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3화 〉병(충)해 (83/164)



〈 83화 〉병(충)해

이리하는 천천히 밧줄을 쥐어 끌며 전날 저녁에 있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같이 도르베의 손을 한짝씩 붙잡고 나누던 대화. 그녀는  자리에서 칼린에게 탈영을 제안했었다.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고, 자신과 함께 도망치면 숨을 수 있는 곳을 안다고 말했다. 칼린은  제안에 한참을 도르베에 손을 마사지하며 조용히 있다가 말했었다.

'승산이 없다면 싸울 이유가 없죠. 도망쳐야죠.'
그는 그렇게 말하고서 천천히 가면을 벗어 내렸다. 그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 땐 우리 둘만 도망치면 안되는 거예요. 우리만 싸우는 게 아니잖아요. 동료들과 마을 주민들, 요나까지 전부 도망쳐야 돼요. 이리하가 그렇게 설득할 수 있다면 전 따라 갈게요.'
결과는 안 바뀌어. 전부 죽게 될 꺼야.


'도망치세요. 잡지 않아요.'
넌 그냥 여기서 죽겠다고?

'죽는다면 제가 있어야  곳에서 죽겠어요. 요나와 동료의 곁이 제가 있을 자리고 제 무덤이예요.'
...나도 동료고?

'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옅게 웃었다. 그리고 다시 가면을 쓴  도르베의 손을 잡았다. 그 이후 둘은 아무 말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리하는 그 순간을 생각하며 잠깐 사색에 잠겨 있다가, 팽팽해진 밧줄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것을 끌어당겼다. 뒤에 묶여 있던 사람들이 줄줄이 넘어졌다. 노인이 둘에 30대 중반의 남성이 하나였다.


"똑바로 걸어라."
그들은 새벽을 틈타 탈영을 시도한 자들이었다.




요나는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리하와 릴로가 탈영한 자들을 무릎 꿇리는 순간에도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눈은 그대로 둔 채로 그녀가 물었다.

"그게 전부인가."
 세명. 9명의 도망자 중 잡아낸 것은  셋 뿐이었다. 릴로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나서야 요나가 고개를 돌렸다.

"셋중 둘은 병사조차 아니로군."
노인중 하나는 이미 지성을 잃은 것인지 끊임없이 몸을 떨며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머지 노인 하나는 마치 이 상황을 각오한 듯 담담하게 서있었다. 그 중에서 진짜 공포로 몸을 떨고 있던 것은 가운데에 포박당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남성 한 명 뿐이었다.


"고개를 들어라."
요나는 고개 숙인 그 남자의 시야에 자신의 발이 보이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요나는 그 남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쪼그려 앉았다.


"이름이 뭔가."
"사, 살려주십시요! 하, 한순간 미쳤었습니다!"
"이름을 물었다."
"아버지는 아무 잘못 없으십니다! 그냥 제가 억지로 잡아 끌고 가던-"
요나는 그의 뺨을 한 대 후려 쳤다. 건틀렛을 끼고 있었기에 그 충격은  컸다.

"이름."
"...핍, 핍입니다."
"좋아, 핍."
그녀는 무릎을 피고 일어나 다시 지평선 쪽을 바라보다가 그를 돌아보았다.


"이제부터 질문하는 것만 대답해라.  수 있겠나?"
 부드러운 말투였기에 핍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나는 그걸 보고서 한번 웃어 보였다.


"핍.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걸 보면 징용되어서 여기 있는  같은데... 내 말이 맞나?"
"네, 네! 제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살 구멍을 찾아낸 듯 핍이 목놓아 말했다.


"양 옆의 노인들은 누구지? 네 가족인가?"
"아, 오른쪽은 제 아버지이시고, 왼쪽은... 왼쪽은  친구의 아버지이십니다."
요나는 양 옆의 노인들을 바라보았다. 치매에 걸린 쪽이 친구의 아버지인 듯했다.


"친구의 아버지는  구하려 한 것이냐?"
"친, 구가 혼자서 부양하고 있었는데...  승리 때 돌격부대에 참가했었습니다."
요나는 첫 돌격전 때 죽은 자들이 떠올랐다. 그 중 하나이리라.

"군인이란 무엇인가. 사명감 아래에서 자신보다   것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며 불철주야하는 자들을 뜻한다."
요나는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핍의 눈이 커졌다.

"군인의 자질이 부족하다면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게 돼있다. 그래서 군법이라는 것이 있다."
완전히 뽑아낸 검은 수많은 전투를 거쳤음에도 여전히 핍의 안색만큼이나 푸르렀다. 이리하는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휘저으며 떨고 있는 핍을 내려다보던 요나는 검을 내리 휘둘렀다.


"...넌 군인이 아니다."
핍의 밧줄이 끊어졌다. 어리둥절한 그를 내려다보며 요나는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넌 우리의 군인들이 부족해서 강제로 징용된 백성이다. 너를 용서하마. 남은 두명의 밧줄은 네가 직접 풀어주도록."
핍만큼 놀란 것은 이리하였다. 물론 잡혀온 자들이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순간에 요나가 탈영병을 용서할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다.


"모두 들어라."
요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빈 나무 상자 위에 올라갔다. 그리고 모여 있는 군인들을  둘러보았다.


"징용된 자들은 지금 도망쳐도 좋다. 그러나 군인으로서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등을 보이지 마라. 네놈들의 역할은 승리하는 것이고, 패배하면 마을과 함께 끝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리고 도망을 각오한 자들도 들어라.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오늘 일어날 전투의 끝이 어떻게 되건, 도망친 자들에게 네놈들은 평생 도망자가  것이며,  오명을 씻어내는 일은 죽음보다 고된 선택이 될 수도 있다.


네놈들을 받아  마을을 찾기도 힘들거니와,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 자리에서 살아도 바로 다음 날 하루살이처럼 죽어버릴 수도 있는 시대다.

다만 이런 시기에도 내가 확신할  있는 것이 있다. 나의 승리이다."
그녀의 말에는 한치의 의심도 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잠깐 호흡을 잡던 그녀는 마지막 한마디를 뱉었다.

"옳은 선택을 하도록."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상자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지평선을 바라 보았다. 비난도, 야유도, 박수도, 환호성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자리의 분위기는 명확해졌다. 일부는 고개를 숙이며 자리를 피했고, 나머지는 자신의 무기를 고쳐 쥐었다. 덜그럭거리는, 다만 그 소리 뿐인 세상 속에서 길게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울려 나갔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마지막 전투의 경종처럼 들렸다.



칼린은 그저 달리고 있었다. 안광을 내뿜으며 무리한 속도를 내고 있었다. 뭔가를 생각할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 성공적으로 지원 병력을 약속 받았음에도 분노가 사라지지를 않았다. 이젠 이 감정이 어디로 향하는 지도 모른채로, 그는 고삐를 더 쎄게 쥐었다.


점점 황량해지는 풍경 속에서 그는 말의 속도가 줄어들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지금 감속은 허락할 수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혼란스러운 머리속에서 칼린은 마법을 처음 썼을 때와 비슷한 감각을 느꼈다. 지금이라면 가능할 것 같은, 묘한 확신이 그의 머리속을 지배했다. 그는 고삐를 잡은 상태로 천천히 몸을 숙여 말의 눈을 바라보았다.

말이 크게 한 번 몸을 틩겼다. 그리고 곧 방금 전 보다도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뜨겁게 콧김을 뱉어 대며 무리해서 달리기 시작한 말 위에서, 칼린은 더 생각할 겨도 없이 그저 속도를 높였다. 그가 타고 있는 말의 능력을 벗어난 속도였다.

저 평야의 끝에서 모래먼지가 일고 있었다. 그의 압도적인 시력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충족이 오고 있음을 눈치챈 그는 몸을 한층 더 낮추고 방향을 틀었다. 아무것도 정립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머리속에서 그가 해야할 것이 보이는 듯했다. 그게 옳은 지 아닌 지조차 파악할 수 없어서 그는 그저 지금 자신이 생각한 것이 옳은 선택이기를 바라며 달렸다.


그가 말머리를 돌린 방향은 그 영지의 상단 쪽, 즉 협곡의 위로 이어지는 곳이었다. 그가 탄 말은 속도를 유지하며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산양같은 움직임이었다.


말이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속도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가속이 붙어가며 협곡 위를 달리던 칼린은 곧 충족과 자신의 진영이 둘  내려다 보이는 지점까지 도착했다. 압도적인 병력차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은 그 자리를 지키며 몰려오는 충족들을 마주보고 있었다. 그 지점에서 칼린은 말을 한  멈추었다.

"가자."
스스로 듣기에도 지나치게 무감각한 말을 하고서, 그는 말고삐를 고쳐 쥐었다. 그리고 경사를 향해 말을 달리게 했다.




"유서는 안 써도 된다더니.."
아스타가 담배를 꼬나 물고 불만스럽게 갤러한을 바라보았다. 갤러한은 그런 아스타를 조금 불안한  바라보았다.

"...싸울 수 있냐?"
"아, 씨발! 모르겠다! 쉴라고 했는데..."
아스타는 그렇게 말하고서 자신의 왼편을 흘깃 바라보았다. 도르베가 웃으며 담배를 잡고 있었다.


"나보다 병신이 싸우겠다더라."
"걱정마라. 지금도 너보다 도움될 것 같은 느낌이 왔다."
그는 싱긋거리며 담배를 물었다. 담배의 불똥이 그의 손가락에 튀었지만, 그는 손에 완전히 감각을 잃은 듯 표정 하나 바꾸지 않으며 여유를 부렸다. 아스타는  모습에 답답한 듯 눈을 감고 하늘로 고개를 올렸다.

"그래서, 칼린이  없는지는 아무도 대답 안해주는 거냐? 걔 전력이   텐데..."
릴로가 그렇게 묻자, 몇 번을 말해줘야 되냐며 륑게가 나섰다.


"병력 데리러  거라고. 지미 씨발, 8영주의 사병들이라는  오는 길에 길이라도 잃었나 보지."
"뭐야, 분명 배신당했거나 그런 건 줄 알았는데."
"나랏님이 너냐?"
꽤 안정된 듯한  다섯에 비해, 소니아는 조금 떨고 있었다.  이상 감시탑에 남아있는 소금부대 병력은 없었다. 모두가 돌격부대에 참가하게 되었다. 핀조차도 검을 들고  자리에 서 있었다.


"소니아."
"어?"
조금 몸을 튕기며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라드가 있었다. 그는 소니아에게 가루약을 건내 주었다.


"좀 진정 될 거야."
"아... 고마워."
떨리는 손으로 그 약을 받아  소니아는 곧  가루약을 한번에 삼켜냈다. 쓴 맛이 그녀의 혀를 감쌌다.


"으에에..."
"침 삼켜. 비싼 약이니까."
그는 웃으며 그렇게 말하고 다시 정면을 돌아보았다.


"오페라 봐야지. 안 그래?"
소니아는 잠깐 입을 막고 얼굴을 한껏 찡그렸다가, 곧 침을 삼키며 입가를 닦아냈다.

"그래. 봐야지."
그리고 뿌옇게 퍼지고 있는 흙먼지를 노려보았다.

"핀,  느껴지냐?"
"네, 느껴지네요."
갤러한은 뭔가 대답을 기다렸다가, 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를 돌아보았다. 핀은 빙그레 웃으며 갤러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좆된게 느껴져요, 갤러한."
"그러냐... 야, 이리하. 넌 어떻게 생각하냐?"
갤러한이 이리하에게 대화를 돌렸다., 그녀는 평소와 같은 미소를 걸치고 대답했다.


"사실,  그렇게 긴장되지는 않는데."
"그러냐. 나도 그래."
갤러한은 주머니에서 리쿠르트의 편지를 꺼넀다. 바로 어제 온, 가장 새 편지이다. 그는 거기에 잠깐 입을 맞추고 다시 소중하게 접어서 속주머니로 위치를 옮겼다.


"화살대기!"
요나의 호령에 병사들이 화살을 활에 걸쳤다. 그리고 부대원들의 잡담마저 끊긴, 진짜 침묵이 시작되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말 발굽소리는 마치 드럼소리처럼 들렸다.

"장전!"
그 말에 활의 시위가 지금의 분위기 만큼이나 팽팽하게 당겨졌다. 잡은 손을 부르르 떨며, 병사들은 점점 시야에 들어오는 검은색 파도를 바라보았다. 이제 적들과의 거리는 불과 500미터가 안되어 보였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요나가 들어올린 팔을 내리려  때였다. 그녀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잠깐!"
비명처럼 지르는 그녀의 목소리에 무심코 활 시위를 놔 버릴 뻔한 병사들이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녀는 올린 팔을 내리지도 못한 채,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데?"
부대원들도 조금씩 말을 앞으로 끌어 그녀가 본 것이 무엇인지 보려 했다. 곧 그들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저 새끼 뭐야-"
칼린이 협곡을 따라 단신으로 내리 달리고 있었다.



타이밍이 중요했다. 충족의 화살이 자신의 진영에 닿지 않을 거리이자, 자신들의 화살은 충족에게 닿을 거리. 그 거리의 딱 중간지점에 서야 했다.  적절한 타이밍을 맞춘 그는 원하는 지점에서 말을 멈추었다. 선두에 서있는 자들은 한 순간 당황했지만, 말의 속도를 낮추지는 않았다. 그래, 그게 좋다. 그래야 한다.

칼린은 몸이 뜨거운 것을 느꼈다. 할 수 있다는 감각. 그는 자신의 등에 걸쳐진 쌍수도를 뽑은 후, 눈을 한번 감았다. 말들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앞에서는 적들의 조소를, 뒤에서는 동료들의 쌍욕을 들으면서 가만히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눈을 떴다.



차다레마는 갑자기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외부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외부자는 곧 협곡을 타고 내려와 적진과 자신의 정 중앙에서 말을 멈추었다.

아직은 거리가 멀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그 모습이 뚜렷해지자, 그녀는 어렴풋이 누구인지 알 듯했다. 돌격대에 있던 가면을  꺾다리였다. 실력은 대단했지만, 전투 중에 가끔 허공을 보는 등 맨정신은 아닌 것 같은 자였다.

조금 더 가까이 보니 점점 확실해지고 있었다. 정장 위에 일부만 덮어 끼운 듯한  좋은 철갑옷, 뽑아 든 쌍수도까지, 그가 확실해 보였다. 전장에서 착란을 일으킨 자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별로 놀랍지도 않다. 이번 전쟁은 길었으니까.


마침내 이방인의 얼굴이 보이는 거리까지 도달했다. 이방인은 가면을 벗고 있었다. 한순간 신기루가 아닐까, 하고 생각이  정도의 외모였다. 눈과 입을 꾹 닫은 그것은 그저 조각상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자신들을 기다리는 듯했다.


"저자를 생포하라."
"생포?"
"그래. 노리개로  것이다."
겉보기가 좋고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중이다. 전리품으로 쓰기에는  적절하다. 거기까지 판단했다면 속도를 높여야 했다. 그러나 차다레마는 거기서 이상함을 느꼈다.


고삐에서 손이 안 떨어지는 듯한 감각. 전신의 털이 솟아오르는 감각. 발 끝이 차가워지는 감각. 차다레마는  감각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무슨 감각인지는 알고 있다.

그녀가 덮어쓰고 있는 괴물 늑대를 대적했을 때의 감각. 얇은 죽음의 위로 걷고 있는 느낌. 그녀의 감각은 보이는 것과는 정 반대의 것을 외치고 있었다.


"뭔가가 이상한데."
그녀의 오른쪽에 있던 지휘관도 이변을 눈치챈 듯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말의 속도를 늦추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이방인과의 거리가 100미터도 남지 않았을 때, 선두에 선 자들은 전부 보았다.


마치 횃불이 그 불꽃을 흘려내듯, 붉게 타오르며 태양빛 아래에서도 그 빛을 흘려내는 그의 안광을 보았다.


"이리하!"
갤러한이 이리하를 향해 소리쳤다. 이리하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알겠다!"
검을 뽑고 고삐를 고쳐 쥐는 그들을, 요나가 막아 섰다.


"잠깐, 무슨-"
요나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그저 칼린을, 그의 뒷통수를 홀린 듯 바라보며 웃었다.


"얌전하게 있거라..."
그녀는  둘을 막아낸 손을 천천히 내렸다.

"곧 진귀한 광경을 보게 될 테니까."
말도 안돼는 소리였다. 이리하도 갤러한도 머리로는 이해할  없었다. 그러나 요나의 그 행동에서,  홀린 듯한 표정에서 이성 이상의 것을 느꼈다.  둘은 천천히 말을 멈추고 칼린의 방향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가만히 서 있는 그를 향해 흙먼지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검은 파도였다. 그 파도는 마치 칼린을 에워싸려는 듯 감싸지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파도가 해일이 되었다.

"맙소사...!"
그 순간만큼은 아군도 적군도 없이,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순수하게 경악하였다. 선두에 있던 말들이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냥 넘어지는 것도 아닌, 뛰어오르며 뒤로 넘어지면서 기수들의 허리를 부셔냈다. 전방이 무너지며 차곡차곡 쌓이는 말들의 시체는 해일이라고 밖에 부를  없었다.

무너지는 시체들이 쌓인다. 자욱이 퍼지는 흙먼지가 이 상황을 더더욱 신기루처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먼지속에 칼린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안광을 내뿜으며 자신을 향해 쌓여오는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뒤에 밀려오는 시체들에게 깔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칼린을 향해 달려오는 자가 있었다.

그 자는 곡도를 들고 웃고 있었다.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는 여성. 칼린도 알고 있다. 적의 지휘관이다.

"키후타 부족의 족장, 차다레마!!!"
울리는 목소리. 그녀는 그 말을 하면서도 말의 다리를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흑마는 칼린의 최면술을 버텨낸 듯했다.

칼린은 쌓여가는 충족의 시체들로 생긴 그늘 속에서 쌍수도를 한번 내려다보았다. 네르바에서 가져온 새로운 검. 상태를 가볍게 확인한 그는 달려오는 자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칼린!!!"
그녀가 뭐라고 말했는지 따위는 모른다. 다만 자신의 이름을 말한 것 같아, 칼린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으로 응대했다. 그리고 한 숨 돌릴 시간조차 없이 둘의 검이 맞붙었다. 만들어진 그늘 속에서 일기토가 시작되었다.

"네가 나의 죽음이렷다!"
차다레마는 자신의 상대를 보았다. 그것이 무엇을  것인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어떤 것도 신경  수 없었다. 그런 것을 신경 쓸 시간이 아니다. 그녀는 그를 마주하고, 다음으로 그의 말을 바라보았다.

코와 입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무릎도 무너졌는지 피가 줄줄 세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말은 완벽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인이나 말이나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듯했다.

"더 격렬하게 덤벼라!"
그녀는 곡도를 찍어 내리며 반대손으로도 곡도를 꺼냈다. 칼린은 그 곡도를 쌍수도의 코등이로 흘리려고 했다. 그러나 세게 내려찍는 그녀의 곡도에 오히려 쌍수도의 코등이가 부서져 버렸다.


그 순간을 차다레마는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 칼린의 어깨에 곡도를 박아 넣었다. 칼린은 오른쪽으로 몸을 크게 돌리는 것으로 관통상을 피해냈다. 그의 쌍수도를 잡은 팔에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차다레마는  수 있었다. 지금  앞에 이자가 나의 사조성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이 기회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직 초광월은 뜨지 않았다. 이자는 태양 아래에서 죽여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더 찾아오지 않는다. 지금  자를 죽이면, 승기는 찾아오게 되어 있다.  모든 희망을 담고, 그녀는 빈틈이 생긴 상대의 목을 향해 곡도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나 칼린은 검을 수직으로 세워 밀어 내 듯 그 곡도를 막아 쳤다.

"쓸데없는 짓이다!"
그녀는 그렇게 소리치며 반대손의 곡도를 측면으로 휘둘렀다. 그리고 상대편 말의 뒷다리 쪽으로 흙벽을 세웠다. 칼린의 말이 무너지며 몸이 기울었다. 기회였다. 그랬어야 했다.


그녀의 반대손의 곡도는 그의 칼자루에 막혔다. 그의 말은 마치 이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듯 우습게 흙벽의 측면을 걸어서 자세를 되찾았고, 칼린은 그 반쯤 무너진  위에서 균형을 찾아냈다.


당황할 틈조차 없었다. 차다레마는 바로 자신의 검을 그대로 빼내려 했다. 그러나 어딘가에 걸린 듯 빠지지 않았다. 그제서야 당황한 그녀는 자신과 맞대고 있는 상대의 검을 보았다.

그 검에, 투명한 적색의 이가 돋아나 있었다. 칼린이 그 쌍수도를 돌리자, 그녀가 양 손에 쥐고 있던 검이 비틀어 졌다.


높이 들어올려지는 쌍수도와 모래먼지 속에서 눈만이 겨우 보이는 그 사신 앞에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런가. 초광월의 아래에서 죽는 것이 아니었나. 초광월이 뜨는 날 죽는 것이었나.

예언은 어렵다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그저 웃었다. 그래도 뭐, 확실히, 시체의 그늘 아래 붉게 빛나는 저 두개의 안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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