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여진(餘震)
떠오른 달 아래에 황량한 나뭇가지들의 그림자가 처참하게 드리운다. 고요만이 남은 칼타코의 거리에, 그 풍경만큼이나 삭막한 시선을 내리쬐고 있는 자들이 있다. 굶주리고 고통받았던 민초. 칼타코의 주민들은 잔인할 정도로 건조한 눈빛을 눈 앞의 포로들에게 향했다.
무릎꿇고 있는 것은 윌레인 주둔병력의 대장, 기욤을 포함한 여섯 명의 병사들. 100을 넘기던 그녀의 병사들은 하나씩 사냥당하고 유린당해 죽었다. 그들은 각자의 마법과 전략을 사용해 맞서 싸웠고, 꽤나 비등한 전투를 보여줬다. 기습이 아니었다면 패배한 것은 칼타코 독립군 측이었으리라.
"헤헤... 이게 맞지. 평화는 무슨..."
기욤은 자조하듯 웃으며 눈 앞의 눈 구덩이가 움푹 파여 들어간 여성을 향해 웃었다.
"새 장난감이 생겼다고 신났나 봐? 그걸로 이제 뭐 할 거냐?"
"입닥쳐!"
그 여성은 후들거리는 팔로 잡고 있던 총의 개머리판을 이용해 기욤의 머리를 후려 친다.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네가... 네가 내 남편을 죽였어!"
"니미, 어쩌라고."
기욤은 전혀 기죽지 않았다. 그의 부하 6명도 같은 꼴이었다.
"대장, 저거 쫄았는데 살살 좀 말 하십쇼."
"아, 이거... 저런 병신한테 죽었다고 소문나면 어떡하냐..."
여유롭게 자기들끼리 농담을 해대는 병사들. 기욤은 적어도 그들이 준비된 것에 감사했다. 패닉은 전염되니까.
"너... 너 만큼은 편하게 못 죽여! 우리가 겪었던 고통의 반이라도 느껴야 돼!"
"어쩌게, 썅년아? 설거지라도 도와줄까?"
"너...!"
울분을 토하던 여인이 못 참고 다시 개머리판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누님, 잠깐 기다려 봐요."
마치 안부를 묻는 듯한, 감정이 담기지 않은 온화한 목소리. 그녀가 고개를 돌려보니, 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다. 깔끔하게 차려 입은 상인이나 입을 법한 정장, 평범한 키, 평범한 외모. 때문에 이 분위기 속에서 더 이질적인 남자, 바바라였다.
"누님. 정말 죄송한데... 지금 이미 윌레인 대사랑 빅센마르크 대사가 오고 있거든요. 우리 쪽 피해도 크구요. 빨리 여기 청소 끝내야 돼요."
"하, 하지만..."
"마음은 이해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이런 떨거지들 고문같은 게 아니에요. 거사를 성공해야죠. 그렇죠?"
바바라는 진심으로 유감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여인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여인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곧 총을 내리고 무릎을 꿇는다.
"흐....알지만... 알고는 있지만...!"
"착하다... 진정 좀 하고, 저기서 조금 쉬고 계세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여인을 일으켜 세운 뒤, 다른 독립군에게 그녀의 신분을 맡긴다. 그리고 그녀가 들고 있던 총을 건내 받았다.
"넌 또 뭐냐? 저 짝 왕초냐?"
기욤은 비웃으며 그를 노려본다. 바바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가 들고 있던 총에서 관형 탄창을 빼내 총알이 몇 발이나 남아있는지 확인해 보며 근처의 독립군에게 질문한다.
"총이 이번 싸움에서 몇 정이나 폭발했죠?"
"확인해 보니 12정이 폭발했습니다."
"크게 터졌나요?"
"... 4명은 그 폭발로 죽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탄창이라는 개량되기 전까지는 없애는 게 좋을까요..."
"야 씨발, 내 말 무시하냐?"
대화 사이에 기욤이 끼어든다. 바바라는 그런 기욤을 가만히 쳐다본다. 그리고 탄창을 다시 총기에 꽂는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그리고 기욤을 향해 질문한다.
"뭐?"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바바라는 총구를 기욤에게 향한다. 탕, 한발이 나간다. 기욤의 미간에 구멍이 뚫리고, 곧 그녀는 뒤로 고꾸라졌다. 이미 죽어버린 몸이 뻣뻣하게 경련을 일으킨다.
"대장!"
옆에 있던 병사의 비명. 바바라는 무감각하게 총구를 돌려 장전한다. 그 병사도 곧, 그 말을 마지막으로 대장의 뒤를 따라간다.
같은 방식으로 총성은 도합 네 번이 울렸다. 남은 둘은 분노와 절망감에 치를 떨며 바바라를 노려본다. 바바라는 그런 그들에게는 시선조차 돌리지 않는다. 그저 총을 바라보면서 곤란한듯 눈가를 찡그릴 뿐이었다.
"... 연발은 네 번정도가 한계일까..."
동료인 독립군 조차 눈 앞의 장면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방금 그가 저지른 것은 전투도, 살인도 아니었다. 살상행위조차 되지 못했다. 그 모든 감정과 존엄을 배제한 총기 테스트였을 뿐이었다.
"죄송합니다만, 들어 주시겠어요?"
바바라는 들고 있던 총기를 그것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독립군 병사에게 내민다. 독립군 병사는 자신의 떨림이 들키지 않기를 빌며 그가 건낸 총을 받는다.
"나머지 둘도 빠르게 치워주세요. 시간이 없으니까... 그럼 저는 슬슬 자리 이동을 해 볼 게요. 그웬!"
그는 발걸음을 옮기며 누군가를 부른다. 곧 등에 뭔가를 짊어진 남자가, 손에 그가 짊어진 것과 같은 것을 들고 달려온다.
"네, 바바라씨."
"계획은 기억하시죠?"
"물론입니다."
"그럼 이바노프 씨 옆에서 잘 부탁해요."
바바라는 그가 들고 있던 것을 등에 짊어진다. 겉보기에는 통신장비이다.
"당신은 이바노프와 저 사이를 연결하는 통신병이니까요. 맞죠?"
"맞습니다."
그웬이라 불린 자는 웃으며 자신이 들쳐 맨 것을 통통 친다. 바바라는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준비된 말에 올라탔다.
"그럼, 위치로 가 볼 게요. 30분이면 윌레인 대사분들이 오실 테니까, 일단 대사 근처만 치워 두시고 저 분들이 입던 무장으로 갈아입으세요. 그럼, 캄뷰로를 위해!"
그는 상큼하게 웃고서 자리를 떴다. 말이 일으키는 흙먼지 뒤로, 독립군들은 그저 방금 일어났던 참사에 눈을 비볐다. 그리고 남은 두명의 생존자를 향해 총구를 들었다.
총성 두 방이, 다시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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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진짜 안전한 게 맞나요?"
"거 참, 안전하다니까 그러네."
윌레인 측의 대사 대표는 심약한 사람이었다. 대사들이 서로서로 누가 갈지를 떠밀다 보니, 가장 심약한 사람 셋이 걸리게 된 것 같았다. 그런 유추를 할 정도로 전부 심약한 자들이었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거기 사람들 다 좋은 사람들이었다니까? 대사관은 진짜 지진으로 무너졌던 거라고."
"하, 하, 하지만, 또 지진이 나면 다 죽는 거 아닙니까?"
"이번에는 똑똑한 사람이 지진에도 안 무너지게 만들었답니다."
"그런 게 되는 겁니까?"
"그런 걸 되게 하니까 우리보다 똑똑한 거겠죠, 빌어먹을..."
갤러한이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욕설을 하자, 대사는 겁먹고 몸을 수그렸다. 갤러한은 그제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다시 웃으며 몸을 기울였다.
"아 형씨, 우리가 요즘 담배를 못 펴서 신경이 날카로웠소. 형씨 걱정 다 이해하는데, 걱정 말라니까? 누가 오든 여러분 지키는 건 국가 영웅님들이라니까?"
"...그렇죠?"
"그렇고 말고! 지진도 때려 죽일 게요, 우리가! 네크로맨서도 잡았는데 뭔들 못해!"
필사적으로 분위기를 바꾸려는 갤러한을, 나머지 동료들을 애쓴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곧 다른 대사 하나가 소매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저기... 제가 담배가 한 갑 있긴 한데..."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곧 마차는 칼타코에 도착했다. 대사관 바로 앞에서 정지한 마차 문이 열리자, 연기가 자욱하게 흘러 나왔다. 부대원들은 하나같이 만족한 표정으로 마차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와 씨발, 신세계다."
"나 이제 담배는 삼 일에 한번씩만 필 거야."
대사까지 모시고 나와 일행들은 모두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외부 경비를 도는 사람들을 보며, 도르베가 갤러한을 향해 웃었다.
"봐라, 아무 일도 없잖느냐. 평온함 그 자체군."
"뭐, 나도 일이 터질 거라 한 적은 없어. 하루 정도는 걱정할 수도 있잖냐."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며 병사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들 전부를 돌아보았다.
"뭐하냐, 안 들어오고."
"응? 아, 대사님들 먼저 들여보내."
"또 뺑이 칠 각 잡네?"
릴로가 그렇게 외치며 갤러한을 보았다. 갤러한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그녀는 상황을 읽고서 평정을 가장하고 먼저 대사들을 안내했다.
"야, 거기."
그는 근처에 있던 병사 하나에게 손짓을 했다. 병사는 사시나무 떨리듯 크게 튀어 오르더니, 곧 천천히 발걸음을 갤러한에게로 향했다.
"기욤은 어디 있지?"
갤러한이 첫번째로 느낀 위화감은, 칼타코 거리에 아직 채 빠지지 않은 화약냄새. 이 세계에서 화약을 사용하는 무기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기는 해도, 그 말이 길거리 한복판에서 화약냄새가 나도 넘어갈 수 있는 일이란 뜻은 아니었다.
두번째. 병사들의 군장 상태. 보급 갑주가 손상될 경우 개인의 돈으로 사서 장비해야 하는 이 세계에서, 갑옷의 일부가 누락된 상태의 병사를 보는 것은 드문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이 대부분의 병사가 투구조차 없는 상황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네 대장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세번째는 눈 앞의 병사. 몸을 부르르 떨며 얼굴을 마주하려 하지 않는다. 마치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다. 갤러한이 숨을 죽이며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댈 때였다.
"돌아오셨습니까?"
천막 안에서 들려오는 기욤의 목소리. 갤러한은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이야, 죄송합니다. 지금 나가기가 조금 곤란한 상태라서 말이죠."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 우리 끼리 대사님들 환영이라도 해 볼까 하고 폭죽을 샀는데 말이죠... 얼뜨기 한 놈이 실수로 불을 질러서... 책임은 전부 우리가 지겠습니다!"
틀림없는 기욤의 목소리. 그러나 갤러한은 알고 있다. 목소리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 지표가 못된다. 그는 천막에 천천히 다가간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조금 곤란합니다만?"
단호한 거절. 갤러한은 천막의 입구부분을 잡는다. 그 뒤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병사들은 조용하다. 긴장감이 깔린다.
"... 상황을 확인 해야겠습니다만. 거절하신다면 권한을 사용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침묵. 곧 천막 안에서 낮게 깔린 기욤의 목소리가 세어 나온다.
"...굳이 들어 오셔야 겠다면야..."
갤러한은 천천히 천막의 입구를 열어 젖힌다.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불안감. 긴장감. 압박감. 그 속에서, 천막의 안에 있던 것은-
"아이 참, 부끄러웠는데 말이죠."
기욤이, 흰색 천을 덮은 상태로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그녀는 이마까지 덮어지는 투구를 쓰고 있는 상태였다.
"...왜 그러고 계신거죠?"
"폭죽이 잘못 터져서... 다쳤지 뭡니까."
갤러한은 천천히 천막의 안쪽을 둘러 본다. 그가 탐색을 하는 것이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소극적이고 느리게 관찰한다. 꾸겨진 편지. 심지가 닳아 있는 등불. 날벌레가 한마리.
"다리를 다치신 겁니까?"
"다리만 다친 게 아니지요. 크게 터졌거든요. 뭣하면-"
흰 천 밖으로 드러난 기욤의 어깨는 맨 살이었다. 그녀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고개를 돌려 갤러한을 바라본다.
"확인해 보시렵니까? 천을 치워서..."
갤러한은 조용히 천막의 바깥쪽을 확인해 본다. 어둡다. 병사들의 반은 그들이 갖고 있어야 할 등불을 잃었다.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날벌레가 기욤의 주변을 떠다닌다.
"...기욤 대장님, 혹시나 해서 묻습니다."
갤러한은 그의 검을 고쳐 쥔다. 그리고 기욤이 아닌 천막 바깥을 확인하며 질문한다.
"우리 암구호를 대십시요. 중대문제입니다."
정적. 기욤의 고개가 다시 돌아간다. 날벌레의 비행 소리, 초가 타 들어 가는 소리만이 공간을 지배한다. 갤러한은 침을 삼켜낸다.
"암구호는-"
기욤의 말이 들려온다. 갤러한은 자신의 검을 더 세게 붙잡는다. 그의 시선은 이미 완전히 천막의 바깥을 향하고 있었다.
"-없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기욤의 말이 끝났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갤러한을 쳐다본다. 갤러한은 검을 잡고 몸을 낮춘 경계태세를 유지하다가, 곧 뻘줌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천천히 자세를 풀어낸다.
"그런 거 설정한 적 없잖습니까. 왜 놀래키십니까..."
"아니... 거, 분위기가 흉흉했다 해야 하나... 하하! 죄송합니다!"
갤러한은 그 어색한 분위기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크게 웃었다. 천막 밖까지 들리게 웃은 후, 그는 웃으며 천막의 입구를 열었다.
"얼라도 아니고 폭죽 갖고 놀다가 다치시다뇨."
"혹시... 보고 하실 건 가요?"
"아뇨, 대신 다음엔 저도 껴 주시는 겁니다."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며 천막의 뒤로 나섰다. 그리고 자신이 처음에 잡았던 병사에게 다가가 크게 웃으며 어깨를 두들겼다.
"대답 좀 똑바로 해 주셨으면 이렇게 안 쪽팔렸잖아요!"
그리고 대사관으로 발을 옮겼다. 병사들은 들어가는 갤러한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그저 지켜봤다.
갤러한은 대사관의 문을 열었다. 대사관 안쪽에는 무장을 끝낸 소금부대가 준비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진짜 반란이라도 났어?"
륑게가 말도 안된다는 듯 묻는다. 갤러한은 천천히 천막 안의 일을 떠올려 보았다. 기욤은 암구호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건 정답이다. 그러나.
"입구 막아."
날벌레는 기욤의 눈깔 위로 기어 다니고 있었다. 천막 안에서, 그는 병사들의 시선이 그 천막으로 향해 있던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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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는 계속 간다. 비록 마차 안쪽이 쥐 죽은 듯 고요해도, 마부는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대사들은 말하지 않는다. 첫 기싸움에서 패배한 그들은 더 실수를 만들지 않기 위해 상당히 수비적인 전략을 사용하기로 했다.
칼린은 말하지 않는다. 그는 필요 없는 대화까지 즐기는 편은 아니다. 이국의 대사들과 대화를 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고, 그래서 그는 지금 이 침묵 속에서 나름 만족스러웠다.
라드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지금 뭔가를 뱉어 낼 때가 아니다. 끊임없이 흡수해야 할 때다. 모든 상황과 정보를 이용해서, 자신이 지금까지 알던 칼린의 이미지를 바꿔가고 있었다. 정보가 정확할 수록 살아남을 확률은 높아질 것이다.
마부는 말한다. 누군가가 길을 막았다고.
"길을 막았다구요?"
칼린이 그렇게 물으며 바깥 창을 열어본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자가 마차를 가로막고 있다.
라드도 그걸 확인한다. 그는 그 실루엣을 보며 작게 얼굴을 찡그린다.
그 자는 등에 둘러매고 있던 것을 내려 놓는다. 칼린은 그 장비를 처음 보지만, 라드는 본 적이 있다. 통신장비였다.
그러나 라드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것은 그냥 통신장비 형태의 빈 상자였다. 괴한이 그것을 열자 안에서 망치 한 개와 못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칼린씨, 경고를 안 듣습니다. 무장도 없는 거 보면 그냥 미친 사람인 것 같긴 한데..."
"제가 이야기하러 나가볼-"
"아니. 가만 있어봐."
라드가 칼린을 막는다. 대사들에게도 말을 전한다.
"전부 몸 낮추쇼."
"네?"
대사들은 조금 당황해서 몸을 숙인다. 마부도 곤란한 듯 마차 안쪽과 연결된 창을 통해 라드를 바라본다.
"라드씨, 늦으면 안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라드는 창을 닫고 마차 안으로 몸을 들인다. 그리고 가만히 연결된 창을 통해 마부를 노려본다. 그러기를 몇 십 초. 칼린도 의문을 담고 라드에게 묻는다.
"라드씨, 왜 그러시는 데요."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마차에 뭔가가 박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칼린은 즉각적으로 검을 뽑아 대사들의 앞으로 이동한다. 창 너머로 보이던 마부의 뒤통수가 스르륵, 하고 내려간다.
"씨발! 라드씨! 적이에요!"
"아, 그런 것 같군. 빌어먹을."
흐름이 대충 예상이 간다. 라드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웃는다.
"야, 칼린. 한 새끼는 대사님들을 모시고 가야지."
"네?"
"저쪽도 적은 한 명 이잖아. 너, 마차 몰 줄 아냐?"
"그게 무슨..."
"내가 나간다. 넌 칼타코까지 마차 운전해서 도망쳐."
"라드!"
라드는 이견을 듣지 않았다. 그는 몸을 떨기 시작하는 대사들을 보며 눈가를 일그러트리며 웃었다.
"걱정마쇼. 내 예상인데, 저 놈이 목표로 하는 건 댁들 목이 아냐."
그리고 완전히 마차에서 내려 괴한을 마주했다. 괴한은 후드의 안쪽 여기저기에 못을 집어넣고 있었다.
라드는 천천히 마차의 앞쪽으로 다가가 마부의 상태를 보았다. 관절부와 이마에 못이 박혀 있었다. 꽤 처참한 꼴이었다.
괴한이 달려든다. 라드는 가볍게 무기를 뽑아 괴한의 공격을 막아낸다. 칼린은 그 무기가 부딫히는 소리를 신호로 삼아 마차에서 뛰어내려 마부석으로 달려간다.
"라드씨! 믿고 맡기겠습니다!"
"금방 따라가지."
칼린은 죽은 마부를 조금 옆으로 밀어내고 마차를 운전했다. 떠나가는 마차를 보며, 라드는 잠깐 한눈을 팔다가 말했다.
"이제 후드 벗어. 누군지 대충 알겠으니까."
"헤~ 진짜요?"
괴한은 뒤로 선뜻 물러나 후드를 잡아 제꼈다. 바바라였다.
"역시, 선배님은 눈치가 빠르시네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로브를 완전히 벗어 던졌다. 그리고 망치를 고쳐 쥐며 라드를 향해 웃었다.
"네 일은 다른 게 아니었나?"
"이 일이 맞죠. 라드씨. 생각해 보세요."
그의 말에 긴장감은 전혀 서려 있지 않다. 라드가 전시상황에서 여유로운 느낌이라면, 그는 전시상황과 평상시에 구분이 없는 느낌이었다.
"에테롬씨가, 자기만의 부대까지 개설된 지금 시점에서, 배신까지 의심되고 있는 라드씨를 그냥 살려 두라고 하셨을까요?"
"...모르겠는 걸. 네가 알려주지 그래?"
"하하! 라드씨는 여기서 죽을 거예요!"
라드는 그의 무장을 천천히 살펴본다. 보이는 것은 손 망치 뿐이고, 아마도 옷 사이사이에 못을 넣어 뒀으리라. 사이 사이 무기를 숨겨뒀을 수도 있지만, 검만큼 제대로 된 무장은 숨겨두고 있지 않다는 뜻이었다.
"난 내가 유리한 상황이라고 방심하는 타입은 아니거든."
라드는 그렇게 말하고 밧줄을 늘어트린다. 그리고 검을 잡고 바바라를 쳐다본다. 표정에는 언제나와 같은 메마른 웃음이 걸쳐져 있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못 죽어."
"그걸 선배님이 결정 하셔도 곤란한데요..."
바바라도 웃으며 앳된 목소리로 말한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