
바바라는 여전히 생글대며 라드를 바라본다. 그의 다리는 여전히 라드의 밧줄에 묶여 있는 상태였지만, 그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라드도 그걸 알았기에 빠르게 왼손으로 검을 쥐었다.


"...넌 나를 존경하는 게 아니었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럼 네 위인으로서 부탁인데 말이야... 살려주면 안될까?"
"흠... 그건 조금 다르죠. 존경하니까 꺾어보고 싶은 거 아니겠어요?"
라드는 왼손으로 검을 다루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오른쪽 팔과 다리, 두 곳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의 지금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말 그대로, 적에게 목숨 구걸을 해 보일 정도로.

그러나 라드는 아직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 조금만  노력해 주세요, 라드씨! 전 지금 이 순간이 즐거워서 참을 수가 없네요!"
바바라는 밝게 웃으며 그에게 달려온다. 라드는 검을 들어올려 라드의 공격을 방어한다. 몇 번인가 다시 무기가 부딪혔으나, 왼팔과 왼다리만으로 라드는 끈질기게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바바라는 다시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그의 얼굴은 살짝 일그러져 있었다.


"...왜 갑자기 그렇게 수비적이 되셨죠? 절 죽일 생각이 없나요?"
라드는 바바라를 노려본다. 의지가 꺾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이듯 세차게 노려본다. 그러나 바바라에게는 숨길  없는 것도 있었다.

"...맙소사."
그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진다. 마침내 바바라는 울음을 참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선배... 겁먹으신 건가요?"
바바라에게는 보였다. 라드의 전신 근육이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존경해 마지않던 선배가 떨고 있었다. 그에게는 참을  없는 실망을 안겨다 주는 것이었다.

"오, 이런... 정말... 정말 이건 아니죠, 선배님..."
그는 괴로운  눈을 감싸고 가만히 있었다. 대놓고 만든 틈이었다. 라드가 공격해 오기를 바라고 만들어준 틈이었다. 아무리 가만히 있어도 라드는 달려오지 않았다. 정적속에서, 바바라는 감쌌던 손을 내리고 라드를 노려보았다.

"… 그냥 이제 끝냅시다, 라드씨."
차갑게 울리는 목소리. 나무 사이로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바바라는 라드를 향해 달려갔다.

라드는 왼손으로 서툴게 그의 망치를 막아냈다. 그러나 바바라는 노루발로 그 검 날을 잡아낸 뒤 옆으로 비틀었다. 라드의 손아귀에서 검이 날아갔다.

그대로 바바라는 망치를 휘둘러 라드의 왼팔을 후들겼다. 뭔가가 으깨지는 소리가 들려오며, 라드의 왼팔 관절부가 크게 튀어 올랐다. 그 충격으로 균형을 잃은 라드에게, 바바라는 올라타듯 몸을 기울였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약지와 새끼 손가락 사이에 있는 못을 꺼내 든 그는 그대로 그것을 라드의 왼다리에 꽂았다. 라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바바라는  위에 올라탄 상태로 라드의 팔을 다리로 감싸 제압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바바라의 목소리에 더 이상 존경은 남아있지 않았다. 라드는 검을 놓쳤고, 팔은 바바라의 다리로 눌려 있고,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애처로운 꼴을 내려다보며 바바라는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고통스러워 하던 라드는, 잠깐 떠듬대다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 새로운... 부대라는 건... 다 너 같은, 괴물 새끼들만 모였나...?"
바바라는 잠깐 그를 내려다보다가 웃는다.

"곧 죽으실 텐데 그런 걸  묻죠?"
라드에게 대답은 없었다. 그의 눈은 죽어 있었다. 아마 조금이라도 살기 위해 시간을 벌려는 것 일까. 바바라는 그의 수에 조금 맞춰 주기로 했다. 한  존경했던 선배니까.


"... 거기에서는 나름 상위권입니다만, 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하신 분이 하나 계시죠. 라드씨도 만나 뵈셨을 겁니다. 송  씨라고, 동방 제일검이라 불리시죠."
가볍게 답하고서 바바라는 주위를 둘러본다. 혹시나 라드가 그새 함정이라도 설치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변은 아직 고요했다.

"... 끝까지 저를 실망시키네요, 라드씨."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라드를 내려본다. 서서히 불이 꺼져가는 듯한 라드의 눈을 보며 망치를 들어 올린다. 그 때, 라드의 입술이 마지막으로 힘들게 들썩인다.


"...어..."
"네?"
바바라는 라드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몸을 조금 기울인다. 조금씩 움찔대는 입술 너머로 소리가 점점 정확하게 들려온다.


"...가...ㅆ어..."
바바라는 더 몸을 기울인다. 라드의 얼굴로 몸을 기울인다. 그리고-


라드의 왼팔에 걸려있던 밧줄이 빠르게 수축되었다.

바바라의 다리가 앞으로 끌린다. 그의 몸이 균형을 잃으며 흔들린다. 앞으로 쏠리던 몸이 흔들릴 때, 라드가 상복부를 이용해 힘차게 일어난다. 그는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대처는 불가능했다. 반응조차 불가능한 것이었다.  라드의 크게 벌린 입이 바바라의 목젖을 깨물었다. 바바라의 시야 속에, 라드의 크게 떠진 눈이 보인다.

"해하 히혀써(내가 이겼어)"
목젖이 뜯겨 나간다. 바바라는 아직도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양 손에 들려 있던 망치와 못이 떨어진다. 그는 라드에게서 벗어나며 양 손으로 목을 잡아 본다. 그러나 뜯겨진 목에서 솟구쳐 나오는 피를 막아 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라드는 입 안에 물컹거리는 살점의 감촉을 느낀다. 몇 번인가 그것을 표독스럽게 씹어낸 후, 그는 흙바닥에 그것을 뱉어 내며 입가에 흐르는 피를 왼손으로 닦아낸다.


"움직임은 잘 파악해 내지만, 심리를 읽어내는 것은 너무 약했군. 사실 그럴 필요 없었을 테지. 심리상태라는 건 곧 행동으로 이어지니까 말이야."
 떠서 각성된 의식 속에서, 바바라는 자신이 봤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 자신이 했던 것들을 다시 되새겨 본다. 그가 보인 모든 빈틈. 그가 보인 두려움. 그것들은 결국 바바라가 그렇게 관측하고 판단한 것.

그것이 전부 연기였다면. 그의 두려움이 연기였다면. 탐색전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던 그가, 한 순간의 공격을 위해 다른 부위들까지 넘기며 자신을 방심시킨 것이라면.


자신의 성격을 파악해내고 이 기회가 올 것이라 확신하며 준비한 함정이었다면.


"생사여탈전이라는  더 실력 좋은 놈이 이기는  아니지. 더 씨발놈이 이기거든, 보통..."
라드는 그렇게 말하고서 웃었다. 크게 웃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제일 씨발놈이니까, 난 계속 살아남을 거야."
바바라는 그 모습에 감동한다. 따뜻하게 흐르는 피를 막고 있던 양 손을 풀어내고 몸을 일으킨다. 라드가 당황하는 것이 보인다. 더 싸울  있다면 즐겁겠지만, 바바라는 자신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는 피에 젖은 손을 들어 올려 수화를 한다. 떠돌이들은 기본적으로 수화를 익혀 둔다. 지역이나 국가마다 다르긴 하지만, 큰 틀은 이상하게도 비슷하다.


'못에 박힌 부분은 1시간이면 다시 움직일 겁니다.'
천천히, 부드럽게 움직이는 손을 보며, 라드는 표정이 굳는다. 1시간. 1시간 동안 숲의 한가운데에서, 빛조차 없이 이 상태로 시체와 있어야 한다. 짐승들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얼어 죽지 않기를 바라며.


'라드씨.'
바바라의 수화에, 라드는 그의 얼굴로 시선을 올린다. 바바라는 힘들게 입을 열고서, 쇳소리와 거품이 뽀글대는 소리를 섞어 목을 울린다.


"수- 숙- 하-"
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 뚫린 목이 기괴하게 꿈틀대며 피를 뿜어 댄다. 거품과 함께 끓어오르는 피를 울컥 울컥 토해 내던 그 구멍은, 잠시 뒤 체념한 듯 움직임을 멈췄다. 바바라는 조용히 라드를 바라보다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죽기 직전인 그의 눈에서 오히려 생기가 돌아오는  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피에 젖은 오른 손을 뻗어 라드에게 향했다.

그리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바바라는 뒤로 쓰러졌다.

라드는 그 모습을 보고서 뒤로 풀썩 눕는다. 그리고 밧줄을 움직여 검을 왼손으로 잡는다. 별이 뜬 밤하늘을 보며, 그는 크게 웃는다.

또 살아남았노라고.

#

갤러한 일행은 비상이었다. 그들은 먼저 정문을 봉쇄했고, 위층으로 올라가 상황 파악에 전념했다.


각자 떨어진 방에 위치하며 정면, 측면, 후면을 감시하며, 원래 계획대로 인원 분배를 해 대사들을 지켜냈다. 아직 상황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도르베에게 아스타가 말을 걸어왔다.


"딱히  없지?"
"있을 리가 없잖느냐. 설마... 그럴 리 없다."
도르베는 특히 더 신경 쓰며 상황을 보고 있었다. 핀은 계속해서 주기적으로 지팡이를 두들겼으나, 그에게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까지 구분할 수단은 없었다.


"...소니아 쪽도 별 문제없다는데."
아스타는 귀 쪽에서 손을 떼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핀에게 다가가 질문했다.

"핀,  어떻게 생각하냐?"
"저는... 믿기 싫네요, 솔직히. 만약 진짜 뭔 일이 생긴 거더라도... 세라는 관여되어 있지 않겠죠?"
아스타도 도르베도 대답하지 않았다. 핀은 잠깐 고개를 떨구다가 다시 지팡이를 통통 내리치며 말했다.


"...일단 정문을 제대로 막았으니까요. 아직도 본격적인 움직임은 안보이고 있고, 밖은 평화로워요. 진짜 문제가 있더라도 이대로 농성하다가 라드씨와 칼린씨가 오면 자연스럽게 전보를 보내던가 전화국을 이용하면 돼요. 저쪽은 아직 우리가 눈치챘다는 걸 모른다는 것 같으니까."
"...그렇겠지?"
"갤러한씨가 그렇게 말했으니 뭐... 아니면 어쩌겠어요?"
아스타는  말에 조금 웃는다. 그리고 대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대사님, 담배 좀."
"네? 네..."
대사가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건내 준다. 그리고 불쌍할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모두를 둘러본다.

"영웅님들만 믿으면 되는 거죠?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거죠?"
"형씨, 조금만 뛰어가면 우리한테 공사 짐 날라주던 오로아나 상회 요원들도 있어요. 아직 반란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는 거고, 일어난 거라도  놈들은 여기 못 들어온다니까?"
"그치만, 문이 부셔지면..."
"하하! 공성병기라도 있어야 될 껄? 저 정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건  할 겁니다. 구름 백인대장님이 엄청 튼튼하게 지었다고 했으니까."
"... 백인대장님 성함은 기욤이 아니었나요?"
"방금  백인대장님에게는 말하지 마십쇼."
아스타는 담배를 다섯 개피 받아내 한 개피를 도르베에게 건내 준다. 도르베는 그 담배를 거절하고  밖을 계속 노려본다.


"대사님들 계시니까 특별히 안전을 기하려고 이러는 거요.   아니니까 편히 있으쇼."
아스타는 그렇게 말하며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 핀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들어오려면 땅굴이라도 파야  껄? 안 그러냐, 핀?"
그 말을 듣고 있는 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지팡이를 통통대다가 곧 아스타에게 고개를 돌렸다.


"... 맞아요, 아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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