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여진(餘震)
푸르스름한 아침은, 그 채도만큼 무겁게 깔린 바람이 불어온다. 내륙에 속하는 벨카도 이맘 때 즈음에는 슬슬 추워진다. 그러나 요나가 느끼고 있는 추위는 두꺼운 옷으로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는, 요나의 정신도 한계에 가까워졌을 때였다. 그녀는 떨리는 몸을 잡고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한치의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수화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전화국이 연락을 받는다. 그녀는 최대한 감정을 죽이며 무감각한 목소리를 내려 애쓴다. 전화하는 상대는 뻔했다.
"칼타코의 전화국으로. 칼린을 찾는다고 전해 주시오."
목소리 끝이 갈라진 것이 신경 쓰인다. 이래서는 안되는데. 다시 전화할 떄는 완전한 상태여야 할 텐데. 그녀는 불안함을 숨기며 물을 한 모금 들이 마신다. 잠시 뒤, 전화국에 다시 연락이 돌아온다.
'요나?'
다급하면서 반가운 듯한, 울먹이는 듯한 환희. 그 목소리가 요나의 가슴 속에 시리도록 다가온다. 오랜만에 듣는 칼린의 목소리는 자신만큼이나 지친 것 같았다.
"오랜만이구나."
'요나, 요나! 저, 저는, 아니, 요나는 왜-"
그 불안한 듯한 목소리. 분명 떨고 있었겠지. 내가 없었기에 떨었겠지. 저 괴물은 목줄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스스로 결단을 잡기에는 너무나도 나약한 괴물이니까.
불안감은 곧 안심과 함께, 따뜻하게 그녀의 가슴을 채우는 '무언가'로 바뀌어 간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걸치며 몸을 기울인다.
"내가... 바빴구나. 내 과거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아무 일도 없으신 거죠? 몸은 괜찮으신 거죠?'
"그래. 아무 문제없다."
분명 성에 처음 왔었을 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지. 꽤 독립심과 여유를 겸비한 자였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되지. 그런 건 그에게 필요 없다.
"많이 불안했나 보구나. 네 주인이 무능한 탓에 네가 불안해졌구나."
'요나, 저, 피를, 피가-'
"그래. 슬슬 위험할 때라고 생각했단다."
그녀는 눈을 감고 웃는다. 그는 자신의 말 대로, 아무리 다급해도 다른 사람의 피를 빠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래, 그는 자신의 정절을 지킬 줄 아는 자였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다시 가슴 한 켠이 시큰해진다.
"그러나 칼린, 넌 이미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알지 않느냐."
요나는 그렇게 말하며 전화줄을 조금 꼬아 본다. 수화기 너머는 잠시 잠잠해졌다가, 곧 칼린의 기쁜 듯한 답이 들려온다.
'그러네요!'
마치 떠올리지 못했던, 맹점을 찾았다는 듯한 목소리. 어차피 그가 고를 방법 따위는 뻔했다. 이미 그가 전에도 해왔고, 앞으로도 남의 피를 빨아내느니 기꺼이 해낼 방법. 그가 이세계에서 가장 가볍게 다루는 것은 그 자신의 몸이니까.
'감사합니다! 저 뭔가, 점점 생각하는 게 힘들어져서...'
"일이 바쁠 테니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받아넘기고서 요나는 터져 나오는 환희를 입을 틀어 막아 멈춘다.
'그러면 오늘 저녁에 바로 '정상화 작업'에 들어갈게요. 혹시 대사분들은 아직 멀었을까요?'
세상 어떤 생물체가 자신의 어금니를 뽑아내는 것을 '정상화'라고 부르는가. 더 말할 것도 없이, 그는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 완전히 미쳐 있었다.
"내일 점심 쯤에 도착할 예정이라더구나. 빅센마르크 측의 대사들도 대기중이니 내일 시간에 맞춰 모시거라."
'소금부대 전원이 모시러 가면 될까요?'
"아니. 한 두 명 정도만 보내도록. 우선 순위는 윌레인 측의 대사니까. 이걸 확실히 해 둬야 하는 거란다."
요나는 눈을 감고 담배를 하나 꺼낸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이 안정감과 격한 기쁨이 동시에 느껴지는 감각. 그녀의 목덜미가 간지러워지는 듯 하다.
"칼린... 빨리 다시 만나고 싶구나."
'... 저도 그래요.'
둘의 대화는 방향성이 다르다. 요나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을 볼 생각이 없다. 그의 시선 끝에 있는 것은 자신과의 행복한 미래가 아닌 다른 세계니까.
게다가 이제 앞으로 생길 일들을 전부 보고 이해한다면, 어쩌면 칼린은 자신을 떠나버리려고 할 수도 있겠지. 그의 섬세한 감성은 이 미친 세상의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그렇다면. 만약 그가 떠난다면. 그가 떠나는 모든 길에는 불을 지를 것이고, 그가 스친 자들의 피로 그 불길을 끌 것이며, 그의 세계를 찢을 것이고, 그의 연약한 감성을 완전히 부수겠다.
이것이 그녀가 선택한 길이었다. 조금씩 물러지고 있던 자신을 수없이 채찍질하며, 그녀는 다시 한번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이번에야 말로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전에 그리던 것보다 완전한 것으로.
"기다리고 있겠다."
그 첫 붓은, 그가 돌아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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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정리를 해보자."
갤러한은 식탁에 모인 전원을 돌아보고서 입을 열었다.
"대사는 총 6명이다. 윌레인 측에서 세명, 빅센마르크 측에서 세명이야. 호위 인원은 구역 분할 인원이랑 같게. 나 포함 팀 원생텀 한조로, 아스타랑 핀이랑 도르베 셋이서 한조로, 그리고..."
갤러한은 이리하를 돌아보며 말했다.
"넌 혼자서. 알겠지?"
"아직 납득하기 좀 힘든데."
"칼린이랑 라드는 돼지새끼들 대사를 모시러 가야 되니까. 실력이 부족하지는 않잖아?"
이리하는 잠깐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어차피 독립군도 소금부대를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인원이 어떻게 분할되는 지는 큰 문제가 없다.
"...알았어."
"좋아. 칼린, 라드. 너네 둘은 빅센마르크 대사를 모시러 갔다 오면 되는데... 라드 넌 네가 자원한 거니까. 일단 입장이 다르다고는 해도 거기 대사한테 너무 띠껍게 굴지는 마. 그런게 전부 돼지새끼들 여물주는 거니까."
"날 너무 안 믿는군. 그래서 칼린도 같이 보내는 거 아닌가?"
"... 칼린, 저 새끼가 이상하게 굴면 너가 말려."
꽤 냉랭하게 말해보려는 갤러한이었지만, 그를 같이 보내는 명목에서부터 갤러한은 칼린을 믿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칼린은 그것이 퍽 기뻐서 웃었다.
"저기... 죄송한데..."
그리고 그 사이에서, 맹수 앞에 선 고양이보다도 몸을 움츠리고 위축된 여자가 한 명 있었다. 기욤이었다. 그녀는 국가의 영웅들이 모인 자리에 부하들도 없이 혼자 있다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게다가 그들의 회의 자리에 앉는 다니, 너무 부담이 컸다.
"진짜로 주둔병력이 대사관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들어올린 손 끝을 파르르 떠는 그녀를 보며 갤러한은 잠시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곧 근엄한 표정을 만들어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백인대장님. 안쪽의 호위가 필요 없다고 말씀드린 게 아니예요."
"그럼...?"
"다른 곳에 호위가 필요하다고 말 한 거지, 우리는. 이 칼타코 땅은 아직 개발된 땅에 비해 빈 땅이 너무 많아요. 어디에 있던 견제할 수 있는 넓은 범위의 경비가 필요하거든. 기욤씨는 병사들을 칼타코 전역으로 골고루 배치시켜서 사각지대가 안 생기게 해주시면 좋겠어요."
갤러한의 설명에도 기욤은 납득이 잘 안되는 듯했다. 사실 그의 설명에 납득하지 못한 것은 기욤뿐이 아니었다.
"뭔 일이 생기겠냐? 솔직히 이 날씨에 밖에 전원을 경비 시키는 것도... 그냥 주둔병력은 교대제로 대사관 들락날락하면서 지키는 정도면 경비로 충분할 것 같은데."
"나도 지나친 경계라고 생각한다."
기욤이 하지 못하던 말들은 듣고 있던 릴로와 도르베가 했다. 릴로는 그렇다 쳐도, 도르베까지 그 말을 한 것은 모두에게도 조금 의외였다.
"뭐야, 다들 저들이 전쟁이라도 일으킬 줄 알았던 거냐?"
"아니, 그런건 아닌데... 도르베가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네요..."
핀이 놀란듯 보이지 않는 두 눈을 둥그렇게 떴다. 도르베는 편하게 몸을 뒤로 뺴며 말했다.
"오해하지 마라. 편을 들려는 건 아니다. 다만 대화하면서 조금 느낀 게 있거든. 결국 저들도 우리와 같이 평화를 원하는 자들이란 거다. 갑자기 병력들을 그렇게 거리 사이로 풀어버리면, 주민들이 겁을 먹어 가까워진 거리가 다시 멀어질 까봐 걱정이군."
갤러한은 그 말에 깎지 않아 거뭇하게 자라난 턱수염을 조금 쓰다듬다가, 칼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갑작스러운 질문에 칼린은 몸을 크게 튀겼다. 칼린을 계속해서 관찰 중이던 라드는 알 수 있었다. 그는 한 이틀 전부터 심하게 불안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저, 는..."
그는 가면 뒤로 눈을 굴려 대다가, 곧 자신이 꽉 붙잡고 있는 코트의 소매를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그 코트를 내려보다가, 그 속에 더 파고 들 듯 코트의 앞섬을 모았다.
"저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아요..."
갤러한은 칼린과 도르베를 번갈아 보다가, 곧 기욤에게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 그러면 어떻게 하실 거죠...?"
"미안합니다, 기욤대장님. 그래도 저는 역시 대장님이 외부 경비를 맡아줬으면 좋겠네요."
그는 자신의 뜻을 바꿀 의향은 없어 보였다. 또 한번, 기욤 대신 다른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그럴거면 왜 물어본 거지?"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 지가 궁금했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난 이정도 경비는 필요하다고 봐."
갤러한은 그렇게 말하고서 모두를 돌아보았다. 칼린과 핀, 도르베를 제외한 나머지는 갤러한에게 찬동하는 분위기였다.
"...릴로 너는 왜?"
"아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는 말 했지만 일단 갤러한 따라간다, 난."
"...그런건가."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는 말라고. 대비해 두는 건 나쁘지 않잖아?"
갤러한은 마지막으로 설득하듯 도르베에게 말했다. 도르베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다가, 결국 분위기를 못이기고 고개를 숙였다.
"... 납득했다. 그러니까 그만 쳐다봐라."
"오케이! 그럼 그런 걸로! 기욤씨, 대사들이 머무를 삼일간만 조금 고생합시다!"
"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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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 있던 이바노프를 향해 바바라가 걸어왔다. 그리고 몸을 낮춰 이바노프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방금 라드씨가 왔다 갔습니다."
"그런가."
이바노프는 잠깐 자리를 비우고 바바라를 따라 들어갔다. 잠시 뒤, 바바라에게서 소금부대의 모든 계획을 들어낸 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이제 단상 위에는 이바노프와 푸르투가, 세라, 바바라가 있었다.
"먼저 확실히 해 둡시다."
이바노프는 천천히 운을 뗐다. 지하실에 모인 칼타코의 주민들은 100을 조금 넘기는 수였다. 그것이 상회측 병력도 교단측 병력도 포함하지 않은 순수한 칼타코 독립군의 수였다. 그 자리에 모인 자들이 순수한 투사들이었다.
"우리는 무엇입니까."
때문에 그는 그 자리의 모두에게 경의를 담아 경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 엄숙한 목소리가 빈 지하실의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우리의 국가는 패전하였고, 조국이 우리를 내쳤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패자로, 부랑자로 만들었습니까?
우리의 땅이 짓밟히고 우리의 동료가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갔을 때 입과 눈을 숨겼던 우리는, 우리를 증오하는 자들의 말 대로 그저 털 빠진 짐승들일 뿐입니까?
더럽고 추하게 눈에 젖은 흙 바닥을 구르며 피맺힌 비명을 억지로 삼키면서, 수모를 참고 울로퓨르빅가 만큼이나 뜨겁고 독한 눈물을 흘리던 우리는 그저 힘없는 버러지들입니까?'
잔잔했던 목소리에 서서히 감정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군중들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하나 둘 씩 고개를 떨군다. 주먹을 새로 쥐거나, 이를 악무는 자들도 있다.
"사람 위에 어떻게 사람이 있으며, 사람 아래에는 어떻게 사람이 있단 말입니까? 우리를 팔아 치운 그 자들은 기쁠 때 춤추지 않는 겁니까? 우리를 증오하는 저 자들은 슬플 때 울분을 토하지 않는 단 겁니까? 지난 한달간, 우리는 저들이 결국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바노프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댔다.
"우리는 패자도, 부랑자도, 털 빠진 짐승도, 힘없는 버러지도 아닙니다! 저들과 같은 사람이요, 신념 아래에서 우리 내 적에게 맞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검이요, 이 시대에서 가장 붉게 타오를 횃불입니다!
단검과 장검, 제식검에 목이 베일 것이요, 옆에 있는 동포의 무덤을 손수 파야 할 겁니다. 앞서 죽은 자들을 짊어지고 뒤에 죽을 자들을 떠밀어야 할 겁니다.
그러나 우리의 불은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이름 아래에서, 우리가 믿는 가장 위대하신 분의 이름 아래에서, 우리는 옳고 바른 것을 행할 것입니다! 이 암울한 시대를 비출 가장 큰 횃불이 될 것입니다!"
그 가슴속의 갈망은 어쩔 수도 없는 불이다. 이 차가운 땅의 냉혹함 까지 전부 태워버릴 불이다.
"다가올 평화를 위해! 우리는 설령 목이 베이더라도 무기를 쥔 손은 풀지 않을 것이다! 위도 아래도 없는, 민중의 억압 없는 국가를 위해! 이 자리에서 감히 선언한다! 민중의 도시국가 '캄뷰로'의 횃불을 들어올려라!"
모두의 함성이 지하실을 가득 메운다. 더러운 거지떼 같은 몰골을 하고 있지만, 그들의 영혼은 지금 그 무엇보다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바노프는 그렇게 생각했다.
"여러분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횃불이다.
"우리가 이루려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마땅한 것이다.
"그렇다면! 굶주리고 상처입은 나의 동포들! 원통함에 눈마저 감지 못하고 죽어 나갔던 우리 내 가족들! 저들에게 창부처럼 짓밟히고 멸시당한 이 땅을 위해!"
군중들의 환호성 속에서도 이바노프의 목소리는 묻히지 않았다. 그는 손을 높이 들어올려 마지막으로 소리쳤다.
"싸그리 불태워라! 모조리 먹어 치우고 시대의 가장 밝게 타오르는 불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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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회측은 소금부대를 공격할 생각이겠지?"
라드가 바바라에게 그렇게 질문했던 것은 일종의 확신이 있었기에 한 것이었다.
"... 역시 선배님은 못 속이겠네요. 어떻게 아셨죠?"
"하하, 어떻게든 독립군 측에게 지분을 얹어보려는 상회가 소금부대를 그냥 둘리 없잖아. 아니, 나라면 그냥 두겠지만 말이다... 에테롬 '님' 께서는 안 그럴 것 같단 말이지."
그는 일부러 님 자에 힘을 넣어 말하고서 바바라를 보며 웃었다. 바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계약 위반이라느니, 그런 말은 안 통할 거예요. 에테롬씨는 계약서에 위반되는 일은 절대 안하시는 분 이세요. 분명 라드씨가 발견 못한 구멍이 있겠죠."
"아.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
라드는 그렇게 말하며 빈 주머니 속을 뒤져 보았다. 담배 생각이 간절하다.
"그래서 내가 빅센마르크 대사를 모시러 가는 일에 자원한 거고."
"헤, 그랬었습니까?"
바바라는 라드를 향해 담배를 내밀었으나, 라드는 그것을 거절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피기로 했거든."
그는 그렇게 말하며 바바라를 향해 이빨을 보였다. 잠깐의 침묵 속에서, 다시 입을 연 것은 라드였다.
"난 칼린과 함께 칼타코를 떠나 있을 거야. 내가 돌아갈 때 쯤엔 상황이 끝나 있겠지?"
"하하, 물론이죠. 선배님은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신속하게 끝 낼 테니까..."
바바라는 양 손을 펼쳐 보이며 라드를 향해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정장 앞주머니에 다시 담배를 꽂아 넣었다.
"그래도 부디, 조심하시길..."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바바라는 지하통로를 향해 발을 옮겼다. 그것이 라드와 바바라가 한 대화의 전부였다.
라드는 대사관 옥상에서 하얀 밤거리를 보고 있었다. 칼린과 접하는 시간이 많을 수록 그의 비밀을 알아낼 확률은 높아진다. 일단 칼타코를 벗어나 있으면 에테롬의 소금부대 공격 계획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이득이고, 칼린과 함께하는 것으로 그 자리에서 그의 비밀까지 알아낸다면 그는 이번 임무가 끝났을 때 양측에서 완전한 자유가 될 수도 있다.
뭔가 알아내면 그 선생에게도 공유하는 것이 좋을지, 라드는 그런 것을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가 칼린의 방 쪽으로 다가간 것은 단순한 감이었다. 오늘 밤만큼은 그냥 지나쳐선 안될 것 같다는, 그의 떠돌이로서 숙련된 육감 때문이었다.
그의 방 안쪽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라드는 숨을 멈췄다. 전신에서 날 수 있는 소리를 최소화시키며 문에 귀를 대 보았다. 몇번이나 다시 들어도, 그는 방 안에서 격하게 흐느껴 울고 있었다. 뭔가의 아우성 같기도 했다.
라드도 칼린의 정신력이 그렇게 훌륭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울음소리는 서러움 때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천천히, 하지만 자연스럽게. 마치 그 방을 지나쳐 걸어가듯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칼린의 감각이 가끔씩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알고 있다. 오래 있다가는 금방 눈치챌 것이다. 정확히 그가 무슨 상황에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내일 아침 알아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