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여진(餘震)
오늘따라 하늘이 잿빛이다. 라드는 이런 날씨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고 있다. 그는 부쩍 건조해진 공기를 즐기며 몇 번 헛기침하면서 목을 게워냈다.
이 근방에는 숲 뿐이다. 숲길을 돌아오는 마차 한 대가 보인다. 아마 저것이 오늘의 건설물자 보급 마차일 것이다. 그는 조금 머리를 정돈하고 웃으며 입구에 다가갔다. 곧 마차가 그의 앞으로 도착했다.
"검문 있겠습니다."
그는 웃음을 머금으며 장난처럼 그렇게 말했다. 마부가 조금 긴장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며 모자를 벗었다.
"...클래프 상회입니다."
라드는 그 질문에 재미없는 반응이라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가, 몸을 기울이며 다시 한번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이봐, 암구호가 기억이 안 나서 그러는데... 우리 서로 구면이니까 한번 봐주지 그래?"
마부는 얼굴에 핏기를 잃으며 몸을 떨었다. 그녀는 전에 라드의 누이를 정찰했던 경력이 있다.
"화, 확인했습니다...!"
마부는 작은 비명처럼 외치고 다시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라드는 빙그레 웃으며 마차열을 확인했다. 말 6마리가 끄는 마차가 8대. 이정도 분량의 물자를 일주일마다 옮기다니, 확실히 윌레인에서 칼타코 영지 개발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듯했다.
"흠..."
라드는 잠깐 콧소리를 내며 모든 마차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선두 마차로 돌아와 마부를 향해 웃었다.
"좋아. 들어ㄱ-"
"잠깐만요!"
그 소리는 밖에서 들린 것이 아니었다. 뭉툭하게 탁한 소리. 어딘가의 안에서 들리고 있는 소리였다.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니, 첫번째 마차의 짐칸이었다.
"아! 형씨, 안된다고 했잖아!"
"진짜 미안해요! 근데 딱 한번만!"
마부가 당황한 듯 식은땀을 흘리며 짐칸과 이어진 창 쪽을 향해 소리쳤다. 그녀에게 돌아온 대답은 공손한 것이었지만 수긍하는 것은 아니었다.
창은 남자 머리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다. 곧 그 나무창이 열리며, 거기에서 머리가 하나 삐져 나왔다. 앳되고 특징을 잡기 힘든 평범한 얼굴. 바바라였다.
"후아! 죄송해요! 어떻게든 봐 두고 싶어서..."
그는 자신의 무례를 사죄하고서 라드가 있는 방향으로 힘들게 고개를 꺾었다. 라드는 그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바라보고 있었다.
"와! 진짜다! 라드씨, 반갑습니다! 바바라라고 합니다!"
"...네가 '명안'이라고?"
라드는 웃으며 그렇게 질문했다. 무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가 소문을 듣고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던 '명안'의 몽타주와는 너무 다른 인상이었다.
"네! 에테롬씨의 신규 부대에 자원해서 들어왔습니다!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는 힘들게 머리를 다시 창 틈새에서 빼낸 뒤, 팔을 빼내며 어깨까지 창 밖으로 꺼내 라드를 향해 내밀었다.
"악...수 한번만 부탁드립니다!"
"...좋지. 잘 부탁한다고."
라드는 가볍게 웃으며 그 손을 붙잡고 흔들어 줬다.
"앞으로 자주 뵐 수도 있으니까 미리 얼굴이라도 비추려고 했습니다!"
"그래, 그래. 뭐, 좋다고 생각해."
라드는 그렇게 대충 답하고 손을 내리며 마부를 돌아보았다.
"너무 오래 있으면 안되는 거 아닌가?"
"아! 네! 죄송합니다!"
마부는 불에 댄듯 몸을 털며 마차를 움직였다. 마을로 들어가는 마차들을 보며 라드는 담배를 물었다.
"...이거야 원, 바로 오늘 저녁에 다시 만날 텐데 굳이?"
그리고 선두 마차의 비좁은 창 밖으로 계속 팔을 흔들어 대고 있는 바바라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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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대장님, 방금 막 물자가 도착했습니다."
"어? 어어. 잠깐 기다려."
기욤은 그렇게 말하며 대충 책상위에 있던 것을 밀어서 치운 뒤 마시던 차를 들어 올렸다.
"응. 들어와."
"네."
텐트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칼린이었다. 기욤은 마시던 차가 목에 걸려 그대로 뱉어냈다. 제대로 사레에 들려 몇 번이나 재채기를 반복하던 그녀는 눈물을 닦아내며 칼린을 돌아보았다.
"카, 칼린님? 무슨 일이신지?"
"네? 방금 물자가 도착했다고..."
"몰라 뵈었습니다! 죽이십쇼!"
기욤은 그대로 들고 있던 잔을 내리고 원산폭격자세를 만들었다. 칼린도 당황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 아니, 왜 그러세요! 일어나세요!"
"아닙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배, 백인대장님이 지위계급상 더 상관 아니신가요?"
얼떨결에 물어본 질문에 기욤은 팔을 짚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아, 그런가! 모르실 수도 있으시겠네요. 부대원 분들이 정규 군인 출신은 아니시니까..."
그녀는 잠깐 머리를 긁으며 생각하다가 짧게 설명하기로 했다.
"음... 혹시 다른 착각하시는 분이 생기실 수도 있으니 전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소금부대는 왕명에 직접 관여된 특수설립부대라서... 부대원 한 분 한 분이 각자 기사급의 지위를 가지고 계신 겁니다."
"...기사 급이요?"
"네. 그러니까... 제 직속 부대원으로 계신 게 아니라면 상호 존대를 사용하거나 모시는 분에 따라 하대도 가능한 사병의 위치라는 거죠."
칼린은 기사의 작위가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기에, 여기서는 일단 대충 상황을 넘기기로 정했다.
"아... 네. 확실하게 전해 드릴게요. 그런데 그것보다도 지금 물자가 도착했는데..."
"네! 지금 나가겠습니다! 잠시만 텐트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쇼! 밖에 추울 텐데!"
"네? 아뇨, 저도 같이..."
"아닙니다! 거기 계세요!"
그녀는 허둥지둥 갑옷을 걸쳐 입고서 텐트 문을 열었다. 잠시 뒤, 텐트의 밖에서 그녀가 소리치는 것이 어렴풋이 들렸다. 그 소리가 멈추고 곧 텐트의 문이 다시 열렸다.
"칼린님! 이제 나오시면 됩니다!"
"아, 네..."
얼떨떨하게 텐트 밖으로 나오니 주둔부대원들이 물자 운송원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곧 기욤도 칼린을 두고 그들 사이로 섞여 들어 갔다.
"얼라리, 지난번에 왔을 때 랑 인원이 싹 달라졌네?"
기욤은 그렇게 말하며 인부 하나를 붙잡았다.
"어이, 전임자들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었슴까?"
"네? 무슨 문제요?"
"뭔 문제가 없으면 왜 일주일만에 인원이 싹 갈아졌습니까?"
"...그야, 교대 근무제니까요."
"이상하네. 계속 똑같은 사람들이 왔었단 말이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붙잡고 있던 기욤을 향해 부하 하나가 다가왔다.
"대장! 그냥 보내요!"
"왜, 이건 물어봐 둬야 될 것 같은데."
"라드씨가 확인하신 분 들이예요!"
기욤은 그 말에 잡고 있던 인부를 노려보았다. 그 인부는 조금 당황한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저기... 다시 일하러 가도 되는 겁니까?"
"...죄송하게 됐슴다. 수고하십쇼."
그녀는 주먹을 풀고 인부를 돌려보냈다. 물자들은 각자의 구역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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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말은 다 알아들으면서 왜 이해를 못 하는 거야! 여기서 숫자가 같은 카드면 버릴 수 있는 거라니까?"
"하, 하지만... 색이 다르잖소."
"달라도 상관없는 거라고! 릴로도 이해한 걸 왜 이해 못 해!"
"그럼 대체 왜 색을 다르게 만든 거요?"
"이곳 저곳에 가져다 갖고 놀라고 그런다! 게임 하나 배우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면 다른 게임은 하지도 못하겠지만!"
륑게, 릴로, 소니아, 푸르투가가 넷이 둘러앉아 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카드게임을 하고 있는 장소는 푸르투가의 집 안이었다.
'...설마 내 집을 먼저 파악해 두려 할 줄은 몰랐는데.'
푸르투가는 식은땀을 흘리며 테이블 근처의 양탄자 쪽을 내려다보았다. 양탄자 아래에는 지하통로로 이어지는 문이 있다. 끝 쪽이 살짝 말려 올라가 있어 관심을 끌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불찰이다.'
그들이 몰려올 줄 예상했었다면 조금 더 만전을 기울였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그 어떤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아침에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나가보니 그들이 서있었다.
"야! 집중해!"
"...굳이 다른 사람을 껴서 해야겠어? 우리 셋이서만 해도..."
"안돼! 이건 4명이서 해야 재밌다고!"
륑게는 테이블을 내려치며 릴로의 말을 끊어냈다.
"갤러한은 저기 반숙 요구사항대로 인원선별을 다시 하는 중이니까. 한 명이 부족하단 말야."
"그거 말인데... 이럴 시간에 갤러한을 도우러 가야 되지 않을까?"
"됐어. 내기에서 져서 혼자 일하는 건데 뭐. 그런 거 도우면 버릇 나빠진다?"
륑게는 즐거운 듯 웃으며 카드를 더 떨궈냈다.
"반숙, 네 차례다... 어이쿠."
테이블 아래로 카드 한 장이 떨어졌다. 푸르투가는 반사적으로 그 카드가 떨어지는 위치를 향해 시선을 움직였다. 카드는 몇 번 팔랑이다가, 곧 양탄자 아주 근처로 미끄러지듯 안착했다.
카드를 줍기 위해 몸을 기울이면, 살짝 들려진 양탄자 아래로 문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이었다.
더 생각할 틈조차 없었다. 그는 누가 봐도 이질적으로 보일만한 행동을 선택했다. 테이블을 세게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모인다. 경계의 눈, 그는 잠깐 그 시선들을 감당하며 흐르는 땀이 턱을 타고 떨어지기 전에 마르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마치 대형 동물 앞인 것 마냥 느리게 몸을 숙이며 카드를 향해 몸을 굽혔다. 저들이 보였던 반응, 영웅이라는 칭호가 허풍이나 운으로 생긴 것은 아니었다.
마침내, 마른 입속에서 무심코 목까지 울려가며 침을 삼키고 있을 때였다. 테이블 아래에서 륑게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푸르투가도 카드를 붙잡고 숨을 바로 고쳤다. 그는 천천히 카드를 잡은 손을 들어올리고, 반대손으로 잡고 있던 포크를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숨죽여 그들의 다음 움직임을 기다렸다.
"야, 이새끼 이거 패봐라! 다 이겨 놓고 가만히 있던 거네?"
그러나 들려온 것은 륑게의 놀란 듯한 목소리였다. 푸르투가는 서둘러 포크를 다시 제대로 쥐고 카드를 집어 올렸다.
"새끼, 다 이긴 패 쥐고 내가 카드 줍다가 판 망칠까 봐 쫄렸구나! 이거 태생이 물건인데?"
륑게는 웃으며 그의 패를 받아갔다. 모두의 패를 받아간 뒤 륑게는 가만히 푸르투가를 쳐다보았다.
"룰 이해 못한 척하더니, 내숭이었구만! 좋다 이거야!"
푸르투가는 조용히 그런 륑게를 보다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조용히 자신이 주운 카드를 건냈다.
"... 슬슬 노동시간이라서. 꽤 즐거운 오락이었소."
그는 그렇게 말하고 손에서 난 땀을 팔 소매로 닦아냈다. 그리고 문 밖을 나서며 자연스럽게 양탄자를 발로 밀어내며 평평하게 만들었다.
"어, 그래. 안내해라."
"...안내?"
뒤에서 들려온 륑게의 말에 푸르투가는 다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륑게는 담배를 꺼내며 그를 향해 히죽 웃어 보였다.
"어제 뭘 들은 거야. 우리가 너네 감시관이라고. 당연히 따라가지, 안 그래?"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손가락으로 집은 담배를 반 바퀴 돌려 푸르투가를 향해 건냈다.
"대신, 내기에서 졌으니 오늘 하루 담배는 빠방하게 다 대 드리지."
푸르투가는 경직된 얼굴로 담배를 받아 쥐었다. 눈 앞의 껄렁한 삼인방의 속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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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은 가만히 국경선 근처 전망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정찰에 진지해질 필요는 없었다. 빅센마르크는 지금 어딘가에 위협을 가하거나 지원을 할 정도의 여유가 없다.
그는 전망대에서 여유롭게 휘파람을 불며 주머니에서 고아원 동생들의 사진을 꺼냈다. 가만히 한 순간의 평온을 즐기고 있던 그를 향해, 전망대 아래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wjsakdeoeh wowhflq godiehldy! rjrltj sofudhtpdy!"
"네?"
핀은 그 질문에 윌레인어로 답했다가, 곧 그자에게 말을 멈추라는 제스처를 보내고 전망대에서 내려갔다. 그를 부른 것은 한무리의 징용된 칼타코 주민들이었다.
"dksl, durleh worhdtkfmf godiehltj sofudhtlrlaks gkaus ehoTdjdy."
"네? 저기, 그... 통역병은 안 계시나요?"
핀은 그들의 말에 횡설수설하며 질문했으나, 저쪽에서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리도 없다. 바디랭귀지를 사용하기에도 애매했다. 생체 정보나 장비 내구 따위면 모를까, 사람을 구분해 내거나 세세한 동작을 읽어내는 것은 핀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핀이 계속 횡설수설하자 주민들은 그를 지나쳐 가려고 시도하기 시작했다. 핀은 영문도 모른 채로 그 주민들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어어! 잠깐만요! 통역병! xhddurqud!"
그가 아는 빅센마르크어는 단 세 개. 인삿말, 감사인사, 통역병으로 세 개 뿐이었다. 그가 비명처럼 통역병을 빅센마르크어로 외칠 때였다.
"거기도 재공사 해야 되니까 비켜 달랍니다."
통밀이 긁히는 듯한 거친 목소리. 하지만 확실한 여성의 그것이었다. 자신이 막고 있던 영주민들의 목소리까지 잦아드는 것을 느끼며 핀은 조심스레 질문했다.
"호... 혹시 통역병이신가요?"
그의 말이 의문문으로 끝난 것은, 그녀의 윌레인 억양 때문이었다. 어떤 특색도 느껴지지 않는 교과서적인 억양이었다.
"미안, 통역병은 아니에요."
그녀는 천천히 다가가 핀의 앞에 섰다.
"세라에요. 통역병 매번 데리고 다니는 것도 힘들 텐데, 좀 도와 드릴 게요."
핀은 가만히 그녀를 느껴본다. 악수를 청하지도 않고, 자신을 건드리지도 않았다. 기본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진 자신을 배려해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럼, 잘 좀 부탁드릴 게요."
핀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뻗어진 손을 맞잡았다. 서로 참 거친 손을 하고 있었다.
"그럼 일단 여기서 조금 벗어나시죠. 재공사 해야 된다니까..."
"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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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노프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20시 23분. 생각보다 상회측 내통자가 늦게 온다. 뒤에 서 있던 마키도가 허리를 숙여 이바노프에게 말했다.
"...교단측 추가병력이 오늘 도착했었습니다. 문제없이 들어왔어요. 걱정 마세요."
"하지만 그럼 왜 이렇게 늦는 겁니까..."
이바노프의 신음같은 말에 마키도도 뚜렷한 대답은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곧, 어두운 복도 너머로 발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다. 어둠을 해치며 나온 것은 병졸 두 명과 무난한 단색 정장을 입고 있는 앳된 얼굴의 남성이었다.
"이야, 면목이 없네요! 늦어져서 죄송해요, 저쪽 부대원들 견제가 생각보다 심했어서 말이죠."
"소금부대는 18시 해산일 텐데?"
"중간지점 담당 대표님께서 의심받고 있는 것 같다고 하셔서 말이죠."
"푸르투가 말인가?"
"네네."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한번 더 머리를 조아리고서는 맞은 편의 의자에 앉았다.
"아무튼, 주의에 주의를 거듭하며 이렇게 왔습니다만,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요. 푸르투가 그 친구 말이라면 이해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비어 있는 자리를 향해 눈을 돌렸다. 확실히 그렇다면 소금부대 안에 있는 내통자로서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바바라라고 해요! 친구들은 절 바비라고 부릅니다!"
그는 상쾌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렇게 말하고 서는 뒤에 자신을 따라오던 병졸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병졸들이 가지고 온 나무 박스를 그의 옆쪽으로 내려 놓았다.
"...칼타코 독립군 대장 이바노프라고 하오. 다른 자들도 이미 만나고 온 겁니까?"
"확실히 푸르투가 씨하고... 세라 씨였죠. 두분 다 얼굴은 비추고 왔습니다!"
그는 가볍게 웃고 몸을 기울였다.
"그럼 라드씨가 오기 전에 먼저 황녀님을 조금 뵐 수 있을까요?"
겸손한 태도에 비해 꽤 단도직입적인 부탁이다. 이바노프는 먼저 그를 향해 잔을 넘겼다.
"이건?"
"한잔 하면서 대화하지."
"아, 업무 중에 술은 조금..."
"싫은가?"
바바라는 그 빈 잔을 난처하게 바라보다가 곧 순응하고 잔을 잡았다. 그의 잔에 투명한 증류주가 차 올랐다.
"이야, 곤란하네요... 술은 정말 약한데."
"미안하오. 전통같은 거거든."
이바노프는 그렇게 말하고 증류주의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또 미안하오. 아직 황녀님을 보여줄 수는 없어."
바바라는 잠깐 잔을 쥔 손을 멈췄다. 조금 고민하다가, 그는 그 술을 받아 마시고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이해합니다. 믿기 힘드시겠죠. 하지만 뭐, 이렇게 교단인력을 제외하고 상회와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를 신뢰하고 계신다는 거겠죠."
그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빅센마르크의 증류주는 도수가 강하다.
"에테롬씨는 교단을 그렇게 신뢰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시대를 바꾸는 것은 뭔가를 향한 신념보다는... 큰 흐름이나 발견에 의해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 하시거든요. 아, 물론 신념 없이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겠지만요!"
올라온 취기를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박스를 상 위로 끌어올리는 그를 보면서, 이바노프는 조용히 자신의 술을 마셨다.
'상회가 교단을 견제하려던 것은 사실이었나.'
그는 약간 시선을 들어 자신의 뒤에 서있는 마키도를 올려보았다. 마키도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래서! 이게 에테롬씨가 보내주신 '발견'입니다! 병력은 조금 보냈지만, 이 무기는 칼타코 독립군 전원에게 나눠줘도 부족하지 않을 걸요?"
바바라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비틀거리며 박스의 뚜껑을 올렸다. 곧 내용물이 드러났다. 이바노프와 마키도 둘 다 고개를 숙여 내용물을 확인했다.
"이건..."
이바노프가 그걸 들어서 여기저기 살펴보기 시작했다. 쇠뇌 같기도 하고 지팡이 같기도 한 묘한 형태를 한 물건이었다.
"그건 총(銃)이라는 거요. 동방에서 들여온 것에 개량을 거친 무기지."
제 삼자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멀리서 걸어오며 말한 것은 라드였다.
"설마 그걸 이렇게 대량생산해서 가져올 줄은 몰랐는데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