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4화 〉여진(餘震) (104/164)



〈 104화 〉여진(餘震)

"... 당신이 상회측 내통자라고 보면 되는 건가?"
이바노프의 말에 라드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쳐다보다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뭐, 그렇지.  부탁합니다?"
"...잘 부탁하오. 자네도 잔을 받으시게."
"고마워라. 마침 목이 타서 말이지."
그는 이바노프가 건낸 잔을 한번에 들이키고서 코로 열기를 뿜어낸 뒤 다시 박스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나저나 총이라... 이바노프씨, 이걸 본  있으십니까?"
"처음보는군."
"그럴 만도 해. 사실 이건 실패한 무기라는 평을 듣는 거거든."
라드는 그렇게 말하며 한정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뒤에 있는 박스에서 총알을 한발 꺼냈다.

"... 명안, 조금 도와주지 않겠나? 구조를 모르겠군."
"아, 네! 장전해 드릴 게요!"
바바라는 황급히 라드에게서 총과 총알을 건내 받아 떨리는 손으로 장전을 시작했다. 이바노프와 라드 둘  그 과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 여기 있습니다! 이제 방아쇠만 당기면 나갈 겁니다!"
"고마워. 신세 지는 군."
그는 웃으며 그 총을 받은 후, 지하실의 벽 쪽을 향했다.


"보라구."
그는 약간 강한 방아쇠압을 느끼며 총을 발사했다. 반동과 함께 라드의 몸이 살짝 비틀어지며, 곧 지하실 안에 터질 듯한 굉음이 울렸다. 라드는 한발을 쏜 그 총을 테이블 위에 얹고 이바노프를 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이바노프는 총알이 박힌 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귀를 막았다 열었다를 반복하며 아- 하고 소리를 내고 있는 바바라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리다가 입을 열었다.

"...이건 실패할 수밖에 없었군."
"왜 그렇게 생각하지?"
이바노프는 총을 집어 들었다. 보기보다 상당히 무거웠다.

"위력으로 따지면 마법에 비해 압도적으로 약해. 급소를 맞추지 않는다면 바로 뭔가를 죽이기도 어려울 것 같군. 활에 비해 소리가 커서 암살에도 적합하지 않아 보여."
그는 그렇게 말하고 총의 여기저기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게다가... 크기가 너무 커. 숨기며 소지하기 힘들 것 같고, 한번 사용한 걸로 총열이 이렇게 뜨거워진 걸 보면 한 10발만 연속으로 쏴도 문제가 생길  같군. 이런  부자들의 호사품 정도 밖에 되지 않아. "
그렇게 평가를 내리고, 그는 총을 제자리로 내린 뒤 바바라를 노려보았다.


"다임상회는 우리에게 잉여자본을 넘길 생각인 겁니까?"
바바라는 몇 번  귀를 열고 닫는 것을 반복하다가 이바노프의 말에 조금 웃었다.

"대단하시네요. 단점을 바로 파악하셨군요. 확실히 부자의 사치품정도로 밖에 느껴지지 않으실 겁니다."
바바라는 그렇게 말하고서 총알을 한발  꺼냈다.

"하지만 에테롬씨는 이 총에서 새로운 시대를 보셨죠. 설명해 드리고 싶은데... 한 발 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바노프는 그런 그를 미심쩍게 쳐다보다가 총알을 건내 받았다. 그리고 총에 집어넣고, 바바라가 했던 것처럼 장전을 했다. 곧 그는 라드가 했던 것처럼 벽을 향해  발을 더 쏴냈다. 다시 한번 폭음이 퍼졌다.


바바라는 귀를 꽉 막고 있다가, 곧 천천히 귀를 열며 웃어 보였다.

"어떠신가요?"
"...아직도 모르겠군."
"그런가요. 하긴, 이바노프씨는 강하시니까, 약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기는 힘들 수도 있겠군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바바라는 웃으며 그에게서 총을 건내 받았다.

"이바노프씨, 당신은 방금 제가 장전 한번 한 거에 라드씨가 한번 쏜 것으로 이 무기의 작동법을 익힌 겁니다."
그가 시선을 돌렸다. 이바노프가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총알이 박힌 방향이었다.

"확실히 이 무기는 단점투성이 입니다만, 그걸 모두 뛰어넘는 무기로서 압도적인 이점이 있죠. 사용에 용이하다는 겁니다."
"...글쎄. 사용해보니 몽둥이나 검이 더 편할 것 같던데."
"하하하! 그냥 휘두른다면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바바라는 웃으며 몸을 기울였다.


"무기란 뭘까요?"
"...살상도구지."
"비슷합니다만, 그러면 짐승의 이빨이나 발톱도 무기인가요?"
"아닌가?"
"아니죠. 무기라는 건 자신보다 강한 적을 보다 쉽게 잡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겁니다. 맨몸으로 발톱과 이빨을 이기기 위해 몽둥이를 만들었고, 몸둥이를 이기기 위해 검이 나왔죠. 그리고 검에게 베이지 않기 위해 활이 나왔습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뭐, 들어 보세요. 전부  해 드릴 테니까."
그는 총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다 강한적을 이기기 위한 무기의 본질은 흐려져 버렸습니다. 무기술의 개발 때문이죠. 예를 들어, 당장 당신의 반란군 한명에게 검을 쥐어 주고 라드씨에게 맞붙이면 이길 수 있을까요?"
라드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바노프는 그런 라드를 보며 조금 생각해보다가 답했다.


"...한명만으로는 도저히 무리겠지."
"그런겁니다. 무기의 이점이 사라진 겁니다. 특히 마법까지 쓰는 자라면, 이런 무기는 더이상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될 수도 있죠. 요컨데, 배우지 못한 버림받은 자들은 무기를 들어도 이길 수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싸우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니까요."
바바라는 총알을 한발 더 꺼냈다.

"마음가짐의 차이도 있지요. 익숙한 사람이면 모를까, 평범한 사람이 검이나 농기구로 누군가를 죽인다니, 힘든 일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생각보다 죄악감이 크다고들 하니까요. 병사로 지원한 자들도 전쟁이 끝나면 많이들 자살하지 않습니까?  감각을  잊겠다... 같은 말 하면서. 전쟁에 참가했던 이바노프씨라면 잘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야기는 하고싶지 않군."
"...죄송합니다. 불쾌하게 만드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는 웃으며 총을 다시 장전했다.


"근데 이 무기를 보세요... 단 한번, 옆에서  것 만으로도 사용법을 익힐 수 있으며,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그저 방아쇠만 누르면  뿐. 짧게 말하자면 그런 겁니다."
그는 총구를 돌리며 천천히 이바노프를 향해 웃었다.


"사용에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특별한 무기술 없이 선 우위를 점령할 수 있는 무기라는 겁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기에 걸맞은 무기라는 거죠."
이바노프는 자신을 향해 있는 총구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 원래는 떨거지 범죄조직들이 가끔 이용해 먹거나 귀족들의 호사품으로 여겨지던 물건입니다만, 에테롬님은 방금 제가 말한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래서 독자적으로  무기를 개발해 나가셨죠. 맙소사, 2개월  까지만 해도 이 무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꼬챙이도 필요했다니까요?"
바바라는 환하게 웃으며 총구를 내렸다. 그리고 다시 총알을 빼낸 뒤, 그것을 이바노프에게 건냈다.


"아직도  무기가 마음에 드시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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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쿠르트는 조금 긴장한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요나의 호출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한번 크게 심호흡 하고서 다시한번 앞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가볍게 두어번 정도 문을 향해 노크했다.

"들어와라."
평소와 같은 목소리. 오히려 그것이 더 긴장됐다. 그녀는 더이상 요나의 어떤 모습도 쉽게 믿을  없었다. 문을 열어 보면, 혼자 가볍게 술을 즐기고 있던 요나가 보였다.

"무슨일이십니까."
"말투가 많이 쌀쌀맞아졌구나. 조금 서운한걸?"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맞은편의 의자를 가리켰다.

"자, 앉거라."
리쿠르트는 아무 말없이 의자로 다가가 앉았다. 경직된 동작이었다. 요나는 잔을 하나 더 꺼내 술을 조금 채운 뒤 리쿠르트를 향해 밀어줬다.

"지금 내 곁에는 알레프도 칼린도 없으니까 말이다. 적적하더군."
"... 그런가요."
그녀는 가까스로 칼린을 묶어내려는 당신이  말은 아니라고 할 뻔한 것을 삼켜냈다. 요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을 천천히 확인하며 자신의 잔을 따랐다.

"사실 물어볼 것이 있어서 말이다."
그리고 서랍에서 작은 화장품 통을 꺼내 테이블 위로 올려 놓았다.


"...이게 뭐죠?"
요나는 대답하지 않고 마치 리쿠르트의 반응을 보려는 듯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리쿠르트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요나와 화장품통을 번갈아 보았다.

"이 화장품 통을 본 적 있나?"
"다 사용하신 것이라면 제 방에도 있을 겁니다만?"
다시 한 번 침묵. 그 정적은 요나가 다시 서랍을 여는 것으로 깨졌다.


"...그런가. 미안하군. 모르면 됐다."
"...무슨 일이죠?"
요나는 잠깐 턱을 괴고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최근에 지진이 났을 때 말이다."
"네?"
"누가 성에 들어오지는 않았었느냐?"
"저는 그  방 안에 있었어서 모릅니다. 근위병에게라도 물어보시는 것이?"
"...그런가. 이상하군. 네가 아니라면 외부인의 소행일 텐데."
그녀는 그렇게 혼잣말 하고서 다시 허리를 폈다.


"할 말은 끝났다. 나가도 좋아."
리쿠르트는 그 말에 놀라 눈을 둥글게 떴다. 그런 그녀를 보며 요나는 웃었다.

"무슨 생각을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그게 다야.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어주마."
"...아뇨, 나가겠습니다."
속을 읽힌 것 같은 불쾌함. 리쿠르트는 의자를 밀어내며 일어난 뒤 등을 돌렸다.


"잠깐."
"...또 뭐죠?"
"한마디만 더 하지."
요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리쿠르트의 뒤쪽으로 다가갔다.

"네가 또 허튼 수작을 부리지 말아줬으면 한다."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글쎄. 그러면 좋겠지만 확실히 해두자고."
 뒤에서 담배불이 붙는 소리가 들린다. 리쿠르트의 감각은 긴장감으로 상당히 예민해져 있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모두 칼린을 위한 거야. 진짜로 그를 생각한다면 가만히 있거나 나를 도와라."
그 말에 리쿠르트의 긴장감은 서서히 분노로 바뀌어 갔다.

"그를 위한 거라구요?"
"그래."
"...그를 고립시키려 하고, 정신적으로 몰아가는 것이 그를 위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저 당신의 더러운 소유욕이 아닙니까?'
"...리쿠르트,  아무것도 몰라. 칼린은 내 곁이 아니면 행복할 수 없는 '몸'이다."
"그게 무슨-"
"그는 내가 아니면 그 누구도 받아들일  없는 추악한 생물이야. 내 곁에 있는 것이 그가 이 세상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거다."
"...'생물'이라구요?"
"그래. 네게 모든 걸 말해줄 수는 없다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들이 잘못된 일인 것은 나도 알고 있고, 상당히 괴롭다."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 손을 가슴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게 그를 위한 일이라서 할 뿐이야. 다른 누군가가 그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면 난 그자를 도울 것이다. 나도 칼린을 아낀단 말이다. 네 생각보다도 훨씬."
"...하고싶은 말이 뭡니까."
"지난번에는 감정적으로 대했지. 리쿠르트. 한번만 더 나를 믿어다오."
조금 혼란스러워하는 리쿠르트를 눈에 담으며 요나는 주먹을 쥐었다.

"이게 가장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길 인거다. 칼린은 내 곁에 있어야만 해. 부디 나를 믿고 가만 있어다오."

#


소냐는 자고 있는 이바노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전날 늦게까지 회의를 진행했으리라. 그녀는 그런 이바노프를 보며 이번 작전의 성공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황녀'라는 카드가 있으니 확률은 높지만, 대사들이 이 곳에 들어오기 전까지 윌레인의 병사들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 문제인 거다.

소금부대원. 다른 모두는 몰라도 그녀의 머리속에 가장 깊게 박혀 들어온 것은 그 가면  남자였다. 짧은 시간 동화된  만으로도 그녀에게는 트라우마가 되어 버렸었다. 운 나쁘게도 그가 윌레인 접견부 담당을 맡게 되어 일하다 보면 자주 마주친다는 것도 두려웠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는 잠든 이바노프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한숨을 내쉬고서 눈을 감았다. 이바노프가 눈을 뜨면 협력자에 관한 것도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 중에 아래층에서 초인종이 울려왔다.


그녀는 이바노프를 깨우지 않기 위해 서둘러 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한번 울리고서 고요한 것으로 보아 윌레인 측의 병사는 아닌 듯했다. 윌레인측이라면 분명 바로 답장이 없으면 신경질적으로 종을 계속 눌렀으리라.

그리고 열린  뒤에는 그녀가 생각조차 하지 못한 자가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가면쓴 남자와 통역병이었다. 소냐의 얼굴이 굳었다.


급하게 시계를 바라보니 아직 노동때까지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시계와 문 너머의 사람들을 번갈아 보자, 칼린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 일 때문에  게 아니에요! 통역병씨, 존대말로 번역 부탁드려요."
부드러운 미성. 통역병이 말을 번역하지 않아도 그에게 적대감이 없다는 것은  수 있었다. 소냐는 조금 표정을 풀며 작게 말했다.

"이, 이바노프는 아직 자고 있는데... 깨울까요?"
칼린은 통역병의 말을 듣고서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소냐라고 하셨던 가요?"
"네? 저요?"
"네. 처음 만났을 때 무리를 시킨 것 같아서 죄송하다고 하고 싶었어요."
소냐는 잠깐 생각하다가 마음속으로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조금 경계하는 눈으로 칼린을 올려다보았다.

"...괜찮아요. 오빠 때문에 그런게 아니라 가끔 그래요."
"그 때는 조금 심해 보였는데... 열외시켜드릴까요?"
"아뇨, 진짜 가끔씩 그러는 거니까 신경 써 주실 것 없어요. 그럼."
소냐는 그렇게 말하고 황급하게 다시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러나 통역병이 그 문틈으로 발을 집어 넣었다.

"이 씨발년이 싸가지 없게... 제대로 안 받아줘?"
"통역병씨."
그대로 몸을 들이밀던 통역병의 몸을 칼린이 막아냈다.


"무슨 말을 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분위기가 험해요. 그만 두세요."
결코 격한 감정이 들어가지는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단호하게 울렸다. 소냐에게는 그렇게 들렸다. 통역병은 아무 말도 없이 붙잡고 있던 문에서 손을 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칼린님."
"아뇨, 그냥 제 생각일 뿐이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고 조금 웃다가 다시 한번 소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냥 그 말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이른 아침 실례했습니다. 이만."
그렇게 말하고 다시 통역병을 쳐다보자, 통역병은 혀를 차며 작게  말을 전달하고서 문에서 완전히 떨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등을 돌렸다. 소냐는 문을 붙잡고 가만히 떠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을 닫았다.


"...생각보다는 좋은 상황인 건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런 정신머리를 한 사람이 저렇게 멀쩡하게 굴 수 있는 지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머리속에서 칼린은 오히려 더 파악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을 한번에 이해할 수 있던 그녀로서는 더더욱 이상한 경우였다.

'...사과정도는 제대로 받아주는 게 맞았나?'
문에 기대 앉아서,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


라드는 칼린이 일찍 나가는 것을 창밖으로 확인하고서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잠깐 생각하다가 펜을 들었다.


'바바라와 접촉. 병력과 무기 조달 완료.'
거기까지 쓰고 그는 죽통을 꺼내 열었다. 그대로 종이를 말아 넣으려던 그는 곧 동작을 멈추고 조금 더 생각해 보았다.


"분명 그 때 '상회 측 조력자' 라고 했단 말이지..."
그는 주머니에서 조약돌들을 꺼냈다. 이번에는 각자 색이 다른 것으로 10개였다.

"마치 다른 조력자가 있는 것처럼 말이야..."
이상한 말은 아니었다. 다만 신경 쓰이는 말투였을 뿐이다. 다른 조력자가 없어도 말 자체가 이상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걸리는 말이었다.


"...일단  둘까."
그는 다시 펜을 집어 들어  놓은  아래에 추가로 글을 내려썼다.


'독립군 측에서는 뭔가를 숨기고 있음. 아마 교단도.'
그는 종이를 말아 죽통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시선을 조약돌을 향해 옮겼다. 하나씩 그것들을 치워내던 그는 가만히 남은 조약돌들을 노려보았다.

남은 조약돌은  두  뿐이었다. 초록색과 하얀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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