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여진(餘震)
"하, 하이고! 반갑습니다! 먼 길 오셨을 텐데 안드- 앉으세요!"
기욤은 텐트 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소금부대를 반겼다. 조금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는 그들을 두고 그녀는 상기된 얼굴로 음식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이씨, 이거, 지금 짬 밖에 없네, 죄송합니다! 편하게 계세요, 편하게! 집이다, 생각하시고!"
"아니, 그건 좀..."
"아! 내 정신 좀 봐! 죄송합니다! 곧 방석 가져 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아니, 일단 조금 진정을..."
부대원들이 이렇게 곤란해 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었다. 계급상으로는 기욤이 그들의 상관이었기 때문이다. 구호부대의 특수성 때문에 부각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존대말을 써야 하는 쪽은 소금부대였다.
"대장! 까리한 마차 하나 와 있던데 밥차 아니면 소금부대 일 것 같스..."
타이밍 좋게 병사 하나가 텐트의 문을 열어 재꼈다가, 안의 상황을 보고 얼어붙었다. 그 병사는 잠깐 그 자세로 가만히 있다가 뒷걸음질치며 텐트를 벗어났다. 조용해진 텐트가 다시 열리며 방금 그 병사가 다시 들어왔다.
"대장님! 왕실 직속 산하 전후 복구 부대 소금부대가 방금 도착한 것 같습니다!"
"어? 어어어! 부관! 소금부대원들은 지금 여기 계시다! 인사 드리게!"
"이런! 여기 계셨습니까! 확인이 늦어져 죄송합니다! 먼 길 수고 많으셨습니다!"
"븝, 브브부, 부관! 따뜻한 물을 가져오게!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는데, ㅊ,차라도 대접 해야지!"
"말씀대로십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처음 들어왔을 때에 비해 상당히 각 잡힌 모습으로, 그 병사는 텐트를 나섰다. 소금부대원들은 얼굴이 하얗게 바래진 기욤을 바라보았다.
"처, 처음부터 다시 해도 괜찮을까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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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동경하던 영웅분들을 직접 보니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서..."
그렇게 말하며 기욤은 고개를 숙였다. 갤러한이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이야, 그렇게 말해주면 조금 간지럽네요. 이거 괜히 굴러온 돌이라서 미운털 박힐 줄 알았더니..."
"천만에요. 지금 소금부대는 윌레인의 상징이나 다름없는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한번 심호흡을 했다.
"아무튼, 특무 백인대 대장 기욤 패트리샤입니다. 앞으로 윌레인의 신임 대사가 이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같이 힘내죠."
"잘 부탁드립니다. 든든하네요."
간단히 인사를 마친 그들은 곧바로 계획안건에 착수했다. 기욤은 미리 준비해 뒀던 계획서를 꺼내 들었다.
"그, 본의는 아니지만 이번에는 제 명령에 따라 주셔야 합니다. 괜찮을 까요...?"
"네네. 우리 상관이신데 당연하죠."
일일히 반응하기도 힘든 듯, 소니아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기욤은 그 반응에 기쁜 듯 웃으며 준비한 계획서를 나눠 주었다.
"그... 칼타코는 숲과 호수밖에 없는 곳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거주구도 상당히 큰 편이에요. 주민수에 비해 상당한 크기죠. 도시에 비할 정도는 못되지만, 아무튼 구역 분할을 하지 않으면 관리가 힘들 거예요. 그러니까 미리 어떻게 인원을 분배 하실지 생각해 주세요."
"몇 분할로 하면 됩니까?"
"음... 그러니까..."
그녀의 눈이 허공을 헤엄치자, 그 뒤에 있던 부관이 아래쪽으로 손을 내리고 손가락을 펴 보였다.
"아, 3분할로 하시면 되요.."
"정확한 수치로군. 뭔가 따로 기준이 있는거요?"
"아, 영지양도 체결조약이 세번에 걸쳐져서 이뤄졌거든요. 딱 3분할로 땅이 추가되어서, 그걸 기준으로 영지를 나눴단 말이죠."
그녀는 지도를 꺼내 보여줬다.
"각 구역마다 우리 주둔지도 있어요. 여기, 빅센마르크 접경지부, 윌레인 접경지부, 가운데 부분으로 삼분할이예요."
"오, 진짜 지도에도 노란 선으로 표시가 돼있네?"
"네. 언젠가 트집 잡힐 일까지 대비해서 분할표시를 놓은 거죠. 뭐, 이곳이 다시 안정화만 된다면 없어질 선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짧게 설명을 덧붙이고서 지도를 접었다.
"뭐, 자세한 계획은 이곳을 둘러보면서 짜시는 게 좋으시겠죠. 숙박은 신설된 대사관에서 하시면 돼요."
"뭐야, 대사관이고 뭐고 다 무너져서 부른 거 아니었어?"
"이미 다 복구 시켰죠. 전화국도 있으니 마음껏 보고하시면 돼요."
기욤은 가슴을 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 우리만 대사관에서 자고 주둔병사들을 바깥 텐트에서 재우는 건 조금 미안한데..."
"아뇨 아뇨, 당연한 겁니다. 모두 거기에 불만은 없어요! 부관! 불만 있나?"
"절대 전혀 없습니다! 이리하씨 진짜 팬입니다!"
"그렇다네요! 걱정 마세요! 군 관련 거주지구가 완성되면 우리도 거기에서 숙박하게 될 겁니다."
다시 소란스럽게 돌아오는 답변. 부대원 모두 새삼스레 자신들의 위치를 재 측정할 수 있었다. 전원 적당히 상황에 납득할 때였다.
"...우리가 받은 임무 중에서는 반동분자의 색출도 있었습니다."
이 도시에 들어온 이후부터 쭉 조용하던 도르베가 입을 열었다.
"먼저 이 곳에 머물면서 의심되는 것을 발견한 적은 없으십니까?"
살얼음이 진 듯한 그 말투에 부대원들이 조금 침착해졌다. 기욤도 천천히 입을 다물며 도르베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도르베씨..."
도르베는 태도를 바꾸지 않고 그녀를 바라 보았다. 마침내 도르베의 앞까지 다가온 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싸인 좀..."
"네?"
"그, 싸인을 좀..."
아무리 도르베라도 조금 당황했기에, 그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대답했다.
"아, 아니, 그... 진짜 팬입니다, 저... 최전방 선발부대 출신이셨잖습니까, 덕분에 잘 싸울 수 있었습니다."
"아, 그... 고맙긴 하지만, 지금은 좀..."
도르베는 조금 더 거리를 벌리고 그녀가 내민 종이를 받았다.
"그, 질문하신 거에 대해서는... 뭔가 조짐이 있긴 합니다만, 이렇게 병력이 모여 있을 때 무슨 수를 쓰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딱히 모임같은 걸 잡아낸 적도 없었고, 노동도 순조롭게 진행된 걸 보면..."
도르베의 싸인하는 손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그녀는 흘리듯 말했다.
"그... 아무튼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활동이 없으니 색출해 내는 것이 힘들단 말이죠. 부디 같이 파악해 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도르베의 싸인지를 받고서 그녀는 그것을 소중하게 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밝게 웃었다.
"일단 직접 보셔야죠! 마을 대표부터 만나러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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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엑, 이 포션이라는 건 맛있게 만들 수는 없는 거야?"
"...미안하다. 그래도 그것도 엄청 비싼 거야."
"후... 원래 다 마시면 이렇게 어지러워?"
"한 순간이야. 마나 좀 방출해 내고 나면 다시 괜찮아 질 거야."
이바노프는 그렇게 소냐를 어르고 달랬다. 소냐는 그런 이바노프를 노려보다가, 바닥에 남아 있던 포션까지 싹 들이 마시고서 입가를 닦았다.
"총 몇명 봐야 된다고? 9명?"
"10명이야. 진짜 중요한 일이 될 테니까 부족할 것 같으면 포션 한 병 더 마셔."
"아아, 무리야. 더는 못 마셔. 10명정도면 이정도로 충분해."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는 소냐를 보며, 이바노프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미안하다."
"...뭐야, 갑자기 그러지 마. 다 그러기로 했던 일 이잖아?"
그녀는 웃으며 이바노프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냥 상황이나 잘 만들어줘. 잘 부탁해, 아빠."
"...그래. 금방 올 텐데 나로 연습이라도 해 볼래?"
"무슨 연습까지-"
그녀의 말이 끝날 때 즈음에, 아래층에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자."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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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갑니다."
문 뒤로 들려오는 굵은 목소리. 곧 문이 열리고, 곰같은 덩치의 사나이가 한 명 나왔다. 수염이 덥수룩한 강해 보이는 남자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할 수 있는 윌레인어는 전부 꺼내면서 대화해라. 내가 전에 말한 영웅님들이 오셨다."
기욤은 자랑하듯 팔을 벌리며 뒤에 서있던 자들을 소개했다. 소금부대원들이 일렬로 서있었다.
"이쪽이 칼타코의 현제 대표, 올가 이바노프입니다."
기욤이 손가락으로 그 거한을 가리키며 말했다. 거한은 잠깐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이바노프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반갑습니다."
갤러한이 손을 뻗어 내밀었다. 그러자 거한의 뒤에서 사람이 한 명 더 튀어나왔다.
"누구야?"
아직 앳된기가 다 빠지지 않은 금발의 여자아이였다. 보기 드문 정도의 순도 높은 금발에 머리색과 같은 금안. 인형같은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말괄량이라는 느낌을 벗길 수 없는 인상이었다.
"인사 드려라, 소냐. 손님이다."
"아! 반가워요! 소냐 이바노프에요!"
그녀는 새가 지저귀는 듯 말했다. 여기저기 톡톡 튀는 음정으로 자기소개를 마친 그녀는 갤러한이 애매하게 뻗고 있던 손을 잡고 붕붕 흔들어 댔다.
"아, 그래... 반갑다...난 갤러한..?"
갤러한이 서툰 빅센마르크어로 대답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그녀는 다음 사람의 손을 잡아 끌었다. 릴로였다.
"언니 반가워! 소냐야!"
"응? 나도?"
밝게 웃으며 한 명 한 명 악수를 청하던 그녀는 어느새 도르베의 앞까지 왔다.
"오빠 반가워! 소냐-"
"손 치워라, 유충같은 년아."
뚜렷한 빅센마르크어. 한순간 풀리던 분위기가 다시 얼어붙었다. 도르베는 그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소냐는 어색하게 손을 들고 있다가, 곧 다시 표정을 고치고 다음 타겟을 보았다. 다른 동료들과 조금 떨어져 있는 둘. 이리하와 칼린이었다.
"반가워! 난 소냐!"
"...반갑다. 이리하야."
이리하는 담백하게 그 손을 붙잡았다. 소냐는 잠깐 동작을 멈췄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한 표정이었다. 올가 이바노프가 한 번 헛기침을 할 때까지 그 손을 붙잡고 있던 그녀는 황급하게 손을 뗐다.
"미안! 그, 손이 부드러워서..."
적당히 말하고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칼린을 바라보았다. 가면을 쓴 장신의 남자. 이제 와서 더 확인할 것도 없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의심받지 않기 위해 굳이 한번 더 손을 내밀었다. 사실 생긴 것으로만 봐서는 그가 제일 '확인'이 필요할 것 같기도 했다.
"난 소냐야! 반가워!"
칼린은 한순간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곧 그의 예의를 전부 다하며, 앞서 동료들이 했던 말을 베끼듯 따라하며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난 칼린이야."
"응! 칼린, 만나서 반가ㅇ-"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잡았다. 그러나 다른 모두처럼, 잡은 그 손을 흔들지 않았다. 소냐는 손을 붙잡고 마치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굳어버렸다.
"...소냐?"
올가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 소냐를 불러보았지만,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점점 몸을 떨기 시작했다.
"...왜 그러시는..."
칼린은 눈앞의 소녀를 보았다. 점점 안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그녀는 곧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또 잠시 후, 마침내 몸을 덜덜 떨며 거품까지 물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거!"
"소냐! 손 떼!"
올가는 그대로 소냐에게 달려들어 잡고 있던 손을 억지로 떼어 냈다. 그리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의 양 팔을 붙잡고 끌어냈다.
"무슨 짓을 한거냐, 너!"
"아무것도 안 했어요!"
"진정하세요 릴로씨!"
급변한 분위기 속에서, 올가가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냥!"
그는 소냐를 들쳐 매고 자신에게 모인 시선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몸이 약한 딸입니다. 무리했나 봅니다. 가끔 이렇게 발작을 일으킵니다. 죄송합니다."
"...이 씨팔, 딸 간수 제대로 하라고, 깜짝 놀랐잖아..."
기욤이 으르렁대듯 말했다. 올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들으셨죠? 칼린님 잘못이 아닙니다. 그냥 원래 저러는 애래요."
"하지만..."
"신경쓰실 것 없습니다. 저 짝이 괜찮다는데..."
기욤이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상황은 종결되었다. 애매해진 분위기 속에서, 이바노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딸을 진정시키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부디 내일 다시..."
"아, 네네. 문제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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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은 같이 마을 안내를 해 주던 도중 부대로 급하게 복귀했다. 상당히 분한 얼굴이었다. 마을을 한바퀴 돌고 난 소금부대원은 대사관에 도착했다.
"음... 확실히 10명이서 한꺼번에 움직이기에는 너무 넓은 곳이기는 하네."
"그래도 뭔가, 구역이 딱딱 나눠져 있는 건 편한 것 같아. 가장 우선시될 건 윌레인 접경지역이네."
윌레인 접경지. 전화국과 신설된 대사관이 있는 장소.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되는 곳이었다.
"...이리하."
"왜?"
칼린이 이리하의 소매를 당기며 그녀를 불렀다.
"왜 대사관이 있는 거예요?"
잔뜩 위축되어서 질문 하나에도 이렇게 소극적이 되어버린 그를, 이리하는 조금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상황은 그녀에게 좋아진 것이었지만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윌레인의 영토인데 왜 대사관이 있냐, 그거지?"
"네."
"간단해. 아직 영토 협의는 끝나지 않았거든."
그녀는 신설된 대사관의 내부를 살펴보았다. 급조된 것 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건물이다.
"4차 협의를 앞두고 구(舊) 대사관이 무너진 거야. 그래서 상황이 더 위급했던 거고... 뭐, 이번 협의까지 잘 풀리고 나면 이 대사관을 유지할 수도 있겠지. 그때부터는 완전한 우호국이 될 테니까 말야."
"아, 그러면 빅센마르크의 대사분들도 이쪽으로 올 수도 있는 건가요?"
"올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올 거야. 죽은 건 윌레인의 대사 뿐이었으니까 원래 예정대로 찾아오겠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칼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왜그러세요?"
"그냥..."
그런 둘을 두고 갤러한은 잠깐 생각하다가 곧 자신이 나눈 인원에 대해 설명했다.
"야, 그러면... 빅센마르크 접견지역을 A구역, 중간지점을 B구역, 윌레인 접견지역을 C구역이라고 치고... 인원 배분은 이렇게 하자고. A구역에는 도르베, 아스타, 핀 세명. B구역에는 나를 포함한 팀 원생텀 전원. C구역에는 칼린이랑 라드, 이리하가 간다. 어때?"
"잠깐. 내가 왜 접견지냐?"
날선 목소리로 따지는 도르베를 향해 갤러한이 설명했다.
"그야, 여기서 너가 빅센마르크어를 제일 잘하니까. 핀은 지속적으로 섬세하게 그 짝 감시를 할 수 있을 거고. 혹시 지금 자리 배치에 불만 있는 사람?"
꽤 합당하게 들리는 갤러한의 말에 도르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음으로 손을 든 것은 칼린이었다.
"제가 가장 중요한 곳을 맡아도 되는 건가요?"
"뭐 씨발, 능력 좋던데 눈에서 레이저라도 쏘면서 지켜내 보던가."
강하게 반발심을 드러내는 아스타의 말을 멈추고 갤러한은 칼린에게 다가갔다.
"...영주님한테 바로 바로 보고해야 될 거 아냐? 전화국 근처에 계셔야지. 끄나풀이신데..."
칼린은 아무 대답 없이 가만히 서있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 이후로는 계속 이런 식이었다. 이제는 그도 그가 받는 대우에 슬슬 익숙해지고 있었다.
"...이리하는 전력이 되니까 그 자리에 넣었고, 라드 너는 뭐... 솔직히 땜빵용이야. 잘 할 수 있지?"
"어이쿠, 기대해 주시면 부응해 드려야지."
"나 포함 팀 원생텀이 중앙을 맡는 것은, 건설지구를 만들 주민들과 유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야. 우리는 일단 뭐, 빅센마르크에 딱히 적의가 없으니까.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꽤 괜찮은 사이로 있을 수 있다, 이거지. 내일부터는 각자 9시부터 18시까지 맡은 구역에 있는 걸로. 그럼."
갤러한은 짐을 내려 놓았다.
"일단 오늘은 쉬자. 짐 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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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냐는 천천히 눈을 떴다. 벌어지는 틈새로 보이는 것은 걱정되는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바노프였다. 소냐가 눈뜬 것을 확인하고 이바노프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17시였다.
"...소냐, 괜찮아?"
"...고지식하긴, 철저하게 따지는 구나. 좋다고 생각해."
소냐는 그렇게 말하고서 몸을 일으켰다. 이바노프가 조심스럽게 그걸 도와줬다.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마나가 부족 했어?"
"아냐, 그런 게 아니었어. 그냥..."
그녀는 잠깐 머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
"그냥, 놀랐던 거야."
"...왜? 결과가 어땠길래?"
소냐의 마법. 정신감응. '악수’라는 행동으로 접촉한 상대의 정신, 감정 따위를 한순간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했어. 어디에 적어 둬. 일단 회색인물은 다섯. 딱히 적대심은 없거나 크지 않지만, 상황만 오면 망설임없이 우릴 죽일 수 있는 위치."
"...그리고."
"우리에게 우호적인 건 한 명. 그... 핀? 이었던가, 그 맹인은 우리한테 우호적이야."
"우호적이라는 건 아군으로서?"
"아니, 아니... 그냥 사람한테 우호적인 느낌으로? 아군은 다른 사람인데... 이게 이상해. 분명 아군이 한명이라고 했었지?"
"그래. 상회 쪽 내통자로 한명이야."
"그런데... 두 명이었어. 그, 불가해주자랑 라드라는 사람으로."
"두 명이었다고?"
"응. 확실히 둘이었어. 어느 쪽이 상회에서 온 사람이야?"
이바노프는 잠깐 고민해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상하군. 분명 상회에서는 한명이라고 했었어. 상회측 내통자는 곧 우리와 만나게 될 테니 그 때 확인해 봐야겠군..."
"...뭐, 그래. 그 파란머리는 알아볼 것도 없이 적대였지."
"그러면 그 가면 쓴 자는?"
이바노프는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소냐는 아무 말없이 그 때를 다시 회상해 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더 흘러나왔다.
"...소냐?"
"모르겠어."
"뭐?"
"진짜로. 너무... 너무 끔찍한 경험이었어. 그 사람 정상이 아니야..."
그녀는 눈물을 닦아내고서 천천히 그 순간을 정리해보았다.
"아직도 조금 헷갈리지만... 처음에는 분명, 그래. 우호적이었어. 근데 뭔가 일그러진 듯한... 버티기 힘든 감정이었어. 항상 그런 감정을 끌어안고 다니는 사람이라니, 분명 정상이 아니야... 미쳤어, 그 사람."
그 감각을 다시 떠올리려 하자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바노프는 준비한 차를 그녀에게 건내주며 물었다.
"그럼 그것 때문에...?"
그것 때문에 기절까지 한거냐, 라는 질문이었다. 소냐는 차를 들이키고 다시 숨을 다잡은 후 입을 열었다.
"...아냐. 그것 때문이 아냐. 진짜 이상한 건 그 다음."
"그 다음?"
"그래. 그냥 미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점점 안이 시끄러워 지더니... 갑자기 엄청 빠르게 노이즈가 들려 왔었어."
"...지금까지 그런 경우가 있었어?"
"내가 듣는 건 생각하고 있는 것, 그런 거야. 노이즈가 들리는 일은 보통 없단 말야. 그런데... 집중해보니까 그게 노이즈가 아니었더라고. 엄청 빠르게 여러가지 생각들이 교차되고 있는 거였어."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질 정도의 정보량.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사고속도였다고. 근데, 그 느낌 같은게 완전히 달라서... 진짜 파악할 수가 없었어. 진짜로 조심해야 될 건 그 쪽일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