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여진(餘震)
요나는 가만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숨조차 멈추고 정적을 유지했다. 곧 그녀는 들고 있던 담배 꽁초를 떨궜다.
"결정하신-"
미쉘은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요나가 그녀의 목을 후려치듯 붙잡았기 때문이었다. 요나는 그대로 팔에 힘을 주고 그녀를 들어 올렸다. 곧 한 손으로 미쉘의 목을 붙잡고 들어올린 듯한 형태가 되었다. 미쉘은 반 본능적으로 요나의 손을 붙잡고 다리를 버둥거려 보았지만, 어딘가에 낀 것처럼 미동조차 만들 수 없었다.
"제정신이 아니군. 누구와 뭐를 하겠다고? 몰락한 찌꺼기 주제에."
요나의 손에 천천히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말의 목뼈도 부술 수 있는 그녀이다. 다 죽어가는 여자의 목을 부수는 것은 그녀에게 성냥을 부수는 작업과 크게 다를 것 없었다.
"이대로 죽여주마."
그녀는 정말로 그대로 미쉘을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너무 분노한 탓에 오히려 미쉘이 짓고 있는 웃음을 놓쳐 버렸다.
"다, 당신은, 저를 죽일 수 없어요..."
"죽일 수 있지. 이제 엄지에 힘만 조금 주면 된다."
"멍청한... 요나... 제가 죽으면..."
미쉘은 정신이 옅어 지는 것을 느꼈다. 옅어 지는 정신속에서 그녀는 순수한 즐거움을 담아 웃었다.
"당신...도... 여기에.. 오게 되는 거..."
거품을 물며 말하는 미쉘의 말에 요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손에 힘을 풀며 미쉘을 수감실 벽으로 밀어붙였다. 미쉘이 크게 숨을 들이 마시며 침을 흘려 대기 시작했다. 그런 미쉘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며 요나는 으르렁댔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냐."
미쉘은 점점 뚜렷해 지는 정신 속에서 거칠게 숨을 내쉬다가, 요나를 다시 노려보며 웃었다.
"...여기서 제가 자백하지 않는다면 ... 당신은... 당신은 어떻게 될까요."
그녀는 기침으로 말이 계속 끊어지면서도 열심히 말을 이었다.
"당신도 어중간하게 머리를 굴릴 줄 아니까, 무슨 뜻인지는 알 거예요. 저를 여기까지 밀어 넣은 이상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든 저의 혐의 인정이 필요할 겁니다. 8영주가 되기 이전에, 당신이 해놓은 개수작을 들키지 않으려면 말이죠...!"
"널 죽여버리고 다른 사람을 밀어 넣으마."
"하! 멍청하긴...! 제가 당신 손에 죽고 나면 다른 8영주들이 당신을 가만 볼 것 같습니까? 그때야 말로 당신을 숙청 시키려고 할 거예요..."
그녀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바쁘게도 말했다. 요나는 부르르 떨면서도 목을 붙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분노를 삭히고 있었다.
"알고 계셨잖아요? 그러니까 내 요구사항을 들으러 온 거고...!"
요나는 그제서야 그녀의 목을 놓았다. 미쉘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 하하하! 당신은 단순하니까! 속을 읽기 쉽단 말이죠!"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바닥을 기면서도, 미쉘의 웃음은 참 명쾌하게 울렸다.
"8영주였던 자가 마지막 소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종자 따위와의 하룻밤이라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미쉘."
그렇게 말하는 요나의 목소리는 설득력을 전부 잃어버릴 정도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종자 따위라니, 허세 부려도 아무 의미 없습니다."
미쉘은 요나의 무너지고 있는 듯한 표정을 바라보며 즐겁게 웃었다. 둘은 어느새 완벽하게 역전된 상황이었다.
"거창한 건 필요 없어요. 내 종자, 영지, 지위를 전부 가져간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 그거 하나면 충분해요."
그렇게 말하는 미쉘의 눈은 잔혹하게 빛나고 있었다. 요나는 그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검을 붙잡았다.
"그쯤 하시죠."
그런 요나를 말린 것은 심판관이었다. 그는 어느새 가면을 벗고 있었다.
"면회시간은 끝났습니다. 돌아가세요."
심판관의 말에 요나는 검을 잡은 손을 부르르 떨다가 곧 손을 뗐다.
"...여기 조금 더 계시면 생각이 바뀌실 지도 모르지요."
"제가 생각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겁니다. 조심히 돌아가시고-"
침을 뱉듯 말하는 요나를 두고 미쉘은 입가를 숨겼다.
"칼린, 그 아가에게 제 안부를 전해주시길..."
마지막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요나는 황급하게 수감실을 나섰다.
#
요나는 성난 발걸음으로 마레의 방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그의 방 문이 부서질 듯 세게 두들겼다.
"들어가겠습니다."
"아, 요-"
방 너머에서 그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요나는 문을 열어 재꼈다. 그리고 마레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단 한마디라도 쓸데없는 말을 붙인다면 죽이겠습니다."
마레는 그녀의 격한 감정에 당황하면서도 흥미를 느꼈다. 그는 입가를 바느질하는 시늉을 내 보였다. 요나는 주변에 흩어져 있는 종이들을 짓밟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모든 게 우리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다만, 미쉘... 미쉘 그 씨발년이 자백을 하지 않아!"
그녀는 마레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마치 그가 도망을 못치게 하려는 듯 테이블 위로 손을 얹어 그의 퇴로를 막았다. 마레는 그녀의 붉게 충혈된 눈을 보며 20분쯤 전 시종이 가져다 준 커피잔을 들어올렸다.
"아... 자백을 하지 않는다 하심은?"
"그년이 자신의 자백을 바라면 요구사항을 들어 달라 더군..."
요나의 테이블 위로 얹은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신경질적으로 이빨이 갈리는 소리에 마레는 의자를 조금 뒤로 빼며 테이블 위에 올라가 있는 잉크병을 바닥으로 내려 놓았다.
"그건 예상하셨던 거 아닙니까?"
"나에게 칼린과의 동침을 요구했어!"
이성을 잃은 듯한 목소리와 함께, 요나의 악력으로 테이블이 쥐어 뜯기듯 부서졌다. 성이 안 풀리는 듯 울분을 표하는 그녀를 보며 마레는 가만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서요?"
"그래서, 라니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발정기 무스보다도 흥분하신 요나경, 그저 종자를 하룻밤 빌려줄 뿐인 일이라고 들립니다만? 상당히 좋은 조건이 아닙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고 부서진 테이블 위로 커피잔을 내려 놓았다.
"게다가 순종적인 칼린씨라면 요나경의 명령이라면 바로 들을 겁-"
"입닥쳐라."
요나는 마레의 깃털 펜을 집어 들어 테이블 위에 얹혀져 있던 그의 손등에 그대로 찍었다. 펜은 그의 손등을 관통해 테이블에 박혔다.
"글쟁이 따위가 칼린에 대해 무엇을 아느냐... 칼린은 나 이외의 그 누구에게도 몸도 마음도 허락하지 않아. 절대로."
마레는 가만히 요나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녀에게는 지금 이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손등에 꽂힌 펜을 잡았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렇다면 겸손하고 누추한 제게 무엇을 바라시고 찾아오신 겁니까?"
"그년의 요구를 어떻게 하면 바꿀 수 있지?"
"바꿀 수 없겠네요."
"...뭐?"
그는 부족한 힘으로 펜을 힘껏 잡아당겨 보았으나, 단단히 박힌 펜은 쉽게 뽑히지 않았다. 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자신의 손 아래로 흐르는 잉크와 피가 섞인 액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윌레인 정치범 수감소의 고문을 참아낸 여걸(女傑)입니다. 이제 와서 뭐, 시간을 끌어 봤자 요구사항이 더해지면 더해지지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게다가 운 나쁘게도 미쉘님이 자신이 가진 패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어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가신다면 요나님의 공적에 의문이 생길 거고, 그 공적을 매꾸려면 결국 요나님은 진짜 변절자를 지목해야 됩니다. 그런데... 다른 8영주 분들은 절대 그걸 허가하지 않을 거구요."
마레는 펜이 박혀 있는 손을 좌우로 흔들며 손에 뚫린 구멍을 넓혔다. 몇일간 자지 못해 둔해진 감각이 도움이 되고 있었다.
"칼린씨를 넘기지 못한다면... 뭐, 외통수네요."
"...거짓말이다."
그녀는 무너질 듯한 표정으로 망가진 테이블 위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머리를 늘어뜨리며 고개를 떨궜다.
"그럴 리 없어. 뭔가 방법이 있을 것이다."
혼자 중얼대는 요나를 두고 마레는 마침내 펜을 다시 뽑아냈다. 그는 펜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젠 쓸 수 없을 듯 했다. 그는 망가진 펜을 뒤쪽으로 던져버리고 바닥에 떨어진 종이 한 장을 주워 손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다른 방법이라면 만들어 낼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요."
"...뭐?"
"미쉘님의 요구사항을 바꿀 수는 없지만, 칼린씨를 넘기는 것은 피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거죠."
대수롭지 않게 뱉은 그 말에 요나가 튀어 오르듯 마레의 뚫린 손을 붙잡았다. 붙잡힌 손에서 쥐어 짜이듯 피가 흘러나왔다.
"어떤 방법이 되든 그걸로 가겠습니다...!"
"아...아아아아아! 잠깐! 아픕니다! 요나경! 일방적인 짝사랑처럼 실연처럼 아픕니다!"
비명을 지르는 마레의 손을 놓자, 그는 손을 털며 말했다.
"아직 번개처럼 마법처럼 갑작스레 내려오는 봄날의 소나기처럼 떠오른 건 없어요! 찾아볼 수는 있겠다는 거지... 떠올리는 것도 케이크 먹듯이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그런가. 떠오른 것은 없는 건가..."
요나는 다시 낙담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한참 그렇게 있던 그녀는 완전히 늘어진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디 방법을 계속 생각해 주십시요, 마레경. 갑자기 찾아와 무례를 범해 죄송했소."
정말로 지친 것일까,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 듣는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언데드처럼 방을 걸어 나선 그녀는 곧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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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린은 자신의 구역에 멍하게 앉아 일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제로 착취당하고 있는 그들에게서 칼린은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자각하고 스스로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감독관님~!"
서투른 윌레인어가 들려왔다. 칼린은 그것이 감시병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 있던 것은 소냐였다.
"소... 소냐? 윌레인어를 할 줄 알아요?"
"조금 할 줄 안다!"
그녀는 전날 봤었던 때와는 또 달랐다. 그 날은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걸까. 지금은 첫날에 봤던 그 기운찼던 소녀로 돌아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감독관! 왜 발톱삼킨 표정?"
칼린은 갑작스럽게 다가온 그녀에게 일종의 경계심을 느꼈다. 그는 몸을 조금 뒤로 빼며 말했다.
"새, 생각을 조금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세요!"
"생각하는데 왜 발톱삼킨 표정?"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소녀에게서 몸을 빼던 칼린은 곧 근처에 있던 감시병을 확인하고 불렀다.
"병사님! 이탈자가 나왔는데 뭐하시는 겁니까?!"
"네? 아니... 그쪽 구역은 지금 휴식시간이라서..."
감시병은 감시병대로 당황스러웠다. 주둔군의 입장은 이 곳 주민들에게 휴식시간을 줘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을 소금부대원들이 와서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휴, 휴식시간을 회수할까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무튼 이 여자를 끌어내 주세요!"
"이리하님께서 이번 임무는 칼타코 주민들과의 친목을 위한 거라서 다가오는 사람을 제제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만..."
"네? 이리하씨가요?"
칼린이 믿을 수 없는 듯 되물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소녀는 더 달라붙기 시작했다.
"...쫓아낼까요?"
칼린은 조금 생각하다가 포기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임무 내용이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죠..."
"나 안 쫓아내?"
"...네. 그래도 저리 가주면 좋겠어요..."
"안 쫓아내면 안가."
"맘대로 하세요..."
그는 지쳐서 그렇게 말하고 다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말은 왜 거신 건데요?"
"형씨가 흥미진진."
"네? 무슨..."
"왜 가면?"
"...몰라도 돼요."
칼린은 대답을 멈추고 곁눈질로 소냐를 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곳의 주민들과 이렇게 길게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 것 보다도 애초에 이곳 주민들을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는 최근 혼자 있던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새로 사귀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의 인간관계만으로도 그에게는 충분히 좋았고 아팠다.
'흥미 떨어지면 가겠지.'
그는 그렇게 판단하고서 말을 멈췄다. 소냐는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그를 향해 불쑥 손을 내밀었다.
"형씨, 우리랑 친목 하러 온 거지요?"
그리고 칼린이 반응할 때까지 손을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칼린은 30분 주는 쉬는 시간이 생각보다 너무 긴 것이었다고 생각하며 짜증을 삼켰다.
"...그러면 어쩌시게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소냐는 전혀 기죽지 않았다.
"그럼 담배줘."
칼린은 머리속이 하얗게 질려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턱을 괴고 있던 손을 천천히 떼며, 그는 떠듬떠듬 질문했다.
"며, 몇살이신데요...?"
"?그걸 왜 묻냐? 17살입니다."
그는 질색을 하며 그녀의 손을 쳐냈다.
"17살이 담배를 왜 펴요! 맙소사, 담배를 받으러 오셨던 거예요?"
"?뭐가 문제냐?"
"너무 어리잖아요! 안돼요!"
"나이가 뭔 상관? 형씨 이상합니다."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기울이는 그녀를 보며, 그는 자신이 이세계에 있다는 것을 다시 떠올렸다. 아직 그에게는 미성년자는 담배를 필 수 없다는 생각이 남아 있었다.
"...아무튼 안돼요! 담배는 건강에 안 좋아요!"
"처음 듣는 말입니다! 왜 거짓말?"
"안되는 건 안되는 거예요! 계속 그러시면 제가 자리를 이동할 겁니다!"
"꼴값. 미역머리 형씨는 두 개피 줬었소."
소냐는 그렇게 말하고서 앞머리를 흐트러트린 뒤 눈을 찢어 보였다.
"라드씨가 담배를 줬다구요?"
칼린은 놀라는 것도 지칠 지경이었다.
"한 대만 주면 바로 비킴."
소냐는 하는 말에 비해 찬란한 웃음을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칼린은 난처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곧 얼굴을 푹 숙였다.
"...절대로 못 줘요..."
"당신은 쪼잔하다."
"...저는 절대로 안 줄 거니까, 담배를 받고 싶으면 라드씨에게 가세요. 아직 쉬는 시간 조금 남았잖아요..."
"한 대 줄때까지 지랄해볼 예정."
"지랄이라는 말은 나쁜 말이예요. 맙소사, 윌레인어는 누구에게서 배우신 건가요!"
"내가 가르쳤소."
난입 된 제삼자의 목소리. 고개를 돌려보니 이바노프였다.
"소냐. 여기서 뭐하는 거지?"
"친목 중. 이게 필요한 거 아니었어?"
둘은 빅센마르크어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이바노프는 그런 소냐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데려가겠소. 중요한 대화를 하고 있던 건 아니겠지."
"부탁드립니다."
칼린은 짧고 간결히 의사를 전했다. 이바노프는 소냐를 질질 끌며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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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으로 저자와 접촉한 거냐."
"왜, 소금부대원들의 경계를 줄이는 게 목표 아니었어?"
"그건 독립군의 일이야."
이바노프는 그렇게 말하고 소냐의 명치에 굵은 손가락을 들이 밀었다.
"'네' 일이 아니다."
"...나도 독립군이야."
완강한 소냐의 태도에 이바노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칼린이 있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우리 쪽 감시를 맡은 세명. 하나는 상회측의 내통자이고, 하나는 의도가 불분명하지만 분명 우리쪽 내통자랬지."
"응."
"그리고 저자가 분명 네가 직접 말한 '위험한, 속을 알 수 없는' 요소고. 내 말 맞나?"
"응."
"하지만 동시에 우호적이기도 하고. 그치?"
"그건 좀 애매해."
이바노프는 소냐의 양 어깨를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그냥 둬도 된다는 거다. 저쪽에서 우리를 먼저 적대할 일은 없다는 거다. 적어도 우리 구역 안에서는. 왜 굳이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려고 하는 거지?"
이바노프의 진지한 말에 소냐는 고개를 떨궜다. 이바노프는 그것이 자신의 말에 담긴 뜻을 충분히 이해해서 나온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 몇일 전에, 저 사람이 우리 집으로 왔었어."
이바노프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와서 나한테 사과하고 갔거든. 그 때 조금 흥미가 생기더라."
그녀는 그때를 회상하며 눈을 감아 보았다.
"사람 속이 보인다는 게...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었거든. 나한테 우호적인 사람들을 접하는 일보다는 적대적인 사람들을 접하는 일이 더 많았었으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이바노프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저런 유형은 내가 봐온 사람들 중에서도 처음이야. 그래서 조금 흥미가 생겼었나 봐. 이게 우리 작전에 방해가 될 것 같으면 바로 그만 둘게."
그녀는 올곧은 눈으로 이바노프를 바라보았다. 한치의 거짓도 없는 광채를 띄는 금안. 이바노프는 그 눈을 한참을 마주하다가 눈을 감았다.
"...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 진다 싶으면 바로 제재하겠다."
"응.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