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6화 〉여진(餘震) (116/164)



〈 116화 〉여진(餘震)

"수프는 어땠나?"
"아... 상당히 맛있네요, 이거. 뭘로 만든 건가요?"
"남은 야채들을 전부 집어 넣고 끓였지. 입맛에 맞았다면 다행이오."
이바노프는 냅킨으로 입가와 수염을 닦아낸  빈 냄비를 들어 올렸다. 칼린은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들고 있던 식기를 완전히 내려 놓았다.

"그래서... 소냐가 괜찮다고 하시니 저는 이만 나가보겠-"
"너무 서두르시지 말고 앉으시죠. 아직 대접하고 싶은게 많아."
"...네?"
이바노프는 찬장을 열어 두꺼운 유리병을 꺼내 들었다. 안에는 물처럼 투명한 액체가 넘실대고 있었다. 그가 그 뚜껑을 열자, 칼린에게까지 달큰한 알코올의 향이 퍼져 나갔다. 분명 상당한 독주이리라.


"이 잡부가 주는 술이나 한잔 받지 않으시렵니까."
취하지 못하는 칼린이지만, 그 향기는 너무 달콤하게 다가왔다.




이바노프는 진심으로 칼린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요리에는 상당히 공을 들였고, 그를 위한 작은 깜짝 선물도 준비해 두었다. 다른 구호부대원은 몰라도 그에게 만큼은 호의를 보일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마지막으로 딱 한가지만 더 확인해 볼 것이 있었다. 소냐도 파악해내지 못한 그의 '진심'이었다.

그래서 이바노프는 소냐를 밖에서 자유롭게 놀도록 냅뒀다. 소냐는 광장에서 모두와 함께 춤추고 노래를 부르다가 해가 떨어질  즈음에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그녀는 눈을 비비며 비척이면서 인사도 하지 않고 방으로 올라가 잠들었다. 그의 계획대로였다.

그는 소냐가 칼린이 깨어난 것을 알면 가만 안 있을 것을 알았다. 그래서 소냐에게는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넘겼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칼린은 축제 끝물에 자신의 집에 들렀다. 그의 계획대로였다.

이바노프에게는 확실하게 속을 읽어낼 수 있는 비약이 있다. 울로퓨르빅가. 빅센마르크어로 '곰을 죽이는 술'이란 뜻이다. 남자 둘이서  술을 기울이며 한시간정도만 대화하면, 서로의 사촌동생의 옆집 친구 이름까지 파악할 수 있는 관계가 된다.


비싸고 귀한 술이지만 아깝지는 않았다. 눈 앞의 쭉정이는 어차피 두 잔이면 취해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것이다. 그게 그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벌써 병의 반이 비었는데도, 눈앞의 남자는 취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가면도 벗지 않고서 재주좋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 술 진짜 향기롭네요... 귀한 걸 대접받았습니다."
오히려 이바노프가 슬슬 한계였다. 그는 눈앞의 쭉정이가 윌레인어로 뭐라고 하는  조차 겨우 알아듣고 있었다. 그러나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며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별거 아니오. 내 딸을 구해준 은인인데."
이바노프는 순수한 경악을 취기와 함께 삼켜내며 머리를 조금 흔들었다. 칼린은 그런 그의 속도 모르고 오랜만에 마시는 맛있는 술에 기분이 좋았다. 그는 그 향을 즐기며 오두막집 안을 조금 둘러보았다.


"잠깐 기다리시오. 새로운 걸 대접해 드리지."
"네? 이 술도 충분히 맛있는데..."
"더 좋은 것이 있소, 분위기가 올랐을 때 마시고 싶군."
술이 안 먹힌다는 것을 알았다면 빠르게 다음 수를 정해야 된다. 예상하지는 못한 상황이지만, 일단 타계책정도는 준비해  상황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을 최대한 숨기며 흐릿한 시야로 다락을 뒤져 보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두고 칼린은  오두막 안에서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그 자체로는 특별한 것이 없었지만, 칼린에게는 나름 특별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저건 뭔가요?"
칼린이 그렇게 말하며 가리킨 것은 나무로 깎인 역십자모양의 조각상이었다. 아무 장식도 없이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그것은, 투박하게 보여도 꽤나 섬세하게 조각을 해낸 것이 티가 나는 것이었다. 간단한 생김새에 비해 아무것도 모르는 칼린이 보기에도 훌륭한 마감처리가 되어 있었다.


이바노프는  역십자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금 뜨거운 숨을 뱉어 내고서 다시 다락을 뒤지며 말했다.

"형씨는 안보이는  믿을  있나?"
"... 안보이는 거요?"
"그래. 보이지 않고, 느낄 수도 없지. 그저 있다고 믿는 거야. 그 존재에 대한 증거가 아무것도 없어도."
이바노프가 자신을 형씨라고 부르는 것에 칼린은 소냐가 떠올랐다. 그는 그 생각을 잠깐 뒤로하고 그의 질문에 조금 고민해 보았다.


"...글쎄요."
"믿을 수 없다면, 너에게는 말해줘도 이해 못할거야."
이바노프는 그렇게 말하고서 다락 안쪽에서 종이 부적  장을 꺼냈다. 그 부적이 이바노프의 두번째 계획. 교단에서 직접 유통하는 물담배계열 마약의 일종이었다.

칼린은 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곧 한가지를 떠올렸다. 그는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 보려 했지만, 도무지 그의 머리속에 떠오른 그것을 윌레인어로 생각해낼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 동안, 이바노프는 그 부적에 쌓인 먼지를 털었다.

그 부적을 물에 넣으면, 그것은 곧 잘게 분해된다.  부적이 풀어진 물은 무색 무취의 마약이 된다. 이것을 전해준 마키도의 말에 의하면, 이 방식으로 나온 물은 화학적인 조제방식으로 나오는 약물이 아니라고 한다. 때문에 완벽한 무색 무취이며, 신체에 그 어떤 악영향도 없다고 했다.


이 물이 건드리는 것은 마나 그 자체임으로, 약물에 내성이 있는 자도 그 쾌감을 느낄  있다고 한다.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나온 물을 성수(聖水)라고 불렀으며, 보통은 물담배 형식으로 즐겼으나 가끔씩 이렇게 원액으로 마시기도 했다.

이바노프는 물에 그 부적을 담구고 천천히 풀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칼린은 떠오르지 않는 단어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순간 그의 머리속에 번뜩인 것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떠올린 것은, 그의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며, 이제 와서 눈치채기에는 지나치기 너무  것이었다.


"...이바노프씨,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냐고 물어보셨었죠...?"
"그렇소."
"혹시 저 역십자 조각은... 그 존재하지 않는 것을 숭배한다는 의미로 단 겁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경악이 담겨 있었다. 이바노프도 방금  말에는 적잖이 놀랐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칼린을 돌아 보았다.

"...알고 있던 건가?"
그 반응에 칼린은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놓쳐온 것. 시궁창같은 곳을 전전해온 그이기에, 오히려 확신할 수 있는 것. 여유가 없어 부르짖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가장 애타고 간절하게 찾아야 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 이름도 관련된 말조차도 들어보지 못했던 것.

"맙소사..."
칼린은 그 역십자를 바라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왜 이제서야 눈치챘던 것일까. 어떻게 그 어떤 의문조차 가지지 않고 지금까지 넘어온 걸까.


 세계에는 신이 없었다.


이바노프는 완성된 성수를 칼린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자신은 일반 물을 들고 칼린을 바라보았다. 그는 역십자가에 심하게 당황한듯 가면으로도 숨길 수 없는 동요를 보이고 있었다. 그 동요가, 이바노프의 취기를 조금 깨게 했다.

"왜 그렇게 동요하는 거지?"
그의 질문에, 칼린은 한번 더 화들짝 놀라더니 떨리는 손으로 성수가 담긴 컵을 집었다.

"저, 전-"
칼린은 지금 어디서 부터 질문해야 할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것 투성이였다. 왕도에도, 대도시에도 종교관련 건물이라는 것은  적이 없었고, 죽음을 목도한 자들이 신을 찾는 광경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감탄사로든 단어로든 종교와 관련이 있는 것조차 들어본 적 없었다.


칼린은 침을 삼키며 떨다가, 먼저 가장 궁금한 것부터 질문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여, 여러분이 믿으시는 그 '존재하지 않는 것'... 그것을 뭐라 부르시나요?"
이바노프는  상황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먼저 파악해야 했다. 그의 당황이 적대에 의한 것인지 예상치 못한 반가움에 의한 것인지 가면 위로는 파악할 수 없었다.


"그거 한잔 마시면 답해주지. 많이 당황한 것 같아 보여서 말이야."
그는 칼린이 들고 있던 성수를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칼린은 제대로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것을 들이켰다. 그리고 다시 가면을 내린 뒤 같은 질문을 했다.


"뭐라고 부르시죠?"
"...디알테스타만."
"그게 이름인가요?"
"아니. '가장 오래된 자'라는 뜻이다."
이바노프는 그렇게 말하며 물을 들이 마셨다. 그리고 입가를 닦은 후 칼린에게 질문했다.

"그거 말이오. 엄청 귀한 건데. 맛이나 감상은 없는 건가?"
"아..."
칼린은 지금 그런 것을 느낄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친절에 답하기 위해, 그는 굳이 그것을 한 모금 더 마셔 보았다.


"... 죄송합니다. 뭔가... 시원한 물 같다는 말밖에는..."
이바노프는 성수의 복용자를 본 적이 없다. 그 효과가 언제 어떤 식으로 나오는 지는 모른다. 그는 상황에 경계하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칼린에게는  질문해도 좋다는 신호와도 같았다.

"그... 디알테스타만, 이라는 것을 믿는 분들은 전부 저렇게 역십자를 거나요?"
"답할  없소."
"많은 사람들이 저 디알테스타만을 믿나요?"
"답할 수 없소."
"세간에서 저것을 믿는 것은 정상인가요?"
"...되도록 비밀로 해줬으면 좋겠군."
 불성실한 대답 속에서 칼린은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가 이세계에서 처음 접한 종교는 일종의 컬트집단 취급정도 밖에 받지 못하고 있었다. 경악의 연속이었다.


"... 이바노프씨는, 믿으시는 건가요?"
그 질문에, 이바노프는 가만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천천히 생각해 보고서, 칼린을 믿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을 둘째로 치더라도, 이런 질문을 받은 지금 그의 신앙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난 믿소."
정적. 칼린은 몰려오는 현기증에 들고 있던 성수를 한번에 들이 마셨다. 그리고 의자에 기대 앉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맙소사..."
영혼까지 뱉어내듯 깊게 한숨을 내쉰 그는 천천히 과거를 회상해 보았다. 그리고 제멋대로 납득해 버렸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이딴 세계에 신이 있을 리가 없었다고.


천천히 몸이 내리 깔리는 느낌이다. 납득하고 나니 편해지는 듯한, 더는 어찌되는 상관없는 듯한 느낌이다. 몸이 무거워지고 빛이 평소보다 밝아 보인다. 부드러운 현기증이 기분 좋게 머리를 감싸는 느낌이다.

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이상한 감각을, 그는 꽤 저항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취하는 듯한 감각에, 그는 이것이 너무 큰 사실을 깨달은 반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지러운가?"
"아뇨, 괜찮습니다... 그냥..."
취기가 올라오니 떠오르는 것은 과거밖에 없다. 즐거웠던 어렸을 적, 대학시절, 여자친구와의 추억 등을 떠올리며 그는 과거를 걷고 있었다. 몽롱해지는 머리속에서 그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딸을 구해줘서 고맙소."
"아닙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일을 했을 때. 선배들에게 기합을 들었을 때. 엠티 때 자기소개를 못하고 입을 다물었던 때.

"아니. 당연히 고마워 해야지. 증오스러운 적을 구하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오."
"...단...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어요..."
평소처럼 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 트럭이 인도를 향해 들이 닥쳐 올 때. 자신의 하반식이 날아가는 감각을 느낄 때.


"그래도, 위대한 윌레인 제국의 노예를 죽게  수는 없지. 다들 훌륭한 노동력인데. 그렇지 않소?"
"... 여러분은 노예가... 아니예요..."
다람쥐를 죽였을 때. 고라니를 죽였을 때. 멧돼지를 죽였을 때.


"...지금 우는 건가?"
마리가 죽었을 때. 그녀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허만이 죽었을 때.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

충족을 마구잡이로 죽였을 때. 그들의 시체를 모독했을 때. 챠다레마를 죽였을 때. 미쉘의 종자를 죽였을 때.

버티기 힘들었다. 멍해지는 감각속에서 그는 방 안의 다른 모든 존재를 잊었다. 그저 어둠속에서 그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혼자인 것을 알게 되니 억지로 붙잡아 두던 것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검정의 공간 속에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칼린은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린다. 그의 공간에 들어온 것은

"...마리?"
기적이었다.


#


소냐는 아래층이 미묘하게 시끄러워서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눈을 비비고 시간을 바라 보았다.  늦은 저녁시간에, 이바노프는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아래층의 불을 전부 켜 두고 있었다.


그녀는 길게 하품을  후 기지개를 폈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대화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곧, 이바노프와 대화중인 목소리가 상당히 익숙한 것임을 깨달았다.


"...에?!"
그것은 칼린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크게 당황해서 침대에서 일어나 바닥에 귀를 대 보았다. 아무리 들어도 그건 칼린의 목소리였다. 다른 주민들 말로는 그가 자신을 구했다고 했다.


소냐는 황급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아래층에 칼린이 있는 것이라면, 잠옷차림으로 만날 수는 없었다. 정확히 이유를 댈 수는 없었지만 일단 이쁘게 꾸미고 나가고 싶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옷을 갈아입으며 화장하면서도 꼼꼼히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곧, 아래층에서 칼린의 흐느끼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확인했다.


"뭔 짓을 한 거야...!"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가를 찡그리며 빗으로 머리를 다듬으면서 방을 나섰다. 이바노프가 뭔가 실수했으리라. 빈정상해서 집을 나가 버리기라도 하면 낭패다. 신발도 신지 않고서 다급하게 계단을 내려간 그녀는 거칠게 벽을 치며 식탁에 도착했다.

"형씨?!  아버지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요?!"
"? 소보코... 소ㄴ..."
크게 당황해서 역할을 혼동하고 있는 이바노프에게 소냐는 대충 수신호를 보내 진정시켰다. 대충 '지금은 평소대로'라는 뜻이었다. 이바노프는 그제서야 다시 목을 풀고서 입을 열었다.


"아니, 소냐... 어른들 일이니까..."
"사람 울리는 게 어른 일이야? 대체 무슨 일을 한 건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칼린쪽을 돌아보았다. 그는 가면 아래로 흐르던 물을 닦아내더니 소냐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 형씨?"
"...마리?"
칼린은 그대로 의자에서 일어나, 한 걸음 씩 비틀대며 소냐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심하게 불안정해서 소냐는 약간 뒷걸음질 쳤다.


"무슨-"
"지, 진짜 마리니?"
그는  수 없는 말을 하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바노프도 자리에서 일어나 도축용 칼을 집었다.


"미쳤어 아빠?"
"방으로 들어가라. 지금 그는 제정신이 아니야."
"말도 안돼..."
칼린은 그렇게 중얼대며 천천히 가면에 손을 댔다. 그리고 곧 그 가면을 벗었다. 동시에, 이바노프도 소냐도 잠시 숨을 멈추고 경직됐다.

"나야, 마리...! 칼린오빠야! 마리!"
단어 그대로, 그는 숨막히게 아름다웠다. 그 이바노프까지 적의를 한순간 잃을 정도였다. 소냐가 가만히 있자,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아... 마리! 마리!"
그는 소냐의 앞까지 다가가 꿇어앉은 후,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소냐는 아무것도 이해할  없었다. 다만 이바노프가 무슨 짓을 한 것이든 용서하기로 결정했다.

"아아아! 내가! 내가 죽었어야 했어! 미안해! 마리! 미안해!"
그는 마치 피를 토해내 듯 외치며 강하게 소냐를 끌어 않았다.  모습에 이바노프도 천천히 칼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그가 하는 말을 얌전히 듣기 시작했다.


"전부 내 잘못이야...! 미안해... 내가...  숲속에서 죽었어야 했는데... 나 혼자 죽었어야 했는데..."
맥락을 알 수 없는 횡설수설한 말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비명이었다. 그러나 그 비통함은 숨길 수 없었다. 망가져 버린 사람이 내뱉는 절규였다.


"나만... 나만  번이고 세번이고 죽어버렸어야 했는데...마리..."
 어떤 맥락도 파악하지 못해도, 그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소냐는 조용히 젖어가는 품속의 그를 끌어안았다.


그의 절규 속에서, 소냐는 드디어 깨달았다. 읽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는 애처로울 정도로 끝장나 버린 사람이었으니까.

죽어버린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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