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0화 〉숙청회(肅淸會) (90/164)



〈 90화 〉숙청회(肅淸會)

"칼린. 우린 오늘 올바름을 정립하러 간다."
"네, 영주님."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의심하지 말거라. 저들이 무슨 말을 해도 의심하지 말거라. 오늘 이뤄지는 일은 올바른 것이고 정의로운 것이다."
"네, 영주님."
"네 동료들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더이상 약해져서는 안된다. 알지?"
"...네, 영주님."
"착하구나."
영주는 그렇게 말하고서 회랑을 걸어 나간다. 그녀의 왼쪽 뒤로 칼린이 따라간다.


"나에게 용기를 다오."
지난번에 걸었을 때는 치욕과 설움으로 지난 길이다. 길의 끝에 문이 보인다.


요나는 문의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완벽한 방음때문에 안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요나는 한번 심호흡을 하고-


문을 발로 차 열었다.

8영주의 시선이 한점으로 몰렸다. 종자들은 그 둘이 착검을 한 외부인임을 확인하고 즉시 각자의 무기를 꺼냈다.

"...무슨 일인가, 요나."
"움직이지 마시죠. 지금 여기 게신 분 전원, 저와 제 종자의 검간(劍間)에 들어와 계십니다."
칼린이 검을 고쳐 쥐었다. 언제든지 뽑을 수 있는 자세가 되었다.


"...종자는 이쪽도 있어. 제정신인가?"
라티아의 영주는 당황조차 하지 않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이야기는 들어볼 수 있는  아닐까? 개인적으로 그녀가 왜 이러는 지 궁금하군."
허버트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요나가 천천히 원탁을 향해 다가갔다.

"감사합니다, 허버트경. 일단, 선량한 자들에게 먼저 사죄하겠습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다소 강경한 자세로 회의장에 침입한 것은, 감히 윌레인의 정의에 반하는 자를 색출해내기 위함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사갈의 영주도 손을 들어 올렸다. 명령만 한다면, 그들의 종자들은 죽음도 불사하고 저들을 제압하리라.
"협조해 주시는  좋을 겁니다."
"우리가 왜-"
"불손분자를 이 자리에서 축출해내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원탁 밖으로 가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원탁의 밖. 그들의 이야기가  전달될 곳은 왕의 어전 뿐이다.

"전 8귀족 안에 불손한 종자가 있음을 알기에 목숨을 걸고서  겁니다. 전혀 두려울 게 없습니다."
당당히 선포하는 요나의 말에 영주들은 잠깐 서로를 마주한다. 진짜 불손분자를 골라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회의장이 아니라 왕의 어전으로 바로 갔으리라. 일단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겠다고 그들도 판단했다.

"말해라."
"감사합니다."
그녀는 검을 내리고  속에서 작은 종이를 하나 꺼냈다.


"먼저 임무 보고입니다만... 사망자 없이 무사히 임무를 끝냈고, 당시 지원을 온 병사는 네르바의 영주, 허버트 경이 보낸 병력 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영주의 병력은 전혀 오지 않았었습니다. 이 중에서 아예 병력을 보내시지 않으신 분 있으십니까?"
그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예상대로였다.

"위치 관계상, 날짜에 맞추기 위해 우리에게 첫번째로 병력을 보내게 되는 것은 바나루크의 영주, 미쉘님이십니다. 위치는 적당히 가까우나 비나흐의 기관차를 이용할 수 없으니까요. 맞나요?"
"...그렇다만?"
바나루크의 영주, 미쉘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 요나는 그 웃음을 가볍게 무시하고 다시 말을 시작했다.


"미쉘님께서는 약속 날짜 일주일 전, 제 성으로 찾아오셨었습니다. 그리고 제 대리로 선 자에게 보낸 병력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통보하셨습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직접 가지 않았었다. 나의 종자, 뒤낭이 갔다 왔지."
그녀의 뒤에는 긴장한 얼굴을 하고서 창을 잡고 자세를 유지 중인 흑발의 남자가  있었다.

"뒤낭, 위 말에 틀림이 없느냐."
"...네. 확실합니다."
"그렇다는군."
요나는 그 말에 크게 한숨을 쉬었다.


"모두가 병력을 보냈다. 하지만 단 하나도 오지 않았다..."
"잠깐, 우리의 병력은 분명 네르바까지 갔었다. 자네들이 연락을 받지 않았기에 돌아오라고 했을 뿐이야."
조닐의 영주가 그렇게 말하자, 요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곧 칼린이 검을 잡은 자세를 고치지 않으며 챙겨온 노트를 건내 주었다.


"그건...?"
"네르바 숙박시설의 고객 명단입니다. 여러분의 사병을 위한 숙박장소로 지정된 곳이었죠."
조닐의 영주는 명단이 있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런 것까지 가지고 있다면, 네르바의 영주는 이미 요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은 협력관계일 수도 있다.


자기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 멍청한 말을 했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네르바까지 도달했던 자들의 이름은 이 목록에 들어있겠죠. 그렇다면 이 목록에 있는 이름들을 전부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 웃으며 노트를 펼쳤다. 각자의 명줄이 담긴 노트가 펼쳐 지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분위기 속에서, 결국 사갈 영주의 종자가 움직였다. 그는 빠르게 레이피어를 돌려 그 노트를 향해 휘두르려 했다. 지금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명부를 펼치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아아악!"
그러나 그 시도는 곧 수포로 돌아갔다. 칼린의 검이 더 빨랐다. 날아오는 그의 검을, 칼린은 쌍수도를 그의 손등에 꽂아버리는 것으로 제압했다. 그는 손 째로 원탁 위에 꽂혀 버렸다.


"으...으으으..."
"아가토!"
사갈의 영주가 탄식했다. 칼린은 다시 검을 뽑아내며 자세를 고쳤다. 상당한 반응이었다. 다시 한번 회의장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부디, 방해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첫번째는 무거운 분위기에 착란 때문일 수 있지만... 두번째 부터는 반동분자의 발악으로 착각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정의라는 명분 하에 행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명부를 펼쳤다. 그리고 명단을 읽었다.

"어닝, 패터슨, 코니, 맥커클, 햄턴, 러셀, 테런스, 에이다, 로저, 메르나."
몇몇은 침착하게 그 이름들을 듣고 있었고, 몇몇은 낭패라는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명단을 전부 읽자 모두의 표정은 같은 것이 되었다.

"이게 무슨..."
"놀라신 것 같군요, 미쉘경."
그 명단은 미쉘이 보낸 자들의 이름이었다.

"1차적으로 보면 저에게 부대를 보냈던 것은 미쉘경 뿐이었다는 게 됩니다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미쉘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병력은 요나에게 보고 나흘 후 바나루크로 돌아왔었다.


"우리 모두 알겠죠. 윌레인의 심장부인 8영주가, 약속한 부대원들을 보내지 않은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렇다는 말은... 미쉘경을 제외한 다른 분들은 병력을 보냈지만 도시에 도달하지 못했고,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천천히 알  있었다. 요나가 이 자리에서 준비한 것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미쉘경, 솔직하게  해 주십시요."
요나는  노트를 펼쳐 원탁 위로 던졌다. 붉게 퍼진 피 위에서, 노트는 달라붙듯 펼쳐졌다. 모두가 그 내용을 다시 볼 밖에 없었다.


" 당신들의 병력은 네르바에 가장 먼저 도착해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복귀 했던 겁니까?"
명단에 적힌 이름 옆에 기재된 날짜는 소금부대가 충족과의 접전지에 도착하기도 전의 것이었다.


"자, 잠깐! 지금 무슨 말을 하시려는 겁니까!"
미쉘의 종자가 반색을 띄며 무기를 들어 올렸다.


"지금 우리 영주님을 모함하시는 겁니까?"
"주제를 알아라. 종자가  자리가 아니다."
요나는 그렇게 일갈하고서 검을 미쉘에게 향했다.


"대답해 주십시요, 미쉘경. 당신의 병력들은 보고보다 먼저 네르바에 도착해서 무엇을 한 겁니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긴 손톱을 가진 손으로 입을 가리고 요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대답해 주지 않으신다면 대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경은 거기에서 다른 지원병력들을 교란시킨 겁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우리의 지원병력은 네르바까지 도착도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녀의 종자는 그렇게 소리치고 무기를 조금 들어 올렸다.


"영주님, 아무거나 말 해주세요! 우린 결백합니다!"
"... 지금 나의 병력 10명이서 다른 영주의 병력 60명을 전부 교란시켰다고 말하는 건가?"
"각자의 병력은 따로 왔을 겁니다. 60을 교란시킨 게 아니라, 10명씩 6번 교란시켰다면 말이 됩니다."
"보낸 병력들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처음 말한 것은 나였을텐데."
"그렇게 먼저 흔적을 남겨둔다면 다른 영주들과 묻어갈  있으니까 말입니다. 당신이 계산하지 못한 것은 제가 살아 돌아오는 것 아니었습니까?"
바나루크의 영주는 말을 멈추었다. 그녀의 종자의 얼굴이 점점 안색을 잃어갔다. 들고 있는 창의 끝이 점점 떨리는 것이 보였다.


"자, 잠깐! 결백의 증거가 있습니다! 부대원들의 복귀 소식도 제가 직접 전달했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가 떠오른  급하게 창을 내리며 화색을 띄웠다.


"전부 오해입니다! 벨카 담당 왕궁공무원에게 연락해 보시면 오해가 풀릴 겁니다! 그 분에게 분명 부대원들이 복귀한 그  보고를 전달했어요!"
그는 이걸로 이겼다고 생각한 건지, 약간 자신감이 붙어  걸음 더 앞서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벨카에 보낸 병력들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는다고 보고하고 나흘 후에, 영주 대리님께 부탁해서 왕궁공무원에게 보고했었습니다! 영주님이 진짜로 병력을 교란시키기 위해서 네르바에 병력을 상주시켜 놓으셨다면, 그렇게 일찍 부대원들을 복귀 시키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야, 비나흐의 병력은 네르바까지 가는데 하루면 충분하니까요!"
승리를 확신하는 자의 눈빛으로, 종자는 요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만에 하나라도 요나님의 말씀이 맞다면, 네르바에는 적어도 비나흐에서 보낸 병력만큼은 있어야 했다는 겁니다!"
사실 약속일자보다 빠르게 병력을 복귀 시킨 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중을 따져 본다면, 다른 지원 병력들을 교란시킨 것에 비해서는 훨씬 가벼운 것이었다. 그 종자도 나름 생각과 고민을 거듭해서 비명처럼 말한 것이었고, 이것으로 약간의 징계는 생길지 몰라도 상황은 역전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나는 가만히 그의 당당한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하찮은 것을 볼 때의 그것이었다.


"종자가 낄 자리가 아니라고 하였건만, 기어이 제 주인의 무덤을 파 주는군."
"네?"
"왕궁공무원에게 보고했다고 했었지. 그때 네놈은 어디에 있었느냐?"
"그야, 병력들의 복귀까지 전부 보고해야 했으니 다음 연락을 기다리며 벨카령에서 대기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럼 그 때 미쉘경의 병력을 직접 보았느냐?"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그 병력들은 바로 바나루크로 돌아갔을 테니, 벨카령을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병력이 돌아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지?"
"제가 영주 대리님께 보고를 드렸고, 벨카령과 바나루크령의 공무원끼리 확인을 끝마치고 다시 보고도 받았으니까요... 그것까지 확인하고서 바나루크령으로 복귀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네 근거는, 상호 협의로 되돌아온 왕궁 공무원의 보고인 거냐?"
그 종자는 살짝 머리가 어지러워 지기 시작했으나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요나는 웃었다.


"벨카령의 공무원은  어떤 보고도 받은 기록이 없다."
"...네?"
"벨카령의 공무원은  어떤 보고도 받은 기록이 없다. 바나루크의 공무원도 똑같겠지."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하는 그녀의 말에 그 종자는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그게 무슨..."
"네놈의 말에는 그 어떤 증거도 없다는 거다."
"하지만 분명 영주 대리님께서!"
"영주 대리는 어떤 사람이었지?"
종자는 필사적으로 생김새를 떠올리고서 말했다.


"...갈색 머리와 눈을 하신 여성분이셨습니다."
"내가 영주 대리로 세운 자는 흑발에 흑안이다. 이걸로 끝났군."
요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미쉘을 쳐다보았다.


"경은 약속일 바로 전날까지 네르바에서 병력들을 대기시켰던 겁니다. 자신의 종자까지 속이면서."
"잠시만요! 이건 이상합니다! 그 정도로 알기 쉬운 거짓말이라면, 확인만 하면 바로 들통날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그녀의 계획대로, 내가 죽었다면 확인할 수 없었을 테지. 누가 병력을 보냈는지, 안 보냈는지 신경 쓸 것도 없이 그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녀가 계산하지 못한 것은 내가 살아있는 것이라고  것이다. 자신의 종자까지 속인 것은 마지막 양심이셨습니까?"
"하지만, 하지만!"
종자는 혼란스럽게 자신의 영주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저 한결같이 요나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이건 이상해요! 저는 멍청해서  잡아 말할 수 없지만, 다른 영주님들은 전부 뭐가 문제인지 눈치채셨을 겁니다! 왜 아무 말 안해주시는 겁니까!"
그는 사시나무 떨  떨며 창을 다시 쥐었다.

"영주님, 제발 뭐라도 말을-"
"뒤낭."
미쉘은 완전히 패닉이 온 듯한 그를 불렀다. 평소같은 그녀의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끝났다."
미쉘은 손을 내려 모으며 웃음지었다.


"어떤 논리적인 설득도 이 상황을 바꾸지 못해. 모르겠느냐."
"무슨..."
"요나경, 준비를 많이 하셨군요."
그녀는 원탁의 다른 영주들을 하나씩 돌아보았다.

"시궁쥐 치고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건 죄를 인정한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아뇨,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마지막까지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함이었다.

"저는 그저 당신이 이겼다고 할 뿐입니다."
요나는 만족스럽게 원탁의 영주들을 돌아보았다. 탐탁치 않아 하는 자가 보이고, 지금 상황에 안심하는 자가 보인다. 그러나 지금  누구도 그녀를 위해 손을 들어주지 않으리라.

"이런 말 하기는 죄송스럽지만,  예상이 맞아 다행이로군요."
요나는 데버만의 영주, 아이델을 향해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혹여 죄인이 다섯은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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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저는 그 때 현장에 없었거든요."
현장에 없었다.

"전 그 때 리쿠르트 선생님을 그... 감옥에 넣는 담당이었습니다. 솔직히 마음이 편치는 않았지만... 명령은 따랐죠, 뭐."
리쿠르트를 옮겼다.

"그때 제 후방 근위병들은 전부 마을로 나섰었어요. 난리도 아니었는데. 칼린씨에게 역병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참 터무니없는 오해였죠. 칼린씨는 뭔가, 구정물을 뒤집어써도 깔끔한 느낌이라서..."
아예 성 밖에 있었다.

"깜짝 놀랐던 게 기억나요. 정문 쪽 근위병에게 보고가 없었는데, 갑자기 영주님이 칼린님을 잡았다고 하시더라구요."
전방에서도 칼린을 목격하지 못했다.

"영주님이 칼린을 붙잡았다고 했어요. 네? 아니, 어디 방향 근위병이 잡았는지는 저도 잘..."
"갑자기 칼린님이 붙잡혔으니 모이라고..."
"잡혔다고 보고 떨어져서 그냥 뭐, 다시 파티장으로 돌아갔었죠."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 긴급한 상황이었으니까요. 신경  겨를이 없었죠. 영주님도 그랬지 않았을까요?"
사용인이나 근위병 중 단  명도 칼린 탈출 당일에 그를 목격하거나 잡지 않았다. 그게 무슨 뜻인가.


"도움이 됐나요?"
"아, 큰 도움이 됐어. 고맙소."
라드는 웃으며 눈 앞에 있던 근위병의 어깨를 툭 쳤다. 분명 칼린은 리쿠르트를 구하러 다니다가 잡혔다고 했다. 하지만 그를 본 자는 아무도 없다.


라드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속이 혼란스러웠다. 그  이후로 인원 변동이 없었다는 근위병의 말이 진실이라면 누군가는 그를 목격이라도 했어야 아구가 들어맞는다.


"어질어질 하구만..."
그는 혼잣말을 뱉으며 발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떠오른 질문이 생겨 다시 발을 돌렸다.

"이봐, 하나만 더."
"네?"
"칼린의 방은 선생의 방과 비교해서 어디에 있지?"
"그게 무슨..."
"위냐, 아래냐, 같은 층 이냐. 이걸 물어본 거야."
근위병은 잠깐 생각하는 듯했다.

"분명 선생님의 방보다는 아래인데... 그걸  물으신 거죠?"
"...선생의 방 위치는 알거든. 칼린 방 위치는 몰라서.  방에 갖다 놓을  있어."
근위병은 잠깐 라드를 바라보다가 이내 웃었다.

"아, 그런 거라면 칼린님의 방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진짜? 고마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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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는 다시 시계를 바라보았다. 15분 정도 남았나. 그녀는 다시  번 트렁크를 열어 보았다. 레버는 제대로 돌려져 있다. 그걸 확인하고서 그녀는 자물쇠를 꺼낸다. 그리고 트렁크의 손잡이와 벤치 다리에 걸어 끼웠다.

다음 그녀는 역을 나와, 비나흐의 건물 사이 골목으로 들어갔다. 막다른 벽. 그 앞에는 검은색으로 일렁이고 있는, 타원형의 '무언가'가  있었다. 포탈이었다.

피로만 사제의 마법은 언제 봐도 신기하다. 이리하는 그 포탈에 손을 뻗어 보았지만, 젤리를 누르는 감각으로 튕겨져 나온다. 확실히, 포탈에 방향성이 있다고 했던가. 그녀는 몇  더 포탈을 손가락으로 찔러보다가 담배를 꺼냈다.


반 정도 피웠을 때, 포탈에서 피로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반정도 뺀 순간 측면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이리하를 발견하고 발을 멈추었다.

"...그건 뭐죠?"
냉랭하게 묻는 그의 말에 이리하는 그제서야 자신이 담배를 피고 있다고 깨달았다.

"아, 부대에서 습관이 되어서 그만..."
그녀가 바로 담뱃불을 끄려고 하자, 피로만은 완전히 몸을 빼낸 후 손바닥을 펼쳐 그녀를 막았다.

"아뇨, 괜찮습니다. 큰 임무니까요. 분명 그 분도 허락하실 겁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얼굴을 이리저리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표정을 짓는데 실패했다. 그는 잠깐 얼굴을 꿈틀대다가  손수건으로 흐른 침을 닦아내고 말했다.

"공범이 있다면 말이죠."
이리하는 그 말에 얌전히 담배  대를 그에게 건내 주었다.

"이거, 저에게 공범을 요구하실 줄은 몰랐는 걸요."
"사제님이 오늘의 총괄자시니까요."
피로만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이리하는 그가 연기를 들이 마시는 것까지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사제님, 동력실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검을 꺼냈다. 피가 묻어 있었다.

"전부 해방되었습니다. 열차는 천천히 멈춰갈 것이고, 폭탄도 제대로 설치되었어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둘은 그 이후 말없이 담배를 태웠다. 적당히 꽁초를 버린 둘은 곧 골목을 나왔다. 멀리, 마차의 승강장에 부대원들이 하나  씩 모이는 것이 보였다.

"자, 슬슬 가죠."
"네."
둘은 자연스럽게 그 무리에 합류했다. 마치 처음부터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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