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8화 〉여진(餘震) (98/164)



〈 98화 〉여진(餘震)

백인대장 기욤 패트리샤는 짧게 깎은 머리를 긁고 있었다. 눈 앞에는 그의 병사가 병든 양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 진짜  오늘 그렇게 연락이 왔다고?"
당장 오후에 칼타코 영지에 가야 하는데, 병졸 하나가 부대 이동을 요청한 것이다. 이유를 들어보니, 아버지가 위독해 져서 근처 주둔 부대로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 어떻게 안되겠습니까?"
될 리가 없었다. 기욤은 눈가의 혈을 누르며 잠깐 눈을 감았다.


"야, 그게 내가 어쩔 수 없는 거 알잖아... 군법이 군법인데, 아무리 기사라도 그렇게 무작정 부대이동은 힘들어."
"...그렇습니까."
기욤도 딱히 눈앞의 부하에게 나쁜 마음을 먹고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정말로 어쩔 방도가 없었을 뿐이다. 확 풀이 죽은 부하를 보며, 그녀는 조금 곤란한 표정으로 생각해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 너도 일단 기사니까, 귀족중에 인맥은 없냐?"
"네? 그건 왜 물으십니까?"
"그, 일단 우리 중대에서만 벗어나면 어떻게든 탈출구는 생기거든. 아는 귀족 아무나 한테 연락해 보고, 일단 그쪽으로 빠져나가."
"? 그, 그건 허락해 주시는 겁니까?"
"난 상관없어. 너 하나 없다고  굴러갈 곳이 아니걸랑."
그녀는 웃으며 테이블 위로 늘어졌다.

"가, 감사합니다!"
"오냐. 대신 비밀이야. 이거 군 윗선한테 걸리면 일 커져."
그렇게 말하고서 그녀는 몸을 길게 뻗었다. 그리고 전화국으로 달려가는 부하를 보며 웃었다. 한숨 잠이나 자려고 할 때, 또 다른 병사가 들어왔다.

"아, 또 뭐야..."
"실례합니다, 대장님. 슬슬 출발하면 될  같습니다. 연락이 왔습니다."
"응? 그래?"
그녀는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몸을 일으키고 조금 생각하던 그녀는 다시 퍼질러 엎드렸다.

"아, 몰라. 두시간 있다 출발한다."
"...또 무슨 일이십니까."
"낮잠이나 한잠 자고 가려 한다, 임마. 출발했다고 보고해 둬."
그녀는 웃으며 눈을 감았다. 기사에게 두시간이면 충분히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수 있으리라. 보고를 한 병졸도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으며 등을 돌렸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녀가 칼타코에 철로가 깔리고 다시 대사관이 건축될 때까지 그곳에 주둔할 100인대의 대장이었다.


#

이바노프는 점심을 먹기 위해 푸줏간의 문을 잠깐 닫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푸줏간 건물의 2층이 그의 거주지였다. 계단을 올라 부엌으로 향하던 중, 그는 익숙한 기척을 느꼈다. 이번에는 다락 쪽이었다.


그는 다락방에서부터 빠르게 떨어져오는 기척을 향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도축 칼을 들어 올렸다.  다락방에서 누군가가 그를 향해 떨어져 내려왔다.

"히-얏!"
그렇게 우렁차게 소리 내며 떨어질 것이라면 왜 굳이 숨어있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이바노프는 그의 칼을 휘둘러 떨어져 내려온 자를 부드럽게 옆으로  날렸다. 벽에 박힌 사람을 보니, 목도를 들고 있는 금발의 앳된 여자아이였다.


"아... 잠깐,  맞았어..."
"소보- 아니, 소냐... 내가 그런 거 그만 하라 했지..."
이바노프는 털이 가득한 얼굴을 감싸며 골치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소냐라고 불린 여자아이는 그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일어났다.

"어땠어?  괜찮았지? 이번엔 내가 소리치기 전까지는 눈치 못 챘지?"
그녀는 머리색과 비슷할 정도의 찬란한 금빛 눈을 반짝이며 물어보았다. 긴 속눈썹과 뚜렷한 이목구비가 인형같은 아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말괄량이 기질이 눈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소리를 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 버릇을 고쳐. 그래서야 평생 사냥은 무리겠군."
"앵? 진짜  치사하다... 나이값을 못하네."
"지 애비에게 못하는 말이 없군."
이바노프는 웃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도 웃으며 손을 붙잡았다.


"자, 그럼 오늘은 이걸로 끝인 거다. 난 이제 밥 먹고 다시 일해야 돼. 배가 고파서 기절할 것 같아."
"아, 잠깐! 지금 부엌 가지마!"
"...뭐?"
크게 당황하며 자신을 막는 소냐를 보며, 이바노프는 뭔가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양팔을 벌리고 자신의 앞에 서있던 그녀를 손으로 밀어내고 부엌에 가보니, 강도라도 들어온 듯한 대참사가 벌어져 있었다.

"...변명해봐."
"...라솔니크(수프의 일종)를 만들려고 했었는데..."
"했었는데?"
"...쨘?"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부엌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접시를 가리켰다. 접시 안에는 누런 색을 띄고 있는 풀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이바노프는 난장판이 된 부엌을 바라보다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눈을 가렸다.

"맙소사. 점심은  먹겠군."
그는 그렇게 한탄했다.




1시간정도 가지는 점심시간은 그렇게 부엌 청소로 끝났다. 그가 다시 푸줏간으로 내려와 질긴 육포를 씹어 대며 고기를 썰고 있을 때였다. 마을 주민 하나가 다가왔다. 코비 도노반, 이바노프의 절친한 친구이자 맞은편 공방(工房)의 주인이었다.

"왜 그렇게 죽상이야?"
"소냐가 부엌을 날려 먹었어. 난 점심을 못 먹었고."
"하하, 어쩔 수 없는 아가씨 라니까."
그는 웃으며 카운터에 몸을 기댔다.

"뭐, 잡담하려고 온 건 아니니까 말야. 사실 꽤 급한일이 있어."
"뭔데?"
"윌레인의 병사들이 곧 도착할 꺼야."
이바노프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해체하던 고기를 두고 카운터로 다가갔다.


"예상보다 너무 빠르군."
"사실 좀 다르지. 이번에 오는 건 주둔 병사들이고, 전에 연락 온 건 구호병사... 느낌의 특수부대 느낌이거든.  쪽은 아직 오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린다더라고."
코비는 그렇게 말하고서 사탕수수를 꺼내 씹었다.

"어쩔까, 오늘도 저녁모임 가질꺼야?"
"...회의는 정상 진행한다. 변경사항은 없어. 교단에서 온 사람 중에 빅센마르크어를 못하는 사람은 있나?"
"나도 일일이 확인해보지는 않았는데."
"지금 바로 확인해 보고, 빅센마르크어를 못하는 사람은 일단 숨겨둬. 아마 주둔병력이 도착하면 바로 소집이 있을  같으니까."
그는 그렇게 전달하고 카운터에서 떨어져 다시 해체를 시작했다.


"빠르게. 느낌이 안 좋아."
"라져."

#


"이야, 딱 1시간정도만 이동했는데 어떻게 풍경이 이렇게 다르냐."
기욤은 그렇게 말하며 풍경을 보면서 탄식했다. 물론 그녀가 이곳을 처음 온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대대도 전쟁에 참가했던 부대였다. 전원이 최전방에서 싸우며 이 땅을 밟은 기억이 있다.


"볼때마다 신기하지 않냐?"
"대장님, 촐랑대지 좀 마십쇼."
"새끼 말하는 거봐."
그녀는 웃으며 그렇게 말한 부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상하관계로는 보이지 않는 친근함 이었다. 그들은 정규군보다는 용병단 같았다.


"그런데, 햐- 씨발, 황량하다. 얘네는 매일 심심해서 어떻게 사냐?"
"그래서 우리가 일자리 만들어주러  거 아닙니까?"
"아, 그거냐? 그런  같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마을에 발을 들였다. 칼타코 영지의 반은 거주지가 아닌 숲이었다.

"얼래, 길에 사람이 하나도 없네."
"거, 가운데 종이라도 울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저거? 너가 가서  울려봐라."
"애? 싫습니다. 무서운데..."
"새끼 받아주니까 기어오르네."
그녀가 웃으며 손을 들어 올리자, 그 말을 한 부하는 도망치듯 종 쪽으로 달려갔다. 몇 번 종을 울리자, 마치 쥐구멍에서 쥐떼가 나오듯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욤은 종 앞에 있는 단상의 위로 올라갔다.


"야, 그거, 그그그... 그거 좀 줘봐라."
"깔대기 말입니까?"
"그래, 그거."
부하가 그녀에게 붉은 확성기를 주었다. 기계장치가 없는, 단순한 원통형 확성기였다. 그녀는 그걸 잡고 말을 시작했다.

"아아, 자랑스러운 국민 여러분께. 전부 소집, 전부 소집."
하나 둘 씩 나오는 사람들을 보던 그녀는 어느 순간 사람이  모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이게 다야?"
"전 모르죠."
"아니,  넓은 땅덩이에 이게 다라고?"
작게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다시 앞을 돌아보았다.


"아... 그러면 영지 대표분은 나와주세요."
그 말에 이바노프가 앞으로 나왔다. 기욤은 그를 보고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그의 앞에 마주섰다.

"반갑습니다, 칼타코 주둔병력의 대장인 기욤 패트리샤입니다."
"...이바노프요. 반갑습니다."
그녀는 어색한 빅센마르크 억양으로 말했다. 이마저도  번을 반복하며 외워 둔 말이었다. 그리고 어눌한 발음에 비해 당당하게 악수를 권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화합을 위해서. 왠지 우리 끼리 잘 해낼  있을  같네요."
그녀는 외워 둔 말을 전부 뱉고 나서, 반응이 없는 그를 바라보다가 악수하던 손을 놓은 뒤, 다시 확성기를 들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미리 준비한 대본을 꺼내 펼쳤다. 묘하게 허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위대한 '윌레인'의 국민 여러분, 이 영지에 부흥사업을 시작할 겁니다. 대사관을 복귀시키고, 일부 편의시설들과 근대시설들이 도입될 겁니다. 철도도 깔릴 거구요. 여러분을 위한 일이니까, 여러분들이 부디 기쁜 마음으로 협조해 줬으면 합니다."
주민들이 웅성대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한번 숨을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17세 이상의 주민들은 전부 노동에 동원될 예정입니다. 어쩔  없는 사정이 있는 자는 저에게 사유와 함께 보고하시면 열외시켜 드립니다. 여러분의 기본 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해 확실한 업무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8시부터 16시까지만 일하시면 됩니다. 이 업무시간은 일일 업무분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연장될 수도 있습니다. 질문?"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확성기를 내려 놓았다. 주민들이 너도 나도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바노프가 그걸 진정시켰고, 결국 한 명씩 손을 들며 질문하기 시작했다.

"지어야 하는 시설들은 뭐죠?"
빅센마르크어 질문. 그녀는 서툰 빅센마르크어 실력으로 해석해낸 후 윌레인어로 대답했다.

"은행, 철로, 대사관, 전화국, 조금 더 질 높은 가정집 등을 만들 예정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데려온 통역병에게 눈길을 줬다. 통역병이 그 말을 번역해 대답하자, 영주민들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보수는 어떻게 받습니까?"
"하, 씨-발. 너네들 땅에 건물 세우는데 돈도 받게?"
그녀는 윌레인어로 작게 말하고 소리쳤다.

"월급 형태로 윌레인의 통화를 받게 될 겁니다. 액수는 성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불되며, 빠르면 3달 이내로 본 영지에서 빅센마르크 통화 사용을 중지시킬 예정입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여러분은 이미 윌레인의 국민입니다. 당연한 일이예요."
귀찮다는  대답하고서, 마지막 질문을 받겠다고 선언한 참에 손을 든 것은 이바노프였다.


"...말하십쇼."
이바노프는 자신을 노려보는 기욤을 똑같이 노려보는 걸로 받아 치며 입을 열었다.


"...댁들 말을 들으면 칼타코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것 같지는 않군. 하던 일도 멈추게 하고 화폐 단위도 바꿔 버리고, 강제 노동까지 시키겠다고?  모든 것을 덮을 만한 혜택이 있는거요?"
그는 윌레인어로 말했다. 기욤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고 그를 바라보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 사이에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오해?"
"그래. 오해. 상당히 큰 걸로."
그녀는 검 위에 끼워 둔 단봉을 꺼내 쥐었다. 그리고 그걸로 이바노프의 머리를 세게 후려 찍었다. 이바노프의 고개가 크게 꺾였다.


"우리가 평등한 관계라고 오해하고 있어."
영주민들의 웅성이던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기욤의 병사들이 전부 무기를 빼 들기 시작했다.

"몇 번 들어주니 끝도 없이 기어올라.  최전방에서 '진짜 윌레인'의 전사들이 얼마나 죽었는지는 기억도 안나나 보지? 마음 같아서는 여기 불이라도 지르고 싶단 말이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이바노프를 향해 단봉을 계속 휘둘렀다. 서서히 피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젠 빅센마르크에게도 버려진 너네 떨거지들이 아직도 거기 화폐를 계속 사용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했던 거냐? 너네 내부에서만 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버러지들, 그렇게 생각이 모자라니까 전쟁에서도 진 거다."
그녀의 뺨에는 피가 튀었고, 그녀의 병사들은 웃기 시작했다. 점점 습기를 띄는 타격음 사이에서도 이바노프는 작은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독한 새끼. 뭐, 그래.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이쯤에서 다들 이해했겠지. 토마스?"
"네!"
그녀는 통역병을 불렀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최대한 맛깔나게 통역해서 전달해. 알겠지?"
"물론입니다, 대장님!"
"좋아. 아직도 지들이 사람인 줄 아는 너네 버러지들에게 전한다. 위대한 윌레인의 국기 아래에, 우리에게는 즉결 처형권이 있다. 그리고, 너네 털 빠진 곰돌이들이 깝칠 경우 즉석해서 말복  개새끼 마냥 두들기는 권리도 있다."
그녀는 단봉을 들어 공중에서  번 흔들면서 피를 털어냈다.


"너네에게 자치권은 없다! 다 너네 좋으라고 하는 일이니까, 사람새끼 취급을 받고 싶다면 짐승새끼였던 흔적을 없애라. 또 질문하고 싶은 자식은 지금  옆에 뻗은 덩치 옆으로 와서 질문하면 된다."
그 누구도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기욤이 고개를 돌리고 뻗어 있는 이바노프를 내려다보았다.

"사실  놈이 깝쳐 주길 바랬어요. 본보기가 있는 쪽이 더 좋잖아. 좋은 일을 해 주신겁니다, 이바노프씨."
그녀는 짓뭉개진 마을대표의 위에 발을 얹고 말했다.


"이걸로 우리 둘 사이가  더 원활해질  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그녀는 한번 코웃음치고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대로 걸어가려다가, 눈치를 보고 있는 병사를 통해 잊었던 것을 떠올렸다.

"아, 잠깐잠깐, 하나만 더. 일주일쯤 후에 이곳에 부대가 하나 찾아올 건데, 그 분들에게는 우리한테처럼 무례하게 굴지 마십쇼. 윌레인의 영웅들이십니다. 영웅분들이 너거들 처럼 차가운 땅굴에서 자면 될까요? 안되겠죠? 여러분의 첫 일은 그분들이 오기 전까지 임시 대사관을 만들어 두는 겁니다."
휘둥그런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영주민들을 두고 그녀는 시계를 꺼냈다.

"2시간쯤 후면 여기로 물자들이 도착할거예요. 내일부터는 매일 16시마다 부대의 인솔자의 통제 아래에 직접 물자를 옮기게 될 거구요. 일단 오늘은 자유롭게 쉽시다! 해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숲 쪽을 향해 발을 옮겼다. 제대로 된 시설들이 만들어 지기 전까지 주둔군은 텐트생활을 해야했기에, 지금쯤엔 서둘러 캠프를 만들어 둬야 했다.


"아, 거 시원하게 잘 후들기십니다, 대장님!"
"그 덩치한테 의사라도 붙여줬어야 됐던  아닙니까?"
병사들의 사기는 절호조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병사들을 비웃으며 말했다.

"바보들아, 방금 얼마나 위험했는데."
"뭐가 말씀이십니까? 죽여버릴 뻔했습니까?"
"아니, 우리 전부 첫날부터 제대로 조질 뻔했다. 방금 쳐 맞던 마을 대표놈, 내 단봉에 분명히 반응했었어."
"예? 무슨…"
"그 새끼 그거, 눈알 굴리면서 그냥 맞아 준거라고. 여기 영주민들도 다 아는지 전부  죽탱이 닥치고 있을 때도 체념한 분위기는 아니었고."
그녀는 눈을 흘깃 돌리며 쓰러진 마을대표에게 모이는 주민들을 노려보았다.

"이거 진짜 힘든 일 될지도 모른다, 얘들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괜히 저 새끼들 봐주지 마라."

#

"괜찮나, 이바노프?"
"...나 참, 소냐보다 약하게 때리더군."
그는 그런 농담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누구도 웃지는 않았다.

"꽤 노골적으로 속을 드러내는 군. 망할 돼지새끼들, 그냥 불탄 시체나 인수해  줄 알았더니."
"이제 어쩌면 좋지, 올가?"
이바노프는 그 질문에 코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바뀐 건 없어. 놈들의 말에 따르는 척하면서 계획대로 행동한다. 다들 지하통로 잘 숨겨두고, 오늘 저녁모임도 정상적으로 진행할거야."
"...괜찮겠어?"
"괜찮다. 아무 문제없어. 다들 걱정하지 마라."
그는 몸을 털어  듯 몇  제자리에서 뜀뛰기를 하고서 손수건으로 수염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듣기로는 저놈들이 빨아주는 구호부대 안에 우리 쪽 내통자도 있다고 했다. 진짜 싸움은 저 돼지새끼들의 영웅 님들이 오시면 시작이야. 일단 버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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